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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생각들/푸념들을 궁시렁거리는 곳입니다.
어떤 생각이 언뜻 들었을 때, 글로 쓰다보면 가닥이 잡힐까 해서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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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4일 선고 2009도7948 -아직 판례는 검색되지 않는다. 그래서 1심, 항소심 내용도 알 수 없다.
내가 웬만해서는 언론보도 보고 판결 까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 건은 언론보도도 서로 엇갈린다. 어디선가는 1심에서 검사가 무기구형했는데 12년 때렸다고 하고, 어디선가는 15년 구형했는데 12년 때렸다고 한다. 이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무기를 구형했다면 검사는 심신미약이 아니라고 봤다는 뜻이다[물론 심신미약이 아니라보면서도 15년 구형했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 나오는 보도/논평보니 무기구형한 것 같다.
그런데 이번 건은 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문제점과 이것저것 얽혀있어서 좀 적어본다. 내 생각이 가닥이 잡히지 않은 곳이고, 더구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헛소리 하기 딱 좋은데, 이렇게라도 하면 더 쉽게 가다듬을 수 있을 것 같다.
1 대학 다닐때, 의대를 나오셔서 다시 법학을 공부하신 형법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형법총론의 책임론 부분은 19세기 정신의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한참 뒤떨어져있다는 뜻이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형사정책과 심리학을 같이 볼 때 느꼈다. 법학은 정말 뒤떨어졌다는 걸. 정신의학자들 도움받아서 책임능력부분 다시 써야하지 않을까? 이거야 말로 법학자들이 나서야 할 일 아닐까?
특히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이 부분은 말이 필요없다. 술 처먹고 사고치면 당연히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로 봐야하지 않을까? 고의/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로 나누면서 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는 과실범책임을 지네마네, 전혀 예견가능성 없이 술 처먹고 벌인 범죄는 당연히 심신상실/미약이라는 이야기들.. 이게 옳은 걸까? 싹 갈아엎고 다시 써야하지 않을까?
대학시절, 흠흠신서에서 술 먹고 사고 친 자의 책임을 논한 것을 읽고, 이게 정답이구나 싶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자주지권이란 말만 생각날뿐인데...아무튼 싹 갈아엎고 다시 쓴다면, 그 내용이 바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 부분은 일반의 상식과 어긋나는 법리라고 욕을 바가지로 처먹어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
2 이번 사건은 판사도 어쩔 수 없었다는 글을 많이 본다. 법대생들이 썼던데, 법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써서 틀린 소린 아니지만, 뭔가 떨쳐버리기 힘든 게 남아있다- 판사들은 법리에 맞춰서만 판단할까? 기본적으로 심신미약 여부는 판사가 판단한다. 감정인의 의견에 구속되지도 않는다.
가.'판사가 피고인에게 술먹인다'는 건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판사가 형을 깎아주고 싶을 때, 피고인이 술 먹고 한 짓이라고 억지를 써서 심신미약으로 감경해준다는 말이다. 못믿을 어중이떠중이들이 하는 소리가 아니라 검사들이 하는 소리고, 술자리에서 하는 흰소리가 아니라 지면에 글로 쓴 이야기들이다. 내가 읽은 것만 서넛 되는 것 같다.
이걸 생 거짓말이라 보기도 힘든 게, 판사들이 중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한 피고인에게 이런저런 감경규정을 적용해 관대하게 처벌했노라고 자랑한 글들도 있다[물론 그다지 죄질이 나쁘지 않아 미담일 수 있는 사안들이었지만]. 내가 본 것만 두엇 되는 것 같다.
한마디로, 판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서만 재판한다는 말은 틀렸다. 판사는 자신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양형을 위해, 사실관계인정과 법리적용을 달리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나. 이번 건은 정신질환으로 인한 게 아니다. 술 처먹고 사물변별/의사결정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저질렀으니 심신미약이란 거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는 감정인의 의견-이것도 판사가 구속되지 않지만-을 받아보겠지만, 술 처먹고 벌인 짓에 대해서도 그런 객관적[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렇다는 거다] 기준이 있던가?
그런 기준이 있다고 치더라도, 범행일은 08년 12월 11일인데, 범인은 08년 12월 13일 집에 있다가 긴급체포되었다. 범행 도중/끝나자마자 바로 잡힌게 아니란 소리다. 범행현장을 본 증인은 없는 듯 하다. 그 짓 할 때 혈중알콜농도가 얼마였는지 누가 재두었던가? 술 처먹었다는 건 자기진술이 있을테고, 기껏해야 술먹는 거 본 사람 몇 있을거다. 술 먹었다는 사실 자체야 그렇다쳐도, 맛이 가버렸는지 어쩐지 어떻게 입증했을까? 피고인 진술말고는 무슨 증거가 있을까? 누군가의 증언이 있었다치자. 범인 주변사람 아니면, 별 관심 없어서 흘낏 보고 넘어간 사람일게다. 피고인을 위한 위증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그거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증인이 솔직하게 말했다치더라도, 범인이 미리 생쑈해둔게 아닌지 어떻게 아나?
술 처먹고 맛 갔다는 놈이 증거인멸하려 바닥에 물을 틀어놓고 튄다는 건 말이 안되니 하는 소리다.
이 사건에서 판사는 어떤 근거에서 피고인이 심신미약상태에 있다고 결정했을까? 말을 조금 바꿔볼까? 만약 판사가 피고인이 심신미약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했다면, 누가 무슨 근거로 그걸 깰 수 있었을까?
다. 이번 사건을 보자. 12년-15년이 아닌-을 때렸다. 이게 뭘 뜻할까?
무기징역을 감경하면 7년 이상 징역이다. 그런데 유기징역은 15년까지다. 무기를 때리고 싶었지만, 심신미약으로 필요적 감경을 해야해 눈물을 머금고 한 양형이라면, 15년을 때렸을 거다. 거기서 굳이 3년 깎아 12년을 때릴 까닭이 없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판사는 12년 쯤이면 적당하다고 본 게 아닐까? 그것만 때릴 수 밖에 없었던게 아니라?
아니, 무엇보다도 검사가 무기를 구형했다는 것은 무기를 때리는 게 법적으로 가능했다는 뜻이다. 법이 잘못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핑계는 민망하지 않을까?
3 이번 사안에서 형량이 '이례적으로' 가벼웠던 건 아닌 듯 싶다. 양형기준표 상 형량은 더 낮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양형관행도 그렇다. 그래서 검사도 항소를 안했던 듯 싶고. 한마디로 '판사들 기준'으로는 받을만큼 받은 거란 소리다. 이런 판사들의 양형에 대한 비판이 있다. 좋게 말하면 온정주의라고 하고, 나쁘게 말하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한다. 이번 건도 그렇다.
그런데 이건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판사가 미쳐서/상식이 부족해서 그런게 아니라, 형벌의 본질에 대한 입장이 달라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과거 수천년간, 아니 유사이래 근대 이전까지 범죄에 엄한 형벌로 대응해왔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뭐가 나아졌던가? 없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게 된다. 형벌은 그냥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아닌, 범죄자를 바로잡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굳이 법학자/법률가들의 글 볼 필요도 없다. 백범일지에 김구선생께서 감옥에서 느끼신 것을 쓰신 부분을 보자. 누가 틀렸다고 할 것인가.
엄한 형벌은 무의미하고[엄형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범죄자를 바로잡는데 방해만 된다고 보게 된 것이다. 판사들이 그렇게 여론의 돌팔매 맞아가면서도 가벼운 형을 주려고 하는 게 돌아서/개념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바로 이것 때문이다. 형법학자들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가. 그럼 이렇게 형을 가볍게 하는게 옳은가? 내 생각엔 아니다.
형을 가볍게 하는 것은 현명하신 재판장님이 너그럽기까지 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범죄인을 사람 만드는데 엄한 형벌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범죄인을 바로잡기 위해서 형을 가볍게 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범죄인이 교도소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나? 아무도 그렇게 믿지 않는다. 그러면? 새사람으로 거듭나지도 않은 범죄인이 감옥에서 금방 나오게만 된 거다.
결국 죄지은 놈은 땡 잡았고, 사적복수는 허용되지 않고 민사소송도 여의치 않은 피해자는 가슴만 앓게 된거고, 사회는 더 위험해 진 거다.
물론 판사들은 '그건 교도관 잘못이지 우리잘못이 아니다'라고 할 거다. 맞는 말이다. 판사는 엄혹하지 않은 형벌로 재소자를 바로잡을 전제조건만 갖춰주는 것이고, 실제 재소자 새사람 만드는 것은 교도관이 할 일이다. 나도 교도관 편 들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들 근무태도가 개판인 것은 2년동안 잘 봤다. 자기들도 사기업에서 이렇게 일하면 다 짤린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문제는 교도관을 까면 풀릴까?
방송이나 책에서 유럽 어느나라 교도소는 재소자가 없으면 백기를 건다느니, 깔끔하고 산뜻한 교도소에서 교도관들이 재소자들과 형제처럼 지내는 다큐멘터리도 틀어주고 한다. 그럼 그 나라 교도관들을 히딩크 모셔오듯 하면 우리도 그렇게 될까?
어떻게 하면 범죄인을 새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 가게에서 조그만 것 훔치다 걸린 꼬맹이야 어르고 달래면 반성하겠지만, 산전수전은 물론 공중전까지 다 겪은 범죄인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신부님/목사님/스님 모셔다가 하루종일 강론/설교/설법 듣게 해줄까? 명심보감 같은 책들을 하루에 열시간 씩 읽게 해줄까? 여러 사회명사들 모셔다가 매일 특강을 해줄까?
많은 사람들이 직업훈련이나 그밖의 프로그램에 기대를 건다. 하지만 그게 먹힐까?
지금은 장발장이 빵 한덩이 훔쳤다가 감옥간 시대가 아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가난한 경우가 많을지 몰라도, 가난에 못이겨 범죄를 저지른 건 많지 않다. 어떻게 아느냐? 범죄를 저지른 놈이 돈을 어떻게 썼는지 보면 알 거 아닌가. 어머니는 병 때문에 수술해야하고 새끼들은 배가 고파 울고 있어서 도둑질을 했다면, 도둑질 한 돈을 수술비와 쌀값으로 쓰지 룸싸롱에서 쓸 리는 없지 않은가.
언젠가 범죄자들이 번 돈을 대개 유흥비로 쓴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형사들 말을 인용해서 한 보도였는데, 내가 알기에도 그렇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한달 내 일해서 쥐꼬리만한 월급 받느니 남의 집 털겠다는 사람에게, 한달 내 일해서 쥐꼬리 받을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면서 손씻기를 바란다는 건 바보 같은 짓 아닐까? 교도소에서 배울 수 있는 기술들, 사회의 직업훈련원 등에서 큰 돈 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배울 수 있던 기술들이다. 감옥가기 전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번 건과 같은 성범죄는 직업과 아무 상관도 없다.
한마디로, 세뇌말고는 새사람 만들 방법이 없다.
형벌이 범죄인에게 고통을 주는 게 아니라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길이 되야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엔 아름답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일선 교도관들의 생각도 같을걸?
그러면 판사들은 양형을 어떻해야할까? 교도관이 못나서 못하는 것이라면 지금처럼 양형해야겠지만, 교도관이 아무리 잘나도 못할 일이라면, 양형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나. 그에 덧붙여, 판사들이 내멋대로 양형도 문제다- 항상 가벼운게 아니라는거다.
예컨대 판사에게 석궁 쏜 김명호는 징역 4년을 받았단다. 판사의 전세금을 사기친 경우 구형량보다 무거운 형이 내려진 경우도 있는 걸로 안다. 다른 공무원의 공무집행에 불만을 품고 석궁을 쏴서 비슷한 상해를 입혔다면, 피해액이 비슷한 다른 사기 사건에서 형은 얼마나 되었을까?
4. 언제나 그렇듯, 여론이 끓어올랐으니 정치권에서는 대응입법을 할 것이다. 판사들이나 형법학자들이 지적하듯 최고형량은 이미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 이번 사건은 법에서 최고형량을 부족하게 규정한 것이 문제된 것이 아니라, 판사의 양형이 가벼워서 생긴 일 이다. 그러면 대응입법은 어떻게 이뤄질까? 감경을 못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자유심증주의를 없앨 수도 없다. 사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 것임에도 이것들은 손댈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사안에서는 유기형의 상한을 손보는 방식으로 갈 것 같지만, 대략 형의 하한선을 끌어올려 판사가 일정 정도 이상의 형을 때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던 일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모든 구성요건은 추상적이다보니 구체적 타당성이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구성요건을 세분화한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죄명은 같아도 죄질은 천차만별이니까. 살인을 보자. 죽인 놈이 죽일 놈일 수 있고, 죽은 놈이 죽어 마땅한 놈일 수도 있다. 모두가 별 일 아니라 생각하는데 죄명은 무시무시한 일들은 없을까?
결국 불합리한 결과를 막기 위해 판사에게 양형재량을 넓게 줘야 하는데, 판사들이 바로 그 양형재량을 상식에 어긋나게 행사하면서, 양형재량이 입법적으로 좁혀지게 될 것이다. 이게 뭘 의미할까? 죄질에 있어서 천차만별인 모든 일들이 죄명만 같으면 비슷한 중형을 피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어느 판사가 썼듯이, 판사가 동원가능한 모든 감경규정을 동원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겠지. 실패하면? 별일도 아닌데 중형을 선고받게 될 것이다. 국민들은 이걸 뭐라고 생각할까? 누구는 무슨 짓을 해도 얼마받고 끝났는데, 누구는 별일 아닌 걸로 얼마동안 감옥에서 썩어야 하더라... 이런 상황에서 법질서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 있까?
기본적으로 법의 정당성은 국민의 뜻에서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들이 법에 대해 잘 모르고, 더구나 이런 일들에 있어서는 모두가 흥분해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분노가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단순한 오해나 무지에서 비롯된 게 아니란 것이다. 오해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설득해 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더더욱 큰 문제는,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분노한 국민들의 뜻에 따르게 되면 더 큰 위험이 나타날 것이 눈앞에 뻔히 보인다는 것이다.
누가 그런 일들의 책임을 져야할까? 법을 고치는 국회의원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겠지만, 이런 사태를 만들어낸 건 누굴까?
5. 피해자를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얼마 뒤면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겠지만, 그 아이는 어찌 될 것인가. 몸에 상처가 남지 않았어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일인데, 평생 고치지 못할 몸이 되어버렸다. 아이 마음은 좀 일그러질까?
여자들은 화장실도 같이 간다는데, 그 아이는 그러지도 못할 거다. 여자애들 사이에서 쑥덕공론이 돌겠지. 친구들이 뒤에서 수근거리다가, 무슨 일을 계기로 철없는 뉘집 자식이 앞에서 대놓고 놀려대겠지. 누구는 뭘 차고 다닌다고..
이제 곧 사춘기도 올 게다. 그 아이도 마음에 드는 남자애가 생기겠지. 그때 그 아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가슴 설레는 좋은 추억인 첫사랑이, 그 애에게는 아프기만 한 멍울이 될 게다. 나중에 어떤 남자애가 이 아이를 쫓아다녀도, 이 아이는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있을까? 이 과정에서 말 못할 아픈 오해는 좀 많을까? 어찌어찌해서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도, 결혼을 앞두고 얼마나 속을 썩일까?
스물즈음 되었을 때, 자신은 그 상처로 그때까지 고통받고 있고 앞으로도 고통받을 텐데,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은 죗값을 다 치렀다며 나돌아다닌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말 답이 없는 일들이다. 내가 책임있는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구나 싶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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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nobody2504/trackback/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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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사건 2009.10.03 19:18 [118.33.46.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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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수원지법 안산지원 2009고합6 , 2심은 서울고법 2009노794 , 3심은 대법원 2009도7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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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장군 2009.10.0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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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모두 검색이 안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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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 블로그의 논쟁을 보다가, 자주 생각하던 것을 조금 적어 본다.
존경받지 못할 강자도 많지만, 동정받지 못할 약자도 많다. 강/약 또는 부/빈곤이 바로 선/악이나 정/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물론 강자가 옳은데도 약자의 사정을 봐줘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이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고자 하는 분들은 이걸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저 믿음은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다음.
그 믿음이 깨지고 나서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되는 가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진보는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개론으로 빠진다면, 그 사람에게 진보는 사상적 허영일 뿐이었다는 뜻이겠지.
사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쪽 말로 '진정성'이 있었다는 뜻이겠지.
밖에서 볼 때 나는 어떨까?
그런데 난 믿음이랄 것이 없는 것 같다.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거기 얽매여 그 틀안에서만 보게 되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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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nobody2504/trackback/9/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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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해서 궁시렁거려본 글인데, 500분이 넘게 찾아와 주셨군요.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별로 읽어볼만한 글은 아닙니다.
방송법 재투표에 대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kind=AF&serial=48257&page=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25/2009072500054.html
이 글을 읽어보시면 될 겁니다. 저도 나름의 생각이 있긴 합니다만[마침 헌법학자 의견 가운데 제 생각과 같은 것도 있군요], 누구에게 말해줄만한 수준이 못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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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재투표와 관련해서 말이 많다. 인터넷을 보니, 법률가나 법대생들이 쓴 글도 많이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일사부재의가 헌법학에서 중요한 개념이긴 한데, 솔직히 지금까지 크게 쟁점이 되었던 적은 없다.
그러다보니 헌법책에서도 간단하게 다루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일사부재의를 한 쪽 넘게 다룬 헌법 기본서가 있을까 싶다.
예전에 관습헌법으로 말이 많았던 때와 비슷하다. 그때까지 헌법 책에 관습헌법은 끽해야 한 두줄 나왔을까? 헌재판결 나오기 전 어느 특강에서, 어느 교수가 법원으로 관습헌법을 얘기했을 때도, 저게 과연 문제가 될까 싶었다. 노무현이 관습헌법을 처음 듣는 이론이라고 했을 때도, '저러면 안되지' 하면서도, 솔직히 이해는 갔다. 70년대에 공부해서 판사되었다가 정치판 뛰어든 사람이면 모를 수 있겠구나 싶었으니까. 그러다가 헌재 판결이 나오자, 참 많이도 떠들어댔지.
한마디로, 대학원이나 사법연수원은 몰라도, 미디어법 재투표와 관련해서 법대생/졸업자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관련 자료를 찾아볼 입장이 못 되서 잘라 말할 수는 없는데, 실무계나 법학계에서도 일사부재의를 깊이 있게 다룬 글이 있을까 싶다[다 쓰고 나서, 헌재와 대법원에서 일사부재의로 검색해봤다. 헌재는 한건 있는데 별 상관없는 것. 대법원에서는 일본학자가 다룬 논문 하나 있고, 국내학자 논문 가운데 목차에 일사부재의가 들어가는 것이 셋인데, 일본학자 것은 몰라도 국내학자 논문은 일사부재의가 논문의 주제는 아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검색해보니 일사부재의를 다룬 일본 책이 한권 있다. 국회도서관에서 검색해봤는데 논문은 없다. 단행본 가운데 일사부재의가 들어간 것은 있는데, 얼마나 다룬 것인지는 모르겠다]한두편 있다 한들, 그걸 가지고 학계/실무계에서 활발한 논의가 있었을지?
그래서 요즘 법대생들이 써대는 글을 보면 갑갑하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지식들을 갈무리해둔 건지...
솔직히 얼마 안되는 지식, 그 가운데서도 내 말빨 세울 만한 것만 가려내서 써대면 뻔하다. 서로가 어느 정도 아는 지 서로가 뻔히 아는데, 저러면서 속으론 찜찜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논쟁을 지켜보니 아니나 다를까, 덧글 몇번 오가더니 바로 말싸움으로 되더군. 아는 수준 비슷한 사람들끼리 붙으면 저럴 수 밖에 없지. 뭐 나도 그랬으니까 할말 없다만.
법조인/법학자들의 글을 보면 더 하다. 애들은 몰라서 저런다고나 하지, 나이 먹을 만큼 먹고도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에 유리한 소리만 하는 걸 보면........물론 기자가 쓰고 싶은 말만 쏙 뽑아내서 그리 된 거라면 이야긴 다르지만.
어떤 율사출신 정치인이 쓴 글은 처음 두어줄 읽다가 말았다. 일사부재의란 개념이 왜 생긴 것인지부터를 제멋대로 바꿔버리는 걸 보니 할말이 없어지더군.
어느 분야를 전공했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로 행세한다면, 일반인에게 글을 쓸 때는 답안작성하듯 해야하지 않을까? '이러저러해서 문제가 되는데, 찬성론은 이걸 근거로 하고, 반대론은 저걸 근거로 한다. 내 생각은 이러저러해서 이게 맞다.'
말 안되는 소리 하는 건 제쳐두고라도, 내 주장에 안맞는 것은 싸그리 무시해버리고 내 말빨 세울만한 것만 쏙 빼서 그 것만 떠들어대는 건 일반인을 속이는 것 아닐까? 물론 그게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나 다름 없는 선동질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 낚여서 어떤 싸움을 할지 뻔히 보이지 않는가.
대학 다닐 때 인권변호사들을 정말 존경했다. 그 뒤 보수적으로 되면서도, 나와 다른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지만 인정해줘야 하는 분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 분들이 자랑스레 쓴 글들을 읽으면서 이건 아닌데 싶었던 적이 많았고, 결국 존경은 거두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다른 게 있다면 갑갑하다고나 할까. 나 자신도 그래왔고, 싸움의 당사자가 된다면 또 저럴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으니.
나중에 뒤늦게 덧붙인다. 사람들이 낚이는 것과 관련해, 언젠가는 써두고 싶었던 것이 있어서.
{예전에 어느 인권변호사가 쓴 글을 읽었다. 어느 사업체에서 노동쟁의가 일어났는데 노동자들이 구속되어, 노조에서 도움을 요청하더란다. 가보니 구속된 노동자들이 많이 흔들리고 있더라나. 변호인으로 접견해서, 당신을 구속시킨 법이 악법으로 위헌무효라 강력히 설득했고, 힘을 얻은 노동자들은 다시 단결해 투쟁을 계속했단다.
내 생각엔 그 법을 위헌이라 보기 힘든 데, 이건 제쳐둔다. 변호사로서 노동자를 위해 일하고 싶은 것, 투쟁을 독려하는 것 다 좋다[비꼬는 게 아니다].하지만 법전 한번 구경 못해본 노동자는 저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변호사가 위헌무효니 괜찮을 거라 해서 믿었는데 나중에 유죄판결 받은 노동자에겐 뭐라고 할건가? 법원과 헌재의 보수성을 통렬히 질타하면 되는건가?
누가 뭐래도, 구속된 노동자는 인생의 기로에 서있다. 그 때 투쟁을 독려할 수 있다. 하지만 노조지도부가 아니라 변호사라면, 이 때 투쟁으로 부담해야 할 위험도 설명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변호사라면, 투쟁설득과 함께 '당신이 지금 무슨 죄로 구속되었는데, 유죄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이때 형량은 대개 얼마 쯤 나온다. 나는 이 법이 위헌이라 본다.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자. 그런데 헌재가 이걸 위헌이라 볼 가능성은 낮다'는 말은 꼭 해줘야 하는것 아닌가? 이런 말을 빼고 변호사로서 저 법은 위헌무효라는 소리만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속이는 것 아닐까?}--이 부분 지운다. 다시 읽어보니 내가 기억하던 내용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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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다시 덧붙인다.
언론보도/ 법대생이나 졸업자들이 책에서 읽어보지도 못한[내가 아니라 그들이] 이야기로 아는 척-결국은 자기 생각 떠벌리는 것 아닌가-하다가 서로 비아냥대고 싸우는 것 보고 기분이 잡쳐서 쓴 글이었다.
그런데 좀 진정하고 생각해보니, 나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움 때문에 더 짜증이 났던 것이다. 나는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저쪽 생각도 나름 근거가 있는[또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과실이 없는]것이겠지.-->고친다. 근거가 있다. 없는 게 아니다. 위에 조선일보 기사의 박주선의원 의견을 보면.
걔들 떠드는 것 보고 '까고 있네'하고 나서 보니, 나도 그 꼴인 셈이다. 그저 갑갑하다. 앞으로는 될 수 있으면 입 다물고 있어야겠다.
또 덧붙인다.
내 나름대로 봤을 때, 혀를 차게 만드는[물론 내가 그 나이땐 어땠나 생각해보면 머쓱해지지만] 법대생 블로그가 있는가 하면, 나보다 어리지만 네가 나보다 낫구나 싶은 법대생/졸업자 블로그도 있다. 그런데.....이 친구들이 하나같이 나와 의견이 반대다. 나로서는 너무 당연하게 일사부재의 적용될 일이 아니라 보았고, 다시 일사부재의의 제도적 의의를 생각해봐도 이 건은 일사부재의가 적용될 사안이 아니라 보았는데, 이친구들은 너무 당연하게 일사부재의 적용된다[여기까진 흥분해서 썼다치더라도], 다시 생각을 가다듬은 뒤에도 일사부재의 적용된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냥 정치적 입장 때문에 우김질을 하는 글이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생각을 가다듬은 글을 읽어보니 나로서는 읽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가진 헌법책들이 정종섭교수 책을 빼면 다 오래된 것이라 그런지, 내가 보지 못한 학원강사들의 책에 인용된 논문을 본 것인지 모르겠다.--확인해 보니, 내가 잘못 안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에 비슷한 사례가 시험문제로 나왔다면, 저들은 지금처럼 썼을까? 만약 재적과반수에서 하나 모자란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전원찬성으로 어떤 결의[물론 마음에 안드는]를 했는데 일사부재의는 문제되지 않았다면, 그걸 부결된 것이라 주장했을까, 아니면 무효라 주장했을까? 나는 지금과 같이 같이 생각할 것이다. 지금까지 달리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옳은 지는 모르겠으나, 보수-진보간에 대화와 타협이 되긴 될까?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이 단락은 취소한다. 생각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밑의 1을 쓰다보니, 저들이 그럴 수 있고, 그게 틀린 건 아니란 걸 알게되었다. 정치적 기호때문이 아니라, 법적추론을 하다보니 결론이 바뀌는 건 당연한 것이고, 저들도 그랬을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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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생각치 못했던 중요한 쟁점들이 떠올랐다.
1 일사부재의의 위반효과는 뭘까[일사부재의가 문제될 사안이 아니라보지만, 문득 생각났다]? 일사부재의가 다뤄지지 않은 책은 없지만, 그 효과가 어떠한지를 기술한 것은 본 적이 없다.
일사부재의가 기본적으로 법적안정성과 소수파의 의사방해를 막기위한 것이라면, 이는 이미 부결된 안건이 다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막는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가[지금처럼 일사부재의 적용여부가 다투어지는 상황이라던지] 한번 부결된 의안이 다시 상정되어 가결되었다면[부결되었다면 문제되지 않는다] 그 결의의 효력은 어떠할까?
지금 방송법재투표가 일사부재의에 위반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사부재의에 위반한 결의는 무효라는 것을 전제로 한 듯하다. 일사부재의에 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에 대해 별다른 이견을 내놓지 않는 듯 하다. 그런데 그렇게 봐야할까?
일사부재의의 위반효과는 일사부재의의 의의를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일사부재의 위반은 결의의 내용적 하자라기보다는 단순한 절차상의 하자이다. 그 절차상의 하자라는 것도 민주주의나 대의제와 관련한 본질적 하자라 보기 힘들다.
소수파 의사방해의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고, 법적안정성의 측면에서 봐도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일사부재의의 엄격한 적용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 인정되는 예외들과, 회기만 바뀌면 얼마든지 다시 의결할 수 있음-심지어 기간제한도 없다. 말 그대로, 필요하다면 바로 다음날 다시 국회 열어서 의결하는 것도 아무 문제되지 않는다-을 생각하면.
그렇다면 일사부재의에 위반된 결의가 그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보기엔 힘들지 않을까[내용적 정당성은 처음부터 별개의 문제이다]?
따라서 일사부재의에 위반된 결의도, 별개의 문제가 없다면, 그 효력을 부정하긴 힘들지 않을까?
솔직히,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 저들이 방송법재투표가 일사부재의 위반으로 무효라 주장해왔어도 그에 의문을 품어본 적조차 없다. 아마 이번 사안이 일사부재의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딴지건다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이 걸 보고 -위에서 쓴 것처럼- '너 이전에도 이렇게 생각했냐?'라 해도 할말은 없지만... 지금의 내 생각은 이렇다.
2 대리투표문제와 관련해-'사자'투표의 허부
어차피 이번 사안의 핵심은 대리투표문제다. 개인적으로, 헌재는 일사부재의는 적용사안이 아니라 문제되지 않지만 대리투표를 이유로 민주당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리투표 문제가 나오면 문제가 될 법한 것이 하나 떠올랐다.
다른 국회의원 자리에 가서 무단으로, 그러니까 해당의원의 의사에 반해서 멋대로 투표했다면 그건 당연히 무효다.
그런데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이 해당 의원의 추정적 의사에 따라 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해당 국회의원이 의사결정을 이미 한 상태에서 그 표시만을 명시적/묵시적으로 위임했기에 유효하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의장석에 가서 몸싸움 하는 동안 자기의 투표는 당소속의원에게 명시적/묵시적으로 위임한 것이고, 이는 -민총에서 나오는 대리와 사자의 구별을 원용한다면- 대리가 아니라 사자에 불과하니 괜찮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주장을 한다면, 아마도 국회의장이 본회의 진행중에 투표하기 위해 의장석에서 직접 기표한 뒤 용지를 접어 국회사무처 직원을 시켜 투표함에 넣은 행동을 유효하다고 본 헌재판결을 인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고도의 정치적 판단 어쩌구 일신전속적 저쩌구 하는 소리는 제쳐두고, 저러한 투표행위의 위임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면, 헌법과 법률의 각종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 규정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각 당 소속의원 하나씩만 나와서 모든 걸 끝낼 수도 있게되니까.
물론 국회의장의 저 사안을 가지고, '대신 투표함에 넣어주는 것과 대신 손가락으로 눌러만주는 게 뭐가 다르냐'고 한다면 궁색해지는데...... 국회의장이 의사진행하면서 저런 것은 의사/의결정족수 규정을 무의미하게 할 우려가 없다.
3 대리투표가 허용될 수 없는 것이 결의의 효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지켜봐야겠지. 규모를 막론하고 대리투표의 존재만으로 결의가 무효가 될 것인지,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에 따라 결정되는 지는 헌재의 판단을 봐야할 것이다. 한두표만 그런 게 있었다면 몰라도, 이번처럼 대규모로 이뤄진 것이라면, 표결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더라도[이 건에서 표결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사실관계 확정의 문제겠지] 의결이 무효라 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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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판시
http://www.ccourt.go.kr/home/main/xml/month_view.jsp?mainseq=91&seq=1
다수의견이 일사부재의 위반이라고 본 게 뜻밖. 4명이 나처럼 생각했지만. 정족수는 성립요건 또는 효력요건이니[허영/정종섭], 성립/효력요건을 갖추지 못한 결의는 불성립/무효라 생각했는데...대법원에서 한 민법상 사단법인의 결의에 대한 판시가 [사안이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 법의 일반원리에 가까운 것이라]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튼 다수의견은 달랐다.
그나저나 일사부재의 위반효과와 사자투표의 허부는 나만의 뇌내망상이었나보다. 아무도 주장하지 않은 듯 하니.
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kind=AB&serial=49660&page=1
일사부재의가 내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지고 있나보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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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astlerock.egloos.com/5020434 이 글에 덧글을 달았는데, 내 덧글을 보고 羅睺星님께서 비범죄화와 합법화를 구별할 이유가 없지 않냐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몇가지 생각이 들긴 했는데, 가닥이 안잡혀서 그냥 넘어갔다. 그러다가 다른 곳에서 성매매 비범죄화는 합법화가 아니라는 글을 보고, 저 일이 다시 떠올라 이것저것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범죄화는 합법화[그러니까 법질서의 승인]일까?
[박상기/손동권/이순래 교수의 형사정책 책에는 비범죄화가 범죄행위에 대한 사회적 동의는 아니란 점을 강조했는데, 그밖에 이와 관련한 기술이 있는 책은 못찾았다]
먼저 비범죄화는 사실상 비범죄화도 포함하니 비범죄화=합법화라 볼 수는 없겠지. 그런데 이건 좀 우김질이고, 핵심은 법률상 비범죄화를 합법화라 볼 수 있는가이다.
먼저 법률상 비범죄화를 배종대교수의 책에서는 세가지로 나눈다.
1 그 행위의 법적/사회적 승인이 이뤄진 경우.
2 국가임무에 대한 인식변화와 인권신장으로 그 행위에 대한 국가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경우.
3 그 행위의 가벌성이 인정됨에도 국가가 여러 이유에서 형법투입을 포기한 경우.
1의 경우, 합법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2와 3.
금지되지 않은 것은 허용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羅睺星님께서 저런 말씀을 하셨고, 옳은 말이다.
그런데 처벌규정의 부존재/삭제를 법질서의 승인이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먼저 금지규정은 있지만 처벌규정은 없는 경우를 생각해보자-솔직히 이건 좀 우김질. 그러면 다음은 어떨까
형법상 정당방위의 대상이 범죄에 한정되지 않음은 다툼이 없다. 그렇다면 이는 처벌규정의 부존재가 바로 법질서의 승인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민사상 불법행위도 범죄에 국한되어 인정되지는 않는다. 법질서의 통일성 측면에서, 이는 범죄 이외에도 법질서가 승인하지 않은 것들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처벌규정의 존재=금지'지만, 처벌규정이 존재하지 않아도 법질서가 금지한 것이 있다는 뜻이다.
개념파악이 안되서 쓸데없는 소리가 길어졌는데, 처벌규정의 존부만으로 금지/허용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물론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겠지만].
따라서 비범죄화=합법화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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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노무현 영결식 때 경찰이 노란색 스카프/리본 등을 거두어들였다고 한다. 그 전에는 미네르바가 구속되었고.
근거없는 이야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폭력사태로 번졌던 촛불집회를 생각해보면, 공안당국의 과민반응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치주의가 이 정도 일로 흔들릴 줄은 몰랐다. 지난 촛불집회는, 비록 폭력사태로 변질되었지만, 시위가 축제로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 저 모양일 줄이야.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저런 일들을 바로잡을 제도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가이다. 검찰의 행동은 법원에서 -일단은- 막았지만, 경찰의 저 행동은 국가배상과 헌법소원을 청구해야 할텐데 잘될까? 국가배상은 위법성이 인정되어도 몇 푼 안나올테고, 헌법소원은 본안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2.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반대 편에 설 수도 없다.
나는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았고 유시민을 싫어하지만, 노무현이 저렇게 죽어야 할 사람은 아니라 생각하고, 유시민이 영정 앞에서 담배 한 개피를 바치는 사진을 보고 울컥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걸 보면, 이건 정말 아니다.
재임 중 비리 혐의를 덮어두겠다는 것은 좋다. 죽음으로 갚았으니까.
그의 죽음을 계기로 수사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좀 더 알아보고 생각해봐야겠지만- 그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비리혐의로 수사받다가 자살했을 뿐인 사람이 민주주의의 상징, 지켜주지 못한 꿈으로 둔갑해 버린 것은 동의할 수 없다.
3 노빠들이 통곡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다른 사람들은 덩달아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노무현 재임 중 그렇게 욕하고 이명박을 찍었던 사람들이, 촛불집회때는 황당한 얘기에 들고 일어나 이명박을 까더니, 며칠전까지 비리혐의로 손가락질하던 노무현의 죽음 앞에 통곡을 한다. 노무현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이것저것 조작하고 고문해서 뒤집어 씌운 것으로 믿고 있었다가 저런다면 모르겠지만, 얼마전까지 노무현측 변명에 사람들이 보이던 태도는 비웃음 아니었던가?
봉하마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도 이해가 안간다. 봉하마을은 원래부터 진보성향이 강한 곳이었던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합천사람들이 전두환에게 보여주는 태도와 다른 건 뭔가? 철원이 고향이신 아버지 친구분께서, 철원에 도읍을 세운 궁예를 기리는 동네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서는, 궁예의 복권을 시도하는 소설을 쓰시는 것을 보면...이게 하루이틀 된 이야기는 아니지 싶다.
나 자신도 비뚤어진 것 같다. 조갑제의 말은 또 헛소리하는구나하고 그냥 넘어가게 되는데, 진중권의 말은 아주 거슬린다.
우리나라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무척 허약한 듯 싶다. 이게 하루이틀 사이에 고쳐질 수도 없을 것 같다.
사람들도, 나 자신도 돌아보면 한숨만 난다.
덧붙여서, 위에 수사관행 바로잡자는 주장은
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kind=AD&serial=47184&page=1
내가 더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생각해 봐야할 것은 대강 이렇다.
가.외국은 정말 공소제기 이전에는 브리핑도 없고 보도도 안할까? 규정상이 아닌 실제에서도? 미국의 경우, 공소제기의 의미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와 수평비교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일반적인 경우라면 저 주장이 백번 지당하다. 하지만 정관계인사의 비리혐의라면 조금 더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이러네저러네해도 지금 우리가 50년대 같은 막장상황은 아니다. 검찰에서 언론에 유력인사의 수뢰사실에 대해서 발표할 정도면, 상당부분 혐의가 인정되는 상황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이라면 피의자의 인격권 등과 공인의 수뢰혐의라는 사안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의 충돌로 볼 수 있을게다. 앞의 것이 뒤의 것보다 상위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내가 그냥 찬성하지 않고 한번 더 생각하게 된 까닭 가운데 하나는, 무죄판결이 꼭 피고인의 순결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야만 유죄판결을 한다는데, 그건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도 살펴보면 상당히 수상한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무죄판결을 받은 사안 가운데, 돈이 오간 것은 맞는데 구성요건을 모두 충족하지는 못한 경우도 있지 않을까? 유죄판결 뒤에나 보도할 수 있다고 보면, 이런 경우는 다 빠져나간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해 본 것은 대강 이쯤이다. 내가 저 바닥에 있어 본 적이 없어서 딱 잘라 말하지는 못하겠고, 그냥 좀 더 알아보고 생각해봐야겠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뒤늦게 조금 더 해 본 생각.
유죄판결전에 멋대로 예단하고 떠드는 것은 물론 반대다. 그게 정관계 인사의 비리혐의든 뭐든. 그러면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언론보도가 되면 그 다음엔 사냥이 벌어질 것은 뻔한 일일테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은 국민들이 어떤 혐의로 이런 절차가 진행중이란 것은 알아야하지 않을까였는데, 알려주면 그다음엔 사냥이 벌어질 것 같다. 물론 언론에서 제대로 써주고 읽는 사람도 제대로 이해하면 그런 일이 없겠지만, 가까운 장래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다. '당분간은' 저런 주장에 따라야 하는 것일까?
역시나 모르겠다.
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kind=AD&serial=47357&page=1
법무부에서 수사공보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든단다. 법무부에서도 저러는 걸 보면, 내 생각이 짧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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