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리집안의 서얼- 조선왕조개창 주역들 다수가 서얼. 고려말 혁명파와 보수파 사이는 측실과 적실 소생의 갈등도 얽혀있었음. 혈통문제로 소외된 사람들이 혁명세력으로 결집한 듯함.
*이색의 제자. 성균관 출신. 북원사신의 영접사로 임명되었으나 거부해, 경복흥/이인임 등이 귀양을 보냄- 귀양살이가 완화되어 거주지선택이 가능해졌을 때도 재상들이 미워해 쫓아버리는 등 9년동안 고생하며 떠돌아야했음-결국 이성계를 찾아감.
*스승인 이색과 우/창왕 폐위 때문에 멀어짐. 소년시절부터 절친했던 정몽주와 전제개혁을 거치며 멀어짐. 승려들과 깊은 교우관계에 있었으나, 불교배척운동을 벌임[유생들의 격찬을 받음].
*공양왕때 과전법이 제정되자, 국왕을 비롯한 모든 구세력이 이성계의 왕위찬탈을 우려하고 저항-이성계는 벼슬을 버리고 함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역성혁명에 적극적이지 않았음], 정도전/남은 등이 말려서 그만 둠.
*개국공신-1등공신. 태조 초기 병권을 장악, 문물제도 정비
*표전문사건: 명에서 조선이 보낸 표전문이 격식에 맞지 않는다며, 정도전을 책임자로 지목해 명에 보내라함-정도전이 요동정벌하려는 것을 탐지했기때문. 명과의 긴장으로 요동정벌계획이 더 적극적으로 추진됨-반대도 컸음. 정도전이 죽으며 끝남.
*1차 왕자의 난=공소지난=무인난
실록에는 정도전이 방석을 끼고 다른 왕자들과 종친들을 모해하려해 이방원이 선수를 쳤다고 쓰여졌으나, 의문이 많음.
*태종도 국정의 기본방향은 정도전의 주장대로 함.
|
http://kr.blog.yahoo.com/nobody2504/trackback/13/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