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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토록 승승장구하던 미실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태자인 동륜이 갑작스레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죽은 게 아니었다. 원래 진흥왕에게는 사도왕후와 미실 외에도 보명, 옥리, 월화 등의 궁주를 더 두었는데, 태자인 동륜이 이 가운데 보명과 눈이 맞아 서로 정을 통하다가 그만 혼자서 담을 넘던 도중 기르던 개에게 물려 죽은 것이었다.
상황은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했다. 물론 동륜이 죽은 자체는 크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태자인 동륜보다 더 끗발 좋은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중이고, 지위도 왕후에 버금가는 전주에 올라 있던 터였다. 동륜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낳은 자식을 왕으로 세워도 되는 - 그러기에 충분한 위치에 이미 올라 있던 것이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왕이 아들의 죽음을 조사하는 과정에 미실에 대한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 왕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실의 위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이 죽은데다, 그 아들이 자신의 후궁과 정을 통함으로써 남자로써의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을 터였다. 그런데 여기에 사랑하던 미실마저 동륜과 관계가 있었다고 하니... 더구나 미실과 관련해 화려한 남성편력은 당시 신라사회가 그랬다손치더라도 왕의 질투와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이었다. 이제는 전주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목숨마저도 안심할 수 없는 그런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미실은 이미 탁월한 정치가였다. 진흥왕이 어떠한 결단을 내리기 전에 그녀가 먼저 정면돌파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진흥왕의 분노가 자신에게 미치기 전에 먼저 전주자리를 내놓고 목놓아 우는 모습을 보이며 궁에서 물러난 것이다. 말하자면 국면전환을 위한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였다. 어차피 그녀에게는 이미 삼생의 일체가 되기로 맹세한 동지인 사도왕후가 있었으니 충분한 보험을 둘어둔 상태에서의
"어찌 천한 무리들의 어지러운 말로 총첩의 은혜를 빼앗고 죽은 아들의 혼령을 아프게 하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아직 미실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던 터였다. 더구나 미처 화를 터뜨리기도 전에 알아서 스스로 물러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더욱 아쉬움이 남고. 하지만 돌아가는 것이 그래서 차마 어찌 못하고 있었는데 왕후인 사도왕후마저 나서서 죽은 아들을 핑계삼으니 못이긴 척 넘어가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지? 원래 정치라는 게 그렇다. 정치란 쇼의 연속이다. 정치란 끊임없는 자기PR이며,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한 바람잡이이며, 알면서도 속아넘어가주기도 하는 기만의 장이다. 그것을 모르고 국민을 위하네, 도리를 추구하네, 정의를 바로 세우네, 쇼를 위한 타이틀 - 정확히는 찌라시에 넘어가는 것이 바보라는 것이다. 진흥왕이 그런 바보인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 또한 알면서도 속아넘어가주는 센스 정도는 갖춘 군주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미실의 추문에 대한 파동이 한 숨 가라앉은 뒤 진흥왕은 마치 약속한 것처럼 미실을 찾아 그녀의 사저로 거동했다. 사도왕후를 통해 진흥왕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던 미실은 그런 진흥왕을 반갑게 맞이하며 미리 계획한 대로 눈물을 흘리며 죄를 고했고. 용서해 달라... 남자가 되어서 어찌 그걸 용서 못하겠는가? 진흥왕은 이내 그녀를 용서하고 전주의 자리를 돌려준다.
그러나 미실의 고단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흥왕이 당연히 받아들이라 여긴 전주의 자리를 사양한 것이다. 그리고는 이미 시나나 다름없던 남편 세종을 택해 그를 불러들였다.
"아! 세종공은 태후에게 효도하고, 대왕에게 충성스러웠으며, 황후의 아들로써 미실에게 정절을 바쳤다. 스스로 그것을 일생의 일로 삼았다. 평생토록 한 사람도 책망하지 않았고, 한 송사도 그릇되이 판단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요즘말로 호구라는 뜻이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미실의 것이라, <화랑세기>에 묘사되기를 "화랑 가운데 화랑"이라 일컬어지던 세종은 마치 개가 그러하듯 쪼르르 미실의 부름에 응해 달려와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
하긴 어쩌면 이 시간이 세종의 일생에 가장 행복하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처음 미실을 맞아들인 이래 다시 한 번 미실을 독점할 수 있었던 때이니. 해궁으로 이주하여 미실과 함께하며 운우를 나누면서 마침내 이때 미실은 운종이라는 세종의 아이를 임신하기도 한다. 밖에서 보기에 완전히 미실이 진흥왕을 떠나 세종에게로 돌아간 듯 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미실은 알고 있었다. 세종이 지도태후를 통해 사다함과 장래를 약속하고 있던 자신을 다시 궁으로 불러들이던 상황을. 아직 미실에게 미련이 남아 있던 진흥왕이 결코 그대로 물러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더구나 해궁으로 향하면서 진흥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수종이라는 아들까지 데리고 들어갔으니 명분도 이만하면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진흥왕은 아들 수종을 볼 것을 핑계로 미실을 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실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진흥왕의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진흥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신의 치마폭 안에 가두고 마음대로 요리하는 것이었다. 정치가로서의 그녀의 야심은 진흥왕의 총애가 아닌 진흥왕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기를 원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이 흘렀다.
진흥왕이 직접 미실이 있던 해궁까지 거둥하여 눈물로써 설득하자 미실은 그제야 진흥왕의 '청'을 받아들여 몸을 움직였다. 당시는 이미 세종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기에 해산하고 나서 궁으로 들겠다 청했지만 그조차도 거절당한 채 궁으로 먼저 들고 해산할 것을 강요당했다. 미실이 바란대로 진흥왕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쥐게 된 순간이었다.
미실이 진흥왕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진흥왕으로 하여금 세종을 병부우령으로 제수하고 궁에 들어와 살도록 한 것이었다. 이것은 세종에 대한 배려로써 진흥왕의 후궁으로 있으면서도 세종과의 관계도 인정받는, 요즘말로 하면 대놓고 어장관리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는 세종은 전남편이고 진흥왕은 왕이고 자신은 후궁이지만. 그만큼 진흥왕이며 세종이며 미실에게 반해 있었다는 것이고 미실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더라는 뜻이었다.
정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권력은 왕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그 왕마저 미실이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히 권력 역시 미실에게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삼생의 일체를 맹세했던 사도왕후와 더불어는 내정을 장악했고, 세종, 미생, 설원 등에 대해서는 외정을 장악케 했고, 그밖의 측근들에게는 조정의 요직을 차지해 앉도록 했고, 바야흐로 진흥왕마저 풍질로 쓰러지면서 신라의 모든 권력은 미실의 한 손에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사도왕후에 대한 처리는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이모이자 동맹자인 사도왕후에 대한 배려로써, 그리고 그녀에 대해 주도권을 쥐기 위한 차원에서, 미실은 전남편인 세종으로 하여금 그녀와 동침케 했다. 물론 세종은 거부했다. 그에게는 오로지 일편단심 미실 뿐이었기에. 그러나 이미 더 이상 명령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던 세종은 그녀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왕이 쓰러지면서 더욱 외로운 처지가 되어 버린 사도왕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후는 세종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세종은 미실에 의해 움직이고, 왕은 쓰러져 거둥을 못하는데 왕후마저 미실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되었으니, 이제 신라의 모든 것은 미실의 뜻대로 될 터였다. 마침내 울며 힘없이 궁에서 쫓겨나야 했던 순진했던 미실이 신라의 최고실력자로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미실의 시대가 시작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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