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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정전 : 보물 제1578호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으로 태종10년(1410)에 세웠다. 태조의 초상화를 보관하는 건물은 개성, 전주, 경주, 평양, 영흥등 5곳에 있었는데 경기전 정전을 제외한 나머지는 임진왜란(1592)때 불타 버렸고,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입구, 파수병들이 늠름히정문을 지키고 서있다.

홍살문

정전(正展) 보물 1578호


어진(御眞) 보물 931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져 있고, 우측편 회랑에는 세종, 정조, 고종의 영정이 , 좌측편 회랑에는 영조,철종, 순종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경기전을 완성한 목공이 그 영원함을 위해 전면에 보이는 풍판에 암수 두 마리의 거북이를 올려놓았다고 한다. 모신 분의 사후 세계 장수를 기원과, 경기전이 목조건축인 점에서 화재를 다스리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고 보여진다

조선 태조(이성계)의 어진(御眞) 보물 제931호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로 가로 150㎝, 세로 218㎝이다. 태조의 초상화는 총 26점이 있었으나 현재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초상화 1점만이 남아있다.

정조대왕

영조대왕


경덕헌


어정 임금의 음식을 만들거나 임금이 마실 물을 기르는 '어정'으로 깨끗하고 성스럽게 취급돼야 해서 담이 쳐져 있다.

제사를 지낼때 사용하는 각종 그릇, 기구 등을 보관하던 장소로 쓰이던 곳으로 기물들을 습기에서 보호하기 위해 주로 나무로 지어졌다고 힌다.

동재


조경묘 경기전 경내 북쪽에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 공과 시조비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조경묘는 영조 47년에 창건하여 영조가 친히 위패를 썼으며 동학혁명군이 전주부성에 입성할 때 태조의 영정과 함께 위봉사의 행궁에 옮겼다가 7월에 다시 전주로 옮겨 놓았다.

조경묘의 홍살문과 외삼문

평소 일반일들에게 개방을 않고 있다

재실 제사를 준비하며 사람이 머무는 재실


전주사고(全州史庫)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화를 면한 사고로서 건물은 당시에 불타 없어져 버렸지만 실록은 보존되어 지금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었고 조선의 역사를 온전하게 전할 수 있게 한 장소이다. 지금의 건물은 원래 전주사고가 있던 자리에 새로이 1991년 복원한 건물이다


예종대왕 태실비 비석 전면에 ‘예종대왕태실(睿宗大王胎室)’이라는 6자가 해서체로 음각되어 있고, 후면에는 ‘만력 6년 10월초 2일건(萬曆六年 十月初二日建)’이라 쓴 아래 2줄로 ‘후 156년 갑인 8월 26일 개석립(後 百五十六年 甲寅 八月二十六日 改石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옆문

정원

하마비(下馬碑) 至此皆下馬(지차개하마: 이곳에 이르면 모두 말에서 내리고) 雜人毋得入(잡인무득입: 잡인은 들어갈 수 없다) 지대석 위에 서수를 놓고 그 위에 기단석을 놓고 비를 세웠다.

은행나무~보호수 ~수령2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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