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내일,또 내일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황령산kkk (pks13693094)
프로필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전체 글보기(39193)
일반폴더
대표폴더
오늘 전체
방문자 287 3638424
구독자 0 402
댓글 0 8569
참조글 1 499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2009 11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 댓글 전체보기
저도 어제 목욕탕갔는데..
와 잘했다.
... 복잡하다
z
하앍 가슴 빵빵한데? ..
최근 참조글 전체보기
Cheap ambein..
물 붓고 3분이면 오케..
▶[투쟁]돈 300만원..
▶[투쟁]돈 300만원..
▶[투쟁]돈 300만원..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왕승봉
- gijason
- rok149
- flyfish
- hl2tqt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개설일 : 2004/03/30
 

청와대 살림으로 본 ‘그때 그 시절’

2009.11.18 09:30 | 대표폴더 | 황령산kkk

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5 주소복사

박정희·김영삼 말사료·트리오 비용까지 기재
전두환·노태우 전기·수도료도 정보비로 처리

“내 별명이 왕소금이다. 대통령실 살림살이는 마른 수건을 짠다는 각오로 하고 있다.”

지난 12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한 답변이다. 정부가 편성한 2010년 대통령실 예산은 경호처 예산을 포함해 1536억원. 총예산(291조8000억원)의 0.05%다. 대통령실 예산에는 시대가 담겨 있다.

역대 대통령의 철학과 행보가 녹아 있다.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1974~2010년도 대통령실 예산안을 들여다봤다. 74년 9억2528만원(경호실 포함)이던 청와대 예산은 36년 만에 약 166배 늘었다.


◆박정희 정부=빛바랜 재생지 위에 손으로 직접 표를 그리고 숫자를 적어 넣은 예산안엔 권위주의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다. 74년 경호실을 제외한 대통령실 예산은 5억733만원. 이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1년 급여는 381만원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다른 돈이 꽤 됐다. 판공비가 연 800만원이고, 지금의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에 해당하는 정보비 총액 3624만원 중 3000만원도 대통령 몫이었다. 급여를 포함하면 대통령실 전체 예산의 8.2% 정도가 대통령 재량이었다. 74년 청와대는 연 4회에 걸친 ‘존영(尊影·대통령의 사진)’ 촬영·인화 등에 696만원을 썼다.

주요 공공기관마다 걸어 놓던 대통령 사진을 계절에 따라 바꾸는 데 쓴 셈이다. 예산 내역은 ‘전동타자기 2대X25만원’ ‘나프킹(냅킨의 일본식 표현) 200매X100원’ 등으로 상세히 적었다. ‘동물사료비’ 항목에선 ‘공작새 5마리, 말 3필’ 등 경내에서 키우는 동물의 수까지 알 수 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전두환 정부 때 국회에 제출하는 대통령실 예산안의 항목은 극단적으로 단순화됐다. 83년도 예산안 설명서엔 ‘인건비’ ‘사업비’ 등의 추상적인 항목에 총액만 적었다. 대통령의 급여도 알 수 없다. 노태우 정부에선 조금 개선돼 직급별 급여 등이 공개됐다. 하지만 건물 유지관리비와 전기·수도요금 등을 영수증이 필요 없는 ‘정보비’에 포함시켜 총액만 적어 냈다.

◆김영삼 정부=구입한 청소용품의 종류와 개수까지 적었다. ‘트리오 1000원X120병X12개월=144만원’ 식이다. 지나치게 포괄적이었던 ‘정보비’에 포함됐던 상당 부분을 공개한 뒤 남는 것만 ‘특수활동비’로 묶었다. 홍인길 당시 총무수석은 17일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첫 조치가 청와대 예산 투명화였다”고 말했다. 예산 항목에 ‘여론조사비’(95년 4억8600만원)와 소프트웨어 구입비(895만원)가 들어간 것도 전에 없던 변화다.

◆김대중 정부=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의 흔적이 묻어났다. 2000년엔 청와대에도 명예퇴직이 도입됐다. 3급 3명과 기능직 3명을 명예퇴직시키는 데 1억5000만원이 들었다. 같은 해 기업의 연봉제 도입 붐을 타고 대통령 급여가 연봉제로 전환됐다. 2001년엔 대통령 억대 연봉 시대가 열렸다.

◆노무현 정부=탄핵 소용돌이 속에 진행된 ‘여민관’ 신축 때문에 청와대 예산이 정치 쟁점이 됐다. 2004년도 예산안에 39억7403만원을 반영하자 한나라당은 “이삿짐을 싸야 할 마당에 새 건물을 짓느냐”고 비판했다. 온라인 보고 및 결재 시스템인 ‘e지원’ 도입 예산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경 썼던 항목이다.

◆이명박 정부=지난해 예산을 2007년에 비해 무려 21.7% 깎았다. ‘작은 청와대’를 표방한 데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2010년도에는 올해보다 9.6% 늘렸다. 대통령의 행보와 직결되는 업무지원비가 58억원 늘었다. 직무수행경비가 전년보다 709.2% 늘어난 데다 특수활동비(22.6%)와 업무추진비(35.1%)도 늘었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 행사 증가’와 ‘직제 개편’을 원인으로 들었다.


임장혁·권호·허진 기자

키가 아주 작았던 안자(晏子)에게는 훤칠한 체격의 차몰이꾼이 있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운전기사다. 지혜의 대명사로 존경을 받고 있는 제(齊)나라 재상 안자의 수레를 몬다는 이유로 이 남자는 꽤 폼을 잡았는가 보다. 늘 신이 나 있었고, 자랑스레 우쭐거리는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하루는 그 아내가 남편의 모습을 문틈 새로 바라봤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그에게 아내는 “헤어지자”고 요구했다. 이유를 묻는 남편에게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재상은 차분히 앉아 있는데 높은 데 걸터앉아 의기양양하게 수레를 모는 당신 모습을 보고 천박하다는 인상을 감출 수 없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일화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서 제 모습이 호랑이가 없는 틈을 타서 우쭐댔던 여우, 즉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경우에 닿아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어 그는 자신의 잘못을 다스린다. 자세가 달라진 차부(車夫)를 보고서 그 이유를 알게 된 안자가 그 점을 높이 평가해 벼슬 자리를 줬다는 게 후문이다.

정승 집에서 키우는 개가 죽으면 그날의 그 집은 문전성시다. 정승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라의 온 벼슬아치들이 조문을 오기 때문이다. 정승이 죽으면 상황은 그 반대다. 권력자인 정승이 죽고 없으니 찾아오는 이는 거꾸로 드문 법이다.

‘정승 집 개’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그래서 많다. 안자의 차부가 독립적인 인격을 이루지 못하고 늘 재상의 권력에 기대 잘난 척을 일삼았던 경우나, ‘정승 집 개’의 권력논리를 체득한 사람들이 당대의 권력자에게 빌붙어 몸종 노릇을 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속은 텅 빈 강정이다.

친박근혜 계열의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 화제다. ‘보스’의 뜻과는 반대로 세종시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다. 호가호위의 단물에 빠져 독자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차부와 실력자의 애완동물 처지를 벗어던졌다.

어딘가에 치우쳐 무리를 짓는 편당(偏黨)의 모습은 한국 정치의 일상적 풍경이다. 그럼에도 수도 기능을 이전한다는 중차대한 세종시 문제를 두고 파벌 수장의 견해에 파묻혀 열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친박계 의원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딱하다. 그들의 가슴에 달린 금배지가 아깝다. 요즘 금값도 치솟는다는데.


유광종 논설위원

김춘수 시인의 ‘꽃’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붉은 얼굴을 한 화성은 늘 강렬한 몸짓으로 지구인에게 다가왔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가 자신의 작은 망원경에 나타난 화성의 어두운 줄무늬들을 보고 ‘카날리(canali)’란 이름을 붙여준 게 1877년이었다.

해협, 경로, 또는 그리스 건축에 수직으로 파 넣은 장식용 홈들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카날리’가 영어권에서 ‘canals’로 번역되면서, 화성은 지적 존재가 구축한 ‘운하’라는 이름의 ‘꽃’으로 피어났다.

한편 미국의 퍼시벨 로웰이 직경 60㎝의 굴절 망원경을 자비로 구입하여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에 로웰천문대를 설립한 게 1890년이었다. 로웰 식의 꽃맞이 사업이었다.

화성의 줄무늬 모습과 극관의 면적이 계절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로웰은, 줄무늬가 극관에서 녹아내리는 물을 적도 사막 지대로 수송해 주는 거대한 용수로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로웰의 주장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도전한다. 그는 극지방의 물이 적도를 향해 오는 동안에 증발해 버리거나 땅에 완전히 스며들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로웰은 준외교관 신분으로 조선에 근무한 특이한 경력의 인물이다. 그의 묘비명을 보면 인류의 평화를 희원하던 이상주의자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월리스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발견한 인물이다.

평화를 꿈꾸던 로웰의 ‘꽃’을 엔지니어 출신의 월리스가 ‘짓밟았지만’ 대중은 로웰의 편이었다. 그래서 로웰의 꽃맞이 행사는 매리너, 바이킹, 패스파인더,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등의 화려한 탐사계획으로 줄기차게 이어질 수 있었다.

스키아파렐리의 카날리는 1965년 매리너 4호가 보여준 매리너 대협곡의 전조였다. 한때 물이 넘쳐났을 수로의 흔적들도 화성 도처에서 알아볼 수 있다. 로웰이 ‘카날’이란 이름으로 불러주었을 때 화성은 ‘수로’라는 이름의 꽃으로 답을 했다.

계절에 따라 녹고 얼기를 반복한다고 로웰이 믿었던 극관은 물 얼음이 아니라 주로 이산화탄소 성분의 드라이아이스가 차지한다.

화성 북반구에 여름이 오면 극관의 드라이아이스는 이산화탄소 기체로 승화하여 남반구로 내려가 남극관에 다시 얼어붙는다. 한편 형성 초기에 풍부했던 물의 일부는 얼음으로 지하 영구 동토 층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월리스의 손도 들어줘야 한다.

지구인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화성은 자기 나름의 꽃으로 답을 해온 셈이다. 시인의 ‘이름 부르기’는 과학자의 ‘모형 세우기’와 같다. 과학에서는 모형을 설정하여 침묵하는 자연의 입을 열게 한다. 그러므로 과학 하기란 인간과 자연이 벌이는 이름 부르기다.


홍승수 서울대 명예교수·물리천문학부

비싼 사회적 대가 치른 ‘김종필·오히라 비밀메모’

2009.11.18 09:01 | 일반폴더 | 황령산kkk

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9762 주소복사

2005년 1월 17일 외교통상부가 공개한 김종필·오히라 메모..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일본 외상 오히라와 만나 소위 ‘청구권 자금’의 규모에 대해 합의하고 양국 수뇌부에 건의할 것을 결정하고, 이를 내용으로 하는 김종필·오히라 메모가 작성되었다.

이른 시일 내에 한·일협정을 마무리 짓기 위해 가장 중요한 논쟁점이었던 청구권 자금의 액수를 밀실에서 합의했던 것이다.

김종필 부장은 회담 직후 “합의한 사실은 없고 쟁점에 대해 토의를 한 사실만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무상 3억 달러, 유상차관 2억5000만 달러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도했지만, 한국 정부는 최종 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합의를 극비에 부치며 한·일회담 수석대표에게도 알리지 않는다는 내용의 훈령을 12월 1일 내려보냈다.

64년 초 야당과 학생들이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밀실에서 졸속으로 처리한다는 비판을 제기하자, 정부는 동년 3월 31일 중앙청 회의실에서 11개 대학의 학생대표들에게 김종필과 오히라가 합의한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당시 공개된 것도 합의 내용은 없고 한국 측과 일본 측이 제시한 액수만을 담고 있었다. 미국대사관에서 박정희 정부가 한·일협정 반대운동으로 인해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메모 내용이 공개되었지만, 모든 내용이 공개되지 않음으로 인해 의혹이 더 커졌고, 이는 결국 6·3 사태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2005년 1월 한국 정부는 베일에 싸여 있었던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전격 공개했다. 무상 3억 달러, 유상차관 2억 달러로 합의하고 수뇌부에 건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64년 정부가 공개할 때는 없던 것이었다.

메모의 내용이 62년 10월 17일과 11월 4, 8일에 박정희 의장이 지시한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관련 문서는 공개됐지만 논란이 되었던 것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김종필·오히라 메모에 근거한 한·일협정은 45년 이전 한·일 간의 협약, 개인에 대한 피해 보상, 독도 문제 등 기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지금까지도 한·일관계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더 중요한 교훈은 국가적인 대사를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음으로 인해 광범위한 대중적 저항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한·일협정 이후에도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의 문제로 인한 대북송금 특검, 한·미 간 쇠고기 협상 문제로 인한 2008년 촛불 시위 등은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조선 순조 24년(1824년) 6월이었다. 함경도 안변 관아에서 군관으로 일하는 김광재의 집에 사나운 호랑이가 들어왔다. 호랑이가 김광재를 물고 나가려 하자 예순이 넘은 그의 아내 조(趙)씨가 남편의 몸을 붙잡고는 놓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 대신 나를 물고 가라’며 스스로 호랑이 주둥이 앞에 몸을 던졌다. 호랑이는 남편 대신 아내를 물고 가버렸다. 함경감사가 이 같은 사실을 조정에 알렸고 예조에서는 조씨를 위해 열녀문을 세웠다.

영조 때는 호랑이 피해가 더 심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영조 10년(1734년) 여름·가을 호랑이로 인해 14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 봄에도 강원 영동지방에서 40여 명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영조 28년(1752년)에는 호랑이가 서울 도성 안은 물론 경복궁 뒤뜰에까지 들어왔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한국호랑이도 일제 강점기 때 대대적인 사냥이 벌어지면서 사라졌다. 1922년 경북 대덕산에서 사살된 것이 남한의 마지막 호랑이였다. 북한에서는 북부 고산지대에 남아있다고 하지만 10마리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랑이는 세계적으로도 위기에 처해 있다. 호랑이의 8개 아종(亞種) 중 카스피호랑이·발리호랑이·자바호랑이는 20세기에 멸종됐다. 남중국호랑이도 83년 이후 관찰되지 않고 있다. 인도호랑이(벵골호랑이)와 인도차이나호랑이가 약 1500마리씩, 수마트라호랑이가 400~500마리 정도 남아 있을 뿐이다.

시베리아호랑이(아무르호랑이)라고 불리는 한국호랑이는 러시아의 야생에서 약 500마리, 동물원에서 400여 마리가 남아 있다고 한다. 중국의 동물원에는 900여 마리가 있지만 야생에는 20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환경부는 지난달 말 한·러 환경협력회의 때 러시아에 한국호랑이 세 마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과천 서울동물원을 비롯해 국내 동물원에도 미국·중국 등에서 들여와서 번식한 한국호랑이가 20마리 이상 있지만 대부분 사촌, 육촌 관계다. 근친교배가 거듭되면서 백내장·시력저하 같은 유전병을 가진 호랑이도 흔하다.

한때 황우석 교수가 한국호랑이 복제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성공했다 해도 호랑이들이 똑같은 유전자만 갖고 있다면 ‘살아있는 박제’에 불과하다. 건강한 한국호랑이를 유지하려면 끊어진 생태계를 잇는 게 먼저다. 그게 힘들면 유전자를 교환할 수 있는 국제협력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다음 페이지 다음 10번째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