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보유한 가장 기본적인 창인 스야리(素槍 ) 찌르는 것이 목적인 창의 특징상 적과의 거리가 확보되는 이점을 살려 보다 신속하게 적을 제압하는 무기다. "우리가 있다고 해서 창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절대로 아니죠!" 뎃포 아시가루를 재현한 리인액터들의 모습으로 다네가시마를 통해 뎃포가 도입되어 화약무기의 위력이 빛을 발한 이후에도 창은 여전히 중요한 무기였다.
센고쿠지다이( 戦国時代 ) 당시의 그림으로 주력이 엄연히 야리( 槍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야리 아시가루는 개개로는 사무라이나 상급 무사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지만 집단으로 달려들 경우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웹상에 워낙 흔하게 퍼진 조·일전쟁 관련 포스팅들 중 일부는 일본군이 마치 닛뽄도를 휘두르고 다니는 무뢰배 집단으로 오인하시는 분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인식을 가지게한 원인이 바로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이 계시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조·일전쟁 당시 조선군과 명군이 칼싸움을 못해서 밀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실전경험의 차이가 워낙 컸기에 조선군이나 명군이 일본군에게 열세였던 점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결코 검 때문만은 아니다 ) 센고쿠지다이를 통해 백병전과 육상전의 달인이 되어버린 일본군! 야전에서는 그야말로 말단 아시가루까지 맹호가 되어버린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군을 제외하더라도 당장 도요토미 히데요시 직속부대 등을 포함한 각 다이묘( 大名 )들은 나가야리( 長槍 ) 부대를 양성해 보유하고 있었다. 창이 일본군의 주력이 되었던 원인은 우선 징집한 농민 출신 아시가루들이 약간의 훈련만 받으면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는데다 자루의 가공만이 약간 어려웠을 뿐 전체적으로 닛뽄도에 비하면 가격이 싸게 먹히는데다 대량 생산에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특히 나가야리의 경우 전체 길이만 무려 455~640cm에 달해 닛뽄도를 들고 달려들었다가는 그대로 인간 꼬치가 되기 십상이었다. 특히 "야리부스마"라는 창병술로 인해 이러한 현상이 자주 일어났는데 이는 야리 아시가루들이 대열을 이룬 후 창날을 한데 모아 그대로 적을 향해 돌격하기 때문이다. 뎃포가 도입된 이후에도 창의 비중은 무시못할 수준이었는데 이는 활이나 뎃포로 공격을 가한 후 바로 창병들이 돌진해 적의 대오를 붕괴시키면 바로 기병들이 들이닥쳐 전투를 마무리지었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창은 그야말로 군신, 그 자체였던 것이다! 여하튼 이처럼 창의 발전 덕분에 120년에 걸친 센고쿠지다이 이후 일본군은 30만명이 넘는 정예병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들의 첫 희생양이 바로 조선이 되고 말았다. 200년에 걸친 태평성대 덕분에 국방력이 일본에 비할 수가 없었던 조선군이지만 국내의 조·일전쟁 관련 영상물처럼 칼날에 추풍낙엽으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군 역시 나름대로 용맹하게 대항한 편이지만 그들은 창으로 무장한 야리 아시가루들의 밀집대형에 무너진
오다 노부나가군이 최초로 사용하면서 유행으로 퍼져나간 나가야리 길이만 평균 4.5~6.4m에 이르는 창으로 중량은 3~5.5kg에 달해 쉽사리 휘두르기는 어려웠지만 집단으로 운용해 공격할 경우 상대에게 무시못할 위력을 발휘했다.
셈이다. 엄정한 군기로 훈련된 야리 아시가루들이 일정한 대형으로 몰려드는데다 창의 길이만 해도 당장 길어야 3m를 넘기는 편이 드물었던( 조선 전기의 창은 날 길이가 31.5cm, 자루의 길이가 210cm였다 ) 조선군이 평균 4.4m 이상의 길이를 가진 일본군에게 이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바위에 계란치기였던 것이다. 문자 그대로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되려 인간 꼬치가 되어버리니 점차적으로 뒤로 밀리고 밀리다가 결국 완전 포위되어 몰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조·일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의 창 공격에 호되게 당했던 조선군이지만 종전 이후 막대한 양의 스야리, 나가야리를 노획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군은 이를 전훈에 반영하지 못한 채 일부만 변방에 지급했을 뿐 나머지는 전부 무기고에 짱박거나( 청송군지에 따르면 진보의 군기고에 12자루의 일본창이 짱박혀 있었다 한다 ) 청나라 사신에게 예물로 바치고 말았다. 만약 조선이 조·일전쟁의 전훈을 받아들여 나가야리와 뎃포, 화포의 비중을 높여 철저하게 국방력 강화에 힘을 썼다면 제1, 2차 조·청전쟁에서 그토록 참혹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쌍령 전투는 이루 말할 것도 없지만 ) 여담이지만 영조 18년, 당시 일본군에게 도굴당한 선릉과 정릉에 거동할 당시 위사들이 일본창으로 무장한 것을 보고 당장 치우라 명했다 한다. 그대로 무장시켰다면 최소한 도굴범들이 침투했을 시 원거리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겠지만 일본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저러는 것은 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낭선( 명국이 워낙 왜구들에게 시달리다보니 등장한 대책인데 닛뽄도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준다. 만약 정규군이 침공했다면 낭선만으로는 좀 무리였겠지만 말이다 ) 등의 대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 센고쿠지다이( 戦国時代 ) 리인액트 장면으로 야리가 엄연히 아시가루들의 주력 병기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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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신분이 많이 공부하신 것 같아요. 전에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전국시대 잘못 알려진 것들을 설명한 재미있는 책이 있더군요. 전국시대의 주력은 장창부대였고 가장 부상자가 많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근데 주로 하반신에 많을것을 보아 위에서 아래보다 밑을 주로 노렸다고......일본도는 거의 현대의 권총 수준이고 전장에 사용할때는 대여섯 자루를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다떼의 경우도 보통6자루들고 다녔다고.....
조일전쟁이라는 말이 더 좋아보이는데.. 임진왜란보다 임진년에일어난 일본인의 난정도인데..개념상 안맞고 옛날쓰던 용어 간지를 사용하여 혼란스럽기만하더라! 그 당시에는 무리가없을지모르나 현대에서도 그렇게 용어를 따라부르는것은 문제..그리고 조일전쟁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일본인이라고 하는것은 상당히 잘못
옥진휴 너 정신이상자냐? 조일전쟁이지 명일전쟁이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포함된 것으로 조일전쟁이라고 하면 안되냐? , 쪽바리니 짱깨니 하는 자들 중에 논리적으로 글 쓰는 이가 없더라, 빨갱이 타령하는 놈들과 같이 논리는 부족하고 밀도 안되는 어감으로만 나쁘게 표하려는 모자라는 자들 표현들이다, 조일전쟁이라니까 문제로 삼는 너가 역겹다,
창술의 일반적인 공격 형태는 배기, 찌르기 입니다.. 그복잡한 전쟁터에서 2m 내외의 창은 배기도 가능하겠지만... 찌르기가 유용하겠지요..
4~6m짜리 창을 후릴려면 공간도 많이 필요하고.... 하지만 창날이 위아래로 서 있는 까닥은 배기위함 입니다.. 한가지 더 창이 길면 수비형 입니다~
싸우지덜 마세여...ㅡ.,ㅡ*
칼? 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일본군 주력무기는 창이다. 검도라는 것은 배우기가 어려워서 장교정도 되야지 검도를 가르쳤지. 창 = 농민출신 병, 검 = 직업군인층으로 구분하면되는데, 일본군이 직업군인=사무라이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 창이 주력병기지. 조총도 일부군인만 무장. 문제는 그 일부가 전세계 조총무장병력숫자의 80%가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 프랑스가 최강 육군이었는데 조총무장병력이 만명이 않됬음. 창은 어짜피 모든 군인의 주력무기다.
조선시대가 개국당시의 이념을 상실하고 양반주의(귀족주의라고해야 할려나), 형식주의로 치달리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으로 인해
많은 식자들은 권력으로의 지름길을 걷게 됩니다. 당연히 무력과는 한발짝 멀어진 것이죠. 그리고, 양반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최대한 약화시킵니다. 군권이 국가( 왕 )에 있다면 귀족들의 권리가 심각하게 축소 되겠죠. 이러한 상황을 양반들이
극도로 싫어 한것 같습니다. 아울러 군권의 핵심을 군부에 준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차지 한것이죠. 고로 병력이 무엇인지 모르는
지금의 국회의사당에서 액션영화 찍는 사람이 사단 운영을 하는것과 같은 결과가 나온것이겠죠.
평지에서는 기동력, 사거리 싸움인데 둘다 안되는 상황에서 무리 하게 평지 전투를 고집한것이( 뽀대 살릴려다 ) 참폐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 온것이죠.
그리고, 우리나라에 산이 많은것은 알지만 산성을 너무 좋아 한것 같습니다. 공격도 힘들지만 유지도 무지 힘들었을텐데.
내가보기엔 찌르기만이 주목적이고 창 날도 짧아 오히려 상대에게 붙잡히기 쉬운 무기같은데.......더구나 이 무기에대해선 그 피해 유효성에대해선 우리 사서에 별로 언급이 업던데...!! 대신 날이 날카롭기 그지없던 왜검에 대해선 언급도있고 필요상 항왜들을 활용해 똑같은 칼을 만들어 우리 병사들이 활용하기시작도 해 전과도 올리고.......아 참 이창보다 더 길고 더 날도 훨씬 더 긴 베고 찌르는 장창이있던데 그걸말하는것 아니냐?!
물론 칼도 잘썼단건 부정할수 없죠.. 일대일 칼싸움에선 왠만해선 일본애들 못 당했단 기록도 얼핏 본거 같은데..
그건 그렇고 저번에 일본 방송을 봤는데.. 현대에 드러와서 일본도를 수련한 한 남자와.. 일본 전통 창술을 연마한 이쁘장한 여자애가 붙었는데 누가 이겼는지 아십니까? 창술 쓴 여자가 이거더라는.. ㅋㅋ 마지막에 싸움에서 진 남자가 도저히 칼로 못 당해내겠다며 혀를 내두르면서 끝나던데.. 창이 무섭죠 그 긴 리치...... 하기사 요새 칼수련한거랑 일본 전국시대 칼수련한 사람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수 있겟지만.. 어쨌거나 이론상으론 칼보단 창이 엄청나게 유리하다는 사실..
조일전쟁이라는 표현은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맞긴 하나,, 저 위의 기사의 핵심은 임진란때의 왜군의 침략을 의미하ㅏ므로 " 임진왜란 " 이라는 표기가 옳다고 생각되어지네여,,,,, 이런 단어 하나가 무슨 논쟁거리냐 하시겠지만,,,, 만약 내일 KBS 9 시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우리 대한민국을 우리 죠센징에서는 이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보시지여,,,,, 온 국민이 들끓을거고 발칵 뒤집어 질것입니다,,,, 요새 드라마에서 옳바른 한글 표기가 안되어도 난리나는데..... 조일전쟁,,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란 조선 태종 때 대마도 정벌을 시작으로 치욕적인 한일 합방때까지의 모든 전쟁을 표시하는것이나,,,, 저 위의 기사는 임진년때의 임진왜란때만을 말하는 것이니 " 임진왜란때 " 라고 옳바로 잡는것이,,,,,, 나도 조일전쟁때라는 기사 제목만 보고 무슨 소리야??? 하고 의아해 했으니까여,,,, 빵장님,,,, 임진왜란때라고 고쳐 표기하시는것이 어떠하실런지여????????,,,,, ^ㅅ^
그리고 무슨 표기 하나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냐 하시는데,,,,,,, 지금 주변의 80 대 90 대 노인 분들께 여쭈어 보시지요,,,, 일본놈 왜정시대때 즉 1905 년 ~ 1945 년 때 탄생하신 노인분들께 그 당시 초등학교 ( 어르신들은 소학교때라고 하시지요) 다니시던 분들은 한글을 못배우셨다고 합니다,,,, 쪽바리들이 왜 한글을 못배우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대한민국의 민족 정기를 아예 말살하려고 했던것이지요,,,, 몰래몰래 한글 배우시다가 쪽바리 왜놈 순사들에게 잡혀 작두로 목이 짤린 선조분들께서 저 저승에서 무엇이라고 하시겠어여???,,,,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지는 못해도 우리 손으로 앞장서서 망치는 일따위는 하지 말아야지요,,,, 저승의 지옥사자분들께서 노하셔서 천둥번개치는 비오는 날밤 검은 옷 입고 나타나셔서 모셔가실지 모르십니다 ㅋ
한국인이라면 임진왜란이라고 교육받고 살았는데
포스팅에 조일전쟁 써있길래 응?? 모지 하고 갸우뚱.. 참 낯선 단어죠
전쟁하면 대등한 관계에서 맞짱뜬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한국입장에서는 임진년에 왜가 일으킨 난이란 의미가 더 맞습니다
모르고 썼다면 일본 쪽바리인거고
알고 썼다면 그 의도가 궁금하네요
붕신! 조일전쟁좋아하네!! 임진년에 작고 볼품없는족속(왜)이 군주의 나라에게 일으킨 변란 그래서 임진왜란이다!!!
그나마 우리 선조들이 우성인자를 많이 뿌려줘서 오늘날 사람형상을 하고 사는게 일본인이다! 우리선조들 유전인자가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도 평균신장 140센티도 안될껄 ㅎㅎㅎ
음 귀감이 되는 귀한 정보다 결국 왜검에 Antidote가 바로 창이란 얘기 아니냐?! 그런즉 만일 한일 민간인들간에 예상치않게 충돌하는 불상사가 발생시에 관동 대지진때 처럼 이넘들이 니뽄도갖고 설쳐댈때 일방적으로 당하지만말고 우린 미리 미리 집에 장창 하나씩 보관하고 있다가 그걸로 깊숙이 쑤셔버리면 답이 나온다는 얘기 아니냐?! 왜검에 대항할수있는 고마운 정보다!! 덧붙여 왜넘들의 장창에 관해선 고려말 황산벌 전투에서 대규모의 왜넘들이 쳐들어와 날카로운 장창으로 설쳐대자 이성계와 휘하 장수 군졸들이 국궁으로 대학살시켜 지리산가지 몰고갔었다는 얘기가 나오더라 역시 조총과 같은 화약 무기가 나오기 이전까진 힘안들이고 효율적으로 적들을 대량 작살내는덴 각궁만한 무기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잊지말고 국궁과 장창 하나씩은 보유들하고 있어야 쪽발들로부터 우리 가족들을 지킬수있는거다 우리 나라는 전쟁중인데도 개인총기 소유는 못한대잖냐!
혹 쪽발들이 어린애 BB 총을 변형시켜 22 구경 총기로 사용할경우를 대비해 우리도 결국 적어도 총기를 갖고 있어야한다는 얘긴데!! 창검으론 총을 대항할수는 없잖냐! 흑선 타고온 페리 제독에게 그 대단하다는 조총과 닙뽄도와 장창든 수십만의 쪽발 사무라이들이 완전 개 촌넘 취급받고 개 작살나 강제로 개항당했다는것 모르느냐 그래서 본의아니게 우리보다 먼저 서구문물 강제로 받아들여 지금 처럼 우리보다 먼저 잘살게 된거 아니냐?! 그런즉 젊은 넘들이 나라를 위해 하다못헤 강력한 원자탄이라도 만들어낼 생각들안하고 고리타분한 낙오자 촌넘들처럼 잘낫댔가봐 아직도 왠 창칼타령들이냐?! 그런 멍청한 머리갖고 전쟁에서 이기겠느냐?! 언제나 몇 발씩 쳐지는 구나, 미련한 얼간이 촌넘들같으니라구.....차라리 과거로 돌아가 창들고 설쳐대며 아주잘 살거라 아주 잘 어울릴것이다 조총 따라지에마저 개작살 나지말고......우리 관군이 세월 발전한것도모르고 신미양요때 대포에 화승총들고 설쳤다가 더 발전된 자석식 대포에 연발총든 미 해병에게 단 한넘도 정확하게 못쏴 못죽이고 어이없이 작살났던가?!
세월이 한창 지난 지금 그래도 그것보다는 나아야지 아직도 그보다도 못해갖고 지금도 창칼 타령이냐 이 미련한 눔들아! 게다가 작금의 현실에마저 그 쉬운 정확한 총 조준도 왕 벵신 촌넘처럼 혼자도 못하고 더구나 제대로도 못배워 수 만원씩하는 총알 벵신넘처럼 아깝게 왕창 엉뚱한데 쏴대버려 지 가족하나 지키지 못하는 왕 개 벵신 노릇 하지들 말고들....!! JSP 에서 근무하는 벵장넘이 총도 제대로 못솨 과녁 한참위에다가 쏴대는 웃기는 장면도 연출해대더라 그러니 네가 적 조준해봤자 넌 그대로 적 총알에 먼저 죽는거다! 그런즉 사격 연습들 많이들 하고 있거라 언젠가 총든 쪽발들 사냥 하는데 대단히 유용하게 쓰일거다!!! 쪽발은 인간이 아니란다!! 권력이란 적을 내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 거다 그건 힘에서 나온다는 원초적인 사실들을 알거라 남자라면....!! 무식한 모택동이 한 무식한 말도 몰라.... 권력은 바로 총알 구멍에서 나온다는 무식한 쨩깨넘 말 말이다!!
한국 초등학생은 당연히 임진왜란이라고 부르겠지 그렇게 배웠으니까, 커서 일본구경도 하고 한국에서 못배우던 것 배우면 조일전쟁이라며 좀 유식한 척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세계 두루 구경하고 진짜 유식해지면 다시 임진왜란이라고 부를 것 같다. 그것이 진실이니까.
개념이 없는 인간과 말하는 것은 힘들다. 몇마디 말해보고 개념없으면 계속 말하기 힘들다. 그냥 직접 몸소 당해서 깨닫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타임머신이라도 있으면, 남자같으면 전쟁터 한가운데에 일본군 총알받이로 데려다 줄 수도 있고, 여자같으면 일본군이 우굴거리는 위안소 막사에 넣어줄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최소한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떤일을 당했는지만이라도 생각했으면 한다.
전국시대에 대해 좀 아는분이군요.. 제가 첨언하겠소... 오다노부나가의 휘하 마에다 토시이에 (훗날 토요토미와 토쿠가와 사이의 제2인자)도 창의 명수 였고 창은 먼거리에서 달려오는 기병(말탄 장수)을 제압하고 찌르는것이 목적이고 육병전에선 일단 상급 장수를 후퇴 시킬시에 큰 원모양으로 휘두르고 접근을 막아 포위를 뚫는 무기로 쓰였소... 조선의 창은 일본의 창과 비교하면 육병전 무기보다 관군이 거행하는 일종의 교대식이나 제식훈련용이 대다수 였고 실전용 훈련이 적었었듯.... 조선군인의 무기는 활과 칼 그리고 농민들이 쓰는 낫같은것이라... 조선에는 유럽의 Knight (기사)과 같은 사무라이 직업이 없고 그냥 농민과 관군 그리고 변방(북방)을 지키는 군인 정도여서 일본의 직업군인인 다이묘(봉건영주) 휘하의 사무라이들에게 국토를 쉽게 침탈당하고 국민들이 살육당했던것 같습니다...
pols6324님// 감사합니다.
마에다 마타자에몬 도시이에 외에도 후쿠시마 마사노리, 가타기리 가쓰모토,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기요마사, 가토 요시아키, 히라노 나가야스, 가쓰야 다케노리 이상 시즈가타케의 7본창도 유명하죠
조선이야 200년의 태평성대 덕에 이런 유능한 무장들도 별로 없이 그저 처세술과 샤바샤바로 관직을 손에 넣은 자들이 너무 많아 문제였습니다.
군의 편재는 전투가 벌어질 지형과 병기의 종류, 적의 편재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적이 단병( 칼, 도끼, 해머... )위주로 군을 편재 했다면 당연히 장병( 창, 겸, ... ),
활, 기마 와 같은 사거리가 긴 무기로 편재된 부대가 대응하는것이 유리 하겠죠. 반대로
적이 창, 기마 혼용의 부대라면 아군은 활, 장창 부대로 본진 방어 부대와 기마궁수,
철갑기마대로 공격부대를 편성해야 되는 것이겠죠.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지만
모든일에는 상생이 있는 것입니다. 왜란 당시에는 조선군의 군사력이 너무나 형편이
없어서 일본의 대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과 일본처럼 중간에
해엽을 사이에 둔 경우는 최적의 전투지역은 해역입니다. 해상에서 적에게 최대한의
많은 피해( 인적, 물적 )을 입힌 후, 상륙전에서 또한번의 피해를, 그리고 상륙후에는
별동대로 해상 보급로를 차단하고 사기가 떨어진 적 상륙부대를 섬멸해야 되나, 조선군은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동해를 유유히 넘어 오게 하였고, 상륙후에는 보급선 차단 작전도 없었고.....
도저히 병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뭐 지금도 똑같습니다. 비교 해 볼까요.
활 ->보병, 화승총 -> 미사일, 기마->기갑 이렇게 비교 해 볼수 있겠네요. 공군, 해군은
뭐 비교하면 마음 상하니까 하지 않겠습니다.
다행히 보병, 기갑병은 한국이 더 우수하다고 볼수가 있겠군요. 하지만 나머지는 비교하는것
자체가 곤란 한것 같군요.
우리나라 해군은 일본 해경 수준도 못되고, 공군은 훈련비행대 수준, 미사일은 유치원생과
어른 정도의 차이.
음.... 곤난 하군요.
미사일은 최소 사거리 2500Km 까지는 올려야 되고, 공군은 이미 KF15로 갔으니까.
수량으로라도 너 확보를. 해군은 안되면 잠수함이라도 북한에서 수입을....
여그 블로거님의 글과 댓글을 자주 읽지만 최근들어 쥔장님의 고집이 많이 쎄지신것 같습니다. 본인의 글이나 단어선택에 자부심을 갖는것도 좋지만, 좋은 조언은 수용하시는것도 필요하다봅니다. 그리고 다수가 알고있는 단어를 다른이름으로 고쳐부름으로해서 혼란을 야기하는것조 좋지 않구요.
한심한 인간들!! 근본을 봐라! 방장이 지금 그걸 말하고 있는게 아니잖아! 대충 저런 말이 나오면..
당시 조선의 무기는 이러했고 일본의 무기는 이러했고.. 그래서 이런 결과가 역사적으로 문제가 많아.. 전투에는 이런식으로.
이런 말들이 나와야 하는게 당연한거 아니냐? 어째 저렇게 단순무식 삐뚤어졌냐? 짱개들 인터넷 댓글 보는거 같다!
니네처럼 우리 선조들도 무조건~~ 일본놈들은 쪽빠리 하고 개무시하다가 저렇게 개작살 났지 않냐? 그런데도 지금도 그걸 답보하고 있으니.
겉으론 웃고 배울건 배우고 그리고 처절하게 복수해야지 무식하게 칼들고 전진하다 총맞아 죽을 놈들일세~
이미 고려 말기에 군사력에서는 일본에게 뒤졌고 조선 초기에는 경제적인 면에서 뒤졌고 조선 후기에는 하다못해 문화적인 면까지 뒤졌단다.
쪽빠리가 비겁하고 운이 좋아서 단순하게 그렇게 조선이 쑥대밭된게 아니란다. 원래 후달렸단다. 그런데 이 ㅂ ㅅ 좃선 놈들은 맨날 당파싸움만 하고.. 임진왜란도 한일합방도 전부다 이번부터 수많은 학자들이 경고했고 병기의 개발을 그토록 실학자들이 요구했으나 윗놈들과 대가리 똥만 든 왕놈들이 완전 말아먹었지!! 솔직히 한국 역사의 가장 치욕이 바로 조선의 역사다 고조선 고구려~ 그때야말로 진짜 한국의 번성기였다!
솔직히 세종대왕과 이순신만 아니었으면(뭐 정조까지도 넣어주겠다) 조선 뭐 있냐? 아니 이들이 조선에 있다는 자체가 쪽팔리다. 전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을수 없을정도로 시대와 역행한 나라~ 짱깨들이 세운나라! 참고로 임진왜란 당시 한국에는 조총보다도 화력이 뛰어난 수많은 화약무기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 사대부 ㅂ ㅅ들이 사악하고 천박한 물건이라 하여 다 갔다 버리라 했다 그리고 그걸 개발한 유일한 비기를 아는 가문도 당파싸움에 척출당해 전부다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10년뒤에 전쟁 발발! 그런데 조선말기에도 이짓은 똑같이 했으니.. 당해도 싸지...ㅉㅉ 조선이 한국의 역사에 있다는 자체가 쪽팔리다
뭐가 이렇게 무식한 사람들이 많은지... 리플달기 전에 곰곰히 생각 좀 하고 달지.. 역시 초딩들이란...
임진왜란의 뜻한 임진년에 일본애들이 일으킨 난이라는 뜻인데 최근에 사학자들 사이에서 7년동안 전 국토를 휩쓸었던 전쟁을 그냥 '난'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컸기때문에 조선과 일본의 전면전이라는 뜻에서 '조일전쟁'이라는 용어가 더 맞지 않냐는 의견이 나와서 최근 그 사용 빈도가 늘어난 말임. 무슨 일본에서 사용한다고 말도 안되는 --;; 소리를 해대는 것인지.
내참 기가 막혀서......... 그당시 즉 임진왜란때인 1592년도에는 쪽바리들의 명칭이 " 왜 " 이지 일본이 아니다,,, 고로 님 말대로 빡빡 우기자면 즉 굳이 이름붙인자면 조 - 왜 전쟁이라는 표현이 맞다,,, 무슨 조일이야 조일이,,, 그때 왜놈이 " 일본" 이라고 표명했냐???,,,, 또 설령 조왜 전쟁이라고 표현햇다고 해도 앞뒤가 안맞는게 그 당시 우리는 쪽바리를 " 왜 " <<< 즉 오랑캐로 표현했다 무슨 나라냐 나라는,,,, 조일이라 표현한다면 그때 당시 즉 1592년에 쪽바리들이 " 일본" 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했다는 근거를 여기에 대 주기 바란다 쯧쯧쯧
방장님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방금 야후에서 조일전쟁으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방장님의 표현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다닐때부터 임진왜란으로 배웠기에 혼란이 왔습니다. 그리고 좋은 걸 배웠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절대적이라고 믿지 말고 잠시 시간을 내서 검색을 한번만 해 보면 알 수있는 "검색 확인사살"이란 용어를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째, 자신들의 무지함과 만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조선 조정이 붙인 호칭이니까
둘째, 양국 정규군 합계 최소 100만명이 넘는 대군이 동원된 7년 전쟁이 어찌 난리에 그치겠는가?
셋째, 침략전쟁이던 당하는 입장이건 조일전쟁이라는 호칭은 아무 문제가 없다. 마치 6.25 전쟁이 한국전쟁이라는 호칭으로 불려도 아무 하자가 없듯
조일전쟁이 어떻게 일본식 표현이 되는거지? 이해가 안가네. 만약 내가 일본인이라면 일조전쟁이라 했겠지. 일본에서 쓰지도 않는 용어를 일본이 그렇게 부른다고 쓰는 병진들은 뭐야. 단순히 조일전쟁이라고 해서 기분나쁘다고 해라. 말도안되는 헛주장 하지말고. 일본에선 일반적으로 '조선출병' '조선정벌'이라고 불린다. 조일전쟁이란 표현이 어디가 쪽바리 스러운 거냐? 일본에서 쓰지도 않는 표현을 일본스럽다고 우기면 죄다 쪽바리가 되나?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란 의미로 조일전쟁이란 표현이 왜 일본인이 만든 어법이라 생각하는거냐? 내가 짐작하기엔 아마 '이조시대'라는 표현등을 일본이 쓰다보니 조일전쟁도 같은 맥락으로 보는 모양이다. 여기 댓글러들은. 조일전쟁은 일본이 쓰고 있는 표현도 아니고 오히려 조선과 일본의 전쟁을 학술적으로 표현한 말일뿐이다. 이말을 쓴다고 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란 표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야.
그리고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쓰는 말인데, 니들은 '이조시대' '이씨조선'이라는 말을 일본이 한국을 비하하기 위해 썼다고 생각하지? 헌데 이말은 중국에서도 사용하고 단재 신채호선생께서도 쓰신 말이다. 그럼 신채호선생이 쪽바리 사상을 받아서 이조라는 표현을 썼을까? 아니다. 어떤 찌질이가 당시 줄임말로 쓰던 관례등을 싸그리 무시하고 일본떡밥을 뿌려서 이조라는 말을 일본이 조선을 비하하는 말로 여기게 만들었고 그것이 퍼진것일 뿐이다.
이조시대, 이씨조선 모두 일재시대이전부터 써왔던 관례적인 표현법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선 당나라 왕조를 이당(李唐)이라고 썼는데 이는 ‘이씨(李氏)의 당(唐)나라’라는 뜻에서 쓴 것이다. 그밖에 중국은 그러한 의미로 '이씨조선'이란 말을 사용했고 단체 신체호 선생도 그렇나 의미로 '이조'라는 말을 사용했다. 아는 것도 쥐뿔도 없으면서 죄다 일본타령좀 하지마라. 지가 모르면 죄다 친일이니 식민사학이니 헛소리를 하는데 그러지마라. 독립운동가이신 단재 신채호선생도 사용한 말로 전혀 문제될게 없는 말이다
하하 이런 등신을 봤나.ㅋ 이젠 내가 하지도 않는 민비라는 말을 쓰고 있네? 내가 언제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하던? 뜬금없이 창씨개명얘기는 왜 나와? 응? 너 정신줄 놨니? 내가 하지도 않은 얘기를 혼자 짖거리네.ㅋ 너 '일제강점기' 라는 말에서 '일제 식민시기' 라고 왜 바뀐지나 알고 있냐? 그건 병자호란, 임진왜란과 더불어 일제강점기라는 자국중심적 용어를 중립적·보편적 용어로 바꿔 조청전쟁, 조일전쟁, 일제 식민시기라는 말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 말이다. 일본하고 상관없는 걸 일본을 끌어들여 쪽바리말로 바꾸는 니가 더 병신 아니냐~~? 쪽바리가 안쓰는 말을 앞장서서 불러? 뭔 개소리야.ㅋㅋ
에초부터 쪽바리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인데 앞장서서 부른다는 개논리가 존재할 수나 있냐? 이거 뭐 병진도 아니고~ㅋㅋ
포세이돈 아주 글을 날림으로 읽는 구나.ㅋㅋ난독증이냐? 등신도 이런 상 등신이 없다. 내가 조일전쟁이란 말의 합리성을 위해 단재 신채호 선생을 끌어들인 것 처름 쓰고 있네? ㅋㅋ 이조라는 말이 비하라고 씨부리는 것들이 있어서 신채호선생도 이조라는 말을 사용했다라고 했다. ㅄ아.ㅋㅋ 글 좀 읽어 똘끼야.ㅋ 조일전쟁은 어디까지나 현대가 당시 전쟁상황을 보는 해석이다. 이걸 쓴다고 해서 임진왜란이라는 말이 없어지는게 아니다.
그때당시 쓰던 표현은 존중하되 제대로 역사를 보자라는 의미이지. 이미 학교에서도 조일전쟁이라는 말을 병행해서 쓰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한지 모르겠다.ㅋ 아, 조일전쟁이란 책도 나왔네. 하긴 너같은 똘끼는 뭔 말인 줄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계속 여기서 씨부려라. 난 점심시간 끝나서 가야겠다~~
ㅎㅎ 니글보고 웃다가 문서 날라갈 뻔했잖니 병아.ㅋㅋ도저히 웃겨서 댓글을 안달래야 안달 수가 없다.ㅋㅋ 미치겟다.ㅋㅋ 뇌가 있긴 하세요~? ^^ 지금 그걸 나한테 반론이라고 씨부린거니? 내가 봐서 니가 짱깨 같다. 어떻게 그렇게 우리말도 이해를 못해시어요~ 짱깨야~? 아니 좆족아니야? 도대체 어떻게 까줘야 재밌게 깔 수 있을까, 이해력이 이렇게 딸린데 말이야.ㅎㅎ어쩨서 '대한민국' 국호얘기까지 나오니 병진아? 야, 지금 니 좆논리대로라면 내가 '조일전쟁이란 명칭은 현대가 당시 전쟁상황을 보는 해석'이라고 말했다고 내가 현재 대한민국을 조선이라고 부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랬쪄요~~? 야, 난독증 병아. 그럼 지금 국호가 대한민국이니 당시 상황을 한일전쟁이라고 해야되니?
아, 이제 알겠다.'일본'이란 국호가 최근 것이라 생각하니깐 나온 얘기구나.ㅋ 병아. '일본'이란 국호는 이미 8세기때부터 쓰여왔던 말이야. .
조선왕조는 그럼 일본이란 명칭을 사용안했다고 보냐? 태조실록 1권에 "18년(1281) 신사에 세조(世祖)가 일본(日本)을 정벌하니.." 성종실록 1권에 "일본국(日本國) 구주 도원수(九州都元帥) 원교직(源敎直)이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미 조선시대 왕조는 '일본'이란 말을 사용해왔다. 이 밖에도 조선왕조실록에 모두 일본이란 국호가 표기되어 있단다. '왜' 라는 말은 일본을 비하하는 말로 '왜' 와 '일본' 모두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일본이란 국호는 현대에 등장하여 쓰인 말이 아니며 고려와 태조이성계떄에도 사용했던 국호이기에 시대를 역행한 단어선택은 아니란다 병진아 그러니 일본이 침략하여 벌어진 전쟁이니 '조일전쟁'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지
난 여기 글쓴이처럼 임진왜란이 병크스라고 보진 않아. 당시 조선은 일본을 낮게 보고 있었기에 전쟁명칭에 국호를 쓰지 않고 비하하는 말인 '왜'를 써서 '임진왜란'이라 부른 것이니 말이야. 당시 시대상을 알 수있는 말이기에 부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현대에 조일전쟁이란 말을 같이 사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임진왜란은 일개 '난'으로 보기엔 그 규모가 컷고 명나라까지 참전하면서 장기간 벌어진 '대규모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일전쟁'은 조선과 일본이라는 나라간 전쟁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일 뿐이지, 임진왜란이란 용어가 사용된 이유마져 부정하는 건 아니란다. 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설명해줘도 넌 헛소리 하겠지만 말이야.ㅋㅋ
그리고 조선이 일본에게 밀린 결정적인 이유는 창의 길이에 있는것이 아니라 실전 경험과 화승총의 화력의 차이입니다.
일본은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통일하기전에 근 몇백년간을 봉건영주들끼리 항상 전쟁을 해온민족이죠..
몇백년을 전쟁을 해온 민족을 실전한번 안치룬 우리가 이기긴 힘든이야기 입니다.
더구나 장총의 쓰임을 알고 장총부대를 획기적으로 이용하여 전세를 한번에 뒤집은 노부나가가 바로 히데요시의
주군이었으니 히데요시 또한 장총부대를 중시하고 일본 자체적으로 엄청난수의 총을 생산 했죠..
그 장총때문에 우리나라 산성들은 속절 없이 무너져야했고..
창의 길이가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는 헛소리는 집어 치우길 바래요.
뭣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사실이라고 기억할테니..
현이와 진이님// 뎃포만을 신용했다가 되려 우에스기 겐신에게 무너져내린 데토리가와 패전도 있죠
나가시노 전투를 얘기하시는 모양인데 당시 다케다군은 1,000명당 기병 7~8명 비율이 고작이었습니다.
최근에 국내에 일본 센고쿠지다이 관련 서적들이 대거 출판되었으니 한번 잘 앍어보세요
그럼 뭐라 불렀을까요?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었고 다만 각 지방별로 쿠니( 国 )라는 칭호를 쓰기는 했습니다만 엄연히 덴노와 바쿠후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습니다.
다만 바쿠후의 힘이 약화되고 120년에 걸친 센고쿠지다이를 통해 다이묘들이 각자의 영지를 영토화했지만요
조선하고 일본하고 싸워서 조일전쟁이라 쓴걸 가지고 친일파니 매국노니 하는건 뭐하는 작자들임 ㅡㅡ 꼬투리 못잡아 죽은 귀신들이 붙으셨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한테 친일파니 쪽바리니 빨갱이니 하는 것들치고 논리적인 것들을 못봤다..그들 기준에선 그게 바로 자신들 논리의 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