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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관"은 定立? 正立? 삶의 의미, 가치?? [朝聞道夕死可矣] [천상천하유아독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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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간도영유권 주장은 오해와 정보부족 탓"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2318425086330.htm


백두산 정계비라고 일컬어지는 사진과, 조선후기 지도들이다. 지도는 각각 조선방역지도, 조선팔도지도, 대동여지도, 대동여지전도, 팔도총도,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 해좌전도, 조선도, 아국총도, 동국대지도, 조선전도로 모두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조선인에 의해 조선에서 만들어진 지도들이다. 아마 다른 건 몰라도 대동여지도는 한 번 쯤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백두산 정계비에 대해 야후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이렇게 나온다.

백두산 위에 세운, 조선과 청(淸)나라의 경계를 표시한 비석. 1712년(숙종 38) 당시 청나라의 오라총관(烏喇摠管) 목극등(穆克登) 등과 조선관원들의 현지답사로 세워졌다. 1685년 삼도구(三道溝)에서의 청나라 관원 습격, 1690년과 1704·1710년의 중국인 살해사건 등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 청 두 나라 사이에 분쟁사건이 자주 일어나 청나라의 항의가 있었으며, 1711년에는 목극등이 압록강 대안 현지에서 조선의 참핵사와 함께 범법 월경 현장을 검핵한 일도 있었다. 1712년 청나라는 범법 월경사건들을 문제삼아, 백두산을 자국의 영역 내에 넣으려는 의도로 백두산에 올라 국경을 정할 계획을 세웠다. 그해 청나라에서 백두산의 변경을 사정(査定)하기 위해 목극등을 보내자 조선에서는 접반사(接伴使) 박권(朴權), 함경감사 이선부(李善溥) 등으로 하여금 그들과 함께 국경을 사정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늙고 허약함을 이유로 뒤로 처지고 접반사 군관 이의복(李義復), 순찰사 군관 조태상(趙台相), 거산찰방 허량(許樑), 나난만호 박도상(朴道常), 역관 김응헌·김경문(金慶門) 등 6명만 동행하여 목극등의 의사대로 정계비의 위치가 정해졌다. 천지 남동쪽 4㎞, 해발고도 2200m 분수령 위의 호랑이가 엎드린 듯한 바위를 그대로 비석의 귀부(龜趺)로 하여 높이 72㎝, 아랫부분 나비 55.5㎝, 윗부분 나비 25㎝의 정계비를 세웠다. 비에는 그 경계를 서쪽은 압록(鴨綠), 동쪽은 토문(土門)으로 한다는 것과 양국 수행원의 이름이 새겨졌다. 이때 목극등은 조선 관원들에게 부탁하여 토문강 줄기가 중간에 땅 속으로 들어가서 경계를 확인할 수 없는 곳곳에 돌 또는 흙으로 돈대(墩臺)를 쌓아 아래쪽 강물에까지 연결하여 범법 월경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비로소 조선·청 두 나라의 경계선이 확정되었다. 그 뒤 1881년(고종 18) 청나라에서 간도의 개척에 착수하자 조선은 어윤중(魚允中)·김우식(金禹軾)을 보내어 정계비를 조사하게 한 뒤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하였다. 1909년 일본이 남만철도의 안봉선(安奉線) 개축문제로 청나라와 흥정하여 남만주의 철도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지방을 넘겨주었다. 백두산정계비는 1931년 만주사변 직후에 없어졌다. 가만 보면 뭔가 이상하다. 분명 사람들은 말한다. 조선후기 간도는 우리 영토였다고. 백두산 정계비에 쓰여진

아마 여기에 나오는 "서쪽으로는 압록, 동쪽으로는 토문으로 경계를 삼는다.서위압록 동위토문 (西 門)"라고 하는 부분이 흔히 사람들이 간도를 조선의 영토였다고 주장하는 근거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토문土門이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의 지류인 도문圖們이고 따라서 그 사이의 간도는 우리땅이라는 건데... 만일 그렇다면, 그러니까 즉 백두산정계비가 간도를 조선의 영토라 가리키고 있다면, 최소한 이 비문이 쓰여지던 당시 조선은 물론 정계비를 세우는 것을 주도한 청나라에서까지도 간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그런 비석도 세우고 비문도 적어 넣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보는 바와 같이 조선 후기, 16세기 이후 국가에 의해, 혹은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지도들을 보면 간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혹시 모르겠다. 이 지도들 말고 다른 지도 가운데 간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한 것이 있는지. 다른 누구도 아닌 조선인 스스로 그린 지도 가운데 간도를 조선의 영토라 명확히 한 지도가 과연 이 밖에 얼마나 있을지. 그러나 최소한 조선 조정에서 나서서 제작한 지도까지 아우른 이들 지도만으로 비추어 볼 때 당시 조선인들이 두만강 이북에 대해 자신들의 영토로 여기고 있었는가는 분명 회의적이다.

과연 우리가 믿는 바대로, 우리가 간절히 믿고 있는 것처럼 조선인들은 스스로 간도를 자신의 땅이라 여기고 있었을까? 조선은 물론 청나라까지 간도를 조선의 땅이라 여겨 백두산 정계비를 그리 만든 것일까? 백두산정계비를 주도해서 세운 청의 사신 목극등은 매우 위압적으로 강제하듯 정계비를 세웠다는데, 정계비에 나오는 토문이 도문이라면서도 당시의 지도들은 하나같이 두만강 이남만을 자신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을까?

사실 답은 나와 있다. 인정하기 싫어 애써 무시하고 있을 뿐. 오늘 신문기사에 나온 바대로 약간의 오해와,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어차피 조선인이 넘어가 살고 있던 간도를 어떻게 해 보려던 고종의 욕심이 빚어낸 거짓된 신화다. 여기에 더해 외교권을 빼앗겼던 시기 일본에 의해 간도의 영유권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이 일본 탓이다."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반일감정을 부추겨 더욱 기정사실화한 것이고 말이다.

청이 워낙 어렵던 시절이니 잘만 했으면 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제가 간도협약으로 청과 국경선을 확정한 것도 그만큼 조선의 주장이 먹혀들어갔다는 뜻일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고종의 무능과 일본제국주의의 집요하고도 철저한 침략정책으로 말미암아 대한제국은 멸망했고, 그들이 내세운 명분이라는 것은 허공에 붕 떠버렸다. 남은 건 역사적 사실 뿐인데, 역사적 사실은 세종 이후 조선이 한 번도 대외적인 영토확장에 나선 적이 없으며, 심지어 청의 황제 앞에 조선의 국왕이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 상황에 무슨 힘이 넘쳐서 간도씩이나 차지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이런 명확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조선에는 와보지도 못한 서양인이 만든 지도만을 가지고 간도영유권을 주장하는 학자들을 보면 그들이 과연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인가 싶기까지 하다. 대한제국시대도 아니고, 간도를 어떻게 해 보려던 고종이 죽은 지도 어언 한 세기가 다 되어가는 이때, 반일감정과 민족주의를 이용해 한 번 큰 걸 낚아보려는 그런 속셈인가?

그래도 이렇게 가끔은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나라 학계가 희망이 있다. 황우석의 사기를 밝혀낸 것도 결국 우리나라 학계 스스로 아니던가. 젊은 학자들과 전공자들이 앞장서서 언론과 잘못된 애국주의가 만들어낸 신화로부터 황우석이라는 실체를 끄집어냈다. 역사학계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주장들이 나와 수없이 많은 신화들로 점철된 우리나라 역사로부터 역사 그 자체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참, 아마 이런 주장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들 지도들이 모두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실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보았다. 가끔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어떻게 미국에 의해 패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 정도 행정력에 그 정도 기술력에 어차피 조선을 식민지로 두고 있는 이상에는 별 쓸모도 없을 일에까지 신경을 기울이는 치밀함에. 가히 무소불위가 아닌가 말이다. 전혀 의미없는 가정이다.

아, 또 하나 실효지배에 대해서는 조선에서 간도에 지방관을 파견하고자 시도한 것은 고종 이후다. 그 전까지는 조선의 농민들이 월경해 거주한 일은 있지만 조선의 행정력이 실제 미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이 공도정책을 쓰고, 일본 어민이 와서 고기잡이를 했다고 독도를 일본이 실효지배한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실효지배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고종 이후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결국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과연 고종 이전에 간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던가? 그게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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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옛 지도
2006/09/04 오후 12:19 | 간도 동북공정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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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17~19세기 무렵 우리나라와 서양에서 그린 고지도 대부분에서도 간도는 우리 영토로 나타난다. 18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지도인 `도성팔도지도(都城八道之圖)'(사진왼쪽) 함경북도편에는 간도지역이 우리 영토로 분명히 기록돼 있다. 특히 이 지도에는 토문강(土門江)과 두만강(豆滿江)을 분리해서 명기했다. 보곤디(1750년) 지도에서도 옛 만주족 땅이자 한반도와 인접한 중국 간도지역이 18∼19세기까지 우리 영토였음을 입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http://kr.blog.yahoo.com/winker0225/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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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上땅 찾(아주)기?


조國땅 찾(아주)기?



내 땅이라곤 한 평도 없으니,
조상땅이라도?
무덤들도 필요, 쓸모있는 땅이기에!?!!
하물며? 우물며??


왜놈들이 말아먹은 간도땅은?
6.25내란범집단이 차지한 이북땅은?
독도해역은?
대륙붕수역은?


나의
家門의 수치??

나라
國집의 수치??




'조상 땅 찾아주기' 신청 횡재한 후손들 많네
07/10/26 (금) 오전 8:43   [여호와여래십호천인사]



대주이가 말아 먹은? 독도는 일본 땅~
영새미가 게워 먹은? 대륙붕도 일본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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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답은 나와 있다. ...
일제가 간도협약으로 청과 국경선을 확정한 것도 그만큼 ...

솔직히 이런 명확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어 ...

그래도 이렇게 가끔은 진실을 말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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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놈들이 간도를 팔아 먹고?
내란범 로태우가 로스께에게 막 퍼주며? 위헌법률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씩? 나아가
영새미와 짝하여 유엔이 승인한 한반도상 유일 합법국 대한민국 북방을 뚝 짤라 로스해 먹고?
영새미는 대륙붕까지 게워 먹고?
07/10/26 (금) 오전 9:17   [여호와여래십호천인사]
대주이와
로무현은 땅굴은 부족하다? 금강산 해상, 육상 통로에, 개성공단 통로로도 부족하다?
휴전선을 비벼드릴깝쇼? NLL부터 비벼드릴께요? 달라는 대로? 알아서 막? 진심으로~??

비빔밥하면 전주 '명(박)근(혜)비빔밥'? 명근이 함께 맛있게~?
결과는? 이명밥? 명박밥. 명박이 혼자 냠냠냐~ 양박, 피박, 후장 박살~ 중??
07/10/26 (금) 오전 9:17   [여호와여래십호천인사]


내 소유의 땅이라곤 1평도 없었는데,

99+99+198+116+132 = 644㎡ + 한 두어 곳 미확인.
212㎡짜리 1곳은 상속권 없는 당숙부가 14년전에 이미 씁싹~ 냠냠냐~?
지도상? 등기부상 내 땅 아닌 땅이 내 땅이라는 판.

6.25 내란범집단이 소유하고 있는 북방은?
내란범 로태우와 영새미 덕분에 유엔이 다시 분단? 대한민국을 양국으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대한민국 땅은?
07/10/26 (금) 오전 9:54   [여호와여래십호천인사]

간도에 이어,
북방 지역에 이어,
대륙붕과 독도에 이어,(간도에 누가 살든? 독도에 누가 살든!)
휴전선 이남의 땅굴은 누구의 땅?
금강산 통로, 개성공단 통로, NLL에 이어,
(NLL을 비비면? '명근비빔밥'이 잘도 명박+근혜의 밥?)
제주도 밑 마라도까지 말끔히 말아 먹히고 나야! 아, 하하하?
07/10/26 (금) 오전 9:55   [여호와여래십호천인사]













뉴스 : 10억원대의 세금 포탈 혐의를 받고 있는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팬텀엔터테인먼트 최대 주주 이모씨에게 청구됐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전날 검찰이 이 회사 관계자 3명에게 청구한 영장에 이어 최대 주주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마저 기각되..


뉴스 : [쿠키 사회] 현직 검사장이 대형 연예기획사 회장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을 공개 비판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박철준 검사장(1차장)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4일 18억원의 세금을 포탈하고 회삿돈 62억여원을 횡령한 혐의..


뉴스 : 형사 피고인이 공탁금을 내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구속에서 풀려나자마자 피해자 몫인 공탁금을 다시 가져가 버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형만 감경받고 공탁금을 회수해가는 것을 막기 위해 ..

6개월간 반복되어온 법원·검찰의 갈등이 증폭돼 ‘법관의 독립성’ 시비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이번에는 불법 집회 구속영장 재기각과 관련, 검찰이 판사의 독립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나서자 법원은 “국가 기강이 무너진 느낌”이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검찰이 법원의 민감한 아킬레스건까지 건드리면서 법원도 감정적인 대응으로 맞서는 양상이다.

◆법·검, 이번엔 ‘예규(例規)’ 혈투

법원과 검찰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불법 시위자 6명에 대한 구속영장 재기각 직후인 지난 19일부터는 ‘예규 싸움’을 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대외적으로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과 대법원의 공보관이 나섰지만 실제로는 검찰 수뇌부와 대법원의 싸움’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대검 수뇌부는 지난 19일 오후 5시30분과 8시 서울중앙지검이 두 차례 보도자료를 내는 과정에서 발표 수위와 자구 수정문제를 놓고 긴밀히 연락했다. 하루 뒤인 20일 법원도 대법원 공보관이 ‘입장’을 밝혔지만, 대법원 수뇌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검찰은 이번에는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을 직접 겨냥했다. 한 검찰 간부는 “전두환 정권 시절(83년)에 사법 통제를 위해 만들었다가 유야무야된 ‘중요 사건 접수·종국 보고 예규’를 더욱 강화한 예규를 지난 7월 10일부터 시행해 왔다”고 했다. 그는 “이 대법원장 취임 이후 대법원의 관료화·권력화가 가속화됐다”고 주장했다. 종전엔 구속영장만 보고했지만 지난 7월 이후에는 압수수색영장까지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검찰의 수사 상황을 법원 간부들이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장 판사의 독립된 결정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검찰 간부들은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간부들은 “일개 부장검사가 어떻게 대법원 예규를 고치라 마라 할 수 있느냐” “대응할 가치도 없는 검찰의 비상식적인 행태”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고법부장 구속 때부터 6개월째 싸움

양측 갈등은 지난 7월 법조 비리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법원은 조관행 고법부장판사의 구속에 부정적인 기류였다.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제한적으로 발부해 한때 대립하기도 했지만 검찰은 8월 조씨의 구속을 관철시켰다. 검찰의 완승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달 만에 전세는 역전됐다. 이 대법원장이 ‘공판중심주의’ 기치를 내걸고 검찰 비하성 발언을 했지만 여론이 법원 편에 서면서 검찰이 코너에 몰렸다. 지난 11~12월 론스타코리아 대표 유회원씨에 대한 사상 초유의 6차례 영장 기각사태(구속영장 4회와 준항고, 재항고 기각)는 전세를 또다시 검찰에 유리하게 역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대법원장이 외환은행 민사사건의 변호사였던 점과 ‘법원·검찰 간부 4인 회동’에서 법원측이 유씨의 불구속 기소를 주문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법원이 곤경에 빠졌다.

◆감정 골 깊어 접점 쉽게 못 찾아

이 과정에서 양측은 “검찰에 인분(人糞)을 들이부은 격”(중앙지검 3차장)↔“인분 같은 소리 하네”(중앙지법 수석부장)라는 저질 언사까지 주고 받으며 피차 감정이 크게 상했다.

양측은 또 구속 개념에 대한 현격한 차이도 드러냈다. 검찰은 “로비 부분 수사를 위해(론스타사건)” 또는 “불법 폭력시위 근절을 위해 구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법원은 “별건 구속은 불가능하다”거나 “증거가 미흡하다”는 등으로 맞섰다.

뒤늦게 김성호(金成浩) 법무장관이 “지나치게 추상적인 형사소송법의 구속요건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실화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 세 가지 구속 기준(죄를 범했다는 의심이 있고, 증거 인멸 염려와 도주 우려가 있을 때)을 포함, ▲일정 형량 이상 중대 범죄 ▲일정 재범이나 보복 범죄 우려 등을 더 넣자는 얘기지만 대법원은 “지금도 범죄의 중대성과 보복 범죄 우려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싸움은 법조계의 주도권 다툼까지 연결되어 있어 좀처럼 해결점을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법조계에 대한 불신만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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