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봉원동에 있는 봉원사는 사실 잘 몰랐던 곳이다. 봉원사는 대한불교 27개 종단중의 하나인 태고종(太古宗)의 총본산이라고 하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태고종에서는 결혼을 허용한다고 한다. 하여 땡볕을 무릅쓰고 찾아간 오후. 연꽃은 이미 시절을 못 이기고 대개 스러졌고 석탑을 하 못 잊는 듯 몇 송이가 남아 찬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봉원사는 진성여왕 3년(88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여 반야사라고 불렀다. 임진왜란 때 불 타 버린 절을 지인이 중창하였는데 1748년 현재의 위치롤 옮기면서 봉원사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봉원사에서는 먼저 편액을 봐야 한다. 영조의 친필이었던 봉원사 현판은 전쟁 때 소실되고 명부전을 쓴 정도전의 글씨만 남아 있다. 그런데 '산호벽루(珊湖碧樓)"'라는 편액에 완당의 낙관이 있는 게 아닌가! 완당이라면 추사 김정희, 그의 글씨다. 나란히 붙어 있는 '청련시경(靑蓮詩境)'도 추사의 것이며 추사의 스승인 옹방강(翁方綱)의 행서체 편액인 '무량수각(無量壽閣)'도 보인다. 또 부엌문을 보면 신장도가 있는데 인간문화재 이만봉 스님의 작품이라고 한다. 뜻밖의 즐거움이다. 봉원사는 영산재靈山齋로 유명하다. 영산재는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던 영산회상을 상징하는 의식인데 영산회상을 열어 영혼을 발심시키고 귀의하게 함으로써 극락왕생을 하게한다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영산재는 매년 6월 6일 거행되는데 이를 보려면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신륵사(神勒寺)의 륵이 무엇일까? 륵은 음계의 '레'에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굴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의 음계가 아니고 신의 굴레, 신통한 굴레라는 뜻의 절이다. 절이름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옹대사가 신기한 굴레로 여강의 사나운 용마를 낚아서 신륵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와 인당대사가 날뛰는 용마의 고삐를 잡아 용마를 다스렸다고 해서 신륵이라고 불렀다는 것. 봉의 꼬리에 해당되는 봉미산에 자리잡은 신륵사는 절 입구의 인위적인 정원을 지나면서 문명이 만든 굴레를 느끼게 한다. 여주 남한강의 시원한 정경이 없었다면 발걸음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신륵사에서는 절집보다 탑에 기대어 느끼는 강바람이 더 좋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윈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대사가 만행을 하다 여강 연못가 바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이 연못에 가람을 세우면 불법이 융성하리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대사는 노인의 말대로 연못을 메우고 가람을 세우려고 했지만 폭풍우가 밀려와 연못물이 불어나 흙을 메울 수가 없었다. 칠일간 기도를 드렸더니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솟구쳐 올라 승천을 했고 대사는 무사히 불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절안에 구룡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