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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8/08/21
 

쉽게 읽는 용비어천가1 윤석민유승섭권면주 박이정

2009.06.11 19:56 | 적어두기 | 구들장군

http://kr.blog.yahoo.com/nobody2504/124 주소복사

사서 봐야할 책.

지금의 자모순서는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따른 것. 훈민정음 창제 때와는 다름.

*동국정운: 우리 한자음이 중국의 원음과 너무 달라져, 중국의 홍무정운의 음운체계를 모방해 한자음을 중국원음에 가깝게 개정한 것. 인위적인 개정한자음으로 실제 통용음과 거리가 멀어, 세종/세조때 문헌에만 적용. 세조이후 소멸.

*용비어천가에서도 발해를 말갈 국가로 본 듯-'이적이 고구려를 치자 속말부는 동모로 가서 성을 대씨라 하니 이것이 발해국이다'라 함

*경원부 서쪽에 장백산이 있는데 일명 백두산이라고도 한다-장백산은 중국이름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듯?

*조수가 차고 빠지는 것은 바닷물이 늘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달이 다다르는 곳으로 물이 따르는 것이라 함-조수간만에 대한 이해가 보임.

*짐: 옛날에는 위아래 모두 썼는데, 진시황에 이르러 처음으로 오로지 천자가 자기를 칭할 때 씀.

*주무왕이 "옛사람이 말하길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는데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이 쓸쓸해진다'라고 했다"라 함. 주석에서 암탉이 새벽에 울면 음양이 바뀌는 것이니 이것은 요망한 징조로 집안이 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은주가 오직 부인의 말만 옳다고 여기고 썼음을 앞으로 말하려고 하기 때문에 쓴 말이라고 풀이함-이규보가 새긴 뜻과 별로 다르지 않은 듯? 고대중국의 속담쯤 되었나보다.

*이성계의 4불가론 주석에서, 일본을 소개하며 '이들은 창검을 잘쓰는 습속이 있어서 남자들은 칼을 차고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다'라 함 이때도 일본도/검술이 유명했나?

*이성계의 4불가론 주석에서 나무/뿔/힘줄/아교/실/옻으로 활을 만든다고 함-이때도 합성궁이었나보다.

*주무왕이 상을 없애고 기자를 평양에 봉했는데 41대 후손 준에 이르러 위만에 빼앗겼다고 기록-뒤에서 호삼성胡三省이 그리 썼다 기록.

*우왕이 몽골의 음악/춤을 좋아했음- 우왕입장에서 보면 외가쪽/선진문물이니 그랬을 듯?

*'마한은 조선왕 준에서부터 바다로 한땅에 이르러 나라를 열고 4군2부의 때를 지나 백제시조 온조왕 26년에 이르러 드디어 합쳐졌다. 진한은 진秦나라에서 도망한 사람들이 마침 한땅에 오니 마한이 동쪽의 땅을 분할해 주어 이름하기를 진한이라고 했다. 변한은 시조를 알 수 없다'라 함.

*위화도 회군후, 최영이 개성에서 유만수와 조민수를 막아냈으나, 대세가 기울어짐을 알고 화원에 숨은 우왕에게 갔다가 잡혀감.
조민수는 이색과 창왕을 세움-이후 이성계가 심덕부등과 함께 공민왕의 왕비 안씨에게 아뢰고 공양왕을 세움.

*신지: 단군 때 사람으로 세상에서 신지선인이라 부름. 고려숙종때 김위제가 이 사람과 도선의 도참설을 근거로 삼각산남쪽 목멱북쪽 평평한 곳에 도성을 세우자고 주장-숙종이 남경을 세움.

*돌궐은 하나라 때는 훈육이라 했고, 은은 귀방, 주는 험윤, 한은 흉노, 위는 돌궐이라 함 대대로 금산에 살았으며 쇠붙이를 잘 다룸-전기청동기가 북방계통이고 스키타이계통 철기가 들어온 것과 관련있나?

*고구려사에서 동천왕 백고 11년에 위태부 사마선왕이 무리를 이끌고 공손연을 쳤다. 이때 왕은 주부 대개와 군사천명을 보내 그들을 도왔다 함-이 고구려사가 무엇인지?

*고구려때 낙랑군에 속하는 지명으로 조선이 있었던 듯.

*수양제가 고구려를 치기위해 동원한 병력은 1133800명이라 기록.
백제가 수양제에게 고구려를 치기를 청함-양제가 백제로 하여금 고구려를 염탐하게 하였는데, 백제는 고구려와 내통하고 있었음. 수나라군대가 공격하려하자 군대를 낼 기약을 청하기도. 수군이 요수를 건너자 백제는 국경의 위 병사를 엄히하고 말로는 수를 돕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양쪽에 의거해 행동.

*주몽이 북부여에서 난에 도망해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부여왕은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보고 그가 비상한 사람임을 알고서 둘째딸을 아내로 삼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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