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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3/30
 

착하게 태어난다는 것

사람 뇌에는 12쌍의 뇌신경이 있다. 뇌신경은 감각기관과 운동계통을 뇌와 연결시켜준다. 뇌신경 중에서 가장 길고 복잡하며 가장 넓게 분포한 것은 열 번째 뇌신경이라 불리는 미주신경(迷走神經)이다.

영어 명칭(vagus nerve)은 라틴어의 방황이란 뜻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 뇌신경은 머리에서 시작해 안면과 가슴 부위를 거쳐 복부까지 뻗어 있다. 후두·기관지·식도·위·폐·간·심장 등의 운동을 자극한다.

미주신경이 활성화되면 가슴이 따뜻하게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온다. 가령 다른 사람의 선행을 보고 감동을 느끼거나 좋은 음악을 듣고 기분이 좋아질 때처럼 가슴이 따뜻해진다.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미주신경의 활성화가 남을 돌보는 감정이나 윤리적 직관과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대처 켈트너이다.


켈트너에 따르면 휴식 상태에서 미주신경이 활성화되는 수준이 높은 사람은 동정심, 감사, 사랑, 행복감을 느끼기 쉽다. 이런 정서는 이타주의를 촉진한다. 이를테면 남을 배려하고 기꺼이 베풀며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월 펴낸 저서 '선량하게 태어나다(Born to Be Good)'에서 켈트너는 미주신경 덕분에 인간은 이타적 행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선행을 하고 협동하고 윤리적 판단을 할 줄 아는 능력을 진화 과정에서 정서의 일부로 지니게 됐다는 뜻이다.

요컨대 사람은 착하게 살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생물의 진화를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관점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셈이다.

켈트너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은 남을 돌보고 존경하고 겸손할 줄 아는 능력이 뇌, 몸, 유전자, 사회 관행에 모두 내포되어 있을 정도로 본질적으로 착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미국 격월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 9~10월호에 실린 글에서도 켈트너는 친절, 관용, 자기희생, 협동심과 같은 이타적 정서를 누구나 타고나기 때문에 이것을 잘만 활용하면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에도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열거한 몇 가지 사례이다.

첫째, 진정으로 남을 존경해본 경험이 있거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 인간관계의 감각을 향상시킬 수 있다. 둘째, 타인을 측은히 여기면 행복과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고 면역기능이 좋아진다. 셋째, 교실이나 식탁 또는 일기장에서 감사해야 할 것들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면 행복, 건강, 사회적 복지가 증진된다.

켈트너는 이타주의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장에 공감하면 사회적으로 미래가 밝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물질만능주의 문화가 사라지고 남에게 베푸는 사회적 즐거움을 중시하는 멋진 사회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멋진 삶은 직업에 따라 다양하게 실현된다. 의사들은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학교에서는 배려와 존경을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친다. 교도소에서는 죄수들에게 명상을 권유한다. 최고경영자는 기부 행위가 회사 발전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지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살맛 나는 세상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주태백 2009.11.03  20:18

담아 갑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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