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런 마음가짐으로 「인간관계」는 바뀐다
「오래 계속되는 우정, 깨지기 쉬운 우정」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는 「우정과 용기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학생이나 청년을 대상으로 서술해 가겠습니다만, 젊은 사람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인생을 살아갈 때 중요한 마음가짐으로 참고가 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나는 젊은 사람을 상대로 「공부는 중요하다. 장래를 위한 투자로서 젊을 때 확실하게 공부해 두라」는 가르침은 비교적 많이 설하였지만, 「젊을 때 인간관계를 어떻게 하면 좋은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젊을 때는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으면 좋겠습니까?
내가 청년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우정이란 어느 정도 자립한 사람들끼리 사귈 때 잘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잘 어울려 다니는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관계가 너무 끈끈하여 지나치게 밀착되면 좋을 때도 있지만, 나중에 싸우거나 헤어지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적절히 우정을 키우고 오래 사귀어 가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느 정도 「자립」해 있어야 합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우정을 맺기 쉬운 법입니다. 또 우정을 맺은 상대도 그렇게 자립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제각기가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적절한 우정을 만들어 오래 지속하기 쉬운 법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전면적으로 계속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는 관계」나 「욕망이나 이득이 결부되어 강하게 밀착된 관계」 등은 깨지기가 매우 쉽습니다.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기 위해 「거리를 두는 방식」
사람 사이에 거리를 잘못 두면 인간관계가 잘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자세를 보이거나, 친절한 말을 걸거나 하여 이쪽이 문을 살짝 열면 확 안쪽까지 들어와서 너무나 가까이 밀착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대하여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쪽이 조금 관심을 보이거나 이해하며 문을 조금 열면 현관에서 안쪽까지 들어와서 눌러앉는 사람과는 우정이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그 사람은 밀착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과 우정을 맺기는 의외로 어렵습니다.
우정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사귀는 가운데 길고 차분히 성립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돈독해지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짧은 시간 사귄 사람과 바로 친구가 되어버리는 데에는 역시 위험이 있습니다. 자신이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상대도 자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인간관계를 키워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충분히 알리는 시간이나 상대를 충분히 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금씩 시간을 들이면서 관계를 심화해야 합니다.
갑자기 들러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하는 관계를 반복하면 자신뿐 아니라 상대도 상처받습니다.
그렇게 되는 원인의 대부분은 단순히 상대를 오해하거나 자신이 오해를 받는 데 있습니다. 그 결과 빼도 박도 못하는 관계가 되어 최후에는 비극적으로 헤어지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서로 다 이해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므로 단계를 밟아서 사귀어 가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처음의 얕은 단계의 친구로서는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사귈 수 있습니다. 그다지 심화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관계라면 무리하게 심화하려고 하지 말고 얕은 단계의 교제로 그쳐 두면 친구관계를 오래 계속할 수 있습니다.
2. 자신도 상대도 상처받지 않는 인간관계를 만든다
마음속 카드를 상대에게 어디까지 보일지를 생각한다
단계를 밟아서 사귀어 가는 가운데 차츰 깊은 교제를 하면 자신의 속마음을 서로 보이고 상호간에 우정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갑니다.
서로 자신의 생각이나 사고방식 등 가지고 있는 카드를 차례로 꺼내 보이면서 「상대가 어떤 카드를 가지고 있는가? 강한 카드를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에잇, 얏」하고 카드를 서로 보이고 상대의 카드를 보면서 「어, 상당히 강한 패를 내는구나」하고 느끼기도 합니다.
우정이 깊어짐에 따라 차츰 강한 카드를 꺼내게 됩니다만, 「어디까지 카드를 계속 내야 하는가? 마지막 카드까지 내야 하는가 어떤가?」는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어느 수준까지 사귈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모든 것을 서로 이해하기는 상당히 어려우므로 서로 상처받는 관계가 될 것 같으면 거리를 두는 편이 좋고, 서로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관계라면 「어느 수준까지 사귈 수 있는가?」를 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이상의 수준에서 사귀기는 무리다」라고 느낀다면 그 수준에서 멈추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도 어떤 계기로 더 깊은 관계까지 가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강한 카드를 꺼내면 우정이 성립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젊은 시절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종교적인 것을 이해하는 사람과는 친구가 되기 쉬웠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책을 많이 읽고 있는 교양이 있는 사람과는 비교적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단계까지 가면 대화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인생론이나 인생관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준에 머무는 교제를 자주 하였습니다.
내가 함께 이야기하기 쉬웠던 상대는 열 살에서 열 몇 살 정도 윗세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분야의 교양서를 섭렵하여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내면이나 세상 일을 깊이 직시하던 면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소에 내가 생각하던 것은 주로 인생론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동년배와 사귀는 일은 그다지 잘되지 않았습니다.
20대의 젊은 사람은 그런 것을 깊이 생각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나와는 이야기가 잘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열 살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 가치관이 맞으면 우정이 성립되는 일이 있습니다. 만약 같은 또래와 아무래도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면 연상의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본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깊은 우정관계도 있다
사람들이 가진 카드에는 신조 등 마음속 가장 깊은 부분에 관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경우는 신앙의 카드가 그것입니다만, 이 카드를 꺼내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같은 학교나 학원에 다니고 있고 학력이 비슷하거나 회사에서 같은 입장에 잇는 사람일 경우에는 신앙의 카드를 꺼내지 않으면 이 세상적인 수준에서 그럭저럭 그와 사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카드를 꺼내면 딱 절벽 같은 것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마음에 드는 이성과 이야기를 해 보았더니 외골수인 유물론자였다면 슬퍼질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구나. 꼭 사귀어서 결혼하고 싶다」고 바라더라도 가치관이 완전히 다른 경우에는 장래에 대단히 어려운 관계가 될 것이라는 암시를 받게 됩니다.
신앙심은 깊은 내면의 부분이며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 본질의 부분, 가장 최후의 부분에 가깝습니다.
서로 신앙의 카드를 꺼내고도 우정을 견고히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마지막에 가까운 단계입니다. 신앙심은 사람에 따라 얕고 깊은 차이가 있으므로, 신앙의 카드를 꺼내는 방법은 매우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최후에 꺼내는 신앙의 카드란 정말로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만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친형제나 부부 가운데 법연(法緣)이 깊어서 인생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숨김없이 상당히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데까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 수준에서 그 단계까지 이르는 법우(法友), 도반(道伴)은 평생에 그리 많이는 나오지 않습니다.
신앙의 면에서 「예스인가, 노인가?」라는 것만으로 사람과 사귀는 방식을 정하려고 하면 좌절하거나 서로 상처받는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사람과 사귀는 방법이 서투르기 때문에 자신이 상처받거나 상대를 상처주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조금씩 카드를 꺼내어 가며 「어느 정도까지라면 잘될 것 같은가?」를 확인하면서 우정을 심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능숙하게 친구를 사귀어 가는 방법입니다.
3. 나쁜 인간관계에 휩쓸리지 않는 용기
「누구를 스승으로 삼고 누구를 친구로 삼는가」는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학창시절이나 청년기에 중요한 것은 「누구를 스승으로 삼는가」, 「누구를 친구로 삼는가」이며, 이 「스승과 친구 관계」가 인생에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칩니다. 여러분의 인생관이나 장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바로 스승과 친구입니다.
스승과 친구를 선택하는 방법에는 상당히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스승이란 수십 년에 걸쳐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켜 주는 북극성과 같은 존재이므로 더욱 선택이 어렵습니다.
친구도 그렇습니다. 친구를 잘못 선택하면 인생이 꼬이기 때문에 누구를 친구로 삼는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약 2천6백 년 전에 석가는 「어리석은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마라, 나쁜 친구와 사귀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 나쁜 친구와 함께 있을 바에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친구로 삼아라.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을 친구로 삼아라. 그런 친구를 얻을 수가 없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석가의 설법에는 「무소의 뿔」이라는 비유가 자주 나옵니다. 무소가 하나의 뿔을 세우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연상해 보면 확실히 「고고(孤高)한 사람」이라는 분위기가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석가의 이 말은 「진리를 추구하며 수행하는 사람, 뛰어난 점이 있는 사람과 사귀어라. 나쁜 사람과 사귈 정도라면 오히려 사람과 사귀지 않는 편이 좋다」는 가르침입니다.
확실히, 「주홍과 섞이면 빨갛게 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나쁜 친구와 사귀면 자신도 점점 나빠져 갑니다. 나쁜 친구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동료의식 때문에 악행에 가담해 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는 것이 우정이다
요즘 중ㆍ고생들 중에는 혼자보다는 몇 명이 팀을 짜서 남의 가게 물건을 훔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이때 물건을 훔쳐오는 것 외에도 망보는 역할, 무엇인가를 사는 시늉 등의 페인트(feint) 역할이 있습니다. 편의점 등은 점원이 한 사람밖에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몇 명이 짜면 도둑질을 쉽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몇 명의 동료가 팀을 만들어 함께 물건을 훔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나쁜 친구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대여섯 명 정도가 친구가 되어 일단 교류관계를 맺어버리면 물건을 훔칠 때만 빠지기란 여간해서 불가능합니다. 빠지려고 하면 「넌 건방진 놈이다. 친구로 여기지 않을 거다」라는 등으로 협박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참가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교류관계는 나쁜 것입니다. 오히려 친구라면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제대로 말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친구관계에서도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나쁜 짓을 막으려고 한 것이 원인이 되어 인간관계가 깨어져서 「너 따위는 친구로 받아줄 수 없다」는 말을 듣는 일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무소의 뿔처럼 오로지 혼자서 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친구를 사귀지 않으면 안된다면 차라리 혼자 가겠습니다. 진리를 구해서 혼자 살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진리의 친구도 나타날 테니까 나를 친구로 받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친구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잘못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할 만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말해 주지 않으면 그들이 범죄자가 되거나 장래를 망쳐버릴 우려도 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므로 해야 할 말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따돌림의 문제」는 나쁜 교류관계의 축도
요즈음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에서의 따돌림 문제 속에서도 나쁜 교류관계의 축도(縮圖)를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1 대 1」의 따돌림은 적어지고 있고, 대부분은 두목격의 아이와 추종자가 무리를 지어 「다수 대 한 명」으로 누군가를 괴롭힙니다. 대단히 비겁한 방식이지만 소수의 사람을 다수가 괴롭히는 형식입니다.
괴롭히는 아이들 중에도 「사실은 괴롭히고 싶지 않지만 두목이 무서우니까 하고 있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두목을 따르면 여러 가지로 보호해주거나 같이 놀아주거나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동료에게 따돌림당하는 것이 싫어서 그 그룹에 들어간 이상은 반드시 함께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따돌림 그룹」이 있어서 신입생이나 전학생 등 색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여럿이서 따돌립니다. 그들은 따돌리는 의식을 함께 행함으로써 동료 의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도 같이 했다」고 하는 일종의 범죄자 심리와 같은 것입니다. 함께 도둑질을 하면 그 사람들과 동료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범죄자 그룹 같은 동료 의식이 생겨 따돌림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도 그런 동료들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집단 따돌림에 가담함으로써 동료들이 받아주고, 자신의 몸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단 따돌림의 표적이 된 아이도 결국에는 그 그룹에 편입되게 됩니다. 표적이 자신에게서 다른 아이에게로 옮겨질 때 이번에는 자신도 학대하는 쪽이 되어 학대하는 그룹과 함께 새로운 표적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도 동료로서 인정받자」는 사람이 늘어나 차츰 악의 세력, 악의 그룹이 증식됩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었던 것이 3명, 4명, 5명, 10명, 20명 등으로 커져 갑니다.
이것은 「모두가 같이 하면 무섭지 않다」는 심리 때문입니다.
힘에 의해 성립되는 악의 인간관계는 지옥 세계와 비슷하다
교실에서 10명이나 20명이 누군가를 괴롭힌다면 누가 했다라고 범인을 특정 짓기가 어렵습니다. 범인이 한 명이라면 교사도 야단치려고 하겠지만 한 반에서 10명이나 20명이 어느 한 명을 괴롭히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10명이나 20명을 처벌하고 한 명을 보호한다는 것은 좀처럼 하기 힘듭니다.
그 때문에 교사는 집단 괴롭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체합니다. 집단 괴롭힘을 행하는 그룹이 교실의 주류가 되어 있어서 그쪽을 야단치면 교실 붕괴를 일으켜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선생이 말하는 것은 듣지 않을 테다」라고 모두들 수업을 거부하거나 하기 때문에 교사도 화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런 형태로 악은 증식되어 갑니다.
이 패턴은 영계(靈界)에 있는 지옥 세계와 아주 흡사합니다. 지옥 세계에서는 대개 강한 자가 자신보다 약한 악마나 악령 등을 부추겨서 다른 자를 습격합니다.
지옥 세계는 힘의 관계에 의해 성립되어 있으므로 보다 많은 욕을 하고 공격력이 강한 자가 리더가 됩니다. 그에게는 부하가 많이 붙어서 약한 자를 괴롭힙니다. 그들은 언제나 동료를 늘리려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사회의 집단 괴롭힘을 보면 실로 지옥계 그대로입니다. 그 수법은 지옥계와 놀랄 정도로 닮았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작은 악마가 들러붙은 아이도 많이 있고, 큰 악마가 들어가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일정한 규모의 나쁜 집단을 이끄는 리더 중에서 어느 정도 강한 영향력을 가진 경우 큰 악마가 들어가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나쁜 인간관계에 빠져서 악행에 가담해서는 안됩니다.
4. 선악을 준별하는 용기를
악을 증식시키는 두 가지 사고방식
세상에는 여러 분야에서 악을 증식시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근본에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는 2차 세계대전 후의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리, 「다수의 의견이 옳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앞에서 예로 든 학교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일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함께 물건을 훔치고, 모두가 함께 폭력을 휘두르고, 모두가 함께 집단으로 학대하고 있으니까 옳은 것이고 그 그룹에서 빠지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인 「촌락 사회」의 의식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동질이라는 동료 의식을 가지고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 옳고, 동료에게서 벗어난 일을 하면 악이다」라는 사고방식입니다. 「내용은 어찌 됐건 모두와 다른 의견을 말하거나 다른 행동을 하거나 하여 동료에게서 벗어난 사람, 집단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악이다」라고 판정하는 원리입니다. 이것이 악의 증식 원리로서도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규칙으로서의 선악을 배우면 올바름이 보인다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범죄행위 등을 집단으로 행하는 것을 보고 곧바로 이상하다고 의견을 말하는 학생은 대체로 외국에서 귀국한 자녀나 부모가 외국에서 돌아온 아이들입니다. 또 해외로 나간 적이 없는 아이라도 부모가 미션 스쿨 등 종교 계통의 학교를 나왔거나, 자신이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란 경우도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외의 아이들은 숫자가 많은 쪽이 옳다고 생각하고 다수의 세력 쪽에 말려들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선악을 나누는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처나 신이 「이것은 옳다. 저것은 잘못되었다」고 가르치는 것을 믿고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촌락 사회에서의 다수가 어떤가?」는 그다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진리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선악을 판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것은 잘못되었다. 이렇게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여러 가지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외국에서 돌아온 사람은 꽤나 「그것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국제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역시 무엇인가의 기준, 보편적인 규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국적이나 민족 의식을 넘어선 기준으로서 올바른 종교의 선악 기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학교는 국제적인 안목에서 종교적인 선악을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느낍니다.
올바른 일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용기 있는 삶을
세상을 좋게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다수결의 원리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선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더욱 용기를 가지십시오. 젊을 때 용기를 갖지 못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용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젊을 때 용기가 있던 사람도 가정을 갖거나 회사를 다니면서 점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보수화(保守化)되어 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젊은 시절에 용기가 없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절대로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용기를 내어 행동해도 누군가의 반대로 좌절하거나 방해받으면 점점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보통의 흐름입니다.
그러나 그런 흐름에 맞서서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누구나 다 「권력이나 세력이 있는 것에는 반항하지 말고 참고 따르는 쪽이 득이다」라고 말하면 세상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어느 시대나 세상을 좋게 하고 옳은 것을 실현하기 위한 가치관을 추구해 온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는 보편적인 가치관을 전하면서 「이 세상 가치관은 잘못되었다」고 계속 가르쳐 왔기 때문에 옛날부터 기본적으로 이 세상의 가치관을 바꾸는 “혁명운동”과 같은 측면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다수결을 따르면 대개의 경우 처음에는 종교적 견해는 이 세상적 의견에 패배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다수결의 세계이니까 다수의 의견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종교적 진리를 지상에 수립할 수 없게 됩니다. 타협을 하면 종교적 진리는 그것으로 사라져 가게 됩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비록 반대에 부딪치거나 박해나 수난을 당하더라도 계속 힘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옳은 일을 실현하려면 역시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무쪼록 용기를 가지십시오. 용기를 가진 삶을 살아 주십시오.
5. 도전하는 용기가 길을 연다
화제가 풍부한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 자꾸 의견을 말한다
용기와 관련하여 젊은 사람에게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재미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종교를 배우는 학생이나 청년은 착실한 사람이 많습니다만, 윗세대 사람들은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아도 뭔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어느 종교든지 「부처나 신에 대한 복종과 순종」이라는 덕목을 강조하기 때문에 착실하다는 것 자체는 좋습니다만, 그것이 「인간으로서 재미없다」는 평을 듣는다면 착실하다기 보다는 「관심 분야가 좁고 화제가 적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 나는 결코 재미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뉴욕에 머무르던 20대 시절 나는 미국인 친구들에게 솔직하다, 유머러스하다는 평을 들은 일이 많았습니다.
미국인에게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함으로써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 있어서 평판이 좋았고, 주변 사람에게 「아주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학생이나 청년 여러분도 부디 재미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가지고,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견을 자꾸 말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좌절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꾸자꾸 도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젊은이가 아니다
도전하는 한 실패도 있을 것입니다. 목표가 높은 사람은 반드시 실패를 합니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하면 젊은이가 아닙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노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점점 보수적으로 되고 신중해져서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기 않게 됩니다.
경영자 등은 나이가 들면 새로운 일을 하지 않게 되므로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대가 변하는데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나이가 되면 「늙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니까 이제 물러나 주세요」라는 말을 듣고 회사에서 퇴출당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당연히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안됩니다. 나이가 든 사람에게서 하지 마라는 말을 들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며 돌진해 갈 정도의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닙니다.
젊은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야 합니다.
실패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도전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일에서도 그렇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도 없지만,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일을 하는 사람은 실패의 숫자도 많아질 것입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절대로 새로운 기업을 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기업을 일으켜도 확률적으로는 열에 하나 정도밖에 성공하지 못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목표를 높게 가지고 도전하지 않으면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스포츠도 똑같을 것입니다. 야구부나 축구부 등에 속한 사람이 어떻게든 후보 선수가 되겠다고 뜻을 세운다면 절반 정도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식 선수가 되어 지역 대회나 전국체전에 출전하겠다는 식으로 목표를 크게 세우면 점점 이루기가 어려워집니다. 올림픽 등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99.99%가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세계에서건 목표가 높을수록 실패할 확률도 높아집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나 자신도 몇 번이나 실패를 경험하였습니다. 새로운 것을 향해 가는 한 반드시 실패는 하게 됩니다. 도전을 계속하는 한 실패는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를 열기 위해 늘 도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도전하지 않으면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목표를 낮추면 실패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습니다. 그러나 실패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은 아무것도 도전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에도 도전하지 않은 채 인생을 마쳐도 정말로 좋다고 생각합니까?
인생 최대의 실패는 「실패가 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실패한 적이 없다는 것이 인생 최대의 실패입니다. 그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수없이 많이 실패한 사람은 수없이 많이 도전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부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나중에 따라온다
「어느 정도의 목표를 세우는가?」하는 것은 스포츠나 기업 외의 다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문제입니다. 목표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실패는 많아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고 흥미와 관심이 있어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 길을 돌진해 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초석이 되고 싶다는 커다란 목표를 내걸어 주셨으면 합니다.
새로운 시대는 혼자서만은 열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을 가지고 도전하다가 도중에 쓰러져서 시체로 길이 뒤덮인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넘어서는 이들이 잇달아 나옴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실패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그 시체 중 하나가 되어도 상관없으니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역시 청년입니다.
이미 넘어졌다면 5년, 10년, 20년 후에 그 뜻을 이어받아 도전하려는 사람에게 「나를 넘어서 가라. 나의 실패를 참고하고 지혜로 바꾸어 더욱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비판 따위는 젊을 때부터 산더미처럼 많이 받았습니다. 종교가로 일을 하고 있으면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수준이 아니라 훨씬 더 심한 비난을 받았지만 태연히 역할해 왔습니다.
「내가 질까 보냐」고 생각하며 계속 열심히 활동을 하는 동안 차츰 동료가 늘어갔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단체가 만들어지고, 몇십 년이 지나자 세간의 평가도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군」이라는 식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훨씬 뒤에 따라오는 법입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사람들의 평가를 받지 못하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식의 사고를 가진 비겁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건 옳다. 이건 진실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도전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정과 용기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이루는 방법과 선악의 가치관, 도전 정신 등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소중한 마음가짐에 대해 설했습니다. 부디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찬 인생을 걸어가는 용기를 가져 주십시오. 이 글이 여러분에게 지침이 되면 다행입니다.
< 2007년 3월 18일 설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