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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3/30
 

“스트랜드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세찬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가 없었다. 우산이 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수필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앨프리드 가드너(1865~1946)의 ‘우산 도덕’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발관 우산꽂이에 꽂아둔 그의 비단 우산을 누군가가 가져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싸구려 면(綿)우산을 들고 나왔다가 비를 고스란히 맞은 기억을 수필로 쓴 것이다.


1622년 프랑스에서 첫선을 보인 우산이 영국에 상륙한 것은 1750년. 당시 조너스 핸웨이 경이 처음으로 우산을 쓰고 런던 거리를 거닐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상자로 보았다. 그 이유는 존 맥도널드 경의 ‘회고록’에서 찾을 수 있다. “1778년 멋진 스페인제 비단우산을 가지고 있었으나 감히 쓰고 다니지를 못했다.

당시 마차꾼들은 우산 제조업자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래서 이 마차꾼들에게 욕을 듣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프랑스에서 장갑 생산업자들이 우산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지 10년 뒤인 1786년, 핸웨이 경이 사망하던 무렵에야 비로소 영국에서도 우산은 흔한 생활용품으로 자리잡았다. 우산이 런던에 첫선을 보인 지 한 세대가 지난 뒤였다.


국내에서 우산이 일반화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11년 배화학당에서 학생들의 쓰개치마 착용을 교칙으로 금지하자 자퇴하는 학생이 많았다. 학교에서 궁여지책으로 우산을 지급해 얼굴을 가리도록 한 이후 다른 여학생들과 일반 부녀자들 사이에 붐이 일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도 처음부터 누구나 우산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오랜 가뭄 끝에 장맛비가 내리자 우산을 쓰고 거리에 나왔던 사람들이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곤 했다. 하늘에서 내린 단비를 우산으로 가리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긴 이들의 폭행이었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이 시중에 유통되는 우산과 양산의 안전성을 조사했더니 83%가 우산살이 쉽게 부러지거나 휘고 실밥이 터지는 등 안전 기준에 못 미쳤다고 한다. 평소에는 우산이 필요 없다. 그리고 고장난 우산은 무용지물이다. 평소에 잘 관리하지 않아 필요한 때 사용하지 못한다면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다. 거듭되는 북한의 핵 위협을 보면서 미국의 ‘핵우산’을 떠올려 본다.

[[황성규 논설위원]]

‘갸름한 얼굴에 반달 같은 눈썹과 오뚝한 코의 젊은 기녀(妓女)인 부네가 눈꼬리와 입가에 웃음기를 비친 채 치마를 들추고 소변을 본다.

엿보던 파계승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부네를 끼고 도망을 친다. 이어서 거드름을 피우면서 자신의 지체와 학식이 더 높다고 서로 자랑하던 양반과 선비 역시 부네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 하인인 초랭이에게 망신을 당한다.’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에 전해오는 하회가면극(假面劇) 주제 부분인 ‘파계승’ 마당과 ‘양반과 선비’ 마당이다.

이 가면극이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핵심 요인은 가면, 곧 탈이 당사자의 신분적 특성과 행태를 두드러진 해학성과 조형미로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사자·각시·스님·양반·선비·초랭이·부네·백정·할미탈 등 하회탈 11점이 가면미술의 세계적 걸작으로 평가받아 하회 이웃 마을의 병산탈 2점과 함께 국보 제121호로 지정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탈의 역사는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렵생활을 하던 원시인들이 사냥할 동물에게 접근하기 위한 위장(僞裝)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잡아먹은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면서 그 주술적 능력을 몸에 지니기 위한 목적에 이어 토속 신앙의 의식용으로 변모하고, 더 나아가 연극·연희용으로 진화해온 것이 세계 각지에 공통된 현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석기시대 유물로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된 패면(貝面)과 강원 양구의 토면(土面), 신라시대에 역신(疫神)을 쫓기 위해 장례에 사용한 목심칠면(木心漆面) 등도 이를 입증한다. 조선시대의 가면극이 탈의 익명성·해학성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면서 공동체에 웃음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온 것도 그렇다.

가면은 익명성이 본질이면서도 특정 인물·사물 등을 감추기보다 상징화해 나타낸다는 점에서 얼굴 전부 또는 일부를 가려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복면(覆面)과는 크게 다르다.

‘복면강도’가 그렇듯 복면은 대개 범죄를 저지르면서 검·경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서거나, 떳떳하게 자신을 밝히지 못할 처지여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법 시위의 복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시위 때의 복면 금지가 복장의 자유를 제한한다면서 ‘복면의 권리’를 내세우고 있으니, 그야말로 소가 웃을 일 아니겠는가.


[[김종호 / 논설위원]]

해병대 캠프에 얽힌 지인(知人)의 실화. 공부는 뒷전인 채 집과 학교에서 말썽만 피우는 중3 아들을 해병대 캠프에 보내기로 했다.

아들 몰래 지원 절차는 마쳤는데 아들이 완강히 저항했다. “네가 안가면 미리 송금한 캠프비 50만원이 너무 아깝잖아?” 어린 아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워낙 큰 돈이다 싶었던지, 다발로 나온 입을 주체하지 못하고 포항 훈련장에 입소했다.

이틀째 뻘밭에서 기진맥진, 포기하려는데 조교가 큰소리로 외쳤다. “부모님이 보내준 5만700원이 아깝지도 않습니까?” 아차 속았다 했지만 때는 늦었다. 아들은 4박 5일간의 지옥훈련을 꾸역꾸역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인해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을 받았던 1997년, 민간인을 대상으로 여름과 겨울 극기훈련을 실시하는 해병대 캠프가 처음 개소됐다.

PT체조와 참호격투·야간침투·래펠(rappel·밧줄을 타고 하강하는 훈련) 등 강도높은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높이고 해병대 정신으로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운다는 교육 목표는 적중했다.

군생활에 향수를 느끼던 아저씨끼리 삼삼오오 지원하더니, 직장인·운동 단체와 학생에서 가족 단위로 참가대상이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노숙자들도 극기훈련 체험에 참가하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해병대 출신 예비역들이 운영하는 캠프가 등장하는 등 수십곳의 유사 캠프까지 성업중일 만큼 시쳇말로 대박이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들이 극기훈련에 나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민 앞에 버선목 내보이듯, 개혁과 혁신의 성과를 거두기 앞서 정신무장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한국농어촌공사가 19~20일 이틀간에 걸쳐 인천 강화도 해병 모부대에서 ‘경영전략캠프’를 갖는다. 올 63세 사장부터 40대 후반의 본부장급까지 핵심간부 모두가 참석해 해병부대원들과 똑같은 훈련을 받을 예정이다.

금융감독원 팀장 220명도 금감원장의 “보고하거나 발표할 때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오라”는 지시에 해병대 훈련을 택했다. 앞서 남양주시청 세무공무원들과 천안시청 공무원들도 체험 캠프에 입소했다.


너도 나도 극기훈련을 찾는 데는 경제가 어렵고 생활이 팍팍한 현실에서 자신을 다시금 추스르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

[[문성웅 / 논설위원]]

강원 원주 부근에 가면 횡성시장을 들르곤 한다. ‘횡성 사골’을 사기 위해서다. 예부터 유명한 횡성 사골은 일반 사골보다 2배 이상 뿌연 국물이 우러난다.

하지만 횡성사골이라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허름한 가게의 한 할머니는 수십년 동안 진품만을 팔기로 유명하다. 그는 진품이 없을 경우 “오늘은 사골이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똑같은 횡성 한우인데 왜 이처럼 차이가 날까. 가장 큰 이유는 운동을 얼마나 하면서 자란 소냐, 또 무엇을 먹고 자란 소냐에 따라 다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여물과 풀 등을 먹고, 운동도 많이 하면서 자란 소라야 진품 중의 진품이다. 따라서 사료로 대량 사육하는 요즈음 명품 사골을 구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해발 600m에서 주로 방목되는 횡성한우의 쇠고기 명성은 여전한 것 같다. 최근 다른 지역 소를 횡성쇠고기로 둔갑시켜 판 업자들이 적발됐다. 지난 17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횡성군내 A농협은 지난해 1월부터 올 2월까지 무려 1677마리(128억원 상당)의 짝퉁 횡성한우를 만들어 판매했다.

타 지역 소를 구입, 몇개월 기른 뒤 ‘횡성한우’로 표시해 판매해온 것. 같은 기간 판매된 횡성한우의 72%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유는 높은 가격 때문이다. 횡성한우는 타 지역 한우 고급 브랜드에 비해 정육(쇠고기) 가격이 ㎏당 1만원, 일반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는 2만원까지 비싸다. 과거 성행했던 ‘짝퉁 이천쌀’과 비슷하다. 다른 지역 벼를 대량으로 이천 정미소로 싣고와 방아를 찧어 이천쌀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횡성군이 횡성한우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별도의 유통회사를 설립, 유통체계 일원화와 함께 품질 인증제를 도입키로 한 것이다.

더구나 지난 22일부터는 쇠고기 이력 추적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돼 이제는 짝퉁 쇠고기가 유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쇠고기 이력제는 모든 한우에 12자리의 식별번호가 적힌 귀표를 달고, 이 식별번호가 없으면 도축을 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누구나 인터넷(www.mtrace.go.kr)을 통해 식별번호를 치면 사육자와 도축장소, 육질 등급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한다 해도 진품 사골, 특히 오리지널 횡성사골을 구별하는 일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오창규 / 논설위원]]

화투판에서 자주 쓰이는 운칠기삼(運七技三). 기술이 빼어난 노름꾼이라 하더라도 뒤패가 딱딱 붙어주는 상대방을 당해낼 재간은 없는 노릇이다.

세상을 조금 살아본 사람은 대체로 수긍한다. 요즘 들어서는 보다 진화된 말이 시중에 나돈다. 제아무리 ‘머리짱, 얼짱, 몸짱, 돈짱이라도 운이 따르는 운짱을 못 당한다고.


21일 검찰총장에 내정돼 26일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서가 제출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유력후보 누구는 대구·경북(TK) 출신이어서 안되고, 또 다른 누구는 저래서 안되는 통에 선배 기수들을 제치고 검찰의 정점 자리까지 쳐다보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을 가급적 배제하기로 한 배경은 이랬다. 2008년 3월8일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취임 이래 첫 검찰 인사를 단행했다. 검사장 승진자 11명중 경북고 출신 3명이 포함됐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TK 약진’이라고들 했다. 김 장관도 경북고를 졸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질책했다. 이 대통령이 그새 그런 일 잊겠는가.


같은 21일 국세청장 내정자로 지명된 백용호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복이 없는 건지, 전공이 따로 있는데 계속 무관한 분야를 맡게 된다. 공정위를 맡을 때도 경쟁법 전공이 아니라고 비판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주립대에서 주식가격 결정모형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고, 증권회사 사외이사와 증권거래소 증권선물위원을 거친 자본시장 전문가여서 금융위원회를 내심 희망했다. 정색하고 한 얘기는 아니겠지만, 운 타령은 글쎄다 싶다.

1996년 총선에서 마신 고배의 전화위복(轉禍爲福)인가, 당시 선거법 위반으로 ‘야인’생활을 하던 MB와 인연을 맺고 그 핵심 브레인으로 자리를 굳힌 그도 ‘행운아’인 셈이다.


억세게 운이 좋다가도 막판에 뒤집히는 일도 다반사다.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09년 1월19일 경찰청장에 내정돼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다가 용산 참사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앞서 2008년 경찰종합학교장으로 퇴직을 준비하던 그가 새 정부 들어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승승장구할 당시만 해도 운을 타고났다고들 했었다.


운은 준비된 자의 몫이되, 운 좋은 사람은 자만(自慢)을 경계해야 한다.

[[문성웅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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