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을 알아도 원숭이를 자신의 진화론적 조상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근사한 식당에서 멋진 식사를 하면서 주방에 밤이면 생쥐나 바퀴벌레가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는 이도 드물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으면서 영혼을 울리는 선율이 당시 돼지우리 같았던 그의 작업실에서 빚어졌다는 사실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이처럼 결과만 보고 과정도 그러하리라고 지레 짐작하는 데서 비롯한 잘못된 생각을 ‘베토벤 오류’(Beethoven Fallacy)라 한다.
‘베토벤 오류’는 본디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진화생물학자들이 진화의 결과와 과정을 인과론적으로 볼 수 없음을 예시하기 위해 즐겨 쓰는 용어다. 하지만 생물학만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에도 널린 게 베토벤 오류다.
몇해 전 화제를 모았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피묻은 다이아몬드)가 그렇다. 보석의 꽃이라는 다이아몬드에 얼마나 많은 피와 더러운 음모와 잔혹한 착취가 묻어 있는가를 고발하려 유엔 당국자들이 만든 용어의 실상을 영상으로 구현했다. 화면 가득한 참상은 베토벤 오류에 젖은 많은 사람들을 기겁하게 했다.
기겁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베토벤 오류에서 벗어날 일은 많다. 가슴을 파고드는 커피의 ‘검은 유혹’이 베토벤 교향곡이라면, 현지 농민에게서 300원쯤에 후려친 원두 1㎏이 다방에서 25만원어치의 커피로 팔리는 유통구조는 베토벤의 작업실이다.
축구공의 실밥마다엔 가난한 남아시아 어린 노동자들의 땀이 젖어있고, 버마의 군벌들이 세를 불릴수록 루비는 더 붉어지고, 열대림의 불법 벌목된 나무들이 말끔한 원목가구로 팔리는 현실이다. 이런데도 세계화로 세계가 평평해졌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베토벤 오류의 전형이다.
국제인권단체 ‘글로벌 위트니스’가 최근 베토벤 오류의 또 다른 항목을 추가했다. 휴대폰에도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피묻은 광물원료가 쓰인다는 것이다. 요컨대 ‘피묻은 휴대폰’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군벌들과 결탁해 인권유린과 노동착취를 하건만, 소비자들은 첨단제품에만 현혹된 현실에 대한 뼈아프고도 기겁할 만한 고발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공정무역 커피’처럼 베토벤 오류를 극복한 착한 생산과 소비도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젠 ‘공정무역 휴대폰’이 나올 때인 듯싶다.
<유병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