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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3/30
 

아빠의 기척이 들리면 아이가 숨는다. 침대 밑으로, 장롱 속으로, 옷걸이 사이로. 집에 들어선 아빠가 짐짓 묻는다. “얘가 어디 갔지?” 아빠는 엉뚱한 곳부터 뒤진다. 냉장고도 열어 보고, 이불도 들춰본다. 킥킥, 웃음소리가 비어져 나온다.

“까꿍” 하면 아이는 토끼처럼 튀어나와 아빠 품에 안긴다.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숨바꼭질이다. 아빠가 찾는 기색이 없으면 아이가 신호를 보낸다. “아빠, 나 어딨게. 찾아봐라.” 그런데 아빠가 딴청을 부리며 찾지 않는다면?



“낮잠을 깨어보니/ 방안에 어느새 전등이 켜있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어딘지 먼 곳에 단란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김윤성 시인의 ‘추억에서’ 첫연이다. 낮에 깜박했는데 어느새 저녁이 되어 아이는 어리둥절하다. “눈을 비비고/ 소리 있는 쪽을 찾아보니/ 집안 식구들은 저만치서/ 식탁을 둘러앉아 있는데/ 그것은 마치도 이승과 저승의 거리만큼이나 멀다.”

식구들은 저들끼리 밥을 먹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불러도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쪽과 저쪽은 딴세상처럼 멀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무슨 벽이/ 가로 놓여 있는가/ 안타까이 어머니를 부르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헛되이 되돌아 올 뿐.” 유령처럼 보이지 않게 된 아이는 겁에 질린다. “갑자기 두려움과 설움에 젖어/ 뿌우연 전등만 지켜보다/ 울음을 터뜨린다/ 어머니, 어머니.”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유년경험이다.

숨바꼭질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서러운 숨바꼭질도 있다. 부모의 무관심에 가출하는 청소년들이 그렇다.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아이들은 가출이라는 서러운 숨바꼭질을 선택한다. 어른들도 세상과 숨바꼭질을 한다. 삶에 지친 어른들은 가출이라는 숨바꼭질로 조난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어른들과 세상 사이에는 무슨 벽이 가로놓여 있는지 “나 찾아봐라”는 목소리는 공허하기만 하다. 어른들이 가고픈 세상은 눈에 뻔히 보이는데 이승과 저승처럼 멀다.

가출한 중년 남성을 찾아달라는 119 위치추적 신청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이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40, 50대의 경우 작년보다 두 배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집나간 이들은 대부분 가장들로 경제 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풀이다. 서럽고도 두려운 아빠들의 숨바꼭질이다.

<김태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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