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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3/30
 

청와대 살림으로 본 ‘그때 그 시절’

2009.11.18 09:30 | 대표폴더 | 황령산kkk

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5 주소복사

박정희·김영삼 말사료·트리오 비용까지 기재
전두환·노태우 전기·수도료도 정보비로 처리

“내 별명이 왕소금이다. 대통령실 살림살이는 마른 수건을 짠다는 각오로 하고 있다.”

지난 12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한 답변이다. 정부가 편성한 2010년 대통령실 예산은 경호처 예산을 포함해 1536억원. 총예산(291조8000억원)의 0.05%다. 대통령실 예산에는 시대가 담겨 있다.

역대 대통령의 철학과 행보가 녹아 있다.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1974~2010년도 대통령실 예산안을 들여다봤다. 74년 9억2528만원(경호실 포함)이던 청와대 예산은 36년 만에 약 166배 늘었다.


◆박정희 정부=빛바랜 재생지 위에 손으로 직접 표를 그리고 숫자를 적어 넣은 예산안엔 권위주의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다. 74년 경호실을 제외한 대통령실 예산은 5억733만원. 이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1년 급여는 381만원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다른 돈이 꽤 됐다. 판공비가 연 800만원이고, 지금의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에 해당하는 정보비 총액 3624만원 중 3000만원도 대통령 몫이었다. 급여를 포함하면 대통령실 전체 예산의 8.2% 정도가 대통령 재량이었다. 74년 청와대는 연 4회에 걸친 ‘존영(尊影·대통령의 사진)’ 촬영·인화 등에 696만원을 썼다.

주요 공공기관마다 걸어 놓던 대통령 사진을 계절에 따라 바꾸는 데 쓴 셈이다. 예산 내역은 ‘전동타자기 2대X25만원’ ‘나프킹(냅킨의 일본식 표현) 200매X100원’ 등으로 상세히 적었다. ‘동물사료비’ 항목에선 ‘공작새 5마리, 말 3필’ 등 경내에서 키우는 동물의 수까지 알 수 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전두환 정부 때 국회에 제출하는 대통령실 예산안의 항목은 극단적으로 단순화됐다. 83년도 예산안 설명서엔 ‘인건비’ ‘사업비’ 등의 추상적인 항목에 총액만 적었다. 대통령의 급여도 알 수 없다. 노태우 정부에선 조금 개선돼 직급별 급여 등이 공개됐다. 하지만 건물 유지관리비와 전기·수도요금 등을 영수증이 필요 없는 ‘정보비’에 포함시켜 총액만 적어 냈다.

◆김영삼 정부=구입한 청소용품의 종류와 개수까지 적었다. ‘트리오 1000원X120병X12개월=144만원’ 식이다. 지나치게 포괄적이었던 ‘정보비’에 포함됐던 상당 부분을 공개한 뒤 남는 것만 ‘특수활동비’로 묶었다. 홍인길 당시 총무수석은 17일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첫 조치가 청와대 예산 투명화였다”고 말했다. 예산 항목에 ‘여론조사비’(95년 4억8600만원)와 소프트웨어 구입비(895만원)가 들어간 것도 전에 없던 변화다.

◆김대중 정부=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의 흔적이 묻어났다. 2000년엔 청와대에도 명예퇴직이 도입됐다. 3급 3명과 기능직 3명을 명예퇴직시키는 데 1억5000만원이 들었다. 같은 해 기업의 연봉제 도입 붐을 타고 대통령 급여가 연봉제로 전환됐다. 2001년엔 대통령 억대 연봉 시대가 열렸다.

◆노무현 정부=탄핵 소용돌이 속에 진행된 ‘여민관’ 신축 때문에 청와대 예산이 정치 쟁점이 됐다. 2004년도 예산안에 39억7403만원을 반영하자 한나라당은 “이삿짐을 싸야 할 마당에 새 건물을 짓느냐”고 비판했다. 온라인 보고 및 결재 시스템인 ‘e지원’ 도입 예산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경 썼던 항목이다.

◆이명박 정부=지난해 예산을 2007년에 비해 무려 21.7% 깎았다. ‘작은 청와대’를 표방한 데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2010년도에는 올해보다 9.6% 늘렸다. 대통령의 행보와 직결되는 업무지원비가 58억원 늘었다. 직무수행경비가 전년보다 709.2% 늘어난 데다 특수활동비(22.6%)와 업무추진비(35.1%)도 늘었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 행사 증가’와 ‘직제 개편’을 원인으로 들었다.


임장혁·권호·허진 기자

#누군가 당신에게 다짜고짜로 침을 뱉는 굴욕을 선사했다면 어찌할 건가. 아마도 이런 반응들 가운데 한두 가지를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첫째, 어이없어 쳐다본다.
둘째, 욕을 하며 화낸다.
셋째, 분에 겨워 한 대 때린다.
넷째, 발끈해서 나도 뱉는다.
다섯째, 아무 말 없이 침만 닦아낸다.

하지만 『십팔사략(十八史略)』이 가르쳐주는 대응방법은 사뭇 다르다. “얼굴의 침이 마르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침 타(唾), 낯 면(面), 스스로 자(自), 마를 건(乾). 즉 ‘타면자건(唾面自乾)’이다!
누군가가 내 얼굴에다 침을 뱉었을 때 이것을 곧장 닦아버리면 침 뱉은 사람의 분이 풀리긴커녕 더욱 화가 나서 싸움이 더 크게 번지기 쉬우니 차라리 상대가 뱉은 침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중국 당(唐)나라 시절, 서슬퍼런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신하 중에 누사덕(婁師德)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는 처지였다. 그런데 하루는 그의 아우가 대주자사(代州刺史)라는 자리에 임명돼 부임하려고 할 때 누사덕은 그를 불러 이렇게 당부하며 물었다.

“너와 내가 황제의 총애를 받아 다같이 출세하니 주위의 시기와 음해가 있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그런 시기와 시샘, 그리고 음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하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아우가 이렇게 답했다. “비록 남이 제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결코 기분 나빠하거나 화내지 않고 잠자코 닦아내겠습니다. 매사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응대해 결코 형님에게 걱정이나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우의 이런 대답을 듣고 누사덕은 반색하긴커녕 더욱 걱정어린 낯빛으로 타이르듯 말했다. “내가 염려하던 바가 바로 그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네게 침을 뱉는다면 그것은 네게 뭔가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침을 닦아버린다면 그것이 되레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되어 그는 틀림없이 더 크게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사실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르게 되는 것이니, 그런 때는 침을 닦아낼 것이 아니라 그냥 마르도록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다.”

#언젠가, 언론인 조갑제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필생의 어록에서 뽑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말을 그대로 책 이름으로 해서 박정희 일대기를 펴내자, 진중권씨가 그 특유의 이죽거림을 담아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하고 응수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요즘 우리 사회는 온 천지가 서로 내뱉은 침 투성이다. 최근에도 이른바 ‘친일인명사전’을 둘러싼 공방전 속에 서로 내뱉은 침이 지천이다. 하지만 이제 정말이지 침은 그만 뱉자. 그리고 누군가 뱉은 침이 얼굴에 묻었거든 굳이 애써 닦아내지도 말자.

설사 흔적이 남을지라도 말이다. 누사덕의 ‘타면자건’ 고사에서처럼 그냥 마를 때까지 내버려두자. 그래야 이 지겨운 논란이 끝나지 않을까 싶다.

#내년이면 경술국치(庚戌國恥) 100년이다. 그뿐 아니라 1950년 한국전쟁 60주년이고, 60년 4·19 민주시민혁명 50주년이며,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다. 뭔가 매듭짓고 한 차원 높게 승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해가 코앞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서로 침 뱉기 바쁜 가운데 논란과 공방만 일삼으니 솔직히 부끄럽다 못해 절망감마저 든다. 한편으론 아직도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가 부끄럽고 또 한편으론 그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로 나아가는 데 질척거리는 것이 안타깝다.

나라를 다시 찾은 지 65년이 돼 가건만 아직도 우리는 친일을 했다, 안 했다는 일차원적 논란만 계속하고 있다. 이젠 정말이지 한 차원 높은 미래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정진홍 논설위원

콩고의 고릴라는 왜 휴대전화를 싫어할까. 수수께끼를 풀 힌트는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서 생산되는 콜탄이라는 광물에 있다. 콜탄에선 탄탈륨이 나오고, 휴대전화에는 전류 흐름을 제어하는 탄탈륨 소재 부품이 들어간다.

휴대전화를 많이 만들수록 탄탈륨 소비도 덩달아 늘어난다. 문제는 탄탈륨이라는 게 생산량이 매우 적고, 생산 지역이 편중된 ‘희소(희유)금속’이라는 것이다. 콩고 동부에 콜탄이 매장돼 있는 게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고릴라 서식지를 불태우고 땅속을 파헤쳤다.

탄탈륨 부품은 전자기기에 거의 다 들어간다. 콩고와 주변 8개국이 뒤엉킨 ‘아프리카판 세계대전’은 종종 ‘플레이스테이션(PS) 전쟁’으로 불린다. 2000년 봄 게임기 PS2를 선보인 소니는 그해 크리스마스 때 제품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탄탈륨 부족 때문이었다. 파운드(약 454g)당 50달러를 밑돌던 탄탈륨 값은 2001년 초 27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런저런 구실로 내전에 개입했던 외국군대는 돈이 되는 콜탄에 눈독을 들이고 콩고를 떠나지 않으려 했다. 게임기의 인기가 아프리카 오지의 전쟁을 부추긴 셈이다.

전략물자인 희소금속은 첩보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티타늄이 그랬다.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은 SR-71이라는 초음속 정찰기를 개발하면서 기체 소재를 티타늄으로 정했다. 음속 3배로 비행할 때 표면에 발생하는 고열을 견뎌낼 금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도가 낮은 미국산은 쓸 수 없었다. 결국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을 받아 품질이 좋은 적국 소련의 티타늄을 대량 구입해 썼다. 이러한 티타늄의 쓰임새는 소련 과학자의 공식을 빌려 스텔스기를 개발했다는 사실과 함께 ‘바보 소련’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냉전 시대 최고의 기밀이었다.

중국은 ‘산업 비타민’으로 각광받는 희소금속의 무기화를 일찌감치 예고했다. 1992년 개혁·개방 설계사 덩샤오핑은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큰소리쳤다. 중국은 최근 희토류를 포함한 희소금속을 전략 물질로 규정해 수출을 엄격히 통제한다.

‘바보 나라’가 사라지면서 30여 종의 희소금속은 자원무기로 변하고 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한데도 한국에는 정확한 수요와 공급 통계조차 없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확보·비축·재활용 등 3단계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희소해서 더욱 참신한 희소금속 대책을 기대한다.


허귀식 경제부문 차장


22 愿묒쥌紐?: ?꾪깉瑜?Tantalum:Ta)
 
탄탈라이트(Tantalite) 마이크로라이트(Microlite)
(媛€) 愿묒꽍??醫낅쪟
議곗꽦鍮꾧퀬
(Fe,Mn)(Ta,Cb)₂O6콜롬바이트와 공출
Ca₂Ta₂07 
(?? ?⑸룄
(?? 愿묐Ъ???뱀꽦
(1) 물리적 특성
  • 경도 : 5.5~7
  • 비중 : 5.35~7.8
  • 결정계 :사방, 정방
  • 색 : 철, 갈흑, 갈색, 흑색 형상: 판상 혹색 주상의 결정
  • Nb를 항상 함유하여 Nb의 존재가 확인되면 탄.탈움도 존재한다.
(2) 화학적 특성
  • 바이오부산 많은것 : 콜롬바이트 (비중5.5~6.4)
  • 탈탄산이 많은것 : 탄타라이트 (비중6.5~7.9)
(?? ?곗텧 ?곹깭
(1) 광상
  • 페그마타이트 광상
    - 지화학적으로 결합력이 강한 탄탈륨과 니오비움은 항시 수반하여 산출
  • 풍화 잔류광상
    - 탄탈륨과 콜롬비음은 페그마타이트나 화강암속에 산재된 부산광물로 포함.
  • 석광상 또는 사광상 산출
    - 비중이 큰것의 탈탄산 함유량 많으며 Nb,Ta 광물이 있으면 이트륨 우란 함유
(2) 수반광물
  • 니오붐, 이트룸, 우란석, 저어콘, 제노타임, 모나자이트, 철, 망간, 중석, 금홍석, 데아니트스피넬, 실리버나이트, 강옥, 펴규소나이트, 유세나이트, 자연금, 트리플라이트, 비스무타이트, 녹주석, 황옥
(留? 二쇱슂?곗?
(1) 국내 : 충남 천안(사금지), 전북 김제(사금지), 강원 철원, 충북 단양, 전북 무주
(2) 국외 : 호주, 브라질, 캐나다 등

중세의 유명한 한 성인(聖人)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늦잠을 잔 성인이 학교에 급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그때 한 어른이 “너는 어디를 뛰어가니?”라고 물었다.
성인은 “학교에 늦어서 뛰어갑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학교에선 무엇을 하니?”
“공부를 열심히 하지요.”
“공부를 하고 난 다음에는?”
“졸업을 하지요.”
“졸업을 하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엔 좋은 직장을 갖지요.”
“그럼 다음엔 무엇을 하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갖게 되지요.”
“그리고 그 다음엔 무엇을 하니?”
“아이들 교육도 시키고 결혼도 시키고….”
“그 다음엔?”
“직장에서 은퇴해서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지요.”
“그다음엔?”
“흠, 그 다음엔… 죽게 되겠지요.”
“그러면 지금 너는 죽으려고 열심히 뛰어가는구나.”

성인은 그 말씀에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래서 그는 세속적 야망을 버리고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다.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또 어디로 흘러가는가?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들은 결코 유명한 철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경쟁하듯 치열한 삶을 살다가도 낙엽을 밟는 늦가을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어디서도 속 시원한 정답을 들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 궁극적인 질문들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항상 살면서 이 문제를 물어야 하고 그 해답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인생의 목적을 성공, 보람, 즐거움에 둔다. 어떤 이는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고 높은 자리에 앉는 것 혹은 명예와 명성을 얻는 것을 인생의 목적이요, 성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부와 명예, 출세가 반드시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부와 명예와 상관없이 자기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의 초라한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객사하기까지 치열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오직 ‘선에 대한 끝없는 희구’에 인생의 진면목과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톨스토이가 노년에 약 15년간 심혈을 기울여 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이러한 인생에 대한 고민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모든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바탕으로, 오직 진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임종을 맞아 그가 남긴 유언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였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가끔 가던 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 인생에는 아주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완료형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질문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계속 성장하고 변화해 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허영엽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영국 도시 리버풀은 비틀스를 팔아먹고 산다. 도시의 관문마저 ‘존 레넌 국제공항’일 정도다. 비틀스의 네 멤버가 나고 자란 점 때문에 연중 관광객이 모여든다. 이들을 위한 ‘성지 순례’ 코스에 꼭 끼는 게 페니 레인(Penny Lane)이란 거리다. ‘페니 레인은 내 귓가에, 내 눈 안에 있네…’ 비틀스 멤버들의 아련한 추억을 담은 동명의 히트곡 덕분이다.

사실 그 페니 레인은 18세기에 악명 높던 노예상 제임스 페니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당시 리버풀은 유럽에서 삼각무역이 가장 활발한 항구였다. 리버풀을 떠난 배들이 서아프리카 해안에 가서 싣고 간 물건과 원주민들을 맞바꿨고, 다시 대서양 너머 신대륙으로 가 원주민들을 판 뒤 설탕·담배·커피 등을 챙겨온 거다.

이렇게 노예로 팔려간 이가 1000만 명 안팎에 이른다는 추산이다. 불과 30~40㎝ 너비에 한 명씩 수백 명을 싣고 몇 달간 항해하다 보니 도중에 사망자도 수백만 명이나 나왔다고 한다.

부끄러운 과거를 리버풀은 결코 잊지 않았다. 1999년 시 의회가 나서 “추악한 거래를 깊이 후회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2007년엔 조상들의 치부를 낱낱이 공개한 ‘국제노예박물관’을 열었다. 이곳엔 노예선의 비인간적 상황을 직접 느껴보는 가상 체험 공간도 마련했다. 피해자의 고통을,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후세까지 잊지 않게 하려는 세심한 노력이었다.

이웃 나라 일본 히로시마에는 ‘평화기념박물관’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 만행에 대한 자료도 일부 있지만 주로 미국의 원폭 투하로 인한 참상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일본 전역에서 수학여행차 학생들이 몰려드는 이곳도 피폭 당시 희생자들의 고통을 생생히 느낄 수 있게 첨단 체험 공간을 갖추고 있다.

얼마 전 즉위 20년을 맞은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과거의 역사를 잊고 있는 일본이 걱정스럽다”는 말을 했다. 그 말 속엔 가해자로서의 수치스러운 과거도 포함돼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히로시마 박물관부터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원폭 피해만 강조할 게 아니라 원폭이 투하되기까지 일본이 저지른 잘못도 속속들이 알려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 국민은 원폭 가해국인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찾길 염원해왔고 최근 오바마가 이에 부응할 뜻을 내비쳤다. 과연 그때 그에게 어떤 역사를 보여줄 것인가. 일본의 선택이 궁금하다.


신예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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