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자기조절능력 믿는 '가이아 가설' 정면 반박
생물의 자기파괴 성향 주목
지구는 가이아보다는 메데이아에 가깝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모든 생명을 돌보는 어머니로 그려진다. 한편 그리스 영웅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찾게끔 도와준 왕녀 메데이아는 그의 아내가 되었으나 버림을 받게 되자 둘 사이에 낳은 자식들을 죽인 비정의 어머니다. 지구가 항상 생명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가이아 이론을 반박하는 메데이아 이론이 발표된 것이다.1970년대에 영국 대기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창안한 가이아 이론에서는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 따라서 지구는 자신의 상태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자기조절 기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가이아에서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생물이다. 요컨대 생물체는 능동적으로 주위 환경을 조절하면서 지구를 살기 좋은 상태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가이아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제시되는 두 가지 단서는 대기권의 화학적 조성과 지구의 기후이다. 먼저 지구 대기권의 경우, 그 화학적 조성이 매우 미묘하고 무질서함에도 불구하고 생물계에 유리한 조건이 유지되고 있는 까닭은 생물이 대기 조성을 능동적으로 조절하고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범지구적 규모의 자기 조절체계, 곧 가이아가 존재했기 때문에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는 대기권의 조성이 오랫동안 일정하게 유지됐다는 뜻이다.
가이아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두 번째 방증은 지구 기온의 역사이다. 생물의 탄생 이후 35억년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이 생물의 생존에 적합하도록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생물이 일정한 기여를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가령 생물에 의해 합성되는 각종 기체가 지구의 기온 유지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가이아 이론은 옳을 수도 있고 옳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제가 환경문제와 직결되어 있어 그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그런데 미국 워싱턴대 생물학자 피터 워드는 지구를 가이아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지난 4월 중순 출간된 '메데이아 가설(The Medea Hypothesis)'에서 워드는 "지구상의 생명체가 자식을 살해한 메데이아처럼 지구에 되풀이해서 재앙을 안겨주었으며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워드는 생물 자체에 의해 지구상 생물의 생존이 위협받은 현상을 '메데이아 사건'이라고 명명하고 가장 최악의 사례로 두 차례의 '눈 덩어리 지구(Snowball Earth)'를 꼽았다. 22억년 전 지구는 1억년간 지속된 빙하기를 겪었으며, 7억년 전 또다시 엄청난 규모의 빙하기가 찾아왔다.
빙하기에 태양의 복사량이 오늘날보다 6% 적은데다가 이산화탄소 등 온실효과 기체의 양이 모자라서 지구는 꽁꽁 얼어붙었다. 지구 전체가 두께 1㎞의 얼음으로 뒤덮이고, 기온은 섭씨 영하 50도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눈 덩어리가 된 것이다. 빙하기가 출현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이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워드는 눈 덩어리 지구의 원인을 생물 자체에서 찾은 것이다. 광합성 박테리아가 대기 중에서 지구를 온실로 만드는 이산화탄소를 너무 많이 흡수해서 지구가 얼어붙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구의 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있는 현대인이야말로 메데이아의 후손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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