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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3/30
 

한국 공포영화는 왜 무서운 척 안무서울까

2009.06.30 08:21 | 일반폴더 | 황령산kkk

http://kr.blog.yahoo.com/pks13693094/48618 주소복사

오동진의 씨네투어 - 영화평론가


피가 튀고(splatter) 살점이 터져 나간다. 아이스하키 골키퍼 마스크를 쓴 살인마(slasher)가 도끼를 들고 비명 지르는 여자를 쫓는다. 황야의 빈집에서 살인극이 벌어지지만 희생자를 도울 사람은 없다. 도심 곳곳은 몸 여기저기가 뜯겨 나간 채 흐느적거리는 좀비로 가득 차 있다.

여름 시즌이면 찾아오는 공포영화의 향연은 적어도 한국 극장가에서는 불청객 취급을 받는다. 극장가에서 관객 비명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얘기도 나온다. 영화 흥행을 이끄는 소비층이 10대 후반, 20대 초반여성인데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고어 영화(gore movie)'이기 때문이다.

'고어' 란 '피범벅'이란 뜻이다. 신체가 잘려나가거나 장기를 밖으로 드러내 공포의 전율을 극대화하는 영화다. 한국에서는 공포영화들의 흥행이 리미트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20만~30만 관객을 넘기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들긴 만들되 저예산 공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충고가 이어진다.

그런데도 거의 매년 여름이면 한두 편의 공포영화들이 흥행의 수위를 달린다. 어떤 해에는 투자 대비 최고 수익률을 자랑하기도 한다. 지난해 개봉됐던 '고사(死)―피의 중간고사'가 180만 관객을 동원하며 기염을 토했다. 그렇다면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일인가.

(왼쪽부터)니콜 키드먼 주연의 '인베이젼', 여고괴담 시리즈5 '동반자살', 김혜수 주연의 '분홍신'
'여고괴담' 시리즈만 해도 그렇다. 공포영화가 국내에서는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장르라면서도 이 시리즈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까. 지난주 이미 이 시리즈의 5번째 작품인 '여고괴담―동반자살'편이 개봉됐다. '여고괴담'은 어느덧 신인 감독과 배우들의 등용문처럼 됐다.

공포영화라도 잘만 만들면 국내 관객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안 되는 장르인 공포영화 가운데 일부 작품이 폭발적 반응을 얻는 부조화를 설명하기는 간단하다. 10대 후반 청소년들에게 맞추는, '주문형 제작'이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다. 이른바 '팝콘무비'다.

이 용어는 팝콘을 먹으며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공포영화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다. 1990년대 중반 인기를 모았던 '스크림' 시리즈나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류의 공포영화는 무늬만 공포지 사실 10대 청춘물에 가깝다. 소름끼치는 살인극도 여름 밤의 소동극처럼 보일 뿐이다.

진정한 공포영화는 정교한 사회정치학을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작금의 한국의 공포영화에 호러 팬들이 절반밖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뭔가 2% 부족한 것이다.

진짜 공포는 살이 튀기고 목이 뎅겅 잘려나가는 것 '따위'의 시각적 효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공포영화일수록 복잡한 사회상을 은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유의 작품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1956년 돈 시겔이 만든 걸작 공포 '신체 강탈자의 침입'(이 영화는 2007년 니콜 키드먼 주연의 '인베이젼'까지 수차례 리메이크됐다)은 당시 냉전의 시대 상황을 담아낸 작품이다. 공포는 어디서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 공포영화가 실패하는 길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진다.

김지운 감독의 2002년 작 '쓰리―메모리즈'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집 나간 아내를 며칠째 기다리다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든 남자(정보석)는 해가 지기 시작하는 어스름한 저녁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을 깬다. 어두운 현관 저편에 웬 여자(김혜수)가 무릎 꿇은 채 산발을 하고 앉아 있다. 여인의 옆에는 큰 여행 가방이 놓여 있다.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영화 후반쯤 가면 관객들은 왜 이 여자가 가방을 갖고 산발한 채 나타났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영화는 평온해 보이는 듯한 신흥개발지구 중산층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극을 다룬다. 우리 안에 우리가 여럿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최근 몇 년 사이의 공포영화들은 무서운 척 무섭지 않은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주온―원혼의 부활' '블러디 발렌타인' '요가학원' 등이 기다리고 있다. 팝콘들을 준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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