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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3/30
 

네안데르탈인, 왜 인류 조상이 아닌가?

2009.11.18 08:32 | 대표폴더 | 황령산kkk

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54 주소복사

DNA로 풀어보는 고대의 미스터리 (6)

일엽지추(一葉知秋)라는 말이 있다. 떨어지는 하나의 낙엽을 미루어 짐작하건 데 가을이 왔다는 안다는 것이다.

몇 만년, 수십 만년 전에 일어난 사실을 파헤쳐야 하는 고고학에서 일엽지추는 대단히 중요하다. 발견된 하나의 사실로 당시의 정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물증이 여러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상상에 가까운 지나친 해석도 많다.

네안데르탈인은 바람둥이였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이 짐승들의 뼈들과 함께 출토 된 것을 보고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잡아먹었다는 주장도 사실을 그렇다. 또한 이 주장은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또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를 합친 것과 같은 유골이 출토되자 학자들은 두 집단 간의 이종교배가 있었을 거라는 주장도 했다. 이 주장도 인류학자들 사이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로 통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발견됐다. 따라서 학자들의 연구 열기도 대단했다. 유럽이의 조상일 수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을 둘러싼 갖가지 해석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데 재미 있는 주장도 전개됐다. 네안데르탈인이 바람둥이였다는 것이다. 일부일처제를 정착시킨 현생인류와 달리 네안데르탈인들은 여러 상대와 짝짓기를 하며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다.

여러 상대와 짝짓기한 자유연애주의자

또한 이와 같이 아내에게 충실하지 않는 바람둥이 기질 때문에 결국 현생인류의 지배를 받게 됐고, 결국에는 멸종하게 됐다는 연구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해가 안 가는 해괴망측한 이야기인가? 바람 피우면서 다녔다는 이야기는 무엇이고, 또 그로 인해 멸종됐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골상학의 일종인지, 아니면 정말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정확히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사람의 가운데 손가락인 검지와 약지 사이에 크기를 비교해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는 시도는 오랫동안 진행돼 왔다.

심지어 그 길이를 비교해 미래를 점 치는 사람도 있었다. 과학자들이 바로 거기에 착안을 두고 네안데르탈인이 바람둥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또한 일부일처제를 정착시키지 못해 멸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암컷을 돌보지 않아 수적으로 열세, 그래서 멸종?

쉽게 이야기 해서 네안데르탈인 수컷은 천성적으로 암컷을 전혀 돌보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짝짓기 해서 암컷이 임신되더라도 힘들고 중요한 시기에 먹을 것을 갖다 주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결국 자손번식 경쟁에서 뒤진 네안데르탈인은 수적으로 밀려 현생인류를 당할 수가 없어 멸종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그럴듯한 이야기다. 그러나 검지와 약지의 길이의 차이만 보고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신빙성이 없는 주장이 아닐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약지가 검지보다 길면 바람둥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다.

약지가 검지보다 길면 바람둥이

약지가 긴 사람은 여자든 남자든 한 상대방에게 만족을 못하는 바람둥이기 때문에 연애는 할 망정 결혼은 금물이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스토리다. 그 스토리를 네안데르탈인에게도 적용시킨 것이다.

지난 2008년 영국 리버풀 대학 연구진은 사람을 비롯한 현대 영장류의 검지와 약지 비례가 짝짓기 상대의 수를 시사한다는 최신 연구에 근거해 이 두 손가락이 남아 있는 네안데르탈인 화석 2구를 조사한 결과 이들의 약지 길이가 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이에 연구를 바탕으로 네안데르탈인들 남성 한 명이 여러 여성을 거느렸거나 남성과 여성이 모두 다수의 짝짓기 상대를 갖는 집단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학회에서도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이 연구팀은 400만~300만년 전의 직립원인으로 추정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약지를 조사했는데 검지보다 짧은 것으로 나타나 이들이 한 상대에게 충실했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사실 일부 학자들은 부정하고 있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검지 대 약지의 비례가 낮은, 즉 약지의 길이가 긴 남자일수록 태아 시절 테스토스테론을 비롯한 남성 호르몬에 많이 노출돼 보다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연구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약지가 검지보다 길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약지가 긴 남성들은 더 강하고 빠르며 성적(sex)으로도 경쟁심이 강한 특징을 보인다고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편 여성들은 검지와 약지의 길이가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나 약지가 긴 여성들은 약지가 긴 남성과 비슷한 성향을 띠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여성 역시 태아시절에 테스토스테론 남성호르몬에 많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영장류에서 암수간에 연대감은 종족보존의 분수령

연구진은 수컷과 암컷 사이에 연대감이 형성되는 짝짓기와 그렇지 않은 짝짓기는 영장류의 생존을 이어나가는 분수령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대감이 형성된 수컷들은 암컷이 임신한 동안 먹이를 대 주지만 연대가 없는 사회 구조 내의 암수는 각자 먹이를 찾아야 하는데 이런 차이 때문에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이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네안데르탈인은 결국 현생인류와의 전투에서 패망해 결국 멸종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물론 연구팀은 사용된 표본 규모가 워낙 작아 연구의 결론은 단지 추정에 불과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보다 확실한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네안데르탈인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현생인류의 검지와 엄지도 비교할 수 있는 화석표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 그러면 생물학적인 검지와 엄지의 길이 차이로 모든 것을 유추 해석할 수 있을까? 검지와 엄지 그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김형근 칼럼니스트

"중소기업이여, 목숨을 걸고 도약하라"

2009.11.17 09:06 | 대표폴더 | 황령산kkk

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46 주소복사

김종호 기자


경영 석학 2명이 말하는 '강한 중소기업 만들기'
맥팔랜드 박사가 말하는 '中企 성공비결'
"사업이 궤도에 오를 때… 더 크게 베팅하라"

세계적인 중소기업 경영 구루로 꼽히는 키스 맥팔랜드(McFarland·53) 박사와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박사가 기자한테 먼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경영전문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가장 많이 실린 기업이 어딘지 아세요?"

의외의 질문에 어리둥절해하는데, 맥팔랜드 박사는 숨돌릴 틈도 없이 자문자답(自問自答)을 이어나갔다.

"놀라지 마세요. 바로 IBM입니다. 1922년 창간된 후 2007년까지 나온 HBR(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리포트 2000여건 중에 IBM에 대한 것만 무려 502건이나 되더군요. 또 IBM과 GE, 델컴퓨터, 월마트, 사우스웨스트항공, 이 다섯개 대기업에 대한 보고서가 1304건에 이릅니다. 물론 이들 기업이 훌륭하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장장 85년간 내로라하는 경영 전문가들이 만든 리포트의 절반 이상이 고작 5개 기업에 관한 것이라니, 특정 대기업에 대한 편중이 너무나 심하지 않습니까? 과연 중소기업 CEO들이 IBM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현장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경영 전략을 배울 수가 있을까요?"

키스 맥팔랜드(McFarland) 박사. /이진한 기자

맥팔랜드 박사가 중소기업 경영 분석서 '브레이크스루 컴퍼니(The Breakthrough Company)'를 쓰게 된 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브레이크스루 컴퍼니'는 목숨을 건 도약으로 온갖 난관을 돌파, 평범한 중소기업에서 업계 최강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한 9개사를 찾아내 성장 비결의 공통분모를 끌어낸 책이다. 책 제목을 '브레이크스루 컴퍼니(돌파 기업)'라고 붙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맥팔랜드 박사는 중소기업 연구가 대기업보다 훨씬 현실적임을 강조했다. "IBM이나 GE의 CEO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다수 기업인들은 자신이 지금 다니는 회사가 꾸준히 발전하길 바라고, 회사와 함께 성장의 기쁨을 누리길 원합니다. 이들에겐 도약에 성공한 중견기업의 사례가 대기업 사례보다 더 피부에 와 닿을 것입니다."

그는 해답을 얻기 위해 5년간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한 7000개 기업의 자료를 수집하고 1500명의 기업 임원을 직접 만났다. 이 중 애드트랜(통신장비), 치코스파스(의류), 익스프레스퍼스널(인력파견), 패스널(산업재유통), 인튜이트(회계관리 소프트웨어), 페이첵스(급여 아웃소싱), 폴라리스(스노모빌·ATV), SAS인스티튜트(기업용 소프트웨어), 스타우바흐컴퍼니(부동산 중개) 등 9개의 브레이크스루 기업을 찾아냈다.


맥팔랜드 박사는 "도약에 성공한 기업들은 월스트리트가 주목하는 유망 산업이 아닌데도 자기 나름대로 시장을 '재정의(再定義)'해 남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찾아낸 브레이크스루 기업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퍼다인 대학은 MBA스쿨을 갓 졸업하고 대학 입학처에서 일하던 26세의 청년을 경영대학원 학장으로 전격 선임했다. 경영대학원 교수들은 "박사 학위도 없는 20대 애송이가 어떻게 학장을 맡느냐"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대학 경영진은 "그가 입학업무절차를 크게 개선하는 등 학교 경영에서 두각을 나타냈기에, 경영대학원을 운영하는 데 적임자"라고 밀어붙였다. 이렇게 해서 키스 맥팔랜드는 미국 비즈니스스쿨 역사상 최연소 학장이 됐다.

이때부터 그는 대학 강의와 기업 컨설팅에 나섰다. 학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나려고 인근 클레어몬트 대학에 등록,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 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6년 후엔 위기에 빠진 중소기업들의 요청을 받고 CEO로 변신, 콜렉테크시스템스와 니보인터내셔널 등 2개 회사를 차례로 살려냈다. 경영 이론과 실무를 두루 경험한 그는 2001년 '맥팔랜드 전략 파트너'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기업 컨설턴트의 길로 나섰다.

지난달 26일 한국무역협회가 주관한 '2009 기업가정신 주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맥팔랜드 박사를 Weekly BIZ가 만났다. 반백의 머리에, 수염까지 길러 실제 나이(53세)보다 더 들어 보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이를 가늠키 힘들 정도로 카랑카랑했다.

키스 맥팔랜드 박사는 1980년대 초반 서울에 처음 와 봤다. 그는“한국이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룬 비결은 강한 기업가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진한 기자

―저서 '브레이크스루 컴퍼니' 첫머리에,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을 암벽 등반에 비유했다. 기업가들이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얘긴가?

"내가 사는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주변에 높이 1000피트 정도의 암벽이 있다. 꼭대기로 올라가려면 몸을 날려 조금 멀리 있는 홀드를 손으로 잡아야 한다. 성공하면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못 잡으면 큰 사고가 난다. 기업 성장도 똑같다. 성공한 사업가들은 모두 위험 감수자(risk taker)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위험을 감내하는 기업가가 드물다. 최고경영자 5000명의 심리 프로필을 분석했더니, 대부분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들이었다. 소기업 CEO들 중엔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나면 더 이상 모험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이때가 기업 성장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해야 하는 시기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사가 기회를 빼앗아간다."

―박사님은 위험을 무릅쓴 투자를 베팅에 비유했다.

"베팅할 때엔 정확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재무관리 소프트웨어 업계 1위인 인튜이트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창업자 스콧 쿡은 1986년 제품을 개발했으나 이를 판매할 방법이 없었다. 소프트웨어 유통업체들이 소비자들의 요구가 없으면 신제품을 매장에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쿡은 궁리 끝에 전재산 10만달러를 투자, 10여개 컴퓨터 잡지에 '49.95달러로 귀찮은 재무 관리는 이제 그만'이란 전면 광고를 내고 직접 통신 판매에 나섰다. 까딱 잘못했다간 회사가 파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과감하게 베팅을 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예상보다 3배 넘는 매출을 올렸고, 재무관리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1위에 올랐다. 포커게임에서 베팅이 커지면 손실과 이익이 모두 커진다. 이때 큰 이익을 내려면 쿡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베팅해야 한다."

―그건 마치 기업가들에게 도박하듯 '올인'하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큰 위험을 감수했다. 1970년대 미국에는 100개가 넘는 스노모빌(앞바퀴 대신 스키를 단 눈 자동차) 회사가 있었다. 7년간 눈이 오질 않자 대부분 파산하고 4개 회사만 남았다. 그중 4위가 미네소타주에 있는 '폴라리스'였다. 폴라리스는 16명밖에 남지 않은 직원들이 단합해 업계 1위가 됐고, 당시 사장은 스노모빌업계 1위가 된 데 만족했다. 그때 기술임원 척 백스터가 "지금이야말로 신제품을 개발할 때"라며 ATV(all terrain vehicle·산길 등 좁고 심한 비포장 도로를 갈 수 있는 소형 자동차)에 도전하자고 제안했다. 주변에선 혼다·야마하 같은 일본 업체들이 석권한 시장에서 별로 승산이 없을 것이라며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폴라리스는 1985년 ATV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 업체들이 선점한 3륜·수동변속 ATV 대신, 4륜·자동변속 ATV를 내놓고 새 시장을 개척했다. 지금 폴라리스는 북미 ATV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1위 업체다."

―경제위기로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불황 같은 외부요인은 기업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나?

"도약에 성공한 회사를 찾아가 비결을 물어보면 한결같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는지 아느냐? 그런데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회사가 성장했다'고 말한다. 힘든 시기가 기업엔 오히려 핵심역량(vital capability)을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기업이 커지면 의사결정 과정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조직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갓 창업한 기업은 사장 혼자 모든 걸 결정한다. '원 맨 밴드(one-man band)' 단계다. 회사가 조금 커지면 CEO 혼자 모든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자신과 생각이 똑같은 사람들을 참모로 둔다. '부족(部族)'을 이루는 것이다. CEO는 어떤 상황에서든 참모들이 자신과 똑같은 결정을 할 것으로 믿는다. 기업이 성장해 나가면서, 조직도 변한다. 기획·재무·영업 등 CEO가 지식이 모자라는 분야에서 전문가를 필요로 하게 된다. 분야별 담당임원을 두는 것이다. 나는 이를 '마을 원로' 단계라고 부른다. 이 단계의 문제점은 기업 전체 이익을 도외시하고 부서별로 따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해 언제나 기업 전체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의사 결정을 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 때문에 살아남기 힘들다는 중소기업인들의 호소를 종종 듣는다.

"내 생각은 다르다. 중소기업의 강점은 대기업보다 작아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소니 같은 대기업은 중소기업처럼 빨리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틈새시장이 생기고, 대기업에는 너무 작지만 중소기업에는 충분한 기회가 생긴다. 만약 중소기업이 '재벌은 너무 강해서 우리는 희망이 없다'고 자꾸 생각한다면 정말 상황이 그렇게 된다. 한국 중소기업들에 '성장하려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중소기업 CEO들을 만나면 인재를 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신입사원을 채용해 일을 가르쳐 놓으면 떠나버린다는 말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 SAS의 창업자 짐 굿나잇은 업무 강도가 심하기로 유명한 GE를 보고 자신은 직원들이 다니고 싶은 직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직원들에게 개인용 사무실을 제공하고, 회사에 의료·육아시설은 물론 미용실까지 설치했다.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 창업할 수도 있지만, 회사 안에서 일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경영자들은 회사를 즐겁고 흥미로운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을 비롯, 아시아에서는 기업 오너들이 2세, 3세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경향이 강하다.

"아시아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서도 가족이나 자녀에게 회사 경영권을 넘기는 기업인도 있고, 2·3세 경영인이 물려받아 회사를 잘 키운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회사 규모가 클수록 2·3세 상속은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면, 창업자인 부모가 갖고 있던 가치나 정직성, 땀의 결실부터 잘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래 기업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

"대기업이라는, 밖으로 드러난 브랜드에 너무 현혹되지 말고 연봉에도 너무 집착하지 말라. 5년에서 10년 정도는 뭔가 배울 수 있는 회사를 택하라. 부서마다 업무가 미리 나뉜 대기업보다 여러 가지 일을 두루 해야 하는 중소기업에서 오히려 배울 게 더 많다."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KAIST겸임교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친구가 하는 행동이면 무조건 흉내 내는 것처럼 우리는 곧잘 다른 사람의 행동에 감염되기 쉽다. 행동감염은 일상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우리는 누가 웃으면 따라서 웃고, 앞서 가던 사람이 괜히 하늘을 쳐다보면 덩달아 하늘을 응시하는 것처럼 남의 행동에 물들게 마련이다.

'뉴욕타임스 매거진' 9월13일자 커버 스토리에 따르면 행동감염은 사회학의 핵심 연구주제이다. 1940~50년대에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적 연결망(네트워크)이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정보와 소문이 퍼져나가는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 학자인 미국 컬럼비아대 폴 래자스펠드(1901~1976)는 상품이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과정을 밝혀내고 정치적 견해가 친구 사이에 전파되는 형태를 연구했다. 1980~90년대에는 미국 청소년의 흡연이 사회 문제로 부상함에 따라 보건 전문가들은 10대 집단에서 친구의 영향으로 담배를 피우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2000년 1월 미국 저술가 말콤 글래드웰이 펴낸 '티핑 포인트(The Tipping Point)'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행동감염은 여론이나 유행 같은 대중문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널리 알려졌다.

2002년 하버드대 사회학자 니콜라스 크리스태키스와 캘리포니아대 정치학자 제임스 파울러는 사회적 감염 연구에 착수하여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두 사람은 '프래밍험 심장 연구(Framingham Heart Study)'를 활용했다.

1948년부터 프래밍험에 사는 1만5000명과 그 자손을 대상으로 오늘날까지 50년 넘게 심장질환의 위험 요인을 규명하는 대규모 연구이다. 두 사람은 이 연구 기록을 토대로 프래밍험 주민이 친구 또는 친척과 어떻게 연결됐는지 분석하고 비만, 흡연, 행복이 사회적으로 전염되는 현상임을 밝혀냈다.

1971년부터 2003년까지 32년간 프래밍험 주민의 체중 변화를 분석하고 사회적 네트워크가 비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뚱뚱한 주민이 있으면 그 친구가 비만일 확률은 57%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의 친구가 비만이면 프래밍험 주민은 20% 더 뚱뚱하고 친구(1)의 친구(2)의 친구(3)가 비만이면 뚱뚱보가 될 가능성은 10% 더 높았다.

한 사람이 살이 찌면 3단계 떨어진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2007년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 7월 26일자에 게재된 논문에서 비만은 개인의 유전적 성향이나 생활습관 못지않게 주변 사람에 의해 감염되는 사회적 질병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두 사람은 프래밍험 자료를 분석하고 흡연 역시 비만처럼 친구의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를 '뉴잉글랜드 의학저널' 5월 22일자에 발표했다.

두 사람은 비만과 흡연에 이어 행복도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바이러스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염되는 현상임을 밝혀내고 2008년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 온라인판 12월 4일자에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9월 말 펴낸 공저 '연결되다(Connected)'에서 두 사람은 우리가 행동을 잘만 하면 3단계 네트워크에 연결된 1000명 정도를 날씬하고 건강하며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 시대 무신정권은 패륜 행위 서슴지 않아


최충헌, 친동생 죽이고 집권
아들도 권력 잡고 동생 죽여
손자는 아버지의 첩들을 간음

최충헌(崔忠獻) 최이(崔怡) 최항(崔沆) 최의(崔�e)로 이어진 최씨 4대 무신정권의 계승관계는 한마디로 패륜(悖倫)의 시대였다. 우선 최충헌은 집권과정에서 1197년 친동생 최충수(崔忠粹)를 죽이고 권력을 잡았다. 이런 골육상쟁은 자식 대(代)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최충헌은 상장군 송청의 딸과 결혼해 최이, 최향(崔珦) 두 아들을 두었고 그 밖에 다른 여인들과의 사이에 최성, 최구를 낳았다. 1219년(고종6) 최충헌이 병들자 대세는 둘째 아들 최향 쪽으로 쏠렸다. 대장군 최준문, 상장군 지윤심, 장군 류송절, 낭장 김덕명 등 핵심 무장 4인은 비밀모임을 갖고 최이를 제거하고 최향을 추대키로 결의했다.

그런데 이미 이런 낌새를 알아차리고 있던 최충헌은 병석에 누운 초기에 최이에게 비밀리에 이렇게 말한 바 있었다. "내 병이 낫지 못할 터인데 형제간의 집안 싸움이 염려되니 너는 다시는 나에게 오지 말라." 여러 차례 문안을 재촉할수록 의심이 커졌던 최이에게 김덕명이 찾아와 음모를 알렸다.

결국 일거에 반격을 가해 최준문 류송절 등을 제거한 최이는 아버지의 권좌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친동생 최향을 홍주로 귀양보냈다. 그러나 성격이 광포했던 최향은 여러 차례 군사들을 모아 반란을 시도하다가 결국 1230년 친형 최이에게 죽임을 당한다. 골육상쟁(骨肉相爭)의 대물림이었다.

최이는 장장 30년 동안 최고권력의 자리를 지켰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 특유의 문신(文臣) 포섭 전략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이는 확고한 용인(用人)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인재를 4단계로 나눴다.

첫째는 능문능리(能文能吏), 학문이나 문장에도 능하고 관리로서의 재능도 뛰어난 자다. 둘째는 문이불능리(文而不能吏), 학문이나 문장에는 능하지만 실무능력이 떨어지는 자다. 셋째는 이이불능문(吏而不能文), 실무에는 능하나 학문 혹은 문장이 뒤떨어지는 자다. 넷째는 문이구불능(文吏俱不能), 문장이나 실무 모두 능하지 못한 자다. 이를 보아도 그가 문(文)을 이(吏)보다 앞세웠음을 알 수 있다.

현실정치에서 공과(功過)를 남긴 최이는 1249년 세상을 떠난다. 최이에게는 적자(嫡子)가 없고 기생첩 서련(瑞蓮)과의 사이에 만종, 만전 두 아들이 있었다. 한때 매부 김약선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했다가 생각을 바꿔 출가시켰던 만전을 환속시켜 이름을 항(沆)으로 바꿔 후계자로 키웠다.

최이가 세상을 떠나자 권좌에 오른 최항이 처음으로 한 일은 문을 닫고 들어 앉아서 아버지의 첩들을 간음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계모 대씨(大氏)가 김약선과 그의 아들을 도와줬기 때문에 원한을 품고 있다가 대씨집안 및 그 일파들을 마구 도륙해버렸다.

1257년 최항이 세상을 떠났다. 최항도 아버지처럼 본부인 사이에 아들을 두지 못했다. 대신 출가하여 스님으로 있을 때 한 여종과 간통해서 아들을 두고 있었다. 최항은 그 아들 최의로 하여금 뒤를 잇게 하기 위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동원해 학문과 예법을 가르쳤다. '용모가 아름다웠던' 최의는 아버지가 죽자 바로 그날로 일찍부터 사통(私通)하고 있던 아버지의 애첩 심경(心鏡)을 집에 데려다가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최의의 가장 큰 문제는 출신 콤플렉스와 의심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모함하려고 할 때 "누가 당신의 외가가 천하다고 했다"고 참소를 하면 최의는 불문곡직하고 그 사람을 죽여버렸다. 참소에 가장 앞장섰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아버지의 애첩 심경이었다.

게다가 최의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어진 선비들을 예로써 대할 줄 몰랐다. 임금은 아니었지만 전형적인 폭군의 형태를 드러냈다. 측근들조차 언제 참소나 모함을 당해 비명횡사하게 될지 몰랐다.

결국 집권 1년 만에 문무대신들이 최의를 내몰기로 뜻을 모았다. 사실 이때의 거사는 관련자의 밀고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러나 무능한 최의는 적절한 대비책을 세우지 못했고 결국 거사군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이로써 4대에 걸친 최씨 무신정권은 끝나고 거사를 이끈 문신 류경과 최씨집안 가노 출신 장수 김인준 등은 정권(政權)을 다시 임금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얼마 후 김인준이 다시 정권을 빼앗아 고려의 무신정권은 한동안 이어지게 된다.

'워런교(敎)'


세계종교사를 훑어보면 사회가 변혁기에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신종교(新宗敎)가 등장하였다. 기존 종교로는 커버가 안 되는 상황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근자에 나타난 신종교를 꼽아보면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중국에서 일어난 파룬궁(法輪功)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서 발생한 '워런교(敎)'이다. 세계 양대 수퍼파워국가에서 각기 하나씩 생겨났다.

파룬궁은 중국 공산당 정부에서 체제를 위협하는 불법종교로 규정하였지만, 미국의 워런교는 불법도 아니고 그 신앙에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 자본주의 종교이다. 한국에도 워런교 신도가 많다. 주로 식자층을 중심으로 하여 재테크에 관심 있는 청장년층이 그 열성신도이다.

워런교는 어떤 종교인가? 미국의 투자 전문가이자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인 워런 버핏이 교주(?)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은 교주라고 결코 선언한 적이 없지만, 세계 각국의 워런 추종자들이 수천만 내지 수억 명에 이르므로 자의 반 타의 반 교주 자리에 올라가 버렸다.

소련이 망한 뒤로 세계는 자본주의 일색이 되었다.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국가가 미국이다. 미국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를 근본원리로 한다. 미국 시장경제의 중심이 바로 금융시장이고, 미국 금융시장의 한복판에 워런 버핏이 앉아 있다.

워런이 손짓을 어떻게 하고 어떤 발짓을 하는가에 따라 금융시장이 움직인다. 어떤 때는 워런의 한마디에 출렁거리기까지 한다. 워런 교주와 밥 한 끼를 먹는데에도 수억원을 내야 한다.

이번에도 워런이 미국철도회사를 인수하는 데에 370억달러를 투자한 것이 워런교 신도들에게는 엄청난 뉴스로 다가왔다. 워런교의 최대매력은 '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을 일반인들에게 준다는 데에 있다.

사후의 천당과 극락이 아니라 현생에서 대박 나게 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큰돈을 거머쥐는 '대박드림'이 워런교 신자들을 끌어 모으는 원동력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메시지가 아니겠는가!

워런은 종교 교주의 차원까지 올라갈 수 있는 도덕적 힘도 갖추었다. 그가 사는 집은 호화롭지 않고 평범한 시골 집이다. 때로는 엄청난 액수의 기부도 한다. 이 정도면 워런은 자본주의 시대의 '세계교주'로 등극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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