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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북아의 전쟁영웅-강감찬

2009.03.07 01:47 | 한국사 인물열 전 | 기파랑

http://kr.blog.yahoo.com/oksan1973kr/15530 주소복사

원본 원본 : Issue Maker


어릴 적 가장 인상깊었던 우리나라의 영웅은 강감찬 장군이었다.

강감찬장군


 외세(거란)의 침입을 뛰어난 전략으로 무찌른 영웅은 많았지만 독특하고 장대한 스케일의 전략이 너무나 인상깊었기 때문이었다. 강둑을 가죽으로 막은 후 강에 적들을 몰아넣고 몇십만이나 되는 적을 수장시켰다는 전략은 어린 마음에 큰 감명을 주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물을 이용해야 몇십만이나 되는 사람들을 수장시킬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댐을 붕괴시키면 수십만의 사람들을 수장시킬 수 있을까? 단지 가죽으로만 수장시킨다는게 가능할까?

강감찬은 [강감찬 설화]가 따로 있을만큼 그에 얽힌 많은 일화가 내려오는 인물이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서울대입구에 있는 강감찬장군 동상


그만큼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문무를 겸비한 고려사의 영웅 중 하나였다. 강감찬이 활약하던 당시 동북아는 송-요-서하-고려 4개국이 균형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특히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요라는 나라를 세우고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요는 문치국가였던 송나라를 끊임없이 공격했지만 배후에 있던 고려때문에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당시 고려는 송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경을 맞댄 거란을 견제하는 균형외교를 펼치고 있었다.

거란은 배후에 있던 고려를 정리하기 위해 3차례에 걸쳐 침공하는데, 1차 침공시 거란은 안융진 싸움에서 대패한 후 기가 꺾인 상태에서 고려가 강동 6주를 주면 사대의 관계를 맺는 다는 말을 믿고 회군하게 된다.

 2차 침입시 강조가 통주방면에서 대패하며 개성을 내주게 된다. 이 때 강감찬이 현종에게 건의하여 남쪽으로 피난을 가게되고, 혜성처럼 등장한 고려의 명장 양규가 10개월간 7전 전승으로 거란의 기세를 꺾는다. 이후 거란은 고려의 왕이 거란의 왕에게 알현하고 강동6주를 돌려준다는 약속을 받고 물러난다.

 3차 전쟁은 고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명문으로 거란이 침공하게 된다. 거란의 최고의 명장이었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한다. 강감찬은 기병 1만 2천명을 선발해 요나의 선발부대를 기습, 전멸시킨다. 소배압은 선발을 다시 보내지 않고 본대를 움직여 직접 개성을 공격한다. 그러나 강감찬은 개경일대에 방비를 철저히 해 놓았고, 소배압은 오랜 시간 동안 이 방어라인을 뚫지 못한다. 이 사이 강감찬은 요군의 보급을 끊고 후방을 교란시킨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와 청야작전으로 요의 군사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고, 강감찬의 보급로 차단과 후방교란은 성공적이었다. 요의 군사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났고, 이탈자가 속출하여 10만여명으로 군사가 줄어들게 되자 소배압은 후일을 도모하고자 퇴각을 결정했다.

 이 때 소배압은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 고려의 모든 군사가 개경에 있어 귀주성이 비어있다는 것이었다. 소배압은 귀주성에서 후일을 도모하고자 귀주성으로 군사를 물린다. 그러나 이 일은 강감찬의 준비된 전략이었다.

 강감찬장군
 
당시 거란의 강력한 군사력의 원천은 기마병에 있었다. 그러나 성안에 들어간 거란의 병사들은 이미 기마병이 아니었고, 좁은 장소에 모인 10만여명의 병사는 더 이상 정예병력이 아니었다. 강감찬은 귀주성을 포위하여 총공격을 가한다. 더군다가 바람 역시 고려군에게 유리하게 불어, 요군은 제대로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 하루밤의 전투에서 거란은 수만명의 병사를 잃는다. 이 때 강감찬의 나이 70세. 이 노장 강감찬의 전략에 의해 거란은 큰 피해를 입고, 고려는 동북아의 맹주로 이름을 떨치며 강동 6성을 정비하고 천리장성을 축조하는 등, 내외에 국방력을 과시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거란의 기세가 크게 꺾여 동북아는 4개의 국가가 균형을 이루는 시절이 유지되고, 송나라는 계속 문치주의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어릴 적 배웠던 역사들은 세계정세, 왜 그렇게 되었는가라는 이유는 없고, 단순히 흥미로운 사건 하나만을 역사라고 배워왔던 것 같다.

강감찬이 문신으로 나이 70세에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사실자체가 흥미로운 사실이지만 왜 거란이 고려를 침공할 수 밖에 없었는가. 송나라가 문치주의를 끝까지 고수하면서도 거란에게 멸망당하지 않았던 이유가 고려에게 있다는 사실등 전세계의 역사가 얽혀있다는 사실을 배우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이제 우리 아이에게 역사를 가르친다면 '사건'이 아니라 '관계' 중심의 역사를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북경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반년후에 뉴욕에 태풍이 몰아친다'

 

화석 2009.03.07  03:33

http://kr.blog.yahoo.com/seongeene/9076.html?p=1&pm=l&tc=90&tt=1236364323
기파랑님 강강찬이야기 입니다.
참조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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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파랑 2009.03.08  00:54

네에 감사합니다 화석님 꼭 보러갈께요^^
편안하고 행복한밤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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