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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정권 시절에도 함부로 못건드렸던 김수환 추기경. 왜냐하면 추기경은 임명과 동시에 바티칸 시민권을 갖기 때문. 추기경에게 무슨일이 생기는것은 바로 교황에 대한 도전.
1987년 6.10항쟁 당시 학생들이 전경들에게 포위되어 서울 명동성당에서 밤낮으로 농성을 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정부는 병력을 투입해 강제 해산할 계획을 세워두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이를 통보했다. 그때 김 추기경은 "그렇게 되면 큰 비극이 일어난다. 그 사람들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보게 될 것이고, 나를 쓰러뜨리고야 신부님들을 볼 것이고, 신부님들을 쓰러뜨리고야 수녀님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그 다음에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경찰 투입을 거부했다. 그 말 때문인지 명령이 취소되고 학생들은 무사히 버스를 타고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김 추기경은 유신독재로 치닫는 박정희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이 터진 뒤 김 추기경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박 대통령이 "종교는 마음을 순화하고 위안을 주는 것이지 정치에 간여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고 말하자 잠시 후 김 추기경이 답했다.
"마음이 순화되고 순수하기를 원하신다면 이 세상이 윤리 도덕적으로 향상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윤리 도덕은 저 혼자 지킨다고 향상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 사회, 인간관계, 윤리 도덕에서 정치 경제를 빼놓고 그것이 과연 설 수 있느냐, 모든 것을 빼놓은 종교 윤리 도덕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 수장의 이 발언은 이후 가톨릭이 민주화의 구심점으로 자리잡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것을 계기로 정의구현사제단이 조직됐고, 이들이 개최한 시국기도회에서 김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이들의 발길에 힘을 실었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김 추기경은 중요한 고비마다 '정치적 발언'을 피하지 않았다. 1986년 10월 20일 김 추기경은 로마에서 대통령 직선제 실시를 주장했다. 당시로는 '폭탄 발언'이었다. 이듬해의 4.13 호헌 조치에도 정면으로 반대했다.
김 추기경은 5공 말기에 저질러진 인권 탄압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1986년 7월 21일 명동성당에서 '성(性)고문 사건'의 권인숙 양을 위한 미사를 집전했으며, 1987년 1월 26일에는 '박종철 군 추도 미사'에서 전 정권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 도대체 있느냐, 아니면 총칼의 힘뿐이냐 하는 회의가 근본적으로 야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다시 국민인 우리에게 이런 정권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중대한 양심 문제를 던지고 있다.”
1987년 9월 동료 순교자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는 시위중에 숨진 이한열군과 근로자 이석규씨 등의 죽음을 거론하며 6.10항쟁의 의미를 정리했다.
"정치적.경제적 억압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폭력과 무질서와 인간 타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죄 없는 대학생 이한열 군과 근로자 이석규 군이 젊은 피를 뿌리며 죽어갔습니다.…지난 6월 전국을 뒤덮은 민주화의 함성도 인간을 섬기는 정치, 인간을 위하는 경제, 그리고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국민의 기본 권리와 신성한 인권의 한 맺힌 표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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