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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경북안동 생- 퇴계이황 14대손. 첫이름 원록, 다음이름 원삼. 스스로 활이라 이름짓기도. 17번 투옥/감금 됨.
1923년 1년간 일본유학 1925년 정의부/군정서/의열단에 가입-형, 아우와 함께. 1926년 북경에 감.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으로 옥고. 1929년 석방, 조선일보 대구지국 경영. 중외일보기자. 광주학생운동사건으로 예비검속. 1930년 대구격문사건으로 투옥
1931년 외숙 허규의 독립군자금모금에 관계되어 만주에 갔다가 김두봉에게 감. 1932년 중국 국민당정부 부설 조선군관학교[교장 김원봉] 간부훈련반에 입교 1934년 서울에서 검거됨. 1935년 위당 정인보의 지도를 받음-이때 신석초를 만나 평생지기가 됨. 1944년 북경감옥에서 별세.
*그시절에도 아이에게 돌다리밑에서 주워왔다고 놀렸던 듯.
*문바지:남의 집 문앞에 버려져, 남이 이를 받아키우는 아이.
*'찬젓때 소리에다 옷끈을 흘려보내고':주석에서 찬젓때를 찬 젓대, 차가운 피리라 함. 무슨 뜻인지?
*나우리치오: 물결치오
*1937년 작품을 보면,
그때도 도시와 시골의 갈등이 있었음-시골에서는 도시인들이 안경끼고 다니는 것을 고깝게 본 듯.
모던뽀이[도시말]=하이카라상[시골말]
보통학교 중퇴도 시골에서는 식자축에 낀 듯.
그때도 길손이 아무 집에서나 자고 갈 수 있었던 듯- '초당방'에 잤음. 초당방은 초가집 방인지?
*1939년 작을 보면, 전차와 관련해
'차장감독'쯤 되는 사람은 '헬멛'을 쓰고 일함. 전차의 사고로 다친 승객은 의무실에서 간단한 치료를 해주고 신원을 적어둠.
*국제무역과 관련한 글에서, 최혜주의[최혜국대우원칙을 그리 씀]에 대한 이해가 보임.
*중국의 정세에 대한 글을 많이 씀
*1932년 대구 약령시에 대한 글에서
청이 무너지기 전에는 청황실이 조선정부에 의뢰해 막대한 양의 약품을 사 감.
기생들은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묘사-카페 붉은 여급들에게 손님을 빼앗긴 듯.
옛날에는 국산약재 말고는 중국산 金石之材 정도를 다루었으나, 이때는 일본/중국/몽골/동부아프리카/시베리아산 약재도 다룸.
이때도 불량 중개인 때문에 말썽이 나, 약령시 진흥회[번영회]가 감독
유명한 한약상들이 많았음-'대구동인당'은 150년 역사. [북평 동인당은 800년 됨]
*이육사 어린 시절
아침에 손탑깎고 밤에 머리빗는 것은 몸에 해롭다는 속설이 있었음.
방안에 사는 거미들이 아침일찍 기어나오면 그 집에서는 그날 반가운 소식을 듣는다는 속설이 있었음- 감옥에서 거미가 떨어지면 좋은 일 있다는 속설과 관련?
여름이면 집안 소년들이 모여 글을 짓는 것이 일과였음. 그러면 어른들이 모여 글의 등급을 매기고[加上之上-上之上-上之中 이렇게], 加上之上을 얻은 사람은 장원례로 술한동이에 북어 한떼, 또는 참외 한 접에 담배 한발 쯤을 내고, 상품으로 백지 한권[20매]을 받음. 이때 스포츠란 이름은 없었으나, 체육활동도 절대 등한히 하지 않음-강가에 가서 목욕을 하거나[헤엄친다는 뜻?] 말달리기를 함.
글공부에도 일정이 있었음-한여름에 五言/七言을 짓고, 가을엔 경서를 읽되 시월중순부터 매월 초하루/보름에 강[시험쯤 되는 듯]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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