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내일,또 내일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황령산kkk (pks13693094)
프로필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전체 글보기(39251)
일반폴더 새 글이 있습니다. 새 댓글이 있습니다.
대표폴더 새 글이 있습니다.
오늘 전체
방문자 573 3648732
구독자 0 402
댓글 0 8571
참조글 1 505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2009 11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 댓글 전체보기
이딴거버려
서로 범인이라고 하는거..
저도 어제 목욕탕갔는데..
와 잘했다.
... 복잡하다
최근 참조글 전체보기
Cheap ambein..
물 붓고 3분이면 오케..
▶[투쟁]돈 300만원..
▶[투쟁]돈 300만원..
▶[투쟁]돈 300만원..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anseltortl@Y
- 내가 지킨다
- p3596
- greenlsc77
- dalbong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개설일 : 2004/03/30
 

다시 한 해를 맞이한다. 그러나 젊은 시절처럼 새로운 기대감으로 흥분되지는 않는다. 30대 혹은 40대를 거쳐오면서 그렇지는 않았는데, 빛깔에 비유하면 우중충한 60대로 접어들면서 한해 한해 무기력하게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이 두렵고 덧없다. 그 두려움과 덧없음의 정체 뒤쪽으로는 허무하게 보내버린 젊은 시절의 우여곡절이 음험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제 60대 후반의 나이, 그 삶의 태깔 역시 무덤 속에서 꺼낸 토기처럼 까칠까칠할 수밖에 없다. 젊은 날, 좀더 치열하게 그리고 열정을 바쳐 살지 못했던 후회의 흔적이 너무나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다시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고치려 들겠는가. 오직 남아 있는 여생에 큰 병고나 겪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소망의 전부다. 곡기를 놓는 그날까지 무사하게, 그리고 남들은 하찮게 여기는 것이라 하더라도 조촐하게 손발을 움직여 무언가 만들거나 쓰다듬으면서 지내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30대와 40대의 내 자신이 그랬듯이, 장렬할 것도 없으면서 걸핏하면 분개하고, 공격적인 언사로 누군가를 질책하고, 어깨 위의 허공이 비좁도록 불끈 쥔 주먹 내지르며, 폭음에 위협적인 거동을 일삼으며, 이웃들을 잡아먹지 못해 거의 매일 핏발 선 눈으로 험담하고 헐뜯으며, 드잡이하고 난동부리는 그런 저속한 혈기는 이제 그만, 나이에 걸맞게 조용하고 운치 있게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아가게 되기를 이 새해에 바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수준의 기대나 소망은 얼른 보아도 그다지 힘들거나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이룰 수 있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마음 속에 감춰둔 욕심만 없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하거나 버려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먹은 것인데도 막상 부딪치고 보면, 그 욕심의 정체는 증발하거나 훼손됨이 없이 서슬 시퍼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한 가지조차 깨끗하게 혹은 단호하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대담하게도 고결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가졌는지 스스로가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작은 소망이라고 말한 그것 역시 이루기 어렵게 된 배후에는 또 다른 까닭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우리에게 목숨이란 것이 붙어 있는 이상, 그 소속된 사회가 겪는 영욕의 범위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읽게 되는 신문이나 혹은 저녁의 방송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때마다 내 자신이 상당히 우려되는 사회,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 그리고 참담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경제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기대감이 자꾸만 멀어져 간다거나, 편안한 주택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거나,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없게 된다거나 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사회라면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다. 이때까지도 그렇게 참아 왔지 않았던가. 알고 보면 언제 우리가 우리 욕심껏 도도하게 위세를 떨치며 살았던 적도 없지 않았던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습관이 있다’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모두 부자 나라로 소문난 국가만 아니라는 통계가 바로 그것을 의미하고 있듯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배부르고 등 따뜻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몇 년간 우리는 국민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중심을 잡을 겨를도 없이 갈팡질팡하게 만들고, 속 시원하게 성사되는 것도 없으면서 말만 두엄더미처럼 무성하게 쌓이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사방에서 너무나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말을 했고, 그 말이 지금 쏟아놓은 말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앞으로 하는 말은 또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 것인지 두렵고 민망스러워, 무슨 야료를 부리는 것만 같아서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라의 정체성이 어떻게 흩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 정부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며 일하고 있는 것인지, 경제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외교는 정말 그렇게 진행되어도 탈은 없는 것인지, 그가 남긴 발자취로 보나 언사를 듣더라도 편향된 이념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이 분명한 인사를 관계되는 장관에 임명해도 되는 것인지, 거의 상습적으로 잘한 것은 내 탓이고 못한 것은 네 탓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버릇은 언제까지 데리고 살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도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병증일 것이다.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이런 불확실성들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우리 사회의 줏대가 간신히 지탱되고 있는 것도 경제인들이 불철주야를 가리지 않고, 세계의 여기저기를 내 집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 결과에 힘입은 것이라고 감히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사회의 병증은 나날이 깊어지기만 하고, 핵이니 불바다니 하면서 협박을 멈추지 않아 나라의 안위가 걱정되며, 과거사를 따지자는 일에 몇 천억 원에 이르는 세금을 거리낌 없이 쏟아부어야 한다는 차제에 정말로 조용하고 아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의심을 두어 볼 일이다. 이처럼 오늘의 사회가 가슴속에 심어준 상실의 경험은 우리들의 소박하고 부박한 삶 속에 악귀처럼 스며들어 있다가 언제 또 어떤 모습으로 돌출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변고를 겪게 할 것인지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토실토실하게 젖살이 오른 젖먹이의 손발을 만지작거리면서 오늘의 우리는 이 아이에게 어떤 것을 물려주어야 할 책임을 가진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누가 보아도 온전하게 바로 서 있는 나라, 국민이 낸 세금을 똑바로 쓰고 있는 나라, 제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는 도도한 나라를 물려주는 것이다. 국민이 정부와 대통령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나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을 걱정하는 나라를 그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올해에는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빈다.

[[김주영 / 소설가]]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포스트 목록 닫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