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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사진>가 7년만에 펴낸 신작 시집이다. 시집 초반부에서 시인은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세상을 돼지와 진주로 나눈다. 최영미의 시세계에서 돼지들은 진주를 탐하고, 순진한 진주는 힘없이 당하지만, 진짜 패자는 돼지들이다.
“언젠가 몸시 피곤한 오후,/ 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 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 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허나 그건 금이 간 진주,/ 그는 모른다./ 내 서랍 속엔 더 맑고 흠 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돼지들에게’ 부분)
이 시에서 돼지/진주 이분법은 남성/여성의 은유이고, 시인의 체험을 담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시인은 시집 출간을 맞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돼지 중에는 암퇘지도 있고, 진주가 최영미라는 증거도 없다”며 일축했다. “이 시를 통해 나는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진주를 유린하는 다수의 돼지들의 탐욕을 비판하고 싶었다”는 것. 그러나 그녀는 “내 문장의 정확함만이 문학외적 모든 풍문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집에는 돼지 못지 않게 나쁜 ‘늙고 노회한 여우’도 등장한다. “기름기 흐르는 입술로 아름다운 말들로/ 대중을 속이는 당신,/ 박수소리에 도취해, 자신의 위대함에 속아/ 스스로에게도 정직하지 못한 예언자./”(‘하늘에서 내려온 여우’ 부분)라는 시에 대해 그녀는 “여우는 위선적 지식인의 보편적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386 세대인 시인은 “세상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서 보지 않는다”면서도 진보 진영을 향해 도발적인 시 한편을 던졌다. “관념으로 도배된 자기 도취와 감상적 애국이/ 연구실에서 광장으로, 감옥에서 시장으로 나온 흑백논리가/ 종이에 인쇄되어 팔리는// 이것이 진보라면 밑씻개로나 쓰겠다/ 아니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시대의 우울’ 부분)
최영미는 소문난 축구광이다. 돼지에 대한 야유를 통해 생에 대한 환멸을 드러낸 시인은 축구 경기를 보면서 환희에 가득찬 생을 산다. “우중충한 흑백사진들로 채워진 앨범에 삽입된/ 발랄한 총천연색/ 우울한 하루의 커튼 뒤에 펼쳐지는 생생한 풍경./ 고통을 잠재우는 마약이다.”(‘축구는 내게?’ 전문)
시인은 시집의 마지막 시행을 통해 자신의 시론을 밝혔다.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시를 나는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