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전,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연좌제에 관한 글을 보았다.
나름 할말이 있었지만, 인사는 못 드리고 눈팅만 하던지라 덧글은 못 달고 여기에 푸념을 늘어놓아 본다.
우리 할아버지는 좌익이셨는데, 한국전 터지자 마자 돌아가셨다. 이른바 보도연맹사건. 할머니도 인공치하에서 뭔가를 하지 않았겠냐는 의심을 받고 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하셨다. 그 뒤부터 일어난 일들이다.
김형욱이 중정부장이던 시절, 좌익가족들에게 관련기록 다 삭제했다는 문서가 하나 오더란다. 물론 그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뒤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안다.
아버지는 군입대후, 군범죄수사대에 배치받으셨다. 그곳에서 일하려면 비밀취급인가가 있어야 했는데, 당연히 아버지에겐 비취인가가 나올 턱이 없었다. 다른 곳으로 날아가게 생겼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고향선배 한분이 힘을 써주신 덕에 비취인가가 필요없는 운전병으로 지낼 수 있었다.
요즘은 그런 것이 없어졌는데, 예전에 사원모집공고를 보면,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다.
물론 그 시절에 '빨갱이 아들'이 해외여행이 가능할 리 없었고, 아버지는 웬만한 기업엔 원서조차 못내셨다.
고모 한분이 이민을 갈 때 이게 다시 문제가 되었는데, 그때는 아버지 고향 친구 분께서 중정에 계신 덕에 해결 되었단다.
아버지는 교사가 되셨다. 그런데 당시엔 주임교사가 되기 위해서도 비밀취급인가가 필요했다고 한다. 나중에 세상이 좋아지면서 주임교사에게 비취인가가 필요없는 시대가 왔지만, 이미 비슷한 연배의 동료분들은 저만큼 올라간 다음이라서, 승진같은 것은 포기하고 살게 되셨다.
언젠가는 계시던 고등학교 학생들이 사관학교 체육대회응원에 동원되어, 아버지께서 인솔해 가시게 되었다.
문제는 거기에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것. 결국 아버지는 신원조회에서 걸려 가지 못하셨고, 그때 교감이 내뱉은 말을 잊지 못하신다.
'지금까지 빨갱이새끼와 근무하는 걸 몰랐네'
그 뒤, 노태우가 '보통사람'과 대화하겠다고 한 일이 있었다. '보통사람들'을 모으다 보니 교사도 몇 부르게 되었는데, 어찌어찌하다가 아버지께서 거기 뽑히셨다. 방송을 녹화하기 위해, 피디가 몇월 며칠에 어디로 오시라고 했다. 며칠 뒤 걸려온 전화- 방송녹화가 연기되었단다. 다음에 다시 연락 드리겠다고.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방송은 제 날짜에 이루어졌다. 물론 아버지 자리엔 다른 사람이 있었고.
내가 대학 4학년 때, 모 기관 공채에 원서를 냈다. 물론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아버지가 무슨 일을 겪으셨는지는 알고 있었는데, 그냥 한번 내본 것이었다. 당시 그 기관 홈페이지 채용 질의응답란에 친척이 좌익인데 괜찮겠느냐는 질문이 많았는데, 그에 대해 담당자가 '한국전 당시 좌익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 친척/후손 다 빼고나면 뽑을 사람이 없다'고 답한 것도 한몫했다.
솔직히 서류전형에서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어? 붙었네? 다음도, 그 다음도.. 운이 좋아서 결국 마지막 단계까지 갔는데 떨어졌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이 강조하던 말이 있다. '지금 떨어지는 것은 신원조회에 걸려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면접에서 정원의 몇배수를 합격시킨 것이기 때문에, 면접까지의 성적이 낮아서 떨어지는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솔직히 곧이 들리지 않는다. 그말이 맞다면 뭐하러 면접에서 몇배수를 합격시켜 그 과정을 거치게 하나? 신조관 할일 만들어주느라고? 아무튼 처음엔 별 생각없이 원서를 냈지만, 마지막에 떨어지니 충격이 컸다. 한동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는 했으니까.
그런데 얼마 뒤, 아버지께서 국제결혼한 고모와 통화를 하셨다. 내 이야기를 들은 고모부가 고모에게 그러시더란다.
'어느 나라나 그런 것이 있다. 나도 당신과 결혼 못할 뻔했다'
아주 수상한 말이지만, 당시엔 기분이 워낙 안좋아서 별 생각없이 넘어갔다. 나중에서야 그 말이 다시 생각났다. 뭔가 이상한데?
알고보니 고모부께서 그쪽에 계셨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자, 뭔가가 퍼뜩 떠올랐다. 이것 때문에 신조관이 그때 그랬구나...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내가 원서를 넣었을 때 우리집에는 그 나라 대사관 직원 하나가 세들어 살고 있었다. 이것도 의심을 더할 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도 왜 떨어졌는지 모른다. 그 곳에서 강조하던 말이 맞는 것인지, 할아버지 덕인지, 고모부덕인지, 그것도 아니면 찬찬히 뒤져보니 내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하지만 이제 원망같은 것은 안한다. 내가 생각한 이유가 맞다면, 이해가 간다. 나라도 그렇게 했겠지.
평생 잊지못하고 가슴에 맺혀있을 것만 같던 일인데..몇년이 지나니 그냥 옛 이야기가 되었다. 아직은, 아주 잊지는 못하나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