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사상 달빛으로 은은히 살리는 세상 손덕수 ( ‘평화어머니회’ 공동 대표/ 前 대구 효성 기톨릭 대학 교수) 해가 밝은가 달이 더 밝은가? 일전에 어느 부부 모임에서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말머리는 “해와 달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밝은가?“로 시작되었다. 말할 나위 없이 "해가 더 밝다"는 우리들의 상식적인 응답에 대해 6남매를 키웠다는 한 노부인이 펼친 반론은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즉, "밝기로 말하자면 해가 아니라 달”이라고 주장한 그 부인은, “해는 창공의 뭇별들을 모두 삼키고 자기 홀로 빛나는 반면, 달은 밤하늘의 수억의 별들을 모두 빛나게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달이, 그 ‘힘’, 자신을 감추는 그 ‘위대한 힘’ 때문에 더 밝다는 것이었다. 해가 가장 밝다는기존 개념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그 부인의 말은 매우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고 우리의 둔감한 시각을 새롭게 열어주었다. 타인을 밝게 해 주는 위대한 힘 이 논리는 곧 여남(女男) 관계로 비약되어, 이야기는 그렇다면 누가 해이고 누가 달인가로 이어졌다. ‘자기 홀로 빛나는 태양’이 남성이라면, ‘자신을 숨기고 타인을 빛나게 해 주는 달’은 바로 여성이요, 어머니라고 입이 모아졌고, 그러므로 여성, 어머니들이 '더 밝으며', '더욱 위대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우리들이 홀로 빛나는 태양의 속성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태양과 같은 삶이란, 타인의 존재를 거부하고 생명의 다양성과 상호성을 무시하며 ‘유아독존’을 고집하기 때문일 것이다. 토마스 엘리엇이 지적했듯이, 가정의 가장이자 사회의 주인이 되고 나아가 문명의 핵심이 된 남성들이 이끌어온 역사란 해의 원리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타인을 삼키고 제거해 버림으로써 빛을 발하는 태양은 남성성과 너무도 흡사하다. 타인을 삼키고 제거하는 속성을 가진 남성 문화는 지금까지 인류사에 수많은 전쟁, 폭력, 파괴 행위를 남겼다.지금 갈수록 더욱더 각박해지는 이 사회에서 더 필요한 것은 남을 삼키는 해(남)가 아니라, 달(여)과 같이 남을 들어올려 빛내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가 21세기 사회와 역사를 이끌어가는 중심 가치가 되어야 한다 태양처럼 군림하는 남성들 그리고 남성의 강렬한 빛발 때문에 제 빛을 발하지 못한 여성들이야말로 '삼켜진' 달과 같다. 자신을 숨기고 어두운 밤 하늘에 수천 수억의 별들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삶,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들의 삶이 바로 이런 삶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자기를 숨긴 여성의 역사가 바로 인간 생명이란 무수한 별들을 밤하늘의 별들처럼 빤짝 빤짝 빛나게 해줄수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리 할머니들의 삶이 그러했고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그러 하였다. 그들은 남편과 아이들을 ‘빛나게. 하기 위해 기꺼이 ’어둠‘을 감내해 왔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여남(女男)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선진국-후진국, 백인-흑인, 부자-빈자, 도시-농촌, 자본가-노동가 관계도 해- 달의 관계, 여-남의 관계와 흡사한 것이다. 꽃과 뿌리의 관계 또한 해와 달의 관계는 ‘꽃과 뿌리’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세상 사람들은 찬란하게 피어 빛나는 ‘꽃’만 보고 찬탄을 한다. 그 꽃을 낳은 ‘뿌리’는 망각한다. 작열하는 여름이나 엄동설한의 겨울에도 땅속의 뿌리는 자양분을 위로 위로 올려서 꽃 봉오리로 맺게 하고 드디어 꽃으로 만개하게 한다. 그런데 뿌리는 잊혀진 존재다. 뿌리의 노고 없이 절로 피는 꽃이 세상에 있을까? 아니 꽃들이 뿌리의 노고와 인내를 알기나 할까? 얼마나 많은 도시인들이 농촌의 노고를 알고 있는 것일까. 부자가 가난한 이들의 배고픔을, 백인이 흑인의 서러움을, 자본가가 노동자의 피와 땀을, 제1세계가 제3세계의 고통을, 그리고 남성들이 여성들의 억울함과 한(限)을 과연 알고 있을까? 꽃과 뿌리, 그것은 비록 한 몸 일지라도 막힌 담과 같이 단절되어 있다. 계층, 신분, 돈, 피부색 그리고 성(性)이라는 넘을 수 없는 장벽 때문에 서로가 참 사랑과 참 조화의 관계를 일구지 못하고 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미추 할 것 없이 생명이라는 대전제 밑에서 서로가 ‘꽃’도 되었다가 또 ‘뿌리’도 되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가? 이것이 21세기엔 꼭 이뤄내야 할 크나큰 상생의 화두일 것이다. 홀로 빛나는 태양을 거부하는 21세기 인류의 역사란 한(해) 쪽이 다른(달) 쪽 위에 군림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군림자들이란 과연 누구일까? 제 피부색만을 우월하다고 고집하는 인종주의자, 자국의 영토와 세력을 넓혀가는 제국주의자, 다국적 기업가들, 인간 모두가 향유해야 할 땅과 집과 지식(정보)을 홀로 차지한 기득권자, 자기 피와 성만을 고집하는 남성 쇼비니스트, 아내를 구타하는 가정폭력자들이 이에 속한다. 군림자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경직되고 권위적이며 공격적인 ‘졸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런데 군림자에게 기식하며 그들을 ‘사내 대장부’로 찬양하고 박수를 보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을 영웅과 독재자로 만든 이는 과연 누구인가 말이다. 그들을 본래의 크기보다 두 배로 확대하는 확대경 노릇을 해 온 태양의 추종자요, 아내들이라면 과장일까? 버지니아 울프는 “그러한 환상의 마력을 가지고 사내들은 높과 수풀에서 고도의 문명의 담을 쌓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추종자들이 진실을 말한다면 확대경 속의 독재자-영웅은 축소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태양처럼 빛나는 남성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남성문명은 마치 태양처럼 온누리에 빛나고 있으나, 이 빛나는 문명은 두 개의 죽음으로 인간 숨통을 조여오고 있지 않은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두 개의 죽음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란 바로 환경파괴로 인한 생태계 위기요, 핵전쟁의 무시무시한 위협이다. 발전과 번영의 신화 속에 감춰진 마(魔)의 속성은 뭘까?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태양과 같은 원리'가 아닐까? 더 많은 것, 더 큰 것, 더 높은 것, 더 좋은 것을 자기 홀로만(자기 성만, 자기 혈족만, 자기 지역만, 자기 국가만, 자기 민족만) 가지려는 인간의 탐욕과 소유욕, 지배욕이 아닐까? 지난 2천 년간 그 어떤 종교도, 어떤 정치 혁명도 지배와 파괴로부터 벗어나 조화와 상생의 원리가 살아있는 사회 구조를 이뤄내지 못하였다. 그것이 실패하여 대립과 다툼으로 불거진 것이 바로 9.11 테러 참사이며, 아프간 보복전쟁이다. 2002년 새해의 동이 트려고 지구는 또한 숨가삐 달려 오른다 전쟁과 파괴로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한 인류에게 과연 아직도 희망이 있는 걸까? 더욱 불행한 것은 어느 누구도, 어느 종교도, 어느 현인도 뚜렷한 전망을 제시 못하고 있다. 바로 그 점에 우리의 좌절과 슬픔이 깃들어 있다 그렇지만 인류는 오늘 이 시점 이 자리에서 다시 또 결단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는 개인과 가정의 행복, 국가의 발전과 번영도 아닌, 온 인류가 함께 사느냐 죽느냐 하는 총체적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9월 11일 이전과 이후의 인류 역사는 질적으로 달라졌다. 온 지구인들의 총체적 개혁과 반성, 그리고 새로운 차원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수 있는 인간성의 혁명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저 혼자 빛나기 위해 생명을 삼켜가는 이 어둠의 역사에서 결코 헤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달빛 같은 참 사랑을 달처럼, 뿌리처럼 사는 이가 가장 큰 사람이요 훌륭한 사람으로 떠받들어지는 사회는 언제 올 것인가. 홀로 발광(發光)하는 해의 원리가 아니라, 이제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며 남을 배려하는 달의 원리를 회복하는 일, 그리고 ‘뿌리’의 어둠과 희생을 외면해왔던 ‘꽃’들이 ‘뿌리’에게서 자신들이 다시 태어나는 자양분을 발견하고 ‘거듭 나는 삶’을 선택하는 용기와 혜안 혜안을 갖는 일이 바로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꿈꾸던 소망과 모든 꿈은 다 이루어졌다. 적어도 물질과 기술 면에서는. 그렇다면 이제 진정 우리가 더 바랄 것은 무엇인가? 정말로 인간답게 사는 일만이 남았다.. 나를 깨우고, 나를 비우는 일 말이다. 어떤 현자는 말씀하신다. “모두가 다 도인이 되지 않으면 이 어둠은 물러 가지 않는다"고….
비노바 바하브를 아십니까?
간디가 추구했던 이상사회를 몸으로 구현했던 준-성자급 제자이다
그는 ‘히말라야의 평화와 벵갈의 혁명적 열정이 일치된’ 스승에 의해 인도의 꿈을 실현시킬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외치기를 "자! 땅을 내 놓으십시요! 마을도 함께 내 놓아...함께 일하고 공동 소유하며 공동분배 합시다...! 이 길만이 인간복지 유토피아의 출발점이 됩니다"라고.
그가 13년간(54~70년) 인도 전역의 땅을 걷어드린 땅이 무려 인도 전역의 땅 1/3에 해당 되었다. 비노바는 새벽 3시면 일어나 기도하고 노래와 영적 춤으로...전국을 순회강연할때는 언제나 금식 기도로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웠다.
인도의 가난의 원천은 부자들의 땅의 독점에 있고...그 불평등 소유는 사회의 퇴화와 민중의 침체를 낳았으니...
...'어서어서 땅을 내놓아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어 복지사회 만들자'고 호소하였다
가난과 폭정에 시달린 민중들은 크고 작은 땅 뙤기들을 앞 다투어 헌납하였고, 비보바는 가난의 해방자로 서게 되었다 전국집회마다 새로운 희망의 물길과 열정의 불길이 타 올랐다.
그들이 내 놓은 땅은 마을이 공동 소유하여 필요시에는 개별가구가 빌려 쓰기는 하지만...매매와 저당이 불가능한 봉건적 경제체제를 뒤엎은 혁명자체이었다.
축제 속에서 타고 있는 혁명의 불길은 시대의 미몽 속으로 점차 자자들어갔다....
** 21세기의 평화는 독점에서 풀려나 '나눔'에서 시작된다
땅의 나눔, 노동의 나눔, 정보의 나눔, 성(독점?)의 나눔에서
싫컨 울어라.눈물후 치유된다
* 눈물샘이 치유샘 되는이유 ::::::::::::::::::::::::::3가지 분류
1)눈물종류 :::::눈이마르지 않게 //// 외부자극에의해 나는 반사적 물 ///뇌의작용으로나오는
감정적 눈물
** 스트레스받아 나오는 호르몬(프로락탄)이 배출되면서 심리적 안정이 온다고..
*** 눈물은 ..정신과적 병 (우울증 -불안장애-조울증)을 담당하는
뇌속의 '변연계'를 자극하여 나온는데..이때 약물이상의 효과가 있다는것..
눈물이야말로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쳐 생겨난 축복이자 생존연장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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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는 자연적인 기능.
.이것이 바로 울음//. 더우면 땀이 나와서 열을 식히는 것과 마찬가지”.
‘적절한 시기엔 울 수 있어야 한다'고.
울지 못하는 것도 장애./ 눈물이 흐르지 않는 상태가 가장 위험./
우울증 환자 가운데 정말 증세가 심한 사람은 “눈물이 말랐다” “눈물이 안 나온다”고 말한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잘 모르겠다”고도 한다.
눈물은 늘 ‘억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돼 왔다. /울면 약하게 보이고, /
상대방을 당황시키기 때문이다.
77%의 사람들은 집에서 울고 40%는 혼자 숨어서 운다.
우는 시간도 짧다. 80%는 30분 이상 울지 않는다.
56%는 저녁이나 밤에 운다
. 남성은 여성보다 우는 횟수가 7배나 적다.
여성이 연평균 우는 횟수가 47회인데
남성은 7회에 불과하다. <<김동구 교수>>
눈물을 흘리는 것은 모든 동물 중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
눈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 가두어 둔 감정을 풀어주며
좌절감을 완화시키고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스트레스가 완화되면 혈압도 내려간다. 울고 나면 눈의 먼지도 없어져 깨끗해진다.
<<<울자 ㅣ싫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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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