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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그 은밀한 에로티시즘 97년 영국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자국내 정계에서는 난데없이 대머리 공방이 일었던 적이 있다. 존 메이저 전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토니 블레어 현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을 참으로 웃지 못할 사항을 들먹이며 공격했던 것이다. 정리를 해보면 이렇다.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어느 날 토니 블레어의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다. 당시 블레어는 여성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보수당이 주장하기를, 블레어 측이 그 원인을 대머리 징조가 엿보이는 머리 때문이라고 파악하여 헤어스타일을 바꾸도록 했다는 것이다. 앞머리를 이마에 달라붙는 스타일로 말이다. 그렇게 주장하며 보수당은 노동당에 대해 한마디로 유치한 사람들이라고 맹 비난했던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정치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 그런 코미디를 연출한 게 그저 신기할 뿐이지만, 어쨋든 그 해프닝은 우리가 얼마나 모발에 신경 쓰며 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헤어스타일 하나가 총선에 영행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모발을 단순한 피부보호장치나 장식 이상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토니 블레어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인간의 신체에 돋아난 털은 젊음과 에너지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의 어느 학자가 '털은 인간의 정신적 재산을 재현하며, 남자든 여자든 풍요롭고 아름다운 털은 정신적 발전을 상징한다. 따라서 털을 상실하는 것은 실패와 가난을 의미한다.' 라고 코멘트를 했을 정도로 말이다. 즉, 무성하게 자라있는 털에서 인간은 비옥하고 풍요로운 들판을 연상했는가 하면 털이 많은 사람을 보면서는 육체적,정신적 에너지가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힘이 장사인 사람을 '머리카락'이라는 '털'이 많은 사람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삼손의 괴력은 바로 그 머리털에서 우러나온다. 삼손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지금은 메이저리그의 루키를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간 야구 선수 이상훈인데, 별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사자 갈기 같은 긴 머리다. 그러나 그의 머리는 단순히 '삼손'이라는 멋있는 별명을 이끌어내는 역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선수를 압도하는 '기'를 뿡머내는 역활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팬들에게는 그라운드의 사자 같은 카리스마를 느끼게끔 해준다. 장대한 체구 위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은 왠지 야수 같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올 것 같은 두려움 내지는 환희를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나 간혹, 같은 털이라도 그것이 속한 층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머리털은 신체의 정상에서 자란다는 이유 때문에 '정신적 힘'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나머지 털은 '육체적 욕망'의 추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머리털에서는 이성적인 정신적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신체의 털에서는 본능적인 욕구가 우러나오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때 후자가 죄악시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신화나 동화에서 '악'을 상징하는 괴물은 털로 뒤덮힌 육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동서양을 막롢여 간음을 한 여자는 징벌의 한 가지로 터리털을 갂인 뒤 조리돌림을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는데, 그것에 대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머리털을 깎아버림으로써 여성적 매력을 없애버리려는 것과 동시에 그 여자의 본능적 욕망을 배출시키는 입구(즉,털)를 봉쇄해버리는 의미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층위를 불문하고 인간은 털 자체를 모두 나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털은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무수한 욕망의 외형적 표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적으로 표현한다면 인간의 털은 인간의 원죄를 상징하며, 불교적으로 표현한다면 속세의 번뇌를 상징하는 것이다.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겼던 중세의 성상화가들이 아담을 그릴 때,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기 이전, 그러니까 타락하기 전의 아담을 수염이 전혀 없는 존재로 그린 데 반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기 전의 아담은 수염이 전혀 없는 존재로 그린 데 반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다음의 아듬은 긴 머리털과 함께 짐승스런 수염이 무성한 존재로 그렸던 이유가 그 때문인 것이다. 또한 불가의 승려들이 입문할 때 삭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번뇌 가득한 속세와의 인연을 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더 나아가 이집트의 승려들은 머리털 뿐만 아니라 신체의 모든 털을 깎았다고 한다. 모딜리아니라는 근대의 화가가 여체를 그리면서 음모를 묘사하기 이전까지 서양의 그림에는 남자든 여자든 의식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신체의 털 중에서도 생식기의 털은 가장 죄악시됐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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