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여행객들은 물을 많이 찾게 된다. 물은 아무 것이나 잘 못 마시면(라오스에서는 물을 먹는다라고 표현한다나) 탈이 나기 쉽기 때문에 대개 패트병에 든 물을 사 먹는다. 그 물값이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다. 한 병에 보통 5000낍(500원)에서 1달러를 하니 이곳 물가를 봐서는 여간 비싼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매번 물을 사먹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동남아시아의 관광지 아이들에게는 여행객들에게 물을 파는 것이 경쟁이다. 물 한 병을 팔면 이익이 많이 남으니 그럴 수밖에. 앙코르왓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전 내내 앙코르왓트를 구경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나오는데 아이들이 몰려 왔다. 서로 물을 사라고 한다. 나는 가능한 시원한 것을 사려고 물병에 이슬이 맺힌 것을 샀다. 그랬더니 제일 먼저 나에게 달려온 아이든 나를 보더니 한 마디 했다.
You're not a Buddha!
자기가 맨 먼저 나에게 왔는데 다른 아이의 물을 샀다고 그 아이는 내게 소리쳤다. 넌 부처가 아니야! 나는 물병 뚜껑을 따면서 순간 흠칫했다. 그 아이가 맨 먼저 달려왔는데도 나는 더 시원한 것을 찾으려 다른 아이의 물을 선택한 것이다. 좀 덜 시원하면 어쩌랴! 아, 아 나는 순간 후회했다. 내가 부처가 아니라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실망한 아이의 모습에서였다.
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안에 부처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 부처를 찾아내는 것이 수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더운 나라로 남방불교를 만나러 보름간이나 다닌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안의 부처를 만나기 위해서 아닌가! 그런데 이 작은 아이에게 나는 한방 맞고 말았다. 그래, 나는 결코 부처가 될 수가 없다. 그렇게 노력만 할 뿐.
앙코르왓트의 아이가 자꾸 마음에 걸려서 루앙프라방 야시장에서는 대개 아무 소리하지 않고 살 물건을 샀다. 어떤 아주머니가 나에게 기념품을 판 후 말한다. 루앙프라방에 반드시 다시 올 거에요!
그래, 나는 다시 올 것이다. 이 성스러운 불상의 도시를 다시 찾을 것이다. 루앙프라방의 하늘에도 둥근 달이 떴다. 곧 보름이 될 모양이다. 푸시산 너머로 뜬 달을 보며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긴다. 15일간의 남방불교여행은 이제 끝자락에 왔다.
베트남이나 라오스나 비슷한 느낌이 든 것 중의 하나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생활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그늘에서 낮잠이나 자는데 여자들은 악착같이 일을 하고 돈을 번다. 루앙프라방의 어느 식당에서도 그런 장면을 봤다. 여자는 음식을 만들고 그걸 손님에게 갖다 주고 하는데 남편인 듯한 친구는 웃통을 벗고 그늘에 앉아 이제 막 돌을 지난 듯한 딸을 안고 놀고 있다. 그들 부부의 표정을 봐서는 당연한 듯이 보였다. 야시장에서도 여행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이다. 그날의 첫손님에게 물건을 팔면 돈을 탁탁 두들기면서 럭키넘버! 라고 외친다. 첫 번째로 물건이 팔리는 것을 보고 그날의 장사운수를 점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마수걸이와 같다. 럭키넘버를 외치는 여자들을 보면 강한 생활력이 느껴진다.
싸사왕웡거리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우리의 재래시장같은 것이 있다. 거기에는 채소와 생선같은 것을 판다. 곱창같은 것도 있다. 그곳 상인들은 역시 대부분 여자다. 거기서 찰밥구이와 과일쥬스를 사먹었는데 두 아주머니가 열심히 만들고 미소를 지으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상당이 미인들이고 웃는 모습이 무척 정겨워보였다.
그런데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간혹 안 좋은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루앙프라방에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하러 여행사를 들렀는데 여직원이 먼저 돈을 내어놓으라고 한다. 방콕까지 130달러. 나는 100달러 두 장을 주었다. 그런데 거스름돈을 줄 생각을 않는 것이다. 거스름돈을 달라고 했더니 나중에 티켓과 함께 준다고만 한다. 거의 20여분이 지나서야 여직원은 나에게 티켓과 여권만 내민다. 거스름돈은 줄 생각을 않는다. 설마 잊어버렸을까? 나는 거스름돈을 달라고 했더니 그때야 생각난 듯이 돈을 계산하여 내밀어준다.
좋게 생각하자.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잊어버린 것일 거야! 그러나 캄보디아공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나는 고운 눈으로 그 여직원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캄보디아 씨엠립공항을 나서면서 공항세를 내기 위해 백달러짜리를 주었는데 달랑 공항세 영수증만 주고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게 아닌가! 내가 달라고 하자 나를 흘깃보더니 느릿느릿 거스름돈을 내민다. 마음은 바쁘지 잘못했으면 거스름돈 75달러를 못 받았을 뻔했다. 하기야 동남아시아에서는 100달러 정도면 엄청난 돈이다. 그들의 한 달 봉급이다. 뭐 나쁜 마음으로 그랬을 것이라고는 생각 않는다. 착각이었을 것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에도 부조된 여인을 보면 상당히 에로틱한 것이 많다.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의 부조들이 시선을 끌었다. 그것들은 100년 전의 것이니 그 당시 미인의 기준도 오늘날과 다름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라오스의 사원에 있는 조각들은(여기 사람들은 이 여인 조각도 붓다라고 했다) 더욱 패셔너블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역시 날렵한 허리선과 현대 패션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 감각을 보여주는 옷을 입고 있다. 우아한 팔동작과 길다란 손가락은 거의 무릎까지 내려온다. 물론 루앙프라방의 조각들은 앙코르왓트보다 훨씬 뒤의 것이지만.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선덕여왕도 얼마나 늘씬한지 손이 무릎까지 왔다고 한다. 나는 루앙프라방의 사원에서 문득 선덕여왕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사원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음미했다. 볼수록 대단한 감흥을 준다. 이토록 아름다운 조각을 누가 했을까? 여인의 성적매력을 듬뿍 담은 조각을 사원에 만들려는 생각은 누가 처음 했을까?
라오스의 사원은 집근처에 있고 아이들의 놀이터도 되는 곳이라서 그럴까? 사원안에는 코믹한 모양을 한 조각들도 많이 있었다.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조각도 있고 엉덩이를 쳐들고 있는 조각을 뒤에서 보면 항문까지 만들어 놓은 것도 있다. 어디 그뿐이랴? 담 위에 올라 납작하게 엎드린 사람의 형상에서 닭이나 새모양을 한 사람조각까지 다양하다. 이런 조각을 보면 라오스사람들이 해학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사원을 보고 조각들을 하나하나 보느라고 돌아다니다 보니 땀도 흘리고 배도 고프다. 오늘은 뭘 먹을까? 여행안내서인 Lonely Planet에 소개된 말리 라오푸드라는 전통음식점을 찾으러 나섰다. 뚝뚝 운전사에게 물으니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타라고 한다. 경찰사이드카처럼 옆에 좌석을 단 오토바이다. 바람을 바로 맞으니 시원하지만 결국 나는 그 식당을 찾지 못했다. 운전사는 나를 엉뚱한 식당에 데려다주었다. 여러 곳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못 찾고 다시 되돌아가자고 했다.
오는 길에 나는 길거리에서 파는 칼국수집을 발견했다. 음, 저것도 괜찮지! 좌판에 앉으니 라오스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나는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칼국수를 주문했다. 아마 시어머니와 며느리일 것이다. 뚱뚱한 시어머니는 앉아서 며느리가 익혀준 국수에 국물을 넣고 양념을 넣어서 손님에게 준다. 국수 삶는 것보다 양념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솜씨가 필요한 일로 보였다. 시어머니는 능숙한 솜씨로 국수에 육수를 넣고 삶아 찢어놓은 닭고기와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준다.
꽤나 유명한 집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앉아서 먹는 사람보다 비닐봉지에 담아서 가져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여기는 음료수도 가져가면 비닐봉지에 담아준다. 공병회수를 확실하게 하는 편이다. 그런데 뜨거운 국수까지 비닐봉지에 담아주다니! 그래서일까? 여기 쓰레기는 비닐봉지가 많다.
잘되는 음식점은 어디서나 비슷한 조건을 갖추고 있나보다. 여러 가지 음식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한두개의 단일 메뉴를 하는 것과 주인이 좀 뚱하다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뚱한 표정으로 나에게 국수그릇을 내민다. 그래도 나는 웃으며 그릇을 받아 젓가락을 들었다. 훌륭한 맛이었다. 우리나라 닭칼국수와 아주 비슷하고 다만 허브향이 좀 나는 것만 달랐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다니! 가격은 5000낍. 우리 돈으로 500원이다. 나는 땀을 흘리면서 국수를 후룩후룩 국물까지 다 먹었다. 그제서야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yyjddgr 무식한 양반아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게 뭔말인지 알어? 니네 할아베에 할아베에 할아베가 신라사람일 확률이 99퍼라는 야그야.. 우리나라가 북한과 맞다아 있는데 북한이 북쪽 대륙에 연결되 있다고 우리나라가 북에 통일되야 했다고 1000년후에 니네 손주의 손주의 손주가 야그하면 니가 찬성하겠냐? 역사는 당시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뿐인겨..
스포츠신문 제목처럼 한참 잘못된 제목인 듯! 두번째 문단의 사진만이 캄보디아의 유물 부조인데, 그마저도 붓다의 조각이 아니라 압사라의 조각이다. 압사라는 고대 크메르제국의 무희들을 말한다. 무희들이 에로틱한 거야 당연한 것이 아닌가? 글쓴이가 무식한 것 같지는 않고, 일부러 스포츠신문 제목처럼 선정적인 제목을 갖다 붙인 듯......!!!
[푸시산과 참파트리] 루앙프라방의 중심부에는 산이 솟아 있다. 시내 어디서든 눈에 들어오는 푸시산이다. 산을 올려다보면 황금빛으로 빛나는 탑이 눈에 들어온다. 이 탑은 높이가 28미터로 1804년에 만들어졌다. 신년행사인 삐 마이 라오 행사의 행렬이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푸시산은 루앙프라방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지주로 생각되는 신성한 곳이다. 도시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힌두교의 메루산의 형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푸시산을 오르는 길은 세 군데가 있다. 보통 왕궁 건너편에 있는 왓 빠후악(Wat Pa Huak)우측으로 난 계단을 가장 많이 이용한다길래 나도 그 길로 들어섰다. 입장료를 내고 모두 328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날이 더워 슬슬 올라가는 것이 좋다. 산을 오르다보면 온통 달콤한 향기가 나는데 그건 라오스를 대표하는 참파(Champa)꽃의 향기다. 아주 예쁜 모양의 이 꽃은 라오항공의 마크로도 사용되고 있다.
138계단을 올라가니 입장료를 받는 곳이 있다. 10000낍이다. 우리 돈으로 천원. 그곳에서 물도 사고 벤치에 잠깐 앉았다. 계단에는 이렇게 글자가 쓰여 있다.
Still 190 Steps Up.
아직 190계단을 더 올라야한다고 격려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힘을 내어 산을 오른다. 계단이 나지막해서 큰 힘은 들지 않는다. 올라갈수록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메콩강오과 칸강이 보이기 시작하면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정상에는 탓쫌씨(That Chomsi) 즉 쫌씨사원이 있다. 사원에서 바라보면 루앙프라방 시내가 다 보인다. 칸강을 뒤로 하고 왕궁이 내려다 보이고 루앙프라방을 둘러싼 산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행객들은 비로소 루앙프라방을 한 눈에 바라보면서 일출을 보거나 일몰을 보기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가 뜨는 것과 해가 지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 생기는 일출과 일몰현상이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희망과 슬픔 등의 의미를 부여한다. 하기야 일출과 일몰의 풍경은 너무 아름답다.
5시 반이 되니 저녁예불이 시작된다. 승려들이 법고를 친다. 아, 아 저 북소리! 북소리는 메콩강과 칸강을 가로질러 멀리멀리 날아간다. 내 가슴속에도 북소리는 파고든다. 우리나라의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절의 법고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대개 저녁 예불시간에 맞춰 절에 가면 법고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송광사의 저녁, 법고소리를 들으며 절을 나서면 깊은 법열의 세계를 걷는 느낌을 준다.충청도 해미의 개심사 법고소리도 무척 좋다. 개심사를 갈 때도 저녁예불시간을 맞추어 갈 일이다. 6시경, 스님이 법고 앞으로 다가오면 숨을 죽이고 바라보라. 작은 소리로 시작되는 법고소리는 드디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스님이나 그걸 듣는 사람이나 소리에 빠져들고 만다.
불가에서는 법고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법고는 홍고(弘鼓)라고도 한다. 악기분류상으로는 타악기의 하나이나 주로 불교의식에서 쓰인 데서 법고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절에 다녀보면 법고의 크기와 모양은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름이 거의 2m에 이르는 큰 북부터 농악에서 쓰이는 소고(小鼓) 크기의 작은 북까지 가지가지이다. 북통은 모두 나무를 잘라 만드는데 양쪽 북면에는 쇠가죽을 씌워 북채로 쳐서 소리를 낸다. 법고는 불교의식 외에 승무(僧舞)에서도 사용되며 일부 지방에서는 농악에서 쓰이는 소고를 법고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보통 법고는 절의 법당 동북쪽에 달아놓는데 법고와 범종, 목어, 운판과 함께 사물(四物)로 불리어 진다. 사물은 때를 맞추어 두드리거나 소리를 내는데 소리로 공양을 베풀어 중생들에게 법열의 깨달음을 주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침과 저녁 예불 대와 법식을 거행할 때 법고를 두들긴다. 루앙프라방에서 듣는 법고소리. 젊은 승려는 있는 힘을 다해 북을 두들긴다. 저 북을 두들기는 승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나도 모르게 쫌씨사원으로 발길을 향했다. 오래지 않아 승려들이 법당 밖으로 나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합장을 했다. 그들도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어느 듯 루앙프라방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방콕으로 가야한다. 서둘러야 한다. 오늘은 일정은 왕궁을 보고 푸시산을 올라가는 것이다. 아침에 호텔에서 나와 베이커리를 들렀다. 빵과 우유로 아침식사를 했다.
왕궁의 전면 위쪽에는 국기가 걸려있고 그 벽에 코끼리와 15마리의 뱀이 새겨져 있다. 왕궁을 지키는 나가신이다. 왕궁은 현재 루앙프라방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왕궁으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신발과 모자를 벗고 카메라를 맡겨 두어야 입장이 허락된다. 반바지와 소매없는 셔츠도 입장을 못할 수도 있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 방콕이나 캄보디아에서 왕궁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콕에서는 반바지를 입고 가면 태국치마를 빌려주거나 사서 입어야 한다. 기본예절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박물관을 보면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왕궁은 1975년 공산혁명이 일어나면서 당시 이 궁에 살고 있던 사왕왓따나(Savang Vattana)왕은 라오스 북부로 유배되고 그 후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왕궁이 지어진 것은 사왕왓따나의 아버지인 씨싸왕웡(Sisavang Wong)왕이 재위한하던 1904년부터 5년동안 지어졌다. 왕이 살고 있던 당시의 왕실 유물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왕궁의 호화로운 생활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불교국가이기 때문에 왕의 재위 당시 주변국에서 들여온 여러 가지 형태의 불상과 다른 나라로부터 받은 선물들도 많다. 맨 먼저 왕의 알현실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서 관람을 하도록 되어 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왕이 된 기분을 느껴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야만 왕궁의 분위기와 느낌을 모두 가슴에 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의 응접실. 왕은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여기서 나누었던 대화들이 지금도 이 공기중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들으려고 호흡을 가다듬고 귀를 열었다.
왕과 왕비의 침실에는 당시의 악기와 훈장 등을 볼 수 있다. 왕비의 응접실에서는 싸싸왕웡왕의 초상화가 보인다. 그 옆에 있는 관리들의 응접실에는 미얀마, 일본, 미국, 캄보디아 등으로부터 받은 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왕실을 두고 왕은 어디로 간 것일까? 영혼이 있다면 오늘의 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몰락한 왕조는 언제나 슬프다. 왕실을 지키고 있는 뱀들의 조각은 역사의 비극을 후세에게 전해줄까? 오늘날 비록 박물관으로 불리지만 나는 끝까지 왕궁으로 부르고 싶었다. 왕궁 밖으로 나오니 한낮의 햇살이 큰 나무그늘을 만들고 있다. 왕궁의 지붕위로는 슬프도록 파란 하늘에 구름이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왕궁 앞에는 새로 지은 사원인 호프라방(Ho Prabang)이 있다. 프라방의 이미지를 표현한 사원인데 벽에 설화를 새겨놓은 것이 눈에 띈다. 파란하늘과 어울려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 나는 계단 그늘에 앉아 땀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