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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3/30
 

김태익 논설위원


'나이 일흔에 능참봉 되니 거동이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란 속담이 있다. 능참봉은 조선시대 왕족 능묘(陵墓)를 관리하던 벼슬로, 종9품 미관말직이다. 그것도 벼슬이라고 하나 맡았더니 생기는 건 없고 바쁘기만 하다는 뜻이다. 어찌하다 능 주변의 큰 나무 하나라도 손상시키면 3년 유배를 가야 했다니 몸이 얼마나 고달팠을지 짐작이 간다.

▶조선조 22대 정조 임금은 비운에 간 아버지에 대한 효성으로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 능을 자주 찾았다. 어느 날 큰비가 쏟아지자 아버지 능이 걱정돼 "지키라고 둔 관헌 놈은 방에서 편히 잠이나 자고 있으렷다" 하며 실상을 파악해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평소 정조의 효심을 알고 있던 능참봉은 "봉분이 떠내려갈까 봐 걱정돼서"라며 빗속에 능을 붙잡고 울고 있는 것이었다. 능참봉에게는 큰 상금과 더 높은 벼슬이 내려졌다. 조선의 왕들이 선왕(先王)의 능 관리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보여주는 얘기들이다.

▶조선왕실은 27대 국왕, 500여년 동안 119개의 능묘를 남겼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陵), 왕세자와 세자빈의 무덤이 있는 곳을 원(園), 기타 왕족의 무덤을 묘(墓)라고 한다. 이 중 왕릉은 42기가 남아 있는데 한 왕조의 왕릉 전체가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 드문 일이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선 국장을 치르고 왕릉을 조성하는 모든 과정이 예(禮)를 실천하고 가르치는 통치행위였다. 왕릉은 당대 최고 장인(匠人)들이 동원돼 만든 조선 건축·사상·미의식의 결정체였다.

▶왕릉이 보존된 데는 과학적 조성방법이 한몫했다. 조선 왕릉은 서울 삼성동의 선·정릉을 제외하곤 도굴된 적이 없다. 석회와 황토, 모래를 섞어 만든 특제 혼합물로 관(棺)과 석실 사이를 두텁게 채웠기 때문이다. 봉분 주변엔 떡갈나무를 심어 산불을 예방했고, 지대가 낮은 홍살문 주변엔 습지에 강한 오리나무를 심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27일 남한의 조선 왕릉 40기를 일괄해 '세계유산'에 등재토록 했다. 조선 왕릉은 지금도 매년 200만명의 시민이 찾고, 해마다 기일에 맞춰 옛 방식 그대로 제사의식이 거행되는 '살아 있는 역사'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조선 왕릉이 밀집돼 곳은 고양·파주·양주·남양주·화성·김포 등 하나같이 개발 압력이 높은 수도권 일원이다. '세계 유산' 지정을 기뻐하는 한편, 어떻게 하면 왕릉의 역사와 자연환경을 개발위협으로부터 지켜나갈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뱀파이어·범죄 스릴러… 이보다 뜨거울 순 없다

2009.06.30 08:35 | 일반폴더 | 황령산kkk

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8620 주소복사

김태훈 기자


화제의 소설 《트와일라잇》 4부작 《밀레니엄》 3부작
브레이킹 던- 스테프니 메이어 장편소설|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1만6000원
바람 치는 궁전의 여왕(전 2권)- 스티그 라르손 장편소설|박현용 옮김
아르테|각권 1만3000원

전 세계적으로 4200만부가 넘게 팔려 나간 미국 소설가 스테프니 메이어(35)의 뱀파이어 소설 《트와일라잇》 4부작과 유럽에서만 1000만부 넘는 판매를 기록한 스티그 라르손(1954 ~2004)의 추리 스릴러 《밀레니엄》 3부작의 완결편이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

미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문학도 메이어와 스웨덴 언론인 출신인 라르손은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엄청난 흡입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의 마술을 선보이며 세계 최고의 인기작가로 떠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작품세계는 확연히 다르다. 《트와일라잇》이 꽃미남 뱀파이어와 17세 소녀의 아찔하면서도 달콤한 사랑을 그린 로맨스 소설이라면, 《밀레니엄》은 유럽의 정치·경제·사회문제를 범죄와 결합한 지적 추리의 맛을 선사한다.

(사진 왼쪽부터) 스티그 라르손. 영화로 개봉된《트와일라잇》의 한 장면. 스테프니 메이어.

지난해 7월 번역 소개된 시리즈 1권《트와일라잇》을 필두로 《뉴문》 《이클립스》 《브레이킹 던》으로 이어진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인기비결은 무엇보다 공포소설의 대명사인 뱀파이어를 사랑의 화신으로 탈바꿈시킨 데 있다.

영원히 늙지 않는 17세 소년 뱀파이어 에드워드는 흠잡을 데 없는 멋진 외모의 소유자로, 뭇소녀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소설의 여주인공인 벨라의 피 냄새에 끌려 접근한 에드워드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과 죽여서 피를 빨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아슬아슬한 설정도 독자의 가슴을 졸이게 한다. 여기에 늑대인간 제이콥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인간의 피를 마시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보통 인간처럼 살아가는 에드워드 가족의 고통은 일상에서 자신을 통제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완결편인 《브레이킹 던》에서 벨라는 마침내 에드워드와 결혼을 하지만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낳다가 죽음에 이른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 에드워드는 아내 벨라를 살리기 위해 뱀파이어 독을 주입한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벨라는 이후 강인한 여전사로 탈바꿈해 남편과 아이의 목숨을 노리는 세력으로부터 가족과 사랑을 지키는 대활약을 펼친다.

제1부(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제2부(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제3부(바람 치는 궁전의 여왕)로 구성된 《밀레니엄》 3부작은 대단한 성공 못지않게 작가가 탈고한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비극적 상황으로 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2005~2007년에 걸쳐 완간된 이 3부작은 '책이 아니라 마약'이라는 격찬 속에 스웨덴 320만부, 프랑스 170만부, 덴마크 100만부, 독일 80만부, 영국 20만부, 이탈리아 50만부 등의 판매 기록을 세우며 유럽을 휩쓸었다.

월간지 밀레니엄의 편집주간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천재 여성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연인이자 사건을 해결하는 콤비로 등장하는 이 작품은 유럽의 사회적 병폐들을 소재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며 "스릴러 장르를 훌쩍 뛰어넘는 위대한 사회소설"(독일의 슈피겔)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탈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옛 동구권 국가에 투입되는 경제지원금을 유용하는 투기세력을 비판하고(1부), 동구권 여성을 착취하는 유럽의 고질적인 인신매매를 고발했으며(2부), 3부에서는 국가 공권력이 저지르는 비리와 비밀 폭력조직의 암약문제를 스웨덴 현대사와 맞물려 다룬다.

2부에서 죽은 걸로 알려졌던 리스베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부친 살해 혐의를 씌워 그녀를 제거하려는 세력의 음모에 걸려든다. 법을 내세워 시민을 살해하려는 시도와 그에 맞선 이들의 두뇌 싸움이 치밀하게 전개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2009.06.30 08:22 | 일반폴더 | 황령산kkk

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8619 주소복사

박돈규 기자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피터 케이브 지음|김한영 옮김|마젤란|279쪽|1만3000원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는 몸을 돛대에 묶고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틀어막았다. 사이렌(스타벅스의 심벌)의 노래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였다. 해가 지면 의식적으로 술이나 초콜릿을 피하려고 하지만 그 결심을 후회할 때가 있다. 내 자아가 이렇게 맨송맨송한 밤 시간에 나를 가둘 권리가 있을까? 그 문제를 생각하는 동안 동네 수퍼마켓이 아직 문을 열었는지에 대해 더 절박하게 생각한다.

이 책은 33개의 퍼즐·역설(逆說)·난제들로 속을 채웠다. 생각이 많으면 공주를 얻지 못한다,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시간은 과연 존재하는가, 베짱이처럼 사는 게 과연 나쁜가, 잠에서 깨어난 잠자는 공주 등이다. 공상, 대화, 직설적 보고의 형식으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며 철학적 사고들을 펼친다. 때론 장난스럽고 때론 도발적이다.

진과 토닉이 섞여 있어야 진토닉이다. "아무도 똑같은 강에 두 번 걸어 들어갈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같은 강이지만 예전의 강물은 흘러가 버렸다. 그렇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인지 묻게 된다.

저자는 "헬스클럽에서 몸을 단련하듯 마음의 운동이 필요하고, 철학이 그 기회를 준다"고 썼다. 띄엄띄엄 읽어도 된다.

한국 공포영화는 왜 무서운 척 안무서울까

2009.06.30 08:21 | 일반폴더 | 황령산kkk

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8618 주소복사

오동진의 씨네투어 - 영화평론가


피가 튀고(splatter) 살점이 터져 나간다. 아이스하키 골키퍼 마스크를 쓴 살인마(slasher)가 도끼를 들고 비명 지르는 여자를 쫓는다. 황야의 빈집에서 살인극이 벌어지지만 희생자를 도울 사람은 없다. 도심 곳곳은 몸 여기저기가 뜯겨 나간 채 흐느적거리는 좀비로 가득 차 있다.

여름 시즌이면 찾아오는 공포영화의 향연은 적어도 한국 극장가에서는 불청객 취급을 받는다. 극장가에서 관객 비명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얘기도 나온다. 영화 흥행을 이끄는 소비층이 10대 후반, 20대 초반여성인데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고어 영화(gore movie)'이기 때문이다.

'고어' 란 '피범벅'이란 뜻이다. 신체가 잘려나가거나 장기를 밖으로 드러내 공포의 전율을 극대화하는 영화다. 한국에서는 공포영화들의 흥행이 리미트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20만~30만 관객을 넘기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들긴 만들되 저예산 공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충고가 이어진다.

그런데도 거의 매년 여름이면 한두 편의 공포영화들이 흥행의 수위를 달린다. 어떤 해에는 투자 대비 최고 수익률을 자랑하기도 한다. 지난해 개봉됐던 '고사(死)―피의 중간고사'가 180만 관객을 동원하며 기염을 토했다. 그렇다면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일인가.

(왼쪽부터)니콜 키드먼 주연의 '인베이젼', 여고괴담 시리즈5 '동반자살', 김혜수 주연의 '분홍신'
'여고괴담' 시리즈만 해도 그렇다. 공포영화가 국내에서는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장르라면서도 이 시리즈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까. 지난주 이미 이 시리즈의 5번째 작품인 '여고괴담―동반자살'편이 개봉됐다. '여고괴담'은 어느덧 신인 감독과 배우들의 등용문처럼 됐다.

공포영화라도 잘만 만들면 국내 관객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안 되는 장르인 공포영화 가운데 일부 작품이 폭발적 반응을 얻는 부조화를 설명하기는 간단하다. 10대 후반 청소년들에게 맞추는, '주문형 제작'이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다. 이른바 '팝콘무비'다.

이 용어는 팝콘을 먹으며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공포영화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다. 1990년대 중반 인기를 모았던 '스크림' 시리즈나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류의 공포영화는 무늬만 공포지 사실 10대 청춘물에 가깝다. 소름끼치는 살인극도 여름 밤의 소동극처럼 보일 뿐이다.

진정한 공포영화는 정교한 사회정치학을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작금의 한국의 공포영화에 호러 팬들이 절반밖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뭔가 2% 부족한 것이다.

진짜 공포는 살이 튀기고 목이 뎅겅 잘려나가는 것 '따위'의 시각적 효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공포영화일수록 복잡한 사회상을 은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유의 작품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1956년 돈 시겔이 만든 걸작 공포 '신체 강탈자의 침입'(이 영화는 2007년 니콜 키드먼 주연의 '인베이젼'까지 수차례 리메이크됐다)은 당시 냉전의 시대 상황을 담아낸 작품이다. 공포는 어디서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 공포영화가 실패하는 길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진다.

김지운 감독의 2002년 작 '쓰리―메모리즈'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집 나간 아내를 며칠째 기다리다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든 남자(정보석)는 해가 지기 시작하는 어스름한 저녁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을 깬다. 어두운 현관 저편에 웬 여자(김혜수)가 무릎 꿇은 채 산발을 하고 앉아 있다. 여인의 옆에는 큰 여행 가방이 놓여 있다.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영화 후반쯤 가면 관객들은 왜 이 여자가 가방을 갖고 산발한 채 나타났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영화는 평온해 보이는 듯한 신흥개발지구 중산층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극을 다룬다. 우리 안에 우리가 여럿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최근 몇 년 사이의 공포영화들은 무서운 척 무섭지 않은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주온―원혼의 부활' '블러디 발렌타인' '요가학원' 등이 기다리고 있다. 팝콘들을 준비하시길.

'고려의 갈릴레이' 천문학자 오윤부

2009.06.30 08:19 | 대표폴더 | 황령산kkk

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8617 주소복사

이한우의 역사속의 WHY


점성에 능해, 원나라까지 알려져
직언하다 관직 삭탈에 형장당해

오윤부(伍允孚)는 고려 충렬왕 때 활약했던 천문(天文)전문가였다. '고려사'에는 개인사와 관련해 "부흥군 사람으로 대대로 태사국(太史局) 관리를 지냈고 충렬왕 때 관후서 판사(觀候署 判事)로 승진됐다"는 기록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오(伍)씨는 이후 어떤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대대로'라는 말을 근거로 해서 몇 대 위에서 고려로 귀화한 중국의 천문 전문가 집안의 후손일 것으로 본다. 태사국은 천문 역수(曆數) 측후(測候) 등을 맡아보던 기관이고 관후서도 태사국과 비슷한 기능을 했던 기관이다.

태사국 관리가 역대로 수없이 많을 텐데 '고려사'에서 굳이 오윤부를 최고로 꼽은 이유는 뭘까? 그는 먼저 자기 일에 성실했다. "매일 밤 한 잠도 자지 않고 별자리를 살펴 아무리 춥거나 더워도 병으로 앓지 않으면 하룻밤도 빠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점성(占星)에도 능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이 원나라에까지 퍼져 원나라 세조가 직접 불러들여 그의 별 점을 직접 시험한 후에는 더욱 유명해졌다. 한번은 원나라 세조가 정벌에 나서며 사위인 충렬왕으로 하여금 군사를 동원해 돕도록 명했다.

이에 충렬왕은 군사를 이끌고 평양에 이른 다음 유비(柳庇)라는 신하를 먼저 파견했다. 그리고 오윤부를 불러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점을 쳐보도록 했다. 오윤부는 "무슨 날이면 유비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니 전하께서는 출전하실 일이 없습니다"고 답했다. 그날이 되어도 유비가 돌아오지 않자 충렬왕은 오윤부에게 "네 점이 틀렸다"며 시종들로 하여금 잡아갈 것을 명했다.

오윤부는 성질이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습니다"고 맞섰다. 잠시 후 저 북쪽에서 유비가 말 먼지를 날리며 돌아왔다. 유비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세조에게 당도하기 전에 정벌사업이 끝나는 바람에 동원령이 취소됐다는 것이었다. 이후 오윤부에 대한 충렬왕의 총애는 거의 절대적으로 바뀌었다.

사실 유교의 원칙에 따라 편찬된 '고려사'가 조금은 과할 정도로 오윤부의 별 점치는 사례들을 자세하게 소개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오윤부는 점에도 능했지만 하늘을 빌려 인간사(人間事)를 경계하는 유교적 관점의 천문가였기 때문이다.

재이(災異·기상이변)는 유학에서 곧 재앙의 조짐이었다. 오윤부는 이 점을 활용해 당시 충렬왕보다 더 큰 권세를 누리고 있던 왕비 제국대장공주(원나라 세조의 딸)와 여러 차례 충돌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충렬왕도 두들겨 패던 공주였다. 그 공주에 맞서려면 따라서 목숨도 걸어야 했다.

충렬왕이 태묘(太廟)에 새 신위(神位)를 모시는 제사를 지내려 할 때 공주도 그 제사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에 오윤부가 "태묘는 조상의 신령이 있는 곳"이라고 주장해 공주가 두려워하며 제사 참여를 포기했다. 또 공주가 궁궐의 신축 공사를 벌이려 하자 "지금 하늘에서 변이(變異)가 여러 차례 나타났으니 궁궐 공사를 중단하시고 덕을 닦음으로써 이 재변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다시 공주가 궁궐 신축을 추진하면서 오윤부에게 택일(擇日)할 것을 명하자 오윤부는 거부했다. 명분은 지금은 택일 자체를 해서는 안 될 때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오윤부는 관직을 삭탈당했고 충렬왕도 괘씸하다고 여겨 형장(刑杖)을 가하였다.

그래도 오윤부는 굴하지 않았다. "택일은 흉(凶)을 피하고 길(吉)을 맞이하는 것인데 위협하여 날을 가리게 한다면 가리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나는 살육을 당하더라도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 사례를 보면 오윤부는 공주를 맹목적으로 배척했던 것만은 아니다. 한번은 세조가 딸과 사위를 위해 전(前) 송나라 명의를 직접 고려로 보내 조양환(助陽丸)을 조제토록 배려했다. 명칭으로 보아 일종의 '비아그라'였던 것 같다. 충렬왕과 공주는 그 명의를 무척 아꼈다. 그런데 어느 날 오윤부가 그 약의 맛을 보더니 통분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 약은 수태하는 데 좋지 못한 것이니 삼한(三韓)의 후손이 번성하지 못하게 하는 자가 바로 이 사람이다."

실제로 그 이전까지 거의 해마다 임신을 했던 공주는 충렬왕이 이 약을 먹기 시작한 후로는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했다.

오윤부의 충성은 어쩌면 충렬왕 개인을 넘어선 고려 자체를 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늘 봉은사라는 절에서 새 달의 시작을 알리는 제사를 올릴 때마다 "태조시여! 태조께서 창안하신 이 나라 국정이 날로 틀려갑니다"며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그는 하늘에 기대어 재상들도 하기 힘든 충간(忠諫)을 했던 인물이다. '고려사'가 그를 주목한 진짜 이유다. 이를 보면 귀화한 중국인 후손이라는 추정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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