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나대지 말고 바르게 보자. 끓어오를 때는 글을 쓰지 말자.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전체 글보기(146)
알림
적어두기
긁어붙임-법
긁어붙임-연해주/러시아
긁어붙임-그밖
이소리 저소리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오늘 전체
방문자 6 111269
구독자 0 0
댓글 0 29
참조글 0 0
2009 12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 댓글 전체보기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1심은 수원지법 안산지..
레포트/방학숙제때문에 ..
짜증나 도움되는 글 없..
짜증나 도움되는 글 없..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개설일 : 2008/08/21
 

개화기 지방 사람들1 우리역사속의 사람들4 노용필류창규 외 어진이

2009.09.17 22:31 | 적어두기 | 구들장군

http://kr.blog.yahoo.com/nobody2504/145 주소복사

*18세기 이후 면리제가 정착, 공동납共同納이 강화되며 부세의 금납화가 전개-수령권한 강화-실무자였던 향리층 득세
특정지역 특정가계의 향리들이 세습하기도. 권세가와 유착.
19세기 중반이후 농민항쟁/갑오농민전쟁에서 하층향리는 농민군에 우호적이었으나, 상층부는 적대적. 일반농민은 향리에 적대적.

갑오개혁으로 이서吏胥의 수도 크게 줄고, 수입도 크게 줄음[직무수행과정에 나오던 역가役價가 정액화된 급료로 바뀌면서 액수가 줄었고, 조세금납화/재정개혁으로 관속들이 챙기던 돈줄이 막힘]-많은 관속들이 몰락, 이서층은 개화파 관료들에게 강력해 반발.

농민항쟁때 향리는 주요 공격목표-민보군조직에 향리들이 큰 역할

보수층의 반일의병에 향리들도 참여, 개화파관료들을 처단하기도.

*조선의 노비제도는 19세기 초에 도망/해방등으로 유명무실해짐
갑오경장으로 법적차별 철폐했으나, 유명무실. 광무10년 형법대전에서 노비매매벌칙이 규정되며 노예해방 급진전. 하지만 먹고살 여건이 안되어 노비해방을 저주하는 노비들도 많았음.

노비출신으로 관직에 오른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출세, 대부분 매국노로 일제강점기까지 부귀를 누림.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포스트 목록 닫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