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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 교수 중 한 명의 운동성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 교수는 남편과 함께 각각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시민사회운동에 헌신해 온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유명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인연이 어찌됐든, 그 당시 인권을 가르치던 그 교수의 남편이 TV토론에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는 패널로 나와 학생들 사이에 적잖은 파장이 있었다. 인권을 가르치는 교수의 남편이 버젓이 반인권법을 지지하는 꼴이라니, 한 이불 덮고 자는 남편의 생각 조차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인권운동의 리더로, 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자질이 있는가 하는 지적이었다.
대학시절 봉사써클에서 열심히 활동할 때였다. 일요일이면 봉사를 합네 하고 집을 나서는 큰 딸의 뒤통수에 대고 엄마는 '내 방이나 깨끗이 하라', '집안일도 안 돕는 애가 무슨 남을 돕는다고 그러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가정 안의 일은 소홀히 하면서 밖으로만 남을 돕겠다고 나도는 딸에 대한 엄마 식의 문제제기였다. 어쩌면 당연한 지적일지도 모른다.
물론 부부라고 해서 반드시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골목청소를 하기 전에 반드시 내 집 청소부터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가장 내밀한 것, 가장 친밀한 것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더 큰 대의를 거론할 수 있겠느냐 반문하는 것은 어쩌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논하는 것만큼 당연한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동생네 가족이 다음 달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까. 이유는 많다. 아이들의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 교수가 되려면 유학은 필수라는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영어를 배워두면 좋으니까, 미국이 더 살기 좋아서. 그래, 이유는 많다. 그런데 그 모든 이유들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 나의 지향과 어긋난다. 내가 정말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동생 내외에게 정말 괜찮은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거나, 획일적인 경쟁주의를 벗어나라고 설득 하거나, 영어 말고도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들이 얼마나 더 많은가를 역설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 설득을 하지 못하는 나는 정말 운동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시민들의 참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