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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공주가 최악의 신붓감이었다고?
대만에서 발행되는 <역사월간>지에 흥미로운 글이 실렸습니다. 대만 정치대학 역사학과 왕쇼우난 교수에 의하면, 당나라 때의 사람들은 공주의 남편인 부마가 되는 일을 부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상당히 기피했다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요?
황실과 인연 맺기 싫어했던 당나라 사람들
송대에 살았던 진세미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부마의 지위를 얻기 위해 목숨까지 내걸었고, 실제로도 목숨을 담보로 한 대가를 치르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일은 당대로 넘어오면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당 선종 대중 11년(857년), 황제는 그해 신과에 급제한 진사들 중에서 사윗감을 고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진사 왕휘가 후보로 거론되었는데요, 이 소식을 들은 왕휘는 당장 재상 유전의 집으로 달려가 울면서 “제 나이가 이미 마흔을 넘겨 노쇠한데다가 병치레도 잦아 결코 공주를 맞을 자격이 안되니 부디 황제께 고해 저를 부마로 삼지 말아주옵소서.”라고 고했습니다. 송대의 진세미는 부마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반면, 당대의 왕휘는 부마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죠. 또한 당 헌종 때에도 공경대작의 자제를 공주와 혼인시키려 했으나, 대신들이 하나같이 회피하거나 숨었다고 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당 현종이 여동생 옥진공주를 방사(方士) 장과에게 시집 보내려 하자, 장과는 “공주를 처로 삼으면 공연히 관부의 관리감시만 받게 되니 얼마나 무서운 일이오?”라며 한탄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 때 황제의 사자가 장과의 집에 도달해 옥진공주와 맺어주겠다고 말하자, 장과는 크게 웃으며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위가 높지 않은 방사조차 공주와의 혼인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의 공주에 대한 인상이 상당히 나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공주를 처로 맞이하는 것이 상당히 무서운 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관대작의 자제들은 당연히 부마를 기피하였고, 헌종 때까지 귀족 출신의 부마가 없을 정도였지요.
상황이 이쯤 되니 공주가 적절한 신랑감을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부마는 명문 집안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해 줄 집안의 권세가 없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공주와의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단 한 번 황실과 인연을 맺으면 그 집안은 후대에도 대대로 황실과의 혼인관계가 계속됩니다. 즉, 공주들이 계속 그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는 거죠. 이것이 바로 중국인이 말하는 친상가친(親上加親)의 관념입니다. 그래서 황실과의 관계가 매우 밀접한 가문이 생겨나게 되었죠. 당대에는 크게 네 개의 가문이 유명했습니다.
양귀비 일족
양귀비가 당 현종에게 시집가고, 사촌오빠 양기와 양감이 태화공주, 승영군주와 결혼했고, 양국충은 만춘공주와 연화군주를 며느리로 맞았습니다.
안사의 난 진압을 도왔던 곽자의 일족
곽자의의 아들 곽애가 승평공주와 결혼했고, 손녀는 헌종의 정비 곽태후가 됩니다. 손자 곽총과 곽섬은 각각 한양공주, 서하공주의 부마가 되었습니다.
무측천 일족
무측천은 황제 즉위 전 고종의 정실 황후였죠. 무측천의 조카 무유지의 딸은 황실로 시집오는데, 그가 바로 현종이 반평생 동안 사랑했던 무혜비랍니다. 무측천의 또 다른 조카들도 각각 안락공주, 용태공주, 신도공주를 처로 맞았습니다.
성당 때의 세도가문 위황후 일족
위황후는 중종의 정실이었고, 그의 여동생도 황실로 시집갔습니다. 위황후의 사촌 위탁은 안정공주와 결혼하고 그의 손녀는 후일 덕종의 비인 위현비가 됩니다.
위에서 열거한 가문은 모두 원래부터 사회적 지위가 탄탄한 명문 귀족가문이 아니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공주와의 혼인을 통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해야 했죠.
왜 다들 공주라면 손을 절래 절래 흔들었을까
1. 당대 공주들의 품행이 부덕해서
다른 왕조에 비해 희한하게 유독 당대 공주들에 대한 나쁜 기록이 많습니다. 특히 출가 후에 저지른 부덕한 행실이 많은 편인데요, 고조의 딸 용가공주는 두봉절과 결혼 후 유부남인 양예와 사통했고, 태종의 딸 합포공주도 이름난 집안으로 시집가서 중과 바람을 피웠습니다. 중종의 딸 안락공주는 남편의 사촌형제와 사통했습니다.
그 외에 성격이 난폭한 공주들도 많았습니다. 덕종의 딸 의양공주는 교만방자함이 지나쳤는데, 남편 왕사평은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해 공주와 크게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덕종은 크게 노하여 공주를 궁중에 구금시키고 왕사평까지도 가택 연금을 당했습니다.
2. 집안 예절과 의식 문제
공주는 황제의 딸로 매우 존귀한 신분입니다. 그런데 더욱이 신분을 낮춰 시집을 가게 되니 시부모와의 예절 문제가 충돌을 빚기 십상이었습니다. 정상 가정과 반대로 시부모가 며느리를 군신의 예로써 윗사람으로 섬기고 문안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러니 며느리를 모셔야 하는 시부모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이 당연했습니다. 당의 역대 황제들은 이 문제점을 인지하고 결혼한 공주가 한 집안의 며느리이자 아랫사람으로서 시부모를 모시도록 수 차례 조서를 내렸으나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앞서 곽자의의 아들 곽애가 승평공주를 처로 맞았다고 말한 바 있지요. 어느 날 곽자의의 생일을 맞아 그의 자식과 며느리들이 모두 축하 인사를 드렸는데, 오직 승평공주만이 가지 않았습니다. 곽애는 화가 나 승평공주를 독촉했으나, 승평공주는 “내가 군이고 그는 신이거늘, 군이 신에게 축수를 드리는 법도가 어디 있답니까?”라며 버텼습니다. “황태자께서도 부친께 축수를 드렸는데 며느리인 그대는 어찌 가지 않는 거요?” 그래도 공주가 버티자 화가 치밀은 곽애는 공주의 뺨을 때리고 맙니다. 승평공주는 울며 황궁으로 달려가 모든 사실을 부황에게 고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곽자의는 깜짝 놀라 한달음에 입궁하여 대종에게 용서를 구하였는데, 다행히 대종은 죄를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윗사람으로 대접받으려는 공주와 며느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부모의 갈등이 종종 발생해 공주 며느리가 기피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3. 부마가 공주부에 예속되기 때문에
당대의 공주들은 보통 천 호, 많게는 천 사백 호의 봉읍을 하사 받았습니다. 공주의 봉읍은 모두 본인의 재산이 됩니다. 또한 공주는 공주부를 세워 자신의 지시를 따르는 관리들을 거느릴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공주가 시집갈 때 황제는 저택을 새로 지어주고 노복들을 내려 함께 데려가는데 인원수의 제한도 없었습니다. 공주가 이처럼 많은 혼수를 가져가기 때문에 부마의 집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신 부마가 공주부에 들어와 살게 되는데 이 때 부마는 공주부에서 어떠한 지휘권한도 없고, 모든 일을 공주만이 지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공주가 사망하면 부마가 삼년상을 치러야 하는 등, 남성중심주의의 당시 사회 하에서 부마가 된다는 것은 남자로서의 자존심과 권력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4. 부마가 되면 오히려 출세길이 막히기 때문에
당대에 공주와 결혼하는 남성은 부마도위란 관직명이 생기는데, 이것의 줄임말이 바로 부마랍니다. 부마는 공주와 결혼 후 곧바로 ‘삼품원외관’이란 관직명이 추가됩니다. 당대에 3품은 상당히 높은 품계로 재상이 이에 해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삼품원외관은 좀 다른데요, 원외관이란 것이 정식 관직이 아닌 이름뿐인 직책인 것이죠. 즉, 말은 3품이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관직이나 실권도 없었습니다.
물론, 부마라 해도 황제의 신임을 받아 중용된다면 정식 관직을 받는 것도 가능합니다. 당나라 총 210명의 공주 중 기혼자는 130명, 그 중 초혼자가 100명, 2번 결혼한 재혼자가 27명, 3번 결혼한 재혼자가 3명으로, 당나라의 부마는 총 163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재상까지 오른 사람은 단 두 명이고, 구경 수준의 관직에 오른 이도 10명을 넘지 않습니다. 나머지 부마들은 대다수가 정식 관직을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이는 황실에서의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일반 백성들처럼 밀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황제와 부마는 매우 사이가 멀었고, 장인과 사위의 관계보다는 정치적 관계에 더욱 가까웠습니다. 이러니 부마라고 특별히 황제의 신임을 받을 순 없었죠. 게다가 부마들도 재주나 학식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재능이 출중한 이들은 굳이 출세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부마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출처 http://xk.cn.yahoo.com/articles/071121/1/5ov6_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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