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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봐야 할 책- 조선말이 내가 생각했던 시대가 아니었음.
*정조 후반 명문가 태생. 순조때 조선학계의 중심이 되고, 헌종대 이후 만년에 정치적 시련을 겪음.
북학은 홍대용/박지원이 시작해서 박제가/이덕무/유득공/남공철/이서구 대에 본격적으로 이뤄짐. 추사는 바로 다음 세대.
*박제가가 김정희의 스승으로, 흥선대원군이 김정희의 제자. 신헌이 추사의 수제자.
흥선군 자신과 흥선군 정권에 참여한 인사들은 당시로서는 해외정세에 가장 밝았던 사람들-위항지사, 연암 일파의 후예, 추사일문-이었음. 다만 흥선군 자신이 경화세도가로서의 의식의 한계를 넘지 못함. 흥선군 실각 이후에도 추사일문과 그 후예들, 박규수와 그 문하인사들은 대체로 조정에 남음
추사가 길러낸 위항의 중서층 출신 제자들과 그 후예들은 개국/개화과정에서 신분적 한계를 깨고 선진적 지식을 가진 고위관료로서 활약.
추사일문의 후예들은 이후 구세대[흥선군등]-신세대[민영익 등]으로 갈라지고, 신세대 내에서도 김옥균/홍영식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키며 떨어져나오면서 깨져버림. 특히 문객/문인/겸인들이 전통적 관계에 개의치 않으며 추사일문도 사라짐.
*18세기 말은 조선봉건사회의 절정기. 지배층이나 지식인들은 정조연간부터 조선봉건사회의 해체를 감지하고, 이정책이나 개혁안을 제시했으나 실천하진 못함-임술민란이 터지기 전까지는 사회의 위기를 실감치 못함.
18세기 말 의주의 경제력은 책문후시에 의존하고 있어, 그것을 금하면 민간인들이 살아갈 소득을 얻지 못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심까지 불안해질 것이라 조정에서 심각하게 우려하기도.
정조 말년에 이미 수리시설들이 제구실을 못함. 궁방/양반들이 수리시설을 사유화하고 독점해 더욱 수리시설이 부족해짐.
모내기철 비가 안오면 이앙법은 농사를 전폐하게 되나 직파법은 그 정도까지는 아님-정부에서는 이앙과 반답[反畓: 밭을 논으로 바꾸는 것- 논농사의 수입이 밭농사보다 컸으므로]을 정책적으로 금지- 아주 못하게 한 것은 아니고, 물이 부족한 곳만.
궁방: 소유권이 궁방에 있는 有土가 11380여결, 소유권이 없는 無土궁방전이 26000여결. 각급관아의 소유지는 46100여결--삼남의 천석군은 80~100결, 영남의 최씨/호남의 왕씨 등 나라의 최고부자인 만석군은 400결 이상을 가짐. 강위는 1결이상 토지소유자를 上戶로 보기도 함.
대동법/균역법 등의 부세제도 개선은 결국 모든 조세를 토지에 부과-그런데 지주들이 조세를 작인들에게 떠넘김-결국 전세를 놓고 정부와 농민이 갈등-민란은 일차적으로 반정부투쟁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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