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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의 부국강병 추구와 인민의 군대인 "붉은 군대"의 발전을 추구했던 절대 권력자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 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 ) 비록 엔카베데( NKVD, 내무 인민위원회 )를 동원해 예조프시나를 벌여 유능한 장교들을 대거 숙청하는 삽질을 저질렀지만 평소 중후장대한 거대 병기 외에도 T-34/76과 KV-Ⅰ과 같은 우수한 전차 및 대구경 화포를 다수 배치하여 소련군이 나치 독일군에 맞서 승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 이제는 중국에 통합되었지만 여전히 활발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홍콩의 모형 메이커인 "드래곤"에서 출시한 액션 피겨 볼로댜 안드레예비치 파블로프 상병과 120mm PM-38 중박격포 1941년 레닌그라드 전선에서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120mm 박격포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소련은 대전 기간과 전후 이보다 더 큰 160mm와 240mm 박격포를 개발, 배치해 서방측을 화력에서 압도했다. 출범 이래 전통적으로 포병 전력을 중시해온 소련(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 특히 절대 권력자인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 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 1879~1953 )은 부국강병을 추구해 중후장대한 거대 병기를 대단히 선호했고 T-28과 T-35는 그 병적 집착이 극에 달한 수준을 보여줬다. 물론 보다 현실적인 KV-Ⅰ중전차와 T-34/76의 생산과 배치에도 나름대로 배려를 해 가증스런 침략자 나치 독일의 기갑부대를 맞아 분전을 펼쳐 모스크바가 함락되는 것을 저지함은 물론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대승을 이끌었고 이후 차기 중전차인 IS-Ⅱ로 베를린 함락을 이끌었으니 딱히 단점만을 끄집어 내 비판할 수만은 없는 인물이다. 그러한 스탈린의 붉은 군대가 전차 못지 않게 중시한 포병, 그 중에서도 박격포( миномет )는 서방측에는 없는 대구경이 상당한 수를 차지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최초로 발명해 투입한 박격포는 원래 수류탄을 멀리 투척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무기다. 초기에는 프랑스군과 같이 새총이나 석궁을 이용해 투척했지만 곧 독일군이 야포만큼은 안되더라도 상당한 거리까지 전용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박격포를 발명, 1912년 실전 투입했다. 그 전까지 프랑스군이 중세 시대 공성전에 사용했던 공성 구포( 우리의 대완구와 유사 )를 고물상에서 구입해 전선에 투입하는 추태를 벌인 것에 비추어 볼 때 획기적인 발전이었고 영국군도 곧바로 노획한 독일군의 박격포를 기초로 빅커즈사에서 100문을 모방 생산해 전선에 투입했다. 이후 보다 형태를 단순화시킨 스토크형 76,2mm 박격포  근대 박격포의 표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스토크형 76.2mm 박격포' 1915년에 제식 채용되었지만 무기 부족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운용되었다. 60mm나 81mm 박격포반 출신 방문자 분들이 보기에도 오늘날의 KM 181이나 KM 187과 형태상으로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 가 1915년 배치되면서 근대 박격포의 표준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박격포가 본격적으로 진화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프랑스, 영국, 소련군은 우수한 성능의 박격포를 여럿 운용했는데 이 중 구경 110mm 이상의 중박격포를 다수 운용한 국가는 소련이었다. 소련군이 거느린 여러 장성들 중 유능한 축에 속한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МИХАИЛ НИКОЛАЕВИЧ ТУХАЧЕВСКИЙ ) 원수의 기계화 정책에 따라 1938년, 세계 최초로 PM-38 120mm 중박격포를 채용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170mm와 250mm 박격포를 운용했던 전례에 비춰볼 때 120mm라는 구경은 그다지 커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 박격포들은 포신이 짧은데다 250mm 박격포의 경우 소련의 GP-25 40mm 유탄 발사기와 같이 포신의 강선에 포탄의 홈을 맞춰 끼워 장전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반면 PM-38은 진정한 활강식 박격포였기에 그 수준의 차이가 컸다. 물론 중박격포인 120mm 박격포의 특성상 중량이 285kg이나 되어 60mm나 81mm 박격포와 같이 포반이 도수 운반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기에 차량 견인이 필수였고 이 때문에 견인포처럼 이동을 위한 차륜이 부착되었다. 비록 이렇게 기계화 정책을 추진하던 투하체프스키 원수는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인해 처형되었지만 그의 정책 덕분에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은 PM-38의 포탄 세례에 적잖이 당황했고 전장에서 노획한 이 우수한 중박격포에 경악해 이를 그대로 복제 생산하니 바로 12cm.Gr.W.42( 42년식 120mm 박격포 )다. 이 박격포는 단순한 복제 생산품인만큼 독일제와 소련제 포탄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고 독일군은 105mm 곡사포에 필적하는 위력에 감탄사를 날릴 수밖에 없었다. 독소전 기간 중 120mm PM-38로 재미를 본 소련군은 보다 대구경 박격포를 개발하기로 결정, 마침내 194  1938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실전배치한 중박격포인 PM-38 전투 중량이 285kg, 수송 시에는 500kg이 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견인포처럼 차륜을 부착해야 했다.
| 3년 M1943 160mm 박격포( 160-мм миномёт образца 1943 года )를 채용해 전선으로 투입시켰다. M1943은 40.8kg의 포탄을 분당 10발의 발사속도로 발사할 수 있어 당하는 독일군의 입장에서는 아주 골머리를 썩히게 만들기 충분했다. 물론 그 대가로 전투중량이 1.17톤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지만 어차피 차량으로 견인하는 박격포였기 때문에 포반으로서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소련군은 약 32문의 M1943으로 박격포 여단을 편성해 운용했는데 이는 다시 대대( 1개 대대에 8문 편제 ) 4개로 나뉘어졌다. 종전 이후 160mm 박격포는 불가리아, 시리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에 공여되어 운용되었다. 《 한국전쟁과 중박격포 》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북한군은 소련으로부터 T-34/85 전차 242대를 비롯한 각종 장비들을 넘겨받아 중무장했고 박격포 역시 한국군을 압도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국군은 압도적인 전력의 북한군에 밀려 퇴각을 거듭했고 이후 UN군의 참전 이후 전세를 역전시켰지만 종전을 앞두고 벌어진 고지전에서 북한군이 투입한 82mm, 120mm 박격포의 공격에 적잖은 손실을 입어야 했다. 박격포는 그 자체가 보병이 가진 유일한 대포였고 특히 곡사포를 운용하기에 제약이 많은 산악지대에서는 100% 능력을 발휘했으니 우리 호국영령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한국전쟁을 통해 한국군은 미국제 60mm와 81mm 박격포를 주력으로 운용했다.

 소련은 물론 북한군도 운용 중인 160mm M1943 중박격포 대구경 박격포인만큼 위력도 만만치 않지만 전투 중량이 1톤을 넘겨 사실상 차량 견인이 필수다.


 비록 포탑식이 아니라 포반이 적 포화에 노출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곡사포에 필적하는 사거리를 갖춘 이 자주 중박격포로 인해 서방측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해야 했다.
| 박격포의 화력강화가 갈 때까지 간 경우 러시아군의 2S4 "튤판" 자주 중박격포( Самоходный 240-мм миномет 2С4 “Тюльпан” )가 그것이다. 1971년 제식 채용된 이 자주 중박격포는 기본 사정거리만 9.51km에 로켓 보조식 AMR-03F2탄을 발사할 경우 최대 사거리가 19.69km에 달해 사실상 122mm 곡사포에 필적하는 위력을 갖추고 있다. 이 두 박격포는 현재도 일반 보병사단 및 후방 향토사단에서 활약 중이다( 필자는 M19와 M29를 만져봤는데 M19의 경우 1945년 생산품이 있어 나름 므흣했던 기억이 난다 ) 하지만 북한군이 보유한 120mm, 160mm 박격포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박격포보다 사거리를 연장하면서도 중량은 최대한 경량화시킨 신형 박격포가 반드시 필요했다. 이 때문에 60mm와 81mm를 운용하며 조금씩 노하우가 축적됨에 따라 개발에 착수, 마침내 60mm KM 181과 81mm KM 187을 생산, 실전 배치시켰지만 아직 전군에 완전 보급이 되지않은 상태다. 이와 같이 보병용 경박격포와 중( 中 )박격포에서는 북한군의 61mm, 82mm 박격포를 압도하고 있지만 북한군이 이처럼 사거리에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61mm와 82mm를 지속적으로 운용하는 이유는 아무리 사정거리가 딸린다고 해도 이를 보완해줄 든든한 리베로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북한군은 120mm( 사단 예하 )와 160mm 박격포( 군단 예하 )를 모두 운용하는데다 다수의 방사포와 곡사포, 자주포를 보유하고 있어 든든한 화력 지원 전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 여기에 자주 중박격포인 2S4 "튤판"이 배치되었다면 그야말로 날벼락이었겠지만 다행히 이 자주 중박격포는 겨우 430문만 생산된데다 러시아군도 1개 연대만 보유한 상태라 북한에 넘겨지지는 않았다.
 240mm 박격포는 A-19 122mm 군단포에 필적할만한 위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괴물 박격포가 북한에 넘어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해야할 듯
 이스라엘 솔탐사의 K-6를 면허 생산한 M121 120mm 박격포 최대 사거리 7.2km의 만만치 않은 성능을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 한국의 위아가 개발 중인 120mm 박격포는 최대 사거리 8km, 랩탄 사용 시 13km라고 공헌하고 있어 나름 기대를 갖게 한다. 기왕이면 이처럼 보병형도 개발을 병행해 연대 전투지원중대의 4.2인치 박격포를 전부 대체할 수 있게되기를 기원한다. 그렇지만 한국군은 이에 대응할만한 전력이라고는 4.2인치 박격포가 전부이기 때문에 120mm 박격포의 소요가 제기되는 형국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전쟁 당시 노획한 PM-38을 기초로 솔탐사에서 K-6 120mm 박격포를 생산해 운용 중이고 미군 역시 이스라엘제를 국산화해 제식명 M121로 생산하여 M1064 자주 박격포를 비롯한 다양한 변형으로 운용 중이다. 한국군 역시 현대·기아자동차의 부품 제조사인 위아( WIA )에서 한국형 중박격포로 개발이 진행되어 지난 7월 16일, 시험 발사에 성공( 좌측 사진 )하는 개가를 거두었다. 이 박격포 체계의 작동원리는 구동시스템이 위성항법장치( GPS ) 및 전자사격 통제장치를 이용해 공격목표지점과 박격포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해 자동으로 포 방열각( 조준각 )과 사거리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체계는 프랑스에 이어 세계 2번째인 셈인데 이를 통해 기본 사거리 8km, 랩탄을 이용할 경우 13km로 기존의 4.2인치 박격포는 물론 105mm 곡사포보다 더 긴 사거리를 발휘하게 된다. 언론 보도를 통해 위아의 관계자는 "이번 박격포 체계는 전차뿐만 아니라 트럭 등 일반 차량에도 탑재할 수 있을 만큼 탄력적인 활용성을 갖추어 일선 부대에 보급되면 기동력과 운영능력 향상에 큰 기여를 하게 될 이다. 위아는 그동안 육, 해, 공군의 다양한 무기체계를 개발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첨단 무기 개발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현재도 활발한 개발이 진행 중이고 서울 에어쇼에서는 직접 구동과정을 공개하는 등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차량에 거치하는 자주 박격포형이라 일반 보병연대에 배치된 4.2인치를 대체하기 위한 보병형의 개발도 병행되어 후방의 향토사단의 동원 예비군들도 4.2인치 박격포를 운용할 수 있음은 물론 K-532의 화력 강화를 앞당겨야할 것이다.
 위아의 차기 120mm 자주 박격포 체계가 완성된다면 이와 같은 형태로 운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사진은 핀란드 파트리아사의 AMV에 거치된 2연장 아모스 자주 박격포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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