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랜드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세찬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가 없었다. 우산이 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수필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앨프리드 가드너(1865~1946)의 ‘우산 도덕’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발관 우산꽂이에 꽂아둔 그의 비단 우산을 누군가가 가져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싸구려 면(綿)우산을 들고 나왔다가 비를 고스란히 맞은 기억을 수필로 쓴 것이다.
1622년 프랑스에서 첫선을 보인 우산이 영국에 상륙한 것은 1750년. 당시 조너스 핸웨이 경이 처음으로 우산을 쓰고 런던 거리를 거닐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상자로 보았다. 그 이유는 존 맥도널드 경의 ‘회고록’에서 찾을 수 있다. “1778년 멋진 스페인제 비단우산을 가지고 있었으나 감히 쓰고 다니지를 못했다.
당시 마차꾼들은 우산 제조업자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래서 이 마차꾼들에게 욕을 듣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프랑스에서 장갑 생산업자들이 우산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지 10년 뒤인 1786년, 핸웨이 경이 사망하던 무렵에야 비로소 영국에서도 우산은 흔한 생활용품으로 자리잡았다. 우산이 런던에 첫선을 보인 지 한 세대가 지난 뒤였다.
국내에서 우산이 일반화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11년 배화학당에서 학생들의 쓰개치마 착용을 교칙으로 금지하자 자퇴하는 학생이 많았다. 학교에서 궁여지책으로 우산을 지급해 얼굴을 가리도록 한 이후 다른 여학생들과 일반 부녀자들 사이에 붐이 일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도 처음부터 누구나 우산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오랜 가뭄 끝에 장맛비가 내리자 우산을 쓰고 거리에 나왔던 사람들이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곤 했다. 하늘에서 내린 단비를 우산으로 가리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긴 이들의 폭행이었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이 시중에 유통되는 우산과 양산의 안전성을 조사했더니 83%가 우산살이 쉽게 부러지거나 휘고 실밥이 터지는 등 안전 기준에 못 미쳤다고 한다. 평소에는 우산이 필요 없다. 그리고 고장난 우산은 무용지물이다. 평소에 잘 관리하지 않아 필요한 때 사용하지 못한다면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다. 거듭되는 북한의 핵 위협을 보면서 미국의 ‘핵우산’을 떠올려 본다.
[[황성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