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왼쪽부터)니콜 키드먼 주연의 '인베이젼', 여고괴담 시리즈5 '동반자살', 김혜수 주연의 '분홍신'
'여고괴담' 시리즈만 해도 그렇다. 공포영화가 국내에서는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장르라면서도 이 시리즈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까. 지난주 이미 이 시리즈의 5번째 작품인 '여고괴담―동반자살'편이 개봉됐다. '여고괴담'은 어느덧 신인 감독과 배우들의 등용문처럼 됐다.
공포영화라도 잘만 만들면 국내 관객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안 되는 장르인 공포영화 가운데 일부 작품이 폭발적 반응을 얻는 부조화를 설명하기는 간단하다. 10대 후반 청소년들에게 맞추는, '주문형 제작'이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다. 이른바 '팝콘무비'다.
이 용어는 팝콘을 먹으며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공포영화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다. 1990년대 중반 인기를 모았던 '스크림' 시리즈나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류의 공포영화는 무늬만 공포지 사실 10대 청춘물에 가깝다. 소름끼치는 살인극도 여름 밤의 소동극처럼 보일 뿐이다.
진정한 공포영화는 정교한 사회정치학을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작금의 한국의 공포영화에 호러 팬들이 절반밖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뭔가 2% 부족한 것이다.
진짜 공포는 살이 튀기고 목이 뎅겅 잘려나가는 것 '따위'의 시각적 효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공포영화일수록 복잡한 사회상을 은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유의 작품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1956년 돈 시겔이 만든 걸작 공포 '신체 강탈자의 침입'(이 영화는 2007년 니콜 키드먼 주연의 '인베이젼'까지 수차례 리메이크됐다)은 당시 냉전의 시대 상황을 담아낸 작품이다. 공포는 어디서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 공포영화가 실패하는 길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진다.
김지운 감독의 2002년 작 '쓰리―메모리즈'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집 나간 아내를 며칠째 기다리다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든 남자(정보석)는 해가 지기 시작하는 어스름한 저녁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을 깬다. 어두운 현관 저편에 웬 여자(김혜수)가 무릎 꿇은 채 산발을 하고 앉아 있다. 여인의 옆에는 큰 여행 가방이 놓여 있다.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영화 후반쯤 가면 관객들은 왜 이 여자가 가방을 갖고 산발한 채 나타났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영화는 평온해 보이는 듯한 신흥개발지구 중산층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극을 다룬다. 우리 안에 우리가 여럿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최근 몇 년 사이의 공포영화들은 무서운 척 무섭지 않은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주온―원혼의 부활' '블러디 발렌타인' '요가학원' 등이 기다리고 있다. 팝콘들을 준비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