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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노사모 없으면 대통령 못됐고 대선자금 수사받았다’

2007.06.09 20:17 | ������ ������ [���������] | 여호와여래십호천인사

http://kr.blog.yahoo.com/ohsilv/8539 주소복사




[스크랩] 노대통령, ‘노사모 없으면 대통령 못됐고 대선자금 수사받았다’

원본: 야후! 뉴스 [원본보기]


뉴스 : - CNBNEWS , CNB뉴스 - “돈 정치를 추방할 수 있었던 것은 노사모 덕분입니다. 노사모가 있어서 제가 돈을… 노사모가 돈도 많이 모아 주었지만 돈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가..


ohsilv  |  2007.06.09 20:03 / 2007.06.09 19:50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門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門 ()= 十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門 1 2004헌나1 대통령(노무현) 탄핵 사건 결정요지 2 2004헌나1 대통령 탄핵사건의 결정문에 소수의견을 밝히지 않은 이유 3 2004헌나1 대통령(노무현) 탄핵 결정 전문 / 10 2004헌마554?566병합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위헌 확인<?


노대통령, ‘노사모 없으면 대통령 못됐고 대선자금 수사받았다’<노 대통령 특강 전문?> 촛불잔치를 못해서 위헌, 위법, 불법, 사기, 부작위 탄핵심판으로, 의법, 절대적 당연무효 법률행위로써! 대권, 국권을 절취, 강취, 사취해 주었을 리 없으니 대통령 못됐고? 불법대선자금 10분의 1이 넘었어도? 시뻘건 노사모 덕분에 똥배짱으로 스스로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아 불법대선자금 수사중간에 끝. 제대로 받지 않았다? " 30


자신의 대선자금수사와 관련, “10 분의 1 안 되는 거 맞습니다. 자꾸 다른 돈을 넣어 가지고 10 분의 1 이러는데, 선거 때 썼던 거 생각하면 10 분의 1 안 됩니다. 안 되는데," <"노 대통령은 또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보아서 대선자금에 있어서 10분의 1을 넘지 않는다, (성격에 있어서 약간의 논란이 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것이 포함되느냐 되지않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넘더라도 수억을 넘지는 않는다 29


"그러나 논란이 된 '10분의 1 넘으면 정계은퇴' 발언과 관련해서는 "내 기준으로 10분의 1 안 넘는다"고 선을 그었다. 또 "(10분의 1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라는 것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이와 같은 '셈법'과 반론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온 것이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의 대선자금 중간수사결과 발표 직후 10분의 1이 넘는 문제가 거론되자 "일반적인 것과 청와대는 계산이 다르다"고 선을 ㅡ" 28


"노 대통령은 "그렇게 하면 검찰이 발표한 113억<?오마이뉴스> 중에서 상당히 많은 금액이 아마 제외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대선자금 중간수사결과를 종합하면 한나라당과 노무현 대통령 대선캠프의 불법자금 규모는 각각 823억원 대 114억원으로 추정되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제외되는 것이 약 30억 가까이 된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대선 후에 측근들이 받았다고 하는 이런 등등의 돈을 제외해야 27


10대 1의 의미가 있다"고 부연했다."<10분의 1이 넘으면 정계은퇴를, 10:1의 의미로 둔갑?> 어떠하든 114억원중-30억원가까이=84억원上당, 113억<?>원중-30억원가까이=83억원上당, 823억원上당의 10분의 1=82억3천만원 // (84억원(=1억7천만원 넘고), 83억원(=7천만원 넘네) 上당은 10분의 1을 넘은 것이 확실!~!! 한화 회장이 대선불법자금수사상 출국금지조치 하루전에 미국으로 줄행랑? 이후 흐지부지만?? 10분의 2? 3? 26


"‘10분의1 짜맞추기 수사’ 의혹 일기도" / "검찰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중간 수사 발표를 지금 하는 것”이라면서 “이후에도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검찰은 두 달 뒤인 5월 21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노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 여택수씨 등 정치인 15명을 비롯해 37명을 사법처리하고, 불법자금을 제공한 기업인 14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25


또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대선자금 모금에 관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여야가 받은 불법자금 비율은 중간 발표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이 전 총재는 “대선 자금에 관한 일은 모두 내가 시켜서 한 일이기 때문에 검찰은 나를 사법처리 하라”고 요구하면서 “그러나 검찰은 정치적 계산으로 나를 무혐의 처리하고 노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주장했다"< 24


"책을 보니까 ‘깨어있는 소비자가 기업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견제할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이 나와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안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지요. 정보네트워크로, 조직하기 어려운 것은 정보네트워크로 더 보완하고 오늘의 인터넷이 그런 기능을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23


"깨어있는 시민-정치의 소비자이자 주권자 / 소비자 권력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불량품 추방은 가능하지만 독점과 불공정 거래라고 하는 시장의 구조를 제어하는 데에는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이제 소비자 운동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깨어있는 소비자’, 더 나아가서 ‘깨어있는 시민’으로 가야 합니다. 시민은 전통적으로 권력의 주체입니다. 분산되어 있을 뿐이지요. 22


정치의 소비자, 이 말은 그러나 분명한 주권자입니다. 주권자로서 시장을 제어하고 또 정치를 제어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여기에는 권리를 위해서 투쟁하지 않는 사람도 포함돼 버린 것이지요. 전 국민이 초기 민주주의시대의 시민과 같은 시민 자세로 무장이 됐을 때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행동하는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 이것이야말로 국민주권의 내실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21


"이거 정치윤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정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국회에 왕창 들어와 가지고요.... 제대로 훈련받지 못했지요." "우리 정치가 책임정치로 가야 하는데요, 정치하는 사람도 책임을 져야지만, 정당 하는 사람들, 정당의 지도부, 그 국가의 지도자에 대해서 지도력을 좀 세워 주세요. 지금처럼 이렇게 흔들면요, 살아남을 정권 없습니다. 살아남을 정당 지도부도 없습니다. 하나도 도와주지도 않고, 20


어디 국민들한테 나가도 지도부 하나만 딸랑 내보내고 따라가는 국회의원도 없고요, 그런 정당이 어떻게 지도력이 설 수 있겠습니까?" "정치윤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대안을 가지고 반대해야 하고요, 규칙으로 승부하고 결과에 승복하고 그리고" "책임 있는 사회, 책임 있는 정치,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언론도 시민도 이제 책임 있게 행동하자...."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 門 19


의법, 법통 아닌 밥통盧무현의 절대환희지절? "개들도 즐겨 짖더라"?? 그래서 더욱? ?? 대한민국헌법 제111조 ④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참말로, 저렇게 명백한 명문의 규정에 대해서, 泥전투狗장 국회 泥狗들은? 모호한 선거법 나부랑이보다 더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헌법은 준수, 수호하고서?? 무슨 유식한 꼬라지들로 짖더라? ?? 18


"대통령(노무현) 탄핵 결정 전문"에 의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월권과 직권남용, 위헌, 위법, 불법, 사기, 부작위 탄핵심판 선고판결에 대해서는? 그 내란급 국헌문란의 대역죄를 범한 법률행위에 대하여 짖어 대더라?? 의법, 절대적 당연무효 법률행위!~!!에 대하여, 개도 안 짖더라? ?? 승복~ 굴伏?? 17


의법, 절대적 당연무효 법률행위! 에 대해, 泥전투狗장 국회 여왕병자 박근혜와 차떼기 한나라당부터가, 절대 적법한 국회의 고유특권인 탄핵권행사를 위헌, 위법, 불법, 사기, 부작위로 침탈, 강탈, 사취해 버린 판결에 대하여, 탄핵심판 결과에 따른 한나라당의 입장 2004-05-14 /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승복한다(논평) 2004-05-14 한나라당 대변인 한선교 <대표 박근혜> 16


의법, 무효대통령! 위헌대통령! 위법대통령! 불법대통령! 사기대통령! no대통령! 부활대통령? 좀비대통령? 중임대통령? 사이비대통령! 개판대통령? 깽판대통령? 빨갱판대통령? 실체대통령? 대통령직 장물대통령! 합법대통령? 비합법대통령! 적법대통령? 부적법대통령! 의법, 법통 아닌 밥통盧무현에게 <임기?>까지 더 해 잡수십쇼~? 노무현의 적법대통령 임기는? 탄핵심판 선고 의법, 절대적 당연무효 법률행위로! 15


2004. 5. 14. 끝.!! ②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2004. 5. 14. + 60일 = ?) 아니, 벌써~!! "국민이 대통령"?!! 노무현 다음의 대통령선출 국민투표권도 절취, 사취, 강취해 버린 지가, 아? 옛날이여~ 탄핵권에 이어, 나아가 관습헌법사항 나발에 국회 입법권조차 침탈, 강탈, 사취당한 꼴에 대권을~?? 14


"국가 전반 및 헌법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아니할 수 없다. 대통령 스스로가 법을 존중하고 준수하지 않는다면, 다른 공직자는 물론, 국민 누구에게도 법의 준수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대통령(노무현) 탄핵 결정 전문> 13 


"법치국가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위헌, 위법, 불법, 사기, 부작위 심판은 국가 전반 및 헌법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아니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부터가 법을 존중하고 준수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법자는 물론, 국민 누구에게도 법의 준수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관습헌법?> 12


저러한 관습헌법하에?? "특히, 짧은 민주정치의 역사 속에서 국민의 헌법의식이 이제야 비로소 싹트기 시작하였고, 헌법을 존중하는 자세가 아직 국민 일반의 의식에 확고히 자리를 잡지 못한 오늘의 상황에서,"<2004헌나1 사건명 대통령(노무현) 탄핵 결정 전문> 11


의법, 절대적 당연무효 법률행위로써! 내란급 국헌문란의 대역죄를 완전범죄로? 국회의 적법한 탄핵권을 침탈, 강탈, 사취하고 대통령직권(대권, 국권)을 절취, 사취, 강취한 데 더하여, 의법, 절대적 당연무효 법률행위로써! 내란급 국헌문란의 대역죄를 완전범죄로? 관습헌법사항 나부랑이 헌법을 제정, 현행 성문헌법상의 입법권을 침탈, 강탈, 사취한 헌법재판소! 10


그러한 헌법재판소의 장을, 의법, no대통령 노무현이가 no재판관중에서 임명까지 해 두었는데, 어느 누가 어느 누구에게 법의 준수를 요구할 수 있을꼬?? 저 관습헌법하, 적법한 요구? = 위헌행위! // “선거중립 조항 위헌” ‘선관위 결정’... : 盧 "어디까지가 선거운동이고 정치중립인지 모호한 구성요건은 위헌" = 노의 勝勝장!? 언제까지나~? 언제까지~?? 9


헌법재판소법 제53조 (결정의 내용) ①탄핵심판청구가 이유있는 때에는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을 당해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옳다 = 옳다 // 아니라 = 아니라] 형사소송법 제327조 (공소기각의 판결) 다음 경우에는 판결로써 공소기각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 2. 공소제기(탄핵소추)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 8


만法귀二? 저 명백한 명문의 법규정 아래 // "I. 탄핵소추의 적법여부 / ~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국회의 탄핵소추절차가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되었다는 주장은 이유없다. 3. 그 외 탄핵소추가 부적법하다는 주장도 이유없다."<대통령(노무현) 탄핵 사건 결정요지>[옳다 = 옳다 // 아니라 = 아니라] 7


저렇도록 절대! 적법한(이유있는) 탄핵소추(탄핵심판청구)에 대하여 기각하는 결정을 선고하여, 의법 절대적 당연무효 법률행위로써! 내란급 국헌문란의 대역죄를 완전범죄로써!? 절대 적법한 탄핵권을 침탈, 강탈, 사취하고 대권, 국권, 국민의 대통령선출 국민투표권까지 절취, 강취, 사취해 버렸는데, 다음 대통령선출 결정권은? 국민투표?? : "대통령은 선거 안나와도 다음정권 지킬 의무"? = <절대=허상:현실=空權:實權 6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결정문에 기재할지 여부는 법률적용상의 문제이지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재판관은, 독립하여 심판한다.") "그러므로 개별 재판관의 의견내용이나 그 의견의 數 등을 결정문에 표시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평의의 비밀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는 법률상의 특별규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탄핵심판에 관해서는 평의의 비밀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 법률규정이 없다." 5


"따라서 이 사건 2004헌나1 대통령 탄핵사건에 관해서도 재판관 개개인의 개별적 의견 및 그 의견의 數 등을 결정문에 표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평의의 비밀유지와 재판관의 의견 표시에 관해 명문의 법률규정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 법률의 명문규정 없이...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4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공개할 국가적, 역사적 필요가 크다는 등의 모호한 주장에 근거하여 해석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사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결정서에 표시하는 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하여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준수할 의무를 부여한 헌법재판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이러한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2004헌나1 대통령 탄핵사건의 결정서에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표시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의 의견만을 기재하는 것이다. 끝."<대통령 탄핵사건의 결정문에 소수의견을 밝히지 않은 이유. 관습헌법? 불문헌법?> // 저렇도록 절대! 적법한 탄핵소추 = 절대! 이유있는 탄핵심판청구에 대하여, 기각을 할 수란 도무지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2


"명문의 규정도 없으므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심판해야 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기각하는 결정을 찬성한 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하여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준수할 의무를 부여한 헌법재판소법을 위반한 것일 뿐만아니라, 내란급 국헌문란의 대역죄를 범한 법률행위요, 그러한 법률행위는? 의법, 절대적 당연무효 법률행위! 노무현은? 무효대통령! 위헌대통령! ~ 부적법대통령!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1




http://www.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6928&id_yn=x#gm02
노대통령, ‘노사모 없으면 대통령 못됐고 대선자금 수사받았다’

13  = http://kr.blog.yahoo.com/ohsilv/8513 부끄러운줄을 알아야지~~














[스크랩]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비결   

 원문출처 : 박신의 하루를 열며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심어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1-13)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대면을 소망합니다. 그분과의 실질적인 교제를 통해 신앙을 더욱 성숙시키기 원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신자가 전심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되 끈질기게 찾고 또 찾으면 만나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들이 정말 간절히 그렇게 했는데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확신이 잘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가장 먼저 하나님을 정말로 직접 만나려 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는 잘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죄와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실체를 아무리 믿음이 좋더라도 아직도 죄에 찌든 인간이 대면하면 그 자리에서 소멸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실체가 아닌 인간적 이해 수준에 맞게끔 낮춘 대체 수단으로 인간을 만나주십니다.

물론 분명한 이미지나 음성을 통해 당신을 계시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통상적으로 널리 쓰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특수한 사람에게 특수한 목적이 있을 때만 그렇게 하십니다. 예컨대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세울 때에 떨기나무 불꽃의 형상 가운데 음성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는 80 노인 혼자서 지팡이 하나로 세계 최강대국 전체를 상대해야 하는 임무를 주신 아주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만약 신자가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을 헌신과 준비가 되어 있거나 하나님이 그럴 계획으로 일방적으로 찾아주는 경우라면 지금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가 하나님의 일은 먼저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직접 만나고 싶다는 기대 내지 소망만으로는 그런 대면은 절대 이뤄지지 않습니다. 또 설령 직접 계시가 이뤄져도 수단, 때, 장소 등은 인간의 예상과는 별도로 오직 당신께서 정하십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라는 인식부터 가장 먼저 확실히 해야 합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딤전1:17)입니다. 또 그분은 빛들의 아버지로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약1:17)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빛을 받는 가시적 형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그분은 빛들의 아버지로서 빛들을 지으시고 그 모든 빛들 넘어 계신 분입니다.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본다는 현상은 빛의 작용인데 빛을 넘어 계신 분을 인간이 볼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대신에 신자는 영이신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통해 보고 들으며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닮게 만들었다는 가장 기본적인 뜻이 바로 하나님과 영과 영으로 교통할 수 있는 유일한 영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그러나 하나님과 영과 영으로 교통한다고 해서 또 다시 초자연적 신비한 체험을 기대해선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함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0-12)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영적 교통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성경에 드러난 그분의 뜻을 잘 이해하는 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계시로 이미 그분과 교통이 이뤄진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도 영이신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요4:23,24)고 했듯이 예배드릴 때에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은혜를 받으면 바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단순히 감정적 흥분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분명한 뜻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너무 간단한 원리 아닙니까? 신자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이미 하나님을 만난 것이지 않습니까? 영적인 교통이 이뤄졌고 인격적 대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신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가 응답이 되거나 혹은 기도 가운데 그분의 뜻을 깨달으면 바로 그분을 듣고 보고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울부짖으며 전심으로 찾고 찾으면 만나주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하나님을 찾으면서 진심이 아닌 가식으로 또 전심이 아니라 그저 재미로 찾는 자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울부짖으며 기도할 때는 위급한 일이 있는 법이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을 만난 것 같지 않고 또 하나님이 구태여 전심으로 찾으라고 했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전심과 하나님이 원하는 전심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저 힘과 열심과 정성을 다하는 것이 전심(全心)인 줄 압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찾으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강조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 이 말씀과 함께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상황을 역으로 추적하면 이렇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심으로 울부짖으며 빨리 포로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의 기도에 하나님이 제대로 귀를 기울이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들 생각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선민 백성에게 이런 재앙을 허락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로 그분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교제란 벌써 서로간의 만남이 전제가 된 것입니다. 또 어떤 이와 대화하며 교제하려면 가장 먼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반면에 상대를 모르면 말은 주고받을 수 있어도 의미 있는 교제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상대와 말을 나누는 것은 서로 분명한 의도를 가진 만남이 아니라 우연히 스쳐 지나가다 마주친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이미 그분과의 대면은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역으로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한지 특별히 신자를 향한 근본 마음을 알지 못하고선 아무리 울부짖고 찾고 또 찾아야 그분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신자를 향한 생각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전심입니다. 또 그런 확신의 바탕에서 찾고 찾아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분의 신자를 향한 생각도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문제는 신자의 그분을 향한 생각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현실의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지 않으면 그분의 성품을, 심지어 그분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지 않습니까? 당장 눈앞의 문제만 빨리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니까 그분과의 만남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분을 만났다면 그 문제의 해결은 그분의 뜻과 방법과 시기대로 이뤄질 것은 너무나 틀림없지 않습니까?

더 쉽게 말해보겠습니다. 예배, 찬송, 기도, 말씀 볼 때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지 않습니까? 아니 우리는 이미 성령이 내주하는 하나님의 전이 되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또 다시 하나님더러 자기를 만나 달라고 찾고 또 찾아야 합니까? 그런 간구 자체가 이상하고 모순이지 않습니까?

지금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생각이 재앙일 것이라고, 즉 현실의 문제를 왜 빨리 내 방식대로 해결해 주지 않는지 의심과 불만을 갖고 있는 한에는 이미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나아가 내주하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의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진정성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는 전심의 상태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5/11/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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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신각라(愛新覺羅)’,


//


<아전인수>
제 논에 물을 잘 대는 자가 농사를 잘 짓는 자.
농사도 나름.
靈農, 天農, 神農, 心農, 人農, 狗弄<상 팔자? 개판엔? 개그, 코메디弄사가 으뜸?>, ...

愛新覺羅<全羅?>
애新각羅<新羅?>
愛신覺라<愛覺?>
天羅地망<天羅地?>


<고유명사>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民은"?<헌법 전문>

대한軍국?
대한官국?
大한民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대한민국 = 고유명사? 보통명사? 한국~ 降國~??
zh흘리~ 개? 코리ㅏㅇ~? 코리ㅓ~?

()=Some boast in chariots and some in horses, But we will boast in the name of the LORD, our God.
()=Some trust in chariots, and some in horses: but we will remember the name of the LORD our God.
()=Some trust in chariots and some in horses, but we trust in the name of the LORD our God.
()=有人??,有人??。但我?要?到耶和?我?神的名。
()=有人?車、有人?馬、但我們要提到耶和華我們 神的名。
()=今, わたしは 知った /主は 油注がれた 方に 勝利を 授け /聖なる 天から 彼に 答えて /右の 御手による 救いの 力を 示されることを.<豫수를 함부로 믿으면 실족하는 꼬라지 本.>
()=ある 者は 戰車を 誇り, ある 者は 馬を 誇る. しかしわれらは, われらの 神, 主のみ 名を 誇る.
()=ある 者はいくさ 車を 誇り, ある 者は 馬を 誇る. しかし, 私たちは 私たちの 神, 主の 御名を 誇ろう.
()=누구는 병거를 믿고 또 누구는 기마를 믿지만, 우리만은 우리 하느님 야후ㅡㅣㅣ의 이름을 믿사옵니다.
()=어떤 이는 병거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기마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曰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曰
ㅣ오은○ㄱ오○ㄴ의지하나ㅣ
ㅣㅡㅡㅡㅡ은ㅡㅡㅡㅡㅡㅡㅣ


[無혹호王지不智也]<맹자>

()=He has not dealt thus with any nation; And as for His ordinances, they have not known them. Praise the LORD!
()=He hath not dealt so with any nation: and as for his judgments, they have not known them. Praise ye the LORD.
()=He has done this for no other nation; they do not know his laws. Praise the LORD.
()=??他都?有??待?。至于他的典章,他?向??有知道。??要?美耶和?。
()=別國他都沒有這樣待過.至於他的典章、他們向來沒有知道。?們要讚美耶和華。
()=どの 國に 對しても /このように 計らわれたことはない. 彼らは 主の 裁きを 知りえない. ハレルヤ .
()=主はいずれの 國民をも, このようにはあしらわれなかった. 彼らは 主のもろもろのおきてを 知らない. 主をほめたたえよ.
()=主は, どんな 國¿にも, このようには, なさらなかった. さばきについて 彼らは 知っていない. ハレルヤ .
()=다른 민족은 이런 대우 받지 못하였고 당신 법령 아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어느 다른 민족에게도 그와 같이 하신 일이 없으시니, 그들은 아무도 그 법도를 알지 못한다. 할렐루야.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神//章//대//라
묘//구//口//니]<神묘章구大口라尼. 천手경>

[眞言勸공]
향수나열재자건성욕구공養지周圓~
須장가지지변화앙유삼보特사가지~
나무시方○남무시方口나無십方●~

법성원융무이相~?
법성원융무二相~?
법성원융無二相~? 이상~ 무??

승? 종浮圖교者?? 십승지도? ??

神 = 보통명사? 고유명사?
神의 고유명사, 如號 = ?

()=How can we sing the LORD'S song In a foreign land?
()=How shall we sing the LORD's song in a strange land?
()=How can we sing the songs of the LORD while in a foreign land?
()=我们怎能在外邦唱耶和华的歌呢。
()=我們怎能在外邦唱耶和華的歌呢。
()=どうして 歌うことができようか /主のための 歌を, 異敎の 地で.
()=われらは 外國にあって, どうして 主の 歌をうたえようか.
()=私たちがどうして, 異國の 地にあって 主の 歌を 歌えようか.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우리가 어찌 남의 나라 땅에서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서방정토극락세계 = ? 서역불경 = ??

()=Nor shall you make an oath by your head, for you cannot make one         hair white or black.
()=Neither shalt thou swear by thy head, because thou canst not make one         hair white or black.
()=And do not swear by your head, for you cannot make even one         hair white or black.
()=又不可指着?的?起誓,因??不能使一根???黑?白了。
()=又不可指著?的頭起誓、因??不能使一根頭髮變黑變白了。
()=また, あなたの 頭にかけて 誓ってはならない. 髮の 毛一本すら, あなたは 白くも 黑くもできないからである.
()=また, 自分の 頭をさして 誓うな. あなたは 髮の 毛一すじさえ, 白くも 黑くもすることができない.
()=あなたの 頭をさして 誓ってもいけません. あなたは, 一本の 髮の 毛すら, 白くも 黑くもできないからです.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나 검게 할 수 없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ㅡ<??>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은
헌법 제65조 제1항의 탄핵사유가 인정되는 모든 경우에
자동적으로 파면결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문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ㅡ,<??>

(명백한! 명문의 성문법, 강행규정, 죄형법정규정을, 해석씩?)
대한민국헌법 제65조
탄핵결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

헌법재판소법 제53조 (결정의 내용)
①탄핵심판청구가 이유있는 때에는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을 당해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
선고한다.

도올 쇠는?
道를(法을) 개판에 개똥으로 만들어 팔아 먹는 자에게는? 狗약聲서?? 經은 알기나? ??


()=For truly I say to you, until heaven and earth pass away, not the smallest letter or stroke shall pass from the Law until all is accomplished.
()=For verily I say unto you, Till heaven and earth pass, one        jot or one        tittle shall in no wise pass from the law, till all be fulfilled.
()=I tell you the truth, until heaven and earth disappear, not the smallest letter, not the least stroke of a pen, will by any means disappear from the Law until everything is accomplished.
()=我?在告???,就是到天地都?去了,律法的一点一?也不能?去,都要成全。
()=實在告訴?們、就是到天地都廢去了、律的一點一?也不能去、都要成全。
()=はっきり 言っておく. すべてのことが 實現し, 天地が 消えうせるまで, 律法の 文字から 一点一畵も 消え 去ることはない.
()=よく 言っておく. 天地が 滅び 行くまでは, 律法の 一点, 一畵もすたることはなく, ことごとく 全うされるのである.
()=まことに, あなたがたに 告げます. 天地が 滅びうせない 限り, 律法の 中の 一点一畵でも 決してすた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全部が 成就されます.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Therefore its name was called Babel, because there the LORD confused the language of the whole earth; and from there the LORD scattered them abroad over the face of the whole earth.
()=Therefore is the name of it called Babel; because the LORD did there confound the language of all the earth: and from thence did the LORD scatter them abroad upon the face of all the earth.
()=That is why it was called Babel --because there the LORD confused the language of the whole world. From there the LORD scattered them over the face of the whole earth.
()=因为耶和华在那里变乱天下人的言语,使众人分散在全地上,所以那城名叫巴别(就是变乱的意思)。
()=因為耶和華在那裡變亂天下人的言語、使眾人分散在全地上、所以那城名叫巴別。〔就是變亂的意思〕
()=こういうわけで, この 町の 名は バベル と 呼ばれた. 主がそこで 全地の 言葉を 混亂(バラル )させ, また, 主がそこから 彼らを 全地に 散らされたからである.
()=これによってその 町の 名は バベル と 呼ばれた. 主がそこで 全地の 言葉を 亂されたからである. 主はそこから 彼らを 全地のおもてに 散らされた.
()=それゆえ, その 町の 名は バベル と 呼ばれた. 主が 全地のことばをそこで 混亂させたから, すなわち, 主が 人¿をそこから 地の 全面に 散らしたからである.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주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남북평화통일과 세계평화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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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씨'와 '두음 법칙'.   2007/05/02 19:04


원문출처 : 말과 역사

성씨두음 법칙’.

 

 

 

 

turning_road.jpg

 

 

-‘돌아서 구부러진 길’,

(The Turning Road at L'Estaque/

Andre Derain , 1906)의 어느 [이미지].

우연한,

길 모퉁이의 정경(情景)도 그렇지만,

돌아 가는 길의 저쪽, 안 보이는 곳의 모습은,

또 얼마나, 매혹적일까? -

 

 

실로, 오랜만에,

우리네 어문(語文) 정책과 관련,

뜻있는 반전(反轉, turn-around)’이 이루어졌다.

신문에 나기로,

(연합 뉴스, 07-04-30),

, , ,

한글 맞춤법의 두음 법칙에 따라

이씨, 유씨, 나씨로 표기하도록 한,

대법원 호적 예규(96-10-25)에 대하여,

개인의 (),

오랜 기간 형성되고 유지돼 온,

일정한 범위의 혈연 집단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이름과 함께, 개인의 동질성을 표상하는,

고유명사’”라며, 예규, 인간의 존엄성을 다룬,

헌법 제10조의 이념과 가치에 반하므로,

위헌이며 무효라는 결정(07-04-30),

청주 지법에서 나왔다 한다.

참고로,

(연합뉴스, 07-04-24),

중국의 최대 성씨는 []()씨로,

13억 전체 인구의 7.25%, 93백만명이며,

다음은, []() 7.19%, []()씨의 6.38%이고,

2천만명 이상인 성씨는, 이들 외에, [](), [](),

[](), [](), [자오](), [](), [저우]() 씨등이며,

상위 100개의 성씨가, 인구의 84.77%를 차지한다고 한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청주 지법의 결정을 환영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

허나, 환영의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

우매한 나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법리(法理)는 잘 모른다.

허나, 결정이유에서 인용한 바의,

상징’, ‘기호’, ‘표상이란 어휘는,

어원(語源)’에 무지했던! [소쉬르](F. Saussure),

기호학(記號學)적 이론의 냄새가 물씬 나는데,

---대단히 미안하지만, 그리고,

아래에서 그 이유의 일부를 말씀 드리겠지만, ---

성씨는 어느 집단의 상징(symbol)’은 될지언정,

[씨니피앙](signifiant, 표현) [씨니피에](signifie, 내용),

그것을 구성한다는, 그래서,

---역시나, ‘어원에 무지했던! 고전적 음운학에서의,

형식과 내용을 분리한, 오류! 를 그대로 답습한, ---

모호한! 기호(記號), [씨뉴](signe)는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씨의 뜻이,

고작, 오얏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문제가 된, 96대법원 예규,

그리 자연스럽지도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 역사적인 것이었다.

---‘역사에 무지한,

일부 법관들에 의해, 경솔하게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

나는, [블로그]의 앞서의 글에서,

성씨두음 법칙을 적용하는 것은,

음운(音韻)’발음의 뜻을 살필 때,

불합리(不合理)! 하다고 말씀 드렸다.

문제된, ‘예규,

한글 맞춤법’(88-01-19, 문교부 교시),

5절 두음 법칙, 11항의, “한자음 , , , , ,

단어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 , , , 로 적는다, 같은 절, 12항의,

한자음 , , , , , 가 단어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 , , , , 로 적는다,

따른 것으로 보이나,

이는, 한자(漢字)말이 기본적으로 외래어?’라는,

지극히 잘못된! 그리고, ‘근시안적!

역사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우리네 고대사(古代史)’를 망각한!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나라의,

맞춤법을 통일한다는 것은,

물론, 국가 운영에 큰 의의가 있으나,

규제는 최소한의 것에 그쳐야 하고,

어원(語源)’을 왜곡해서는 아니 된다고 본다.

명백한 사례로, 두음 법칙 제10항의,

, , , a, , , 에 따라,

남성(男性)남성으로, ‘녀성(女性)여성으로 적는다.

허나, 어원을 살피면,

()[nan², ], 우리 말의, ‘(그것이 밖으로) 나온 것이고,

()[nu³, ], 우리 말의, ‘(그것이 안으로) 나뉜 것이다.

따라서, ‘녀성여성이라고 표기해야 할,

그 음운학적 근거가 없다는 말씀이다.

---‘남성암성이라 표기하지 않는 한.

 

한자를 이루는,

중국어의 발음,

중국인이 자기네의? 잊은 고음(古音)’이라 하나,

내가 추적한 바에 따르면,

그리고, [블로그]에서 말씀 드리는 대로,

이는, 우리네 말의 발음에서 비롯한! 것이고,

우리 말의, ‘부분 선택과 변화의 결과일 뿐이다.

---, 한자음의 기원은 고대의 우리 말이다.

그런 역사,

지극히 방자하게도,

뒷날의 일부, 몰지각한 책상물림들이,

그 얄팍한 지식으로, 제 멋대로 바꾸려는 것이다.

---‘역사에 부디, 겸손하시라.

나는, 조선어학회, 한글학회의 공로를 깊히 존경하나,

이는, 우리 말 어휘의 수집과 보전에 관해서 그러하고,

아직, ‘우리 말, 해석은 또 다른 과제로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영역이다.

 

이제,

내가 보는 바의, 문제가 된,

한자말 성씨의 뜻을 다시 말씀 드린다.

먼저, ‘(, family name)’,

옥편에는, ‘성씨(氏系總稱), 일가(一族),

아이 낳을(生子), 백성(百姓)’의 뜻이 있다.

---그리고, 역사가들이 연구했듯,

옛 평민들에게는 성씨자체가 없었다.

아시다시피, 현대의 [아랍]족에게도 성씨가 없다.

다만, ‘누구로부터 낳은(bin/ibn) 아무개+--(bin/ibn)--+

--(bin/ibn)--‘ , 대를 이은 이름의 연결들일 뿐이다.

---[오사마--라덴]처럼.

 

내가 보기로,

중국어의 ()[xing, ]=

[nu³, ]+[sheng¹, ]’, 우리 말의!

‘(아이를) 낳아+(여럿) 솟은 것이’+

서로 이어진, 서로 모여, 솟은a []’이다.

같은 성씨를 쓰는 집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문제는,

성씨가 고대의 최고 지배층에게는,

처음에는, ‘어디서 왔다는’ ‘기원(起源)’을 나타냈다가,

점차, 그 다음의 계층에서는,

찬미(讚美)와 기원(祈願)의 뜻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뒷날, 평민은 그 뜻도 모르고 이를 차용했고!

 

이를 테면,

()나라 만주(滿洲)족 황제의 성씨,

애신각라(愛新覺羅),

[aixin¹ zue² luo², 아이씬줴뤄],

---김씨 성을 가지신 분들이 일부, 주장하시듯, ---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아니다.

나 또한, 그랬으면 좋겠지만,

만일, 그처럼, 한자 뜻으로만 해석한다면,

같은 왕족의 성을 따른, 청나라 서태후의 성씨,

엽혁나랍(葉赫那拉)[yehenala¹, 예허나라],

고작, 입새가 빛나, 이를 잡다가 되어야 할까?

이는 아니다! 

[아이씬줴뤄] [예허나라], 적어도,

서로, 유사한 뜻이 되어야 한다.

해서, 거듭 말씀 드리지만,

[아이+++], 우리 말의!

위에 올라+솟은 (곳에서)+솟아+오른 (이들)’이란,

[앨타이](Altai)의 기원(起源)을 말하고 있고,

[+++], 역시나, 우리 말의!

올라+밝은 (곳에서)+높이+오른/또는, 내려온이다.

---이렇게 되어야,

그 성씨들에 일관성이 있다.

 

중국 최대의 성씨,

중국어의 ()[wang², ]=

[yi¹, ]+[tu³, ]’, 우리 말의!

위로 올라+돋아서’+‘올라 있는a []’이다.

---이는 기원(起源)’을 나타냈다기 보다는,

찬미(讚美)와 기원(祈願)의 뜻이 아닐까 한다.

감히, 존성대명(尊姓大名),

성씨의 뜻을 말씀 드리는 것은,

, 조심스러운 일이다.

어땠든,

중국의 큰 성씨이기도 하면서,

이번에 문제가 된, ‘()’씨의 경우,

---또한, 그 조상이 우리네 [앨타이]계로 보이는,

노자(老子)의 성씨이기도 한지라, ---

중국어의 ()[li³, ]=

[mu, ]+[zi³, ]’, 우리 말의!

높이+솟아’+‘오르는, 올라 있는a []’,

기원(起源)’기원(祈願)’의 뜻이 둘다 가능하다.

이 뜻은, ‘오얏나무하고는, 그리 깊은 관계가 없다.

---아니 그래, 큰 일가의 성씨에 고작, 나무 이름일까?

또한, ‘천거할, 보따리의 뜻도 아니다.

 

다만,

우리 말의 발음은 ‘y, j, w’로 변화되는데,

---마치, ‘할아버지의 발음이,

아이들에게는, ‘하야버지로 발음 되듯---

오얏이란 발음과 올라 있는은 서로 연결된다.

따라서, ‘를 놓고,

라고 발음하면, ‘올라~’를 선택하는 것이고,

라고 발음하면, ‘~있는을 선택한 셈이 된다.

그리고, [아이씬줴러]처럼 ‘spell-out’하는 발음 대신에,

관행에 따라, 성씨로, 한자의 단음절발음을 쓰는 한,

그 음운의 일부 선택은 개인적 자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과거의 역사적인 문제이니만큼,

뒷날의! ‘두음 법칙으로 규제할 것이 못된다.

다른 성씨들의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씨는 버들의 뜻이 아니고,

씨는 비단, 그물 등의 뜻이 아니다.

성씨는 그 특성상, 좋은 뜻일 수 밖에 없다.

---당사자들이 이를 아셨는지 모르나---.

따라서,

중국어의 ()[liu³, ]=

---‘버들, 남쪽 셋째 별자리의 뜻이 있는 즉---

[mu, ]+[mao³, 마오]’, 우리 말의,

높이+(가지가) 많고’+’가느다란a []’a버들’,

또는, 높이+밝게’+‘멀리, 아래 쪽에, 올라 있는a []’

a별 이름이고, 성씨의 경우도, 이와 같을 터이므로,

씨의 뜻은, 멀리, 아래 쪽에, 올라 있는이라 본다.

따라서, 를 선택하면, ~있는에 가깝고,

를 선택하면, 멀리, 아래, 올라에 가까운 셈이다.

그리고,

중국어의 ()[luo, ]=

---‘새 그물, , 벌릴, 지남철의 뜻이 있은 즉---

[wang³, ]+[wei², 웨이]’, 우리 말의,

여러 (줄을)+얽고 엮은’+‘펼친, (높이 오르는 것을)

벌려 잡는, 가리키는a []’이다.

그러므로, ‘씨에서,

를 선택하면, ‘높이 (오르는)’에 가깝고,

를 선택하면, ‘펼친, 오르는, 벌리는, 가리키는,

가까워진다고 본다. ---

어쨌든, 성씨는, ‘좋은 뜻으로 이르는 것이다.

 

다만, 경계할 것은,

이번의 결정이 혹시라도,

그 어떤, ‘수상한정치적인? 의도에 영합? 해서,

, 북녘 땅에서는 두음 법칙을 안 쓰므로,

---이를 테면, ‘冷麵랭면이라 발음 하므로---

단순히, 이와 일치시켜 보려는 뜻이라면,

그 발상이 지극히! 한심하다고 하겠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성경해석의 역사 

1. 사도시대의 해석(A.D 30-100년)
 
구약성경을 역사적. 예언적 내용으로 이해하고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명에 관한 예언들로 이루어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의 해석원리는 예표론적 해석 방법을 취하였고, 구약에 나타난 사건들, 목표의 대상들, 그리고 관념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예표이며, 후일 역사 속에 나타날 하나님의 사역으로서 받아 들였다.
더욱이 사도들은 문자적-문맥적인 해석(Literal-Contextual)방법에 충실하였으며, 성경원리를 생활에 적용할 것을 강조하였다.
 
2. 교부시대의 해석(A.D 100-590년)
 
가). 시대적 배경
 
마지막 사도인 요한의 죽음이 교회를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한다.
이 시대를 “교부시대” 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시대가 소위 교회의 아버지들(사도 시대 이후 처음 4세기 동안의 교회 지도자들)의 기여와 공헌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부시대 동안에 사도들의 저작들은 교회들 가운데 회람되고 있었으나 구약의 정경적인 짝으로 모아져 있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후에 가서 신약성경이된 당시의 많은 책들과 서신들을 교회는 구약과 동등한 것으로 생각한 반면에, 아직도 구약을 교회의 일차적인 성경 모음집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후에 가서 교회전통이 교회 교리를 정의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러한 교회 전통의 부상이 1400년 이후의 종교개혁 때까지 성경 해석의 실행을 결정적으로 이끌어 왔다.
교회 회의들이 마침내 성경의 기독교 정경의 정확한 내용들에 동의함에 따라, 이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나). 성경해석 방법
 
1) 사도적 교부들(A.D 약 100-150년)
 
사도 요한이 죽은 1세기경의 성경해석의 개략을 보여주며 로마의 클레멘트, 이그나티우스, 폴리갑, 바나바라 등이 속하며 이들은 성도들에게 교회 교리를, 그리고 유대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신앙을 지킬 것을 가르쳤으며, 몇가지 해석의 방법들이 초기 교회교부들 사이에 있었음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구약과 신약을 연관짓는 예표론을 해석에 많이 적용하고 주된 해석의 방법은 풍유적 해석방법이다.
 
* 해석 방법론
 
가) 모형론(typology)
 
구약을 신약과 연결하기 위해 특히, 예수에 관한 가르침과 연결지으려고 사용.
당시의 저자들로 하여금 구약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 가르치는 일에 도움을 제공하기도 함.
 
나) 알레고리(allegory)
 
일반 문학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이었음.
자신들의 가르침에 대한 뒷받침을 구약으로부터 얻고자 했으며 그들의 교리에 많은 신뢰성을 부여하고자 했음.
 
다) 미드라쉬적 해석방법
 
라) 전통적인 해석
 
교회가 가르쳐 왔던 해석들을 교회의 올바른 해석으로 간주하게 됨.
교회 전통을 성경의 위치와 동등한 위치로 부상시킴.
결국 교리에 대한 교회의 궁극적 권위로 이어짐 / 교회 지도자들이 심판관의 역할 담당
 
2)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 (A.D 약150년 - 400년)
 
초기 교부들이 사라짐에 따라,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이 교회의 성경 해석을 주도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은 동일한 기본적인 기독교 신앙들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성경해석에 대한 방법론은 서로 달랐다.
 
가) 알렉산드리아
 
오랫동안 유대인들과 신플라톤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풍유적 방법론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흐름으로 풍유적인 해석방법을 채택하였다.
이 해석방법으로 비그리스도인 동료들 가운데서 자기들의 해석에 대한 신뢰성을 얻고자 했다.
 
※ 풍유적해석의 정당성 제시
 
① 클레멘트
 
성경을 알레고리화 하는 사람들의 전형,
성경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가르침,
숨겨진 영적인 의미가 더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함.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는 단순히 본문 내면에 있는 영적인 진리를 지시하는 하나의 지표일 뿐이다.
본문의 다양한 세부 조항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의미를 추출해 냄
 
② 오리겐 (A.D 185-254)
 
클레멘트의 후계자,
인간이 몸,혼,영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성경도 삼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
성경의 지혜로운 해석자는 본문의 사건들(문자적인 의미)로 부터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숨겨진 원리들(도덕적인 의미)과 교리적인 진리(영적인 의미)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
 
나) 안디옥
 
오리겐의 극단적인 풍유적 해석은 다른 초대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알레고리는 성경을 해석하는데 적합하고 믿을만한 방법이 아니라고 이를 배격했다.
결과적으로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에 두 번째 기독교 교리문답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에서는 알레고리 대신에 성경에 대한 역사적-문법적 이해를 가르쳤다.
즉 모든 본문은 문법과 단어들에 의해 전달되는 하나의 평이한, 그리고 단순한 의미를 갖는다고 가르쳤다.
 
- 주요선생 -
 
.몹수에스티아의 데오도르와 데오도레트, 존 크리소스톰 - 데오리아(통찰력)
 
안디옥 학파 사람들이 성경의 보다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열쇠. 숨겨진 영적인 의미를 선호하여 문자적인 의미를 경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은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의미를 직접적으로 영적인 의미와 상통한다고 주장했다.
알레고리를 철저하게 배격함으로써, 안디옥의 학자들은 교회에 의해서 널리 받아들여진 몇몇 해석들과 이별하게 됨.
성경의 역사적인 의미를 알렉산드리아의 경쟁자들보다 더욱 진지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레고리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때때로 이들은 강력하게 배격했던 풍유적 해석의 접경에 서있는 일종의 모형론을 사용했다.
 
3. 교회 회의 시대 (주후 400-590년)
 
가) 배경
 
A.D 312년에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과 함께 정치가 교회의 성경 해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황제는 교회에 압력을 가해서 교리상의 차이점을 해결하고 표준화된 교리를 정립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첫째, 정통을 지키려고 성경에 단순히 호소하는 것은 다름아닌 교리적인 교착 상태를 만들어 냈을 뿐이고
둘째로, 정통 신학자들 자신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방식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한 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기독교회는 성경의 의미를 완전하게 결정지을 만한 일종의 권위가 대단히 필요했다.
교회는 교회 지도체제의 사도적 계승 속에서 이에 대한 대답을 발견했다.
 
나) 성경해석 방법
 
교리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선언들이 교회가 옳다고 생각했던 성경의 해석들을 결정하게 되었으며, 성경이 교회의 선언들을 결정치 못하게 되었다.
 
* 어거스틴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
 
본문들의 올바른 의미를 발견하는 세가지 기준제시
 
① 해석자는 믿음의 법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② 교회의 권위나 혹은 본문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을 참고해야 한다.
③ 만약 모순된 견해들이 이상의 두 기준과 충돌될 경우 해석자는 문맥을 참고함으로 어느 견해가 가장 좋은가를 살펴야 한다.
다시 말해 보다 평이한 본문과 교회 전통이 불분명한 구절들의 문맥보다 우선한다는 뜻임.
 
교부시대가 끝날 무렵, 제롬을 설득하여 외경뿐만 아니라 구약과 신약을 라틴어로 번역하도록 했다.
히브리어 사본과 헬라어 사본의 라틴어 번역본인 벌게이트가 교회의 공식적인 성경이 되었고, 이때로부터, 모든 실천적인 목적을 위한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로 이루어진 성경의 연구는 중단되었다.
대신 교회는 모든 교리상의 논쟁들을 위해 벌게이트 번역본에 의존하게 되었다.
 
다) 평가
 
교회는 자신의 가르침에 있어서 여전히 성경에 대한 의존에서 한 발자국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4. 중세시대 (A.D 약 590-1500년)
 
가. 배경
 
이 시대는 두 개의 다른 주요시대 사이에 놓여 있는 역사적 시기이다.
교회 교부들과 교회 회의들에 의해 지배되던 교부시대로부터 흘러 나와서 종교 개혁에 의해 입안된 새로운 진로들로 흘러 들어갔다.
어떤 점에서 이 시대는 이 두 시대 사이에서 전환적인 국면을 형성했던 시기이다.
중세시대는 교부 시대의 몇몇 양상들이 쇠퇴한 시대요, 종교 개혁의 부상을 위한 토대를 놓은 시기이다.
무지가 교회의 성직자와 평신도를 괴롭혔으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교회적인 권세를 유지하고자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동시에, 중요한 발전들이 중세 이후 수세기에 걸쳐서 성경 해석의 관행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 성경해석방법
 
1) 전통적인 해석
 
수세기에 걸쳐서 전해 내려온 교부들의 견해들, 이 해석의 주된 자료들이 문서화된 카테나 혹은 교부들의 주석들로부터 편집된 일련의 해석들로 남아 있다.
 
2) 풍유적인 해석
 
중세시기 해석이 가장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문자는 하나님과 우리 선조들이 행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알레고리는 우리 믿음이 어디에 숨겨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도덕적 의미는 일상 생활의 법칙들을 우리에게 부여하며,
영적 의미는 우리의 다툼이 어디서 끝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3) 역사적인 해석
 
중세의 몇몇 학자들은 유대의 권위자들의 자문을 구함으로써 성경의 역사적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를 했다.
아퀴나스는 성경의 문자적 의미의 중요성을 주창했다.
문자적 의미가 믿음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그는 풍유적인 해석에 오랫동안 속박 되어 있던 신학을 그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다. 평가
 
중세시기는 교회내에서 풍유적인 해석 방법론의 우위가 서서히 종말을 고하는 시기였다.
알레고리의 실행자들이 여전히 교회 안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전통적인 해석에 대한 의존이 강도 있게 남아 있었다.
동시에 성경 해석에 있어서 기독교회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징후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5. 종교 개혁 시대 (A.D 1500-1650년)
 
가. 배경
 
중세시대 이후 무렵에 스콜라주의자들의 경직된 전통주의와 에라스무스와 같은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의 새로운 학문 사이에 갈등이 분출했다.
스콜라주의의 조직신학이 전통적인 정통 노선에 이성적인 버팀목을 제공했기에 많은 사람들은 스콜라주의를 함락되어야 할 요새로 생각했다.
더욱이 성경을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아어로 공부하고자 하는 새로운 각성은 학자들에게 성경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1516 년에 에라스무스는 부록으로 새로운 라틴어 번역본을 지닌 최초의 헬라어 신약성경의 현대판을 발행한다.
초기 사본들에 대한 이러한 점증하는 관심은 라틴어 벌게이트 성경에 있는 많은 번역상의 오류들을 드러냈고, 이 성경이 교회 교리를 뒷받침 하면서 누렸던 절대권위를 손상시켰다.
벌게이트 성경에 권위를 두고 있었던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의구심으로 가톨릭교회의 권위에도 의심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나. 성경해석 방법
 
1) 루터 - 오직 성경으로
 
성경 자체가 성경의 가장 좋은 해석자라는 원리 천명 - 풍유적인 해석 방법론 배격 : 알레고리는 헛된 추론이다. - 모형론적 해석 채택
 
2) 존칼빈 - 알레고리 배격 - 성경의 역사적인 해석 선호 - 성령의 내적 증거라는 요소를 받아들임
 
성령의 내증은 해석의 과정을 조명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해석자의 마음에 그가 행한 해석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확증하는 역할을 함.
 
다. 평가
 
전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의존 (성경의 평이하고 단순한 문자적 의미 선호)
 
6. 종교 개혁 이후 시대 (A.D 1650-1800년)
 
가. 배경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로부터 흘러 나온 중요한 움직임들이 종교 개혁 이후 시대의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종교개혁으로 부터 경건주의라는 운동이 생겨났다.
이 운동은 신교의 스콜라주의의 메마른 지적 교조주의와 생명력이 없는 형식적인 예배 의식에 대해 반발했다.
경건 주의는 그룹 성경 공부, 기도 그리고 개인적인 도덕성의 계발을 통해서 기독교의 모든 실행들을 삶의 방식으로 재생하려는 노력을 했다.
르네상스 정신은 이성주의(혹은 합리주의)라 불리는 중요한 지적 운동을 낳았다.
이성주의는 인간의 마음을 진리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하나의 독립된 권위로 생각했다.
이들은 원어로 성경을 공부하는데 인간 이성을 사용했다.
 
나. 성경 해석 방법
 
경건주의의 성경 해석 방법론에서 에드워즈는 성경으로부터 실천적인 적용을 이끌어 내고자 모형론에 호소했다.
이성주의자들은 성경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이성의 사용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앙을 세워 나가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이를 교회의 권위에 대항해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 자체에 반하여 적용했다.
 
다. 평가
 
종교 개혁 이후 시대는 성경 해석에 대한 접근 방식의 분열상을 가져왔다.
아퀴나스 철학과 신학의 단절을 증진시켜 나갔다.
 
7. 현대(A.D1800~현재)
 
가 시대적 배경
 
역사비평이 출현하였으며 스피노자는 성경 각책의 생성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힐데스하임의 목사 벤야민 비터는 오경의 자료들로부터 모세가 창세기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하였다.
아스트렉은 오경의 생성과정을 추론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계속 전개 되면서 오히려 모세 저작성을 부인하는 주장들이 점점 더 힘을 얻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신(新) 자료가설이란 의미에서 문헌 비평적인 작업이 진행되었고 독일에서는 궁켈의 연구에 근거한 양식적인 연구 방법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궁켈은 문서로 기록되기 이전의 구두 전승과 그 전승에 각인된 형식들과 그 전승들의 “삶의 자리”에 주목했다.
 
두 세기 동안의 오경의 생성에 대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1) 문서 또는 자료가설
 
오경은 여러개(세 개 혹은 네 개)의 독립적이며 상이한 시대와 장속에서 생성된 자료 문헌들로부터 생겨났다.
이런 자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단계의 편집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양으로 통합되었다.
 
2) 보충 가설 또는 기본 문헌 가설
 
오경은 하나의 작품(“기본 문헌”)을 기초로서 가진다.
이 작품이 수 세기를 지나면서 여러번 확장되었다.
 
3) 단편 가설
 
오경이 다양한 장소와 상이한 시대에서 생겨난 독립된 이야기 부분들 (“단편들”)로 부터 통합되었다.
이러한 부분들은 특정한 주제와 형태들을 통해 그 특징을 보인다.
 
4) 최근의 자료가설
 
베테는 1805년 신명기의 핵심은 요시야 종교개혁 시기(B.C 622 년경)와 맞물려 있다는 가설을 주창했다.
이 가설을 발전시키며 그라프의 주장을 수용한 벨하우젠은 제사장 문서가 가장 후대의 오경자료이며 그 이유는 예언자들이 제사장문서(P)에 포함된 제의법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신(新) 자료가설이란 의미에서 문헌 비평적인 작업이 진행 되었고 독일에서는 궁켈의 연구에 근거한 양식적인 연구 방법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궁켈은 문서로 기록되기 이전의 구두 전승과 그 전승에 각인된 형식들과 그 전승들의 “삶의 자리”에 주목했다.
 
나. 성경해석의 방법
 
1)문예학적인 방법론
 
첫째로 연구사에 대하여 말하자면,
카수토나 야콥같은 유대인 주석가들이 20세기의 30~40년대부터 이미 본문의 단일성을 다시 옹호하였지만. 벨하우젠의 자료가설이 7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지배적인 해석 모델로 남아 있었다.
여호수아서, 룻기,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대해서 “신명기 사가적 역사서” 라는 노트(Martin Noth)의 가설이 광범위하게 관철되었다.
그러나 세속적 문예학과 언어학 분야의 다양한 새로운 흐름들이 20세기의 20~30년대부터 점차 많은 영향력을 얻게 되었다.
20세기의 70~80년대에 문예학적인 방법론들이 성서학계에 확산되었다.
독일어권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방법론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수용된 반면, 주로 영어권 국가와 네덜란드, 또한 이스라엘에서 “신 문학비평”,“문학적 접근”, “서사비평", “근접 독법” 등과 같이 포괄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방법론의 명칭들 아래에서 행해진 새로운 방향설정이 큰 호응을 얻었다.
 
둘째로 일반적인 표지들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러한 상이한 학파에도 불구하고 문예학적 방법론들의 몇 가지 공통점들은, 해석의 중심점이 분명하게 성경의 문학적 측면에 놓여 있으며 성경은 자신의 문학성 안에서 다른 모든 책들과 같은 하나의 책이며, 문예학의 도구들을 통해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방법론에서는 본문이 이전역사에 관심이 없고, 정경적 최종본문이 현재의 모습 그대로 받아 들여진다.
 
셋째로 본문중심의 방법론들은 본문들이 저자에게서 풀려나 독자적인 삶을 영위하는 독립적인 단위들로 고찰된다.
미학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문학적인 예술작품” 으로서 대한다.
문헌비평에서와 마찬가지로 긴장들과 모순들이 관찰되지만, 문학적이며 신학적으로 해석된다.
 
2)정경적인 방법론
 
첫째 정경적인 방법론은 챠일즈라는 이름과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있다.
그는 모든 주석적 작업의 토대와 관점으로 정경을 찬성하고 마지막 단계의 주석적 방법으로서의 “정경적 비평”으로 축소하는 것에 맞서 싸운다.
또한 그는 성경의 책들은 길고 복잡한 정경적 편집과정의 결과라고 말한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정경적인 방법론은 점차 많은 영향력을 얻었다.
 
다. 평가
 
1) 문예학적인 방법론에 대한 평가
 
ㅇ 긍정적인 평가 
 
- 해석의 출발점이 정경적인 최종본문이며 자료와 문헌층의 추정적인 재구성이 아니라 본문의 성실성에 있다.
- 문학적인 장르와 관습이 분명하게 고찰된다.
- 미학적인 요소들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
- 화자의 관점과 독서과정 자체가 고려된다.
 
ㅇ 비판적 문제제기
 
- 서구적인 문학개념과 현대적인 허구와의 비교가 근간을 이룬다.
- 역사적인 문제제기가 등한시 되거나 완전히 사라진다.
- 현대적인 독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들이 모든것의 기준이 된다.
- 수사학적인 요소들과 문학적인 구조가 과대평가 된다.
- 신학대신에 미학이며, 진리탐구 대신 오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정경적인 방법론에 대한 평가
 
ㅇ 긍정적인 평가
 
- 본문에 충실하다.
- 객관적이다.
- 신학적이다.
- 신앙공동체 중심적이다.
 
ㅇ비판적 문제제기
 
- 영감의 자리가 저자와 본문으로부터 신앙공동체로 옮겨졌다.
- 탈 역사화의 위험이 존재한다.
- 편집자가 과도하게 강조된다.
- 어떤 구약성경의 정경이 근간을 이루는 것인지(히브리성경의 좁은 의미인지 70 인경의 넓은 의미인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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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양 교육` 이 무너지는 소리 [중앙일보 2007.03.30]


최근 우리 대학에서는 '교양 교육'이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외환 위기가 일어났던 10년 전부터 정부가 대학의 교육을
공급자보다 수요자 중심으로 바꿔 놓은 정책을 시행하면서
대부분의 학생이 취업에 필요한 실용적인 과목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과 인간적인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인문학은
대학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위기에 놓여 있다.

현대 사회에서 대학은
사회와 관련없는 학문만을 연구하는 수도자들이 머무는 곳이 아니다.
사회와 인류를 위한 문명의 창조적인 산실이기 때문에 중세와 달리
사회와 동떨어진 상아탑으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학은 눈에 보이는
사회의 기능적 요구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직업훈련소가 아니다.
내일의 사회 구성원들이 될 학생들을
성숙한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지식을 제공하는 정신 교육의 장이다.
지금처럼 대학이 대학의 정신이자 뿌리이며
인간의식과 인간 가치를 위한 필수적인 학문인 인문학을 추방한다면,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혀주는 지적인 등불을 상실하게 됨은 물론
미래를 여는 순수한 진실과 비전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교양 교육에 중심을 둔 인문학은
비록 산업사회에 필요한 톱니바퀴 같은 인간형을 양성하지 못해
가시적인 부를 가져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성숙한 인격 형성을 위한
지적 재산은 물론 사회문화 창조를 위한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촉매제가 된다.
대학의 고유 자산이자 특징인 교양 교육은 '노예적 움직임'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정신적이고 이성적이며 명상적인 활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대학이 무엇인가'라는 유명한 글을 쓴 헨리 뉴먼에 따르면
지식의 모든 가지는 서로 함께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인문학은 과학과 다른 실용적인 학문의 추구와 이해에도 도움을 준다.
가령 케플러는 플라톤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으로 상상한
다섯 개의 규칙적인 입체에 대한 가설을 바탕으로 태양계의 운행 법칙을 발견했고,
원자탄의 아버지인 오펜하이머 또한 물리학자가 되기 이전에
고전문학자였다는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인문학의 중심이 되고 있는 문학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은
우리가 문학작품 속에서
새로운 인식론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을 발견함과 동시에
언어로 표현된 사회적인 감정을 탐색할 수 있게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현실에 대한 협력적인 담론을 펼치기 위한
지성을 연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대학이 확고한 교육철학에 대한 신념을 잃고
미성숙한 피교육자인 학생들의 성급한 요구 조건만을 좇아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찾고 학문 상호 간에 균형을 잃어버리는 교육을
서슴지 않고 행한다면, 대학은 그 빛을 잃고 사설 학원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이는 곧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정신적 표상인 상아탑의 의미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와 우리 사회는 심각한 혼돈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가 인문학을 포함한
기타 8개 분야를 교양 필수로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버드대가 방대한 독서량을 요구하는 교양 필수 과목을 이렇게 많이 설정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반드시 이수토록 한 것은
대학 교육이 결코 취업 준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시야를 넓히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정부와 대학,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실용 학문만을 권장하거나 투자하고
교양에 필요한 인문학을 고사(枯死)시키는 사회 환경을 계속 허용한다면
단기간 동안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이는 스스로 묘혈(墓穴)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행위다.


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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