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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8/08/21
 

연쇄살인범 하나 또 잡았더군. 군시절 구치소에서 근무하며 느낀 바 많았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지존파 같은 것들 참 많을 거란 것도 그 가운데 하나. 이 일이 터지니, 그 생각이 다시난다.
아무튼 이 일로 또 사형존폐논쟁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듯 싶다. 아마 사형폐지론이 사람들에게 한바탕 두들겨 맞겠지?

두 견해의 논거는 접어둔다. 인문학쪽에서는 뭐라하는지 모르겠는데, 법학쪽에서 오가는 얘기는 법대 1학년생도 다 알테니.
중요한 것은 각 설의 내용을 잘 외우는 것이 아닌, 각 논거의 무게를 느끼는 것일텐데, 그건 실무경험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씁쓸하게도 난 밑천이 없다. 다만 대학시절 어느 민법-다른 법도 아닌, 2천년 이상 법리를 발달시켜왔다는 그 민법-교수님께서 하신, 법학에서 논쟁은 결국 우김질이더란 말씀이 떠오른다는 것만 덧붙여둔다[물론 사형제논의를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니지만, 사형존폐논의에 대해서도 들어맞는 말 같다].

그건 그렇고, 사형존폐논쟁을 구경하다보면, 뭔가 곱씹어볼 만한 게 있다. 논쟁주체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고나 할까.
이쪽 업계의 논쟁주체를 보면, 크게 재조와 법학계로 나눌 수 있겠다. 재조는 다시 헌재와 대법원, 검찰로 나뉠 테고, 법학계는 헌법학계와 형법학계로 나뉠 수 있을 듯 싶다. 법철학과 형사정책을 뺄 수 없겠지만, 인적구성에서 보면 형법학계와 겹치지 않을까[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근거는 없다. 형법/형사소송법/형사정책은 형사법으로 같이 가는 것 같다. 법철학은 시장이 작고 돈도 안되다 보니, 형법하시는 분들이 겸업하시는 것 같고. 마치 법제사를 민법교수들이 겸업하는 것처럼]? 변호사들은 같이 묶어서 보기 힘들 것 같다. 변협/민변에서 어떤 목소리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변호사들을 얼마나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까?

먼저 형법학계를 보면, 폐지론이 대세같다. 유지론도 시기상조론쯤에서 그치는 것 같고. 국가형벌권의 제한을 강조하는 분위기라서 그런가? 심지어 사형폐지론을 넘어서, 무기자유형까지 위헌이라 보기도 한다. 내가 읽어본 책만 따져도, 형법교수님 세 분[모두 형법학계에서 이름대면 다 아는 분들]이 무기자유형에 대해 비판하신다. 한분은 형법총론에서 '무기자유형은 범죄인의 개선/교육이라는 목적을 지니지 못하고 오로지 응보나 일반예방의 목적을 위한 것이므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시고, 다른 두분[공저자. 원래 3인 공저인데, 한분은 법학자가 아니다]은 형사정책책에서 '무기수에게도 일정기간의 집행을 통해 재범의 우려가 없다면 가석방을 보장해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보신다. 독일형법은 무기수에 대한 필요적 가석방제도를 규정하고 있다는데[우리 법제에서 가석방은 -헌재표현을 빌리면-'은혜적 조치'에 불과하다], 우리법학계에 대한 독일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내가 몰라서 그렇지 더 많은 분들이 저런 주장을 하지 않을까 싶다.
사형폐지론의 주요 논거 가운데 하나가 무기자유형이 있으니 사형까지 안해도 된다는 것인데, 사형폐지론자들 가운데 잘 모르면서 그냥 주장하는 사람들[알거 다 알고 사형폐지론쪽에 서는 사람들 말고]은 저 주장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헌법학계를 보면, 뭔가 좀 다른 것 같다. 확실치는 않으나, 형법학계보다는 사형폐지론이 힘을 덜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헌법의 개방성/추상성 등으로 말미암아 헌법학은 두리뭉수리하다는 평이 많다. 그리 어렵지는 않고 만만해 보이기는 하는데, 학문적으로 대성[어느 교수의 헌법책 서문에서 나온 표현]/고득점[고시생들 사이에서 몇해 전에 떠돌던 이야기]하긴 힘들다는 말도 있다. 실무경험이 많은 어느 교수님[헌법학 아닌 다른 분야]께선 헌법쪽은 말은 잘하는데 할 줄 아는 것은 없다고 한마디 하시기도 했지.
그래서인지, 주장자의 정서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일도 꽤 있는 듯 싶다.
헌재에서 관습헌법에 위반된다며 수도이전을 막았을 때, 많은 헌법학자들이 그에 찬성했단다. 잡지사에서 '그러면 찬성하는 입장에서 평석 좀 써 달라'고 하자 다들 고사하는 바람에, 잡지사에선 헌법학계 내에선 필자를 찾지 못했고, 결국 행정법교수 한 분이 찬성평석을 쓰셨다더군[반대평석을 쓰신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다]. 물론 다른 법학계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꽤 있는 것 같다. 특히 '유력설'로 일컬어지는 쟁쟁한 분들이, 별다른 논거는 없이 한두줄로 끝내버리는 경우를 가끔 본다. 심지어 반대설을 대강 언급하고, '타당하지 않다'는 한마디로 끝내 버리는 것도 봤다[대학다닐 때는 왜 타당하지 않은 것인지, 내가 모르는 심오한 이유가 있는 걸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각 견해 주장자의 학계내 위치 등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2차특강 들을 때, 학계의 권위자들이 어떤 쟁점에 대해 뭐라 설명하기 힘든 고민끝에 타당/부당하다고 한마디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권위로 무질러버리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아서 그리 되었다].
내가 완전히 잘못 알고 헛소리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헌법책과 형법책의 사형존폐논쟁부분을 읽다보면, 헌법학계에서는 정서적/정치적 이유 때문에 사형제 지지비율이 높은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검찰은 당연히 사형존치론에 서는 것 같다. 실제사건을 수사하면서 피투성이 주검과 피 흥건한 현장을[어디서 봤는지 생각은 안나는데, 여성판사가 쓴 글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사건기록 읽다가 저런 시체와 현장을 찍은 사진들이 나와서 깜짝 놀랐고, 그 다음부터는 그런 사진이 있는 부분은 안보려고 조심했다는], 그리고 그 짓을 한 것/것들이 오리발 내밀면서 거짓말/자기에게 유리한 소리만 하는 꼴을 본 사람들은, 아무래도 폐지론에 서긴 힘들겠지. 법원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다. 그에 덧붙여, 사형이 폐지되면 그만큼 힘이 줄어드는 것도 생각을 해야겠지. 칼을 쓰지는 않아도 가지고는 있으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할 듯도 싶다.

그런데 헌재는 또 다른 것 같다. 대법원의 판례와 비교했을 때, 사형이 위헌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한자락 깔아놓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아무래도 실제 사건이 아닌, 추상적으로 제도의 존폐를 다루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인지[물론 헌재 구성원들이 다 실무경험 풍부한 분들이지만], 대법원보다는 학설의 영향을 더 받는 것인지? 무슨 말인가 하면, 대법원은 해방되자마자 학계수준이 그리 높지는 못할 때부터[앞세대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면, 법학자들은 그동안 놀았다는 이야기밖에 안된다. 옛날 법서와 요즘 법서의 두께-내용은 그만두고-만 비교해봐도 차이가 크다] 저력을 쌓아왔지만, 헌재는 얼마 안되었고, 법률을 적용하는 대법원과 위헌심판을 하는-달리말하면 법률을 뒤엎어야 하는- 헌재의 입장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는 말이다. 그렇게 입장이 다르다보니, 헌재로서는 학설이라도 원용할 필요성이 더 크지 않을까?
여기에, 사형제를 위헌으로 판결하면, 대법원입장에서는 권한이 축소되는 것이겠지만, 헌재로서는 말 그대로 한 획을 긋는 업적을 남기는 것이란 점도 생각해야 할 듯 싶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생판 헛소리인지, 한두개라도 맞는 구석이 있는지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그런데.. 내가 지켜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그럴 확률이 높지 않은 것 같다.

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kind=AF&serial=49369&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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