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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영조 41년에 시작된 글. 담헌 홍대용1731~1783
*주해라서 다 옮겨 놓은 것이 아님-내가 새긴 것이라 틀린 것이 많을 듯.
담헌연행[ㅎ+.+ㅣ+ㅇ]녹 권지일
*평양과 관련, 기자동래설에 대한 언급이 있음-기자동래설을 믿은 듯.
*의주가 번영했음-다른 글에서 본 것과 좀 다른 듯? 시대가 달라서?
의주군사들이 사냥을 할 때 궁시창검을 씀- 총을 많이 쓰진 않은 것인지, 살수들이었는지? 반면에 중국의 사냥꾼들은 총을 가지고 다닌 듯.
*중국인에게 말을 걸었는데, 중국인이 조선말로 대답- 중국어로 말하는 것보다 더 알아들을 수 없었음.
*십이월 초일일 솔참자다에, '댱궤지'란 표현이 나옴. 댱궤지=장궤지, 이는 '술막듕놈이'같은 것이라 씀. 그리고 주석에서 장궤掌櫃, 중국사람을 부자라는 뜻으로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했다. 술막듕놈이는 주막이 중노미를 뜻한 것인지? 이 말이 짱께란 말과 관련있는지?
* 중국의 음악을 들으니, 調格이 우리와 다름. 나발과 태평소는 우리와 같고, '져'는 소리가 맑고 높음---져=젓대?
*중국화살을 보니 나무로 만들었고 깃이 넓어, 멀리 나가지 못함. 중국인이 수십보를 나간다고 말하자, 홍대용이 우리활은 작지만 화살은 대나무로 대나무로 반든 것이라 쏘았을 때 가까우면 백이삼십보, 멀면 삼사백보를 간다고 함 그러자 중국인이 믿지 않음-----'보'의 길이가 달랐는지? 멀면 삼사백보라는 것은 편전을 말한 것인지?
*'역관이 강을 건너면 사촌을 몰라본다'는 말이 있었음. 중국에서 녹용 따위를 수입해 올 때 경쟁이 치열해서 역관사이에 다툼이 많았음을 일컬은 말인 듯. 강은 압록강인 듯하고, 역관집안이 있었다니 사촌사이인 역관들끼리도 다투는 일이 있었을 듯.
*석탄을 돌로만든 숯이라 설명-조선에는 석탄이 없었거나, 흔하지 않은 것이었나? 대동야승 가운데 청파극담에는 지중화재와 석탄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아마 널리 알려지진 못한 듯.
을병연행[ㅎ+.+ㅣ+ㅇ]녹 권지이
*탄궁인 듯한 물건을 쓰는 사람을 만났는데, 홍대용은 무엇인지 모름. 조선에는 탄궁이 없었는지?
*고려사람을 사로잡아와 살게 한 '고려보'가 있어, 논이 있고 우리 풍속이 남아있음- 옛날에는 우리 사신이 지나가면 대접했으나, 사신일행중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는 척도 않게 됨.
*그때도 비누가 있었음.
*윤락가에서 창질[매독]을 옮는 일이 많았던 듯.
을병연행녹 권지삼
*북경의 통관[통역?]은 조선사람의 후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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