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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최명길의 이마가 차가운 돗자리에 닿았다.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고,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최명길은 차가운 땅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치욕이 기다리는 넓은 세상을 향해 성문을 열고 나가야 할 것이다. 최명길은 오랫동안 엎드려 있었다. 김상헌이 종헌을 올렸다. 잔을 올리고 물러나 절할 때, 비틀거리는 김상헌을 최명길이 부축했다.
향 연기 속에 떠오른 온조의 혼령이 일천육백 년의 시간을 건너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환영을 김상헌은 느꼈다. 침탈과 살육과 기근과 유랑의 들판을 가벼운 옷자락으로 스치며 혼령은 한 줄기 피리소리처럼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성 안으로 들어오던 새벽에, 새로 내린 눈 위에 빛나던 새로운 햇빛과 새로운 시간들, 서날쇠가 떠나던 새벽에 서날쇠가 나아가는 쪽에서 아침의 빛으로 깨어나던 봉우리들을 김상헌은 생각했다. 시간은 흘러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환란의 시간은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다시 맑게 피어나고 있으므로, 끝없이 새로워지는 시간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었다. 모든 시간은 새벽이었다. 그 새벽의 시간은 더럽혀질 수 없고, 다가오는 그것들 앞에서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이마를 땅에 대고 김상헌은 그 새로움을 경건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훈 - 남한산성

책의 앞머리 저자의 서문이 처연하다.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나는 세계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영 앞에 무참하였다.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
임금의 옆에 신하는 없었다. 결국 화친을 주장하던 자들도, 척화를 주장하던 자들도 이긴 자는 없었다.
한 달 반 정도되는 기간 동안 남한산성 안에서 있었던 고통의 순간들을 상상하니 참 서늘하고 슬프다.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산책과 주말 등산객들의 쉼터, 휴식터인 그 곳의 지금 모습을 생각하니 역사란 것이 참으로 얄궂다.
이명박의 옆에도 신하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요즘의 치욕이 이명박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하겠고, 하긴 이명박과 그 신하들이 다르지도 않겠다. 강대국에 제 나라 백성들의 안위를 내놓는 이 치욕은 백성들의 자존의 몸부림을 제 스스로 제압하는 정권의 무식함에 더욱 극대화되는 듯하다. 결국 승자(?)는 없을 것이다. 자꾸 시니컬하게 만든다. 이미 지난 12월부터 예견된 일이다. 2MB기 때문에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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