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서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I have a dream…” 비폭력으로 평화의 꿈 이루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는 미국의 침례교 목사(Baptist minister)로 1950∼1960년대 미국 내 흑인인권운동을 이끈 인물이었다. 그는 사회변화를 달성할 수단으로 비폭력을 내세웠던 지도자이자, 미국의 위대한 연설자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킹 목사는 1929년 1월 15일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Atlanta)에서 태어나 후에 보스턴대에서 공부했다. 그는 1953년 지적이고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젊은 여성인 코레타 스콧(Coretta Scott)과 결혼했고, 그 다음해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Montgomery)에서 목사직을 맡게 되었다.
1955년 12월 5일 흑인인권운동가였던 로자 파크스(Rosa Parks)는 시내버스 안에서 ‘백인 전용’ 칸에 앉은 채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을 거부했다. 대중교통 수단에서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한 것이다. 당시 몽고메리에서는 흑인이 버스 앞 네 줄까지의 좌석에 앉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킹 목사는 몽고메리 대중교통의 인종차별정책(Montgomery's policy of segregation on public transportation)에 반대하면서 흑인 보이콧 운동(black boycott against Montgomery's buses)을 이끌었다. 382일 동안 계속된 이 운동은 버스회사의 규정에 변화를 가지고 올 만큼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킹 목사는 이 운동을 하는 동안 체포를 당하고 집에 폭탄이 터지는 등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그는 이런 시련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비폭력 저항운동(nonviolent protests)을 주도했고 인종차별(racial discrimination)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다.
1956년 12월 미국대법원(the U.S. Supreme Court)은 마침내 인종차별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킹 목사는 1957년 다른 흑인목사들과 함께 오늘날 남부 그리스도교 지도회의(the 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SCLC)로 알려져 있는 조직을 설립했다. 킹 목사는 이 단체의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다른 공동체들이 차별반대 저항운동(protests against discrimination)을 조직하도록 도왔다.
1959년 킹 목사는 인도를 방문해서 간디의 평화적인 설득 원칙인 사타그라하 운동 (Satyagraha·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더 깊게 이해했다. 이것이 사회에 저항하는 그만의 주된 방식이 됐다.
1963년 8월 28일 킹 목사는 흑인의 투표권(Blacks' right to vote), 인종차별 폐지(desegregation), 공평한 노동권(fair labor rights) 등을 위해 워싱턴의 평화행진(the peaceful march on Washington D.C.)을 지휘했다.
킹 목사는 이 행진에 참가한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했다.
연설문에서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피부색이 아닌 그들의 인격만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기를 바란다(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라는 말을 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유, 평등,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이 연설로 미국 전역에 잘 알려지게 됐다.
킹 목사의 저항방법은 큰 찬사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흑인지도자들과 갈등을 빚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와 동시대에 활동한 흑인운동가이던 맬컴 X(Malcolm X)는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때로는 폭력이 필요하고 백인들의 학대(white persecution)에 고통 받는 흑인들은 독립된 나라(separate nation)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사회변화(social change by any means necessary)를 요구했다. 이 메시지는 특히 북부 도시지역의 흑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킹 목사가 미국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1964년 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of 1964), 1965년 투표권법(the Voting Rights Act of 1965)이 만들어지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1964년의 민권법은 호텔, 식당, 극장 등 공공장소에서의 인종분리 등 차별을 금했다.
나아가 모든 인종이 평등하게 대우를 받을 권리를 약속했다. 킹 목사는 또한 흑인시민들이 투표인단에 등록할 수 있도록 돕는 캠페인을 펼쳐 1965년 투표권법 제정으로 이어지게 했다. 이 법은 흑인 유권자들이 더 이상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그는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1964년 노벨평화상(the Nobel Peace Prize)을 수상했다.
1977년 킹 목사의 사후에 그에게 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이 수여됐다. 오늘날 그는 미국 인권운동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그의 생일은 미국 국경일로 지켜지고 있다.
《지난 시간에는 바르고 정확한 언어 사용의 척도인 정확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오늘의 주제는 비판적 사고의 또 다른 내적 준거인 적절성이다. 적절성이란 제시된 지문이 얼마나 적절하게 언어를 활용하는가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이만기 엑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적절성이란 언어 사용에 따른 사고 과정이 적절한가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사고 과정에 나타나는 가정, 원리 등이 적절하게 적용되고 구명되었는지가 측정요소가 된다. 정보의 진위(眞僞)를 가리는 기준이 정확성이라면 정보의 우열(優劣)을 가리는 기준이 적절성이다. 내용을 표현한 어휘, 문제에 접근한 시각 등에 대한 판단으로서,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같은 내용을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적절성은 다시 내용의 적절성과 표현의 적절성으로 나뉜다. 내용의 적절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문단의 원리와 관계가 있다. ‘주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문장이 충분한가(완결성)’, ‘논점에서 일탈된 내용은 없는가(통일성)’, ‘글의 여러 요소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가(일관성)’와 같이 문단의 원리를 점검하면 내용의 적절성에 의한 비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내용이라도 문맥적으로 적절성이 달라지므로 문맥적 상황과 연계해 살펴봐야 한다.
비판적 사고를 위해서는 좋은 글을 많이 접해야 한다. 그럼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좋은 글을 알기 위해서는 국립국어원이 2005년 발간한 연구보고서 중 ‘좋은 글의 요건’을 참고하길 권한다. 국립국어원 누리집(www.korean.go.kr) 자료마당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 <예문> 199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4번 문항
(가) 역사가 옛날로 올라갈수록 개인의 비중이 사회보다도 컸던 것 같다. 사회 구조가 개인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산업과 정치가 현대와 같은 복잡 사회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모여서 사회가 되므로, 마치 사회는 개인을 위해 있으며, 개인이 사회의 주인인 것같이 생각되어 왔다.
(나) 그러나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는 정치, 경제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가 개인보다도 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성격을 띠게 되었다. 영국을 출발점으로 삼는 산업 혁명은 경제의 사회성을 강요하게 되었고, 프랑스 혁명은 정치적인 사회성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다) 19세기 중엽에 탄생된 여러 계통의 사회과학을 보면, 우리들의 생활이 급속도로 사회 중심 체제로 변한 것을 실감케 된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개인이 중심이고 사회가 그 부수적인 존재같이 느껴졌으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사회가 중심이 되고 개인은 그 사회의 부분인 것으로 생각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사회가 그 시대의 사람들을 만든다는 주장이 대두되면서부터 그 성격이 점차 굳어졌다. 실제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내가 살고 있다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으며, 이때의 ‘우리’라 함은 정치, 경제 등의 집단인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라) 현대가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정당하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하는가 함은 별개의 문제이다. 일찍이 키르케고르나 니체 같은 사람들은,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강하게 호소한 바 있다. 오늘날까지도 사회와 개인에 대한 대립된 견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전부이며 개인은 의미가 없다든지, 개인의 절대성을 주장한 나머지 사회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도 모두 정당한 견해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는 개인 속에서 그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를 발견하며, 그 사회 속에서 개인을 발견한다. 사회와 개인은 서로 깊은 상호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개인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에 속하지 않는 개인을 생각한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 그러면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어떠한가? 어떤 사람들은 둘 사이의 관계를 원자와 물질의 역학적 관계와 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 원자가 없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물질이 없다면 원자의 존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존재성만을 중심으로 본다면, 개인과 사회의 관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다 설명될 수는 없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세포와 유기체의 관계와 같이 생각한다. 생명적 존재를 위한 생성 원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의 영향을 받은 허버트 스펜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존재나 생성의 과정에 그치지 않는 더 높은 차원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면서 생성하며, 생성하면서 문화 역사를 창조해 가는 관계다. 그러므로 그 관계는 발전과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변증법적 관계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24. (라)의 내용에 대하여 제기할 수 있는 비판으로 가장 타당한 것은?
① 여기서 비판하는 두 관점은 개인을 의미 없다고 본 것도 아니며, 개인이 절대적이라고 본 것도 아니다. 자신 이 반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주장을 확대 해석해 놓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②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하였다. 이 말에는 개인은 철두철미하게 사회적 존재라는 생각이 이미 들어 있다.
③ 국제화, 세계화의 시대에 중요한 할 일이 많은데 개인과 사회의 문제 따위나 생각하다니, 이런 문제보다는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안을 다루어야 한다.
④ 개인과 사회를 논하면서 키르케고르와 니체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가? 우리 역사에도 뛰어난 사상가들 이 많이 있었으므로 그들의 생각을 빌려 논의해야 한다.
⑤ 사회에 속하는 개인들은 매우 복잡한 상호 관계 속에 존재한다. 이러한 개인 간의 상호 관계가 철저하게 규명되지 않고서는 인간의 본질이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아무런 빛도 던져 주지 못한다.』
24번 문항은 5차 국정 교과서에 있던 ‘현대사회의 과제’(김형석)를 토대로 출제된 문제다. 답은 ①번으로 글쓴이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원자와 물질의 역학적 관계로 보는 견해’와 ‘세포와 유기체의 관계로 보는 견해’를 확대 해석,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적절성에 의한 비판’의 내용을 측정하는 보편적인 유형이다.
『 <예문> 2010학년도 수능 대비 6월 모의평가 28번 문항
(가) 조선 전기 조선군의 전술에서는 기병을 동원한 활쏘기와 돌격,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보병의 다양한 화약 병기 및 활의 사격 지원을 중시했다. 이는 여진족이나 왜구와의 전투에 효과적이었는데, 상대가 아직 화약 병기를 갖추지 못한 데다 전투 규모도 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술적 우위는 일본군의 조총 공격에 의해 상쇄되었다.
(나) 16세기 중반 일본에 도입된 조총은 다루는 데 특별한 무예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결과 신분이 낮은 계층인 조총 무장 보병이 주요한 전투원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한편 중국의 절강병법은 이러한 일본군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전술로, 조총과 함께 다양한 근접전 병기를 갖춘 보병을 편성한 전술이었다. 이 전술은 주력이 천민을 포함한 일반 농민층이었는데, 개인의 기량은 떨어지더라도 각각의 병사를 특성에 따라 편제하고 운용해 전체의 전투력을 높일 수 있었다. 근접전용 무기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이용되었다.
(다) 조선군의 전술은 절강병법을 일부 수용하면서 기병 중심에서 보병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되었다. 조총병인 포수와 각종 근접전 병기로 무장한 살수에 전통적 기예인 활을 담당하는 사수를 포함시켜 편제한 삼수병 체제에서 보병 중심 전술이 확립되었음을 볼 수 있다. 17세기 중반 이후 조총의 신뢰성과 위력이 높아지면서 삼수 내의 무기 체계의 분포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상대적으로 사격 기술을 익히기 어렵고 주요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활 대신, 조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증가했다.
(라) 조선에서의 새로운 무기 수용과 전술의 변화는 단순한 군사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수반하였다. 군의 규모는 관노와 사노 등 천민 계층까지 충원되면서 급격히 커졌고,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에 대한 통제도 엄격해졌다. 성인 남성에게 이름과 군역 등이 새겨진 호패를 차게 하였으며, 거주지의 변동이 있을 때마다 관가에 보고하게 하였다. 대규모 군사력의 운용으로 국가 단위의 재정 수요도 크게 증대했는데, 대동법은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는 제도이기도 했다. 선혜청에서 대동법의 운영을 전담하면서 재정권의 중앙 집중화가 시도되었으며, 이에 따라 지방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던 재정의 상당 부분이 조정으로 귀속되었다. 한편 가호(家戶)를 단위로 부과하던 공물을 농지 면적에 따라 쌀이나 무명 등으로 납부하게 하여, 논밭이 없거나 적은 농민들의 부담은 줄어들었다.
28. 위 글과 관련하여 <보기>를 참고 자료로 제시할 때, (가)∼(다)에 적절한 자료를 바르게 제시한 것은? [3점]
「<보기>
ㄱ. 화포가 적에 대응하는 데에는 그 이익이 크니, 왜구나 야인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ㄴ. 기병은 평지에서 이롭고 보병은 험지에서 이롭습니다. 우리나라는 구릉이나 논이 많아 진실로 보병을 쓰는 것이 합당합니다.
ㄷ. 지방의 군사 제도는 지극히 허술하다. 수령의 휘하에 한 명의 군졸도 없으니 만약 급박한 일이 생겼을 경우 실로 방어할 도리가 없다.
ㄹ. 낭선은 가지를 다 자르지 않은 대나무에 창날을 꽂아 만들고, 당파는 작살을 개량해 만든다. 나이가 장성하고 얼굴이 크고 힘이 센 사람이 낭선을 다루고, 살기와 담력이 있는 자가 당파를 다룬다.」
(가) (나) (다)
① ㄱ ㄹ ㄴ
② ㄱ ㄹ ㄷ
③ ㄴ ㄷ ㄱ
④ ㄴ ㄷ ㄹ
⑤ ㄷ ㄹ ㄴ』
이 글은 조총의 도입으로 나타난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총이 도입됨에 따라 군의 규모 증대, 기병 중심에서 보병 중심으로의 변화, 조총의 비중 증가 같은 군사적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변화로는 백성에 대한 통제 강화, 대규모 군사력의 운용으로 인한 국가 단위의 재정 규모 증대, 재정권의 중앙 집중화, 조세제도의 변화 등이 있다.
제시된 문제를 풀어보자. ㄱ은 왜구나 야인들이 화포를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ㄴ은 우리나라의 지리적 조건상 기병보다는 보병을 쓰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ㄷ은 수령의 휘하에 한 명의 군졸도 없는 상황을 들어 지방 군사 제도가 허술함을 말하고 있으며, ㄹ은 ‘낭선’, ‘당파’ 같은 ‘근접전 병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를 (가)∼(다)의 내용과 연결시키면, (가)는 조선군이 여진족이나 왜구와의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 상대가 아직 화약 병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ㄱ을 참고 자료로 제시할 수 있다. (나)는 조총과 함께 다양한 근접전 병기를 갖춘 보병을 편성한 전술인 절강병법에 대해 다루고 있으므로 ㄹ을, (다)는 조선군의 전술이 절강병법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보병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되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ㄴ을 참고 자료로 제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답은 ①번.
가까운 곳에 강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개울물은 언젠가 강물과 만나고, 마침내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미래 예측의 실마리를 잡으려면 작게 흐르는 개울물을 먼저 찾아야 한다. 미래의 예측은 거창하지 않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작은 개울물 소리를 좇으며 그것이 장차 어떤 물줄기에 합류할 것인지 추적하면 된다. 필자들은 우리 사회에 편재하는 삶의 단편들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책 본문 중 ‘우리 사회의 지형도를 바꿀 새로운 흐름들’ ‘성공의 꿈과 욕망이 빚은 자본주의적 트렌드’ ‘오래된 과거를 깨고 나오는 한국인’ 부분을 논술과 관련시켜 보자.
『(가) ‘동성 간의 우정’을 주제로 한 영화 ‘친구’와 ‘고양이를 부탁해’를 비교해보면 우정을 바라보는 남녀 간의 성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친구’의 결말이 드러내는, 권력과 서열 의식 앞에 너무도 무력한 남성적 우정과 ‘고양이를 부탁해’의 끊임없이 다투고 토라지면서도 화해를 반복하는, 영원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을 듯한 여성의 우정.
여성의 우정을 이야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또 다른 측면에서 여성의 우정을 설명하는 열쇠 말이 된다. 영화의 대량생산공장 할리우드에서조차 1993년에야 최초의 여성 버디무비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여성의 우정이 사회적 시민권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77, 78쪽)
(나) 정말 시간이 돈처럼 은행에 맡기거나 거래를 통해 이익을 낼 수 있는 물건이 될 수 있을까? 영국의 워커 교수가 ‘시간 → 돈’의 환산 공식을 내놓은 것처럼, 오늘날 시간이 곧 돈으로 등식화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생산과 소비의 활동 범위가 지금처럼 극대화되기 이전 시대에는 시간의 개념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상품 경제의 발전과 인간의 무한한 소비욕구가 결합하면서 시간이 급속도로 줄기 시작했다. ‘집은 없어도 차는 꼭 있어야 한다’는 말이 유행하더니, 할부로 차를 사서 2, 3년에 걸쳐 돈을 갚아 나가는 현대인의 소비 형태, 즉 ‘선 구입, 후 지불’의 양상은 시간을 점점 줄어들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이 과정에서 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상품을 구입하고, 그만큼의 시간 재산을 다시 소모하게 된다.(166, 167쪽)』
① ‘(가)에서 여성의 우정이 갖는 의미를 밝히고, 그것이 새로운 시대와 사회를 이끄는 원리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시오’란 문제를 만들어 보자.
고양이라는 동물은 공격성보다는 자기영역을 지키는 데 능숙한 본능을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서열 1위의 고양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투쟁보다는 화해의 원리로 무리를 이끌어나간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고양이의 이런 특성을 통해 여성의 우정을 설명한다.
여성들은 상대의 처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감정이입의 과정’을 거쳐 이타적 배려를 한다. 이런 여성의 우정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확대되면 사회조직의 원리가 수직적 ‘피라미드’ 구조에서 수평적 ‘네트워크형’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서로의 이익을 찾아가는 데 여성의 특성이 반영된 대화와 협상기술이 문화의 한 코드로 작용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빨리 느낄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에 대한 차이가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마음을 잡고 흥미를 주는 감성의 보편적인 심리에 강하다.
② ‘(나)의 시간이 곧 돈이라는 오늘날 사회 상황을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시오’란 문제를 만들어 보자.
시간을 소비하는 현대인들은 돈으로 시간을 사고 시간으로 돈을 산다. 오늘날은 ‘시간관리’가 곧 성공조건이다. 이에 따라 기업은 ‘스피드 경영’을 통한 이윤 극대화와 더불어 시간 이윤도 함께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기업은 고객의 ‘시간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시간→돈→시간→돈’의 순환 속에서 현대 소비자들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원하게 되었다. ‘시간’의 문제는 현대인의 생활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변화의 핵심은 ‘돈으로 시간 찾기’ ‘시간으로 돈 벌기’다. 이런 악순환은 사회를 삭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우리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날 삶의 전략은 새로운 변화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서 얻어진다. 과거 다른 트렌드 관련 책들은 세계화나 정보화가 초래하는 거시적인 변화와 담론에만 집중했다. 일반인이 체감하는 ‘생활 속 변화’를 간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의 흐름을 추적하여 한국인의 트렌드 변화를 분석한다. 또한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에 거시적, 미시적 변화를 모두 포함시킨다. 여기에서 이 책의 차별성이 돋보인다. 세계적인 미래학자나 트렌드 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말로 못할 정도의 비통을 불러일으킨다. 심지어는 그 이름을 부르다가 내가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는 그를 만나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없어서 안타까운 것이다. 즉 ‘죽음은 단절’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 다른 생각
그런데 죽음은 ‘단절’이 아닐 수도 있다.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
뭐락카노 뭐락카노 /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 니 흰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
오냐. 오냐. 오냐. /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
오냐. 오냐. 오냐. /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고등학교 문학, 박목월 ‘이별가’]』
동아 밧줄처럼 질겼던 인연이 끝나고 저승으로 건너간 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던 화자는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라고 말한다. 이제 이승에서의 인연은 끝이 났지만 ‘나중에 내가 죽어 저승에 가면 너와의 인연이 다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영원한 단절이 아니며, 단절이라 하더라도 곧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일시적인 단절일 뿐이다.
○ 그런데…
왜 살아있는 사람은 자꾸 죽은 이를 생각하고 되새기는 것일까? 단지 슬프기 때문일까? 슬픔은 들추고 떠올릴수록 더 커질 수 있는데, 마치 상처가 덧나듯이.
『견우 직녀도 만나게 하는 칠석날 /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 (중략) …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고등학교 문학, 도종환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 제대로 된 옷 한 벌 사주지 못해 미안한 아내가 죽었다. 그를 떠나보내며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안개꽃 몇 송이와 수의(壽衣)뿐이다. 이럴 때 우리는 극도의 슬픔에 빠져 스스로를 잘 주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다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마냥 슬퍼한다고 해서 그가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은 이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리고 내가 그를 사랑하듯 그도 나를 사랑한다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다.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야’ 내년에 그의 무덤에 고개를 들고 다시 올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한 나는 그래도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지?’라고 마음속으로 물으며…. 죽음으로 삶을 생각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올해 사랑하는 큰 사람들을 잃었다. 이제 그 이후를 생각해 본다.
19세기 초, 공장법이 아동노동을 금지시켰다. 이 법률은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공장 주인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였을까? 아니다. 되레 아이의 부모들이 분노에 차 주먹을 치켜들었다. 아이의 품삯은 집안에 짭짤한 수입이 되었기 때문이다. 1870년, 교육법이 실시되자 부모들은 또 한 번 좌절했다.
부모는 자식의 교육비까지 책임져야 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자녀를 안 낳기 시작했다. 낳을수록 부담만 커졌기 때문이다. 자식은 원래 부모에게 ‘가축’과도 같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일손과 수입을 안겨준다는 뜻이다.
가부장제도와 ‘순결’에 대한 생각도 여기서 생겼다. 태어난 아이가 누구 ‘소유’인지 가리려면 아비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이에 따라 여성은 여러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으면 안 되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결혼과 성’에서 가정과 순결의 의미를 이토록 잔인하게 까밝힌다. 그에 따르면 결혼과 가정의 가치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가정을 통해 얻는 ‘이익’이 없다.
오롯이 육아의 의무만 남은 셈이다. 더구나 아버지의 역할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국가가 이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아이들을 지키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경찰이 안전을 책임진다. 생계도 그렇다. 아주 가난한 경우, 국가는 아버지보다 아이들을 더 잘 챙긴다.
복지국가라면 최소한의 먹을거리와 입성(옷을 속되게 이르는 말)은 갖추어 주지 않는가. 어머니 역할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어머니들은 갓난아이를 탁아소에 맡긴다. 조금 자라면 자녀는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은 부모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보다 국가가 바라는 바에 대해 훨씬 오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가정,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한 순결과 정조(貞操)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러셀은 “순결과 정조는 사라져야 할 미신”이라고 잘라 말한다. 대부분의 성행위는 이미 자녀를 얻기 위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 애정을 나누고 확인하는 수단으로 쓰일 뿐이다. 그렇다면 성에 대한 윤리도 새롭게 써져야 한다.
미국에서는 한때 술 마시는 일을 법으로 막았다. 그러자 음주는 숱한 불법과 폭력으로 이어졌다. 술은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일단 음주를 ‘나쁜 짓’으로 못 박아버리는 순간 술이 가진 좋은 점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금욕과 정절도 마찬가지다. 성행위를 수치스럽고 더러운 짓으로 여길수록 성(性)이 지닌 아름다움은 자취를 감춘다.
성에 대한 금욕과 절제는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종교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바 크다. 피임기술은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공포를 누그러뜨렸다. 사람들을 옥죄던 종교의 힘도 약해졌다. 그럼에도 성에 대한 금기는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는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성적 욕구를 누르려 하기보다는 제대로 펼치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사고 싶은 집을 둘러보지도 못한 채 덜컥 계약부터 할 수는 없다. 성과 결혼도 그렇다.
진정 사랑해서 상대방과 맺어지고 싶다면 서로를 알기 위한 과정으로 성이 필요할 수 있는 것. 성의 가치를 제대로 알 때 음란물은 되레 자취를 감출 터다. 성이란 본래 둘이 온전히 하나 되어 자식이라는 사랑의 결과물을 만드는 일 아니던가.
‘결혼과 성’은 1929년에 나왔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에서는 피아노 다리에조차 ‘음란하다’는 이유로 옷을 입혔다. 그만큼 당시 독자들은 이 책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러셀의 주장이 상식처럼 다가온다. 그럼에도 한 세기 전에 러셀이 했던 고민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출산율은 점점 떨어지고 가정은 무너지고 있다. 이를 막아줄 새로운 성윤리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