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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진짜 바로알자 신천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2009.12.02 11:47 | 칼럼 | next25on

http://kr.blog.yahoo.com/next25on/4092 주소복사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한다. 육천년 성경의 역사는 언약의 역사

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하나님이 시대마다 택한 선민과의 언약(시 89:3)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 언약은 한 번도

지켜지질 못했다.

 

하나님은 변함없는 분이시니 지키셨을 것이나 그 백성들이 지키지 못했다. 지키면 주겠다는 그 복은 시대마다

나라와 제사장을 삼겠다(출 19:5~6, 계 1:3)는 것이었다.

 

육천년 성경의 결론인 요한계시록이 이천년 전 예수께서 피로 언약하신 새언약(마 26:26~29)일진대, 그 새언약

이 성취 되어 완성 되는 이 시대, 새언약을 지킨 그들이 받을 복은 나라와 제사장(계 1:6, 계 5:9~10, 계20:6)이

었으며, 나라와 제사장이 바로 첫째부활에 참예하는 자며, 영원한 생명의 유업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그 큰 복을 지난 세대도 받았으나 언약을 지키지 못해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버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성경 전반

에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언약을 지키지 못한 이유는 뭘까. 말씀을 통해 답을 찾아보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

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라고 하시니, 결국 지식이 없어 망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말씀이며 더 나아가 약속의 말씀(언약)이 틀림없다. 그 약속을 버렸기에 하나

님은 주시겠다던 복 즉,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똑똑하게 분별해야 한다. 알지도 못하며 고집과 아집, 교만만 가득하면 되

겠는가. 그것이 영생을 주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라 힘써 알라(호 6:3)고 했고, 심지어는 제사나 예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한

다(호 6:6)고 하셨으며, 알지 못하고 찾는 그들에게 마당만 밟을 뿐이라 하고, 견디지 못하겠다(사 1:12~13)고

이사야선지를 통해 강한 어조로 책망하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주여 주여 하는 신앙이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

느니라(호 6:7)”라는 말씀과 같은 결과를 초래했고, 신약에선 사도 바울을 들어 이 세대는 제발 지난 세대를 본

받지 말고 거울과 경계로 삼으라는 것이다. 이로 보아 성경은 에덴동산에서부터 배도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음을

잘 증명하고 있다.

 

성경이 마지막으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이 때, 우리 또한 택함을 받았으니 우리가 지켜야 할

언약이 무엇일까. 바로 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신앙인이 이 마지막 시대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가 아닐까.

 

이 시대는 새언약 즉, 신약 시대다. 그렇다면 새언약 가운데 머물러 있는 자라면 도대체 지켜야 할 새언약이 무

엇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새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라(히 8:10)는 것이다.

 

율법시대 즉, 첫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돌비(출 24:12)에 새겼으나, 새언약은 심비(고후 3:3)에 새기는 것이다.

그랬을 때만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부자(父子)의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하나님을 알라

고 하지 않는다(히 8:11) 하셨으며, 비로소 죄와 상관없게 된다(히 8:12)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요일 3:9)”라는 사

도 요한의 말과 같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막연한 말씀의 차원이 아니라

창세부터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비밀이 열린 계시의 말씀을 말하며, 이 계시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아

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엔 아무도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음(마 11:27)을 깨달아야 한다.

 

이천년 전이 아닌 바로 이 시대에 아들인 예수의 소원대로 또 다시 계시를 받는 자를 통해 증거 되는 계시의 말

씀을 심비에 새겨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은 내 안에 아버지의 씨가 있어야 함이 세상의 이치다. 우리가 영적 자녀라

면 “씨는 하나님의 말씀(눅 8:11)”이라 했으니 이 시대에 열어서 알려 주는 계시의 말씀(계 1:1)이 우리 안에 있

어야함은 당연한 진리다.

 

곧 예레미야를 통해 새언약을 언급하시며 다시는 아버지를 알라 하지도, 죄를 다시 기억 하지도 않겠다(렘

31:34)던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대목이며,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만이 아버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이 응하는 것이며, 아버지를 알아야만 신앙의 목적인 영생(요 17:3), 그리고 나라와 제사장이란 복을 받을

수 있음이 성경의 약속이고 결론임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육천년 한 맺힌 역사가 종결되는 시점에서 다시는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라는 질책을 다시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받지 않는 자가 되기를 기도해야 한

다.

 

그리고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7)”는 말씀에 해당하는 신

앙의 겸손한 자 되길 기원한다.

 

 

 
성경을 바로 알고 깨달아 하루속히 신천지를 인정하고 모여왔으면 좋겠어요~~ㅎㅎ 09.06.11 17:01
 
하나님을 알아야 생명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진리.. 매우 어려울 수도 있고 간단한 진리일 수도 있지만 간단한 진리로 소화 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09.06.11 23:22
 
하나님은 분명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하셨는데 이세상은 하나님 말씀을 알아야 한다고 하면 무식한 소리 한다고 하네요. 09.06.12 18:50
 
이때가 어느때인가를 온전히 분별해서 새언약을 지키는 백성이 되도록 형식적인 신앙이 아닌 말씀으로 거듭나야겠어요.. 09.06.22 01:01
 
언약을 마음에 새기고 지키는게 중요한거네요 .. ㅎㅎ 09.07.16 11:54
 
감사합니다... ^---^* 09.08.05 17:29
 
하나님의 나라에서 크게 쓰이고 하나님 나라에서 생명의 씨를 마음속에 심어 그것이 나무가 되어 새들이 앉도록 해야겠네요. 09.08.12 13:53
 
아멘~~ 이 좋은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어둠들이 가엽기 그지 없을뿐입니다... 저들이 새언약이란 말을 들어보기라도 했을까나????? 09.09.02 14:59
 
온일류가운데 새언약이무엇인지 분별알게하심무한감사합디다벌레만도못한저를 살려주심에감사심비에잘새겨인맞는자녀로거듭나겠습니다 09.10.17 18:18

[신천지][진짜 바라올자 신천지] '백마 타고오는 초인'을 기다리며

2009.12.02 11:44 | 칼럼 | next25on

http://kr.blog.yahoo.com/next25on/4091 주소복사

동방(東邦), 땅 끝의 아주 작은 나라 대한민국!

 

그래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나라, 그러나 그 먼 옛날엔 아무도 범하던 못하였던 나라, 바로 그러한 나라가

이제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하니 온 지구촌이 주목한다.

가장 아름답고 창의적인 문화로 세상을 뒤덮던 그 지혜가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말발굽 소리와 활로 세계를 떨

게 했던 그 기상이 밀려온다. 그래서 다시금 이 땅은 요동하기 시작했다. 아니 전 세계가 두려움으로 또는 경이

로움으로 지켜본다. 가장 찬란했던 역사를 가졌음에도 가장 처절했던 지난날을 경험해야 했다. 무엇으로 찬란했

고, 무엇 때문에 처절해야 했었던가.

 

예부터 우리는 천신(天神)을 숭배했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기도하던 민족이다. 그러나

욕심과 교만으로 모든 것을 빼앗겼고,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끼리 나뉘고 또 나뉘었다. 천신이 떠나간

자리는 혼돈(混沌)과 공허(空虛)뿐이었다. 그 결과 다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요즘 한 사람의 죽음으로 서럽도록 슬퍼하는 백성들이 거리를 뒤덮고 있다. 정부는 국정이 마비된 상태고, 민초

들도 방향을 잃은 듯하다. 뿐만이 아니다.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며 또 기이히 여기고 있다.

 

추모의 물결! 이념도 종교도 지역도 빈부도 세대도 아니다. 그냥 그 자체다. 이용하지도 호도하지도 왜곡하지도

말라. 그리고 백성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임을 잊지 말라.

 

하늘이 함께하던 민족, 세계를 치떨게 했던 민족! 그것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간구하던 민족이

었기에 하늘이 주신 선물이었다.

 

금번 사건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짧은 글로 대신했다 하지만, 사실

은 남은 사람들에게 많은 말과 질문을 남기고 갔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갈등과 반목 그리고 대립을 안고 떠나고

싶었던 고인의 마음을 헤아릴 의무가 있다. 하지만 하늘로부터 받은 생명을 스스로 마감했다는 사실에 대해선

아량을 베풀기엔 인색하고 싶다.

 

지난날에서 오늘날까지 힘과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 그 시대의 가치관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할 것

이다. 예부터 우리 민족이 가져야 했던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인 천성(天性) 즉, 도덕성과 청렴성 그리고 홍익성

이 있다. 다하진 못했어도 청렴하고 싶었고, 보이기보다 내면의 나를 지키고 싶었고, 나보다 세상을 더 이롭게

하고자 했고, 잘못된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을 끝내는 일에 나름 애썼던 고인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우리는 눈

으로 목도하고 귀로 듣고 있다.

 

그 무엇보다 삶의 가치를 더 중시하던 그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이미 천성이 사라지고 굳어진 이 세대에

그는 무슨 말로 더 이상 설명할 용기가 없었다. 대신 스무길 낭떠러지로 몸을 날려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뼈의

부서짐으로 권위와 갈등 반목 분열을 부서뜨리고자 했으리라.

 

백성이 주인이었으면서도 많은 세월 절대 권력의 그늘에서 한 번도 주인이 되어보지 못했던 백성들, 그렇기에

백성에게 찾아주고 손에 쥐어준 권력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을까. 되려 ‘바보’라고 폄하하던 우리의 무지가 부

끄럽다. 우리가 그를 칠 때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라고 답하던 그의 음성이 더욱

쑥스럽게 한다.

 

민주주의의 권력의 주체로서 감당할 능력이 우리 스스로에게 없었음을 증명한 셈이며, 이를 고백해야 한다. 여

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또 있다.

 

고인은 부정과 불의, 편파와 편견 등 온갖 잘못된 가치관을 가져가고, 남은 사람들에게 정의와 공의가 살아 숨쉬

는 깨끗한 세상을 원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인의 죽음을 당리와 당략, 감정과 보복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

다.

 

그것은 그를 다시 한 번 바위에서 밀어버리는 행위임을 명심하자. 아직도 나는 옳고 너는 잘못되었다는 논리로

국민의 슬픔을 악용, 자신들의 정략적 발언으로 선동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만일 이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한

다면 흘린 눈물은 가증과 위선에 불과할 따름이다. 고인은 오직 ‘하나와 상생’만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언론은 자성해야 한다. 과연 언론의 역할을 다했는지, 아니면 권력의 시녀요 상업의 도구

였는지 냉철히 돌아 봐야 한다. 언론이 바로 서지 못하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사회는 빛이 없는 암흑과 다

르지 않다. 거기는 생명이 없다. 눈치보고 베껴 쓰고 보는 언론, 이젠 끝내야 한다. 정의와 공의가 지배하는 사회

로 이끌어가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어쩌면 더 큰 가해자가 또 있다. 바로 종교인이요 종교지도자들이다. 이들이 이 사회를 선도해 나갈 도덕적 책임

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교편향에 앞장섰고, 내 것만이 옳고 천국이고, 나와 다르면 거짓이고 지옥이라는

극단논리로 종교세계는 물론 사회까지 물들여 왔다. 이것이 천성이 떠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병든 세상을 소성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능으로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오직 하늘에 속한

민족이기에 하늘이 보낸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고 맞이해야 하는 절대적 운명을 가진 천손(天孫)이다.

그래서 다시는 눈물도 고통도 사망도 없는 하나님이 약속한 나라를 염원해야 할 것이다.

 

그 나라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와 같은 나라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떠나셨던 하

나님이 다시 오심으로만이 가능케 됨을 잊지 말자.

 

 

 

 
아멘!!! 09.06.04 11:19
 
그날을 속히 기다립니다~아멘~!! 09.06.04 19:42
 
감사합니다... ^---^* 09.08.05 17:28
 
그날을위해 뛰고또뛰어 빛갑고 효하도록 실천하겠습니다 배가로어서어서........ 09.10.17 18:26

[신천지][진짜 바로알자 신천지] '나는 정통, 너는 이단’ 이라는 이상한 등식

2009.11.30 23:55 | 칼럼 | next25on

http://kr.blog.yahoo.com/next25on/4076 주소복사


성경이 기록된 이유는 뭘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배신한 천사장이 출현하게 됨으로 비롯된다. 그가 바로 아침의 아

들 계명성 즉, 광명한 천사로 나타난 루시엘 천사장(사 14:12~20)이다. 그 범죄한 천사(벧후 2:4)가 사단이고 마

귀이며, 계시록에 가보니 창세기에 등장했던 곧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계 12:9)”라고 하는 옛 뱀이며 용이다.

 

그것도 계시록시대에 다른 곳이 아닌 이 종교세상을 세상 임금들(계 18장)이라는 오늘날 목회자들을 들어 지상

권과 교권으로 천하만국을 미혹해 온 용을 잡고 보니 저 창세기에 등장해 하나님의 나라를 미혹으로 빼앗았던

바로 그 존재(창 3장)였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 용의 출현으로 하나님은 이 땅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고(창 6장), 오늘날까지 이 지구촌은 용이 주관하는 세상

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우주만물을 창조(행 17:24, 히 3:4)하신 하나님은 그 중에서도 오

직 이 지구촌에만 생명을 주시고 또 그곳에 지상 낙원 곧 천국(마 6:10, 히 9:28, 계 21:3)을 계획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만유의 주재이신 조물주가 피조물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으니, 이 기막힌 사연과 빼앗긴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회복하고 만물과 하나 되기(고전 15:28) 위한 청사진을 담은 것이 이 성경이며 또 기록한 이유이며 목적이

다.

 

이와 같은 사연을 놓고 볼 때 이 지구촌을 주관하고 있는 사단과,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하나님 사이엔 필연적으

로 전쟁(계 12, 13, 16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성경의 역사를 보면 구약시대엔 실제 육적인 전쟁이었

으며 오늘날엔 영적인 전쟁(엡 6:10~)이 이어져 왔다. 그러니 피의 역사이며 한편으론 순교의 역사다.

 

 이쯤에서 신앙인들이 꼭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성경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시대마다

택한 선민과 또 그들이 사단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범죄하므로 또다시 새로운 선민을 택함으로 인해 발생되

는 사건이니 곧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에 관한 얘기며 그들을 향한 말씀임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이 종교세계는 사람의 생각으로 수많은 이단을 배출하고 있으며 또 나는 정통이라 고집한다. ‘나는 정통,

너는 이단’이라는 이상한 등식을 탄생시켰다. 우선 성경에는 정통(正統) 또는 정통교회란 단어는 없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는 성경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통 즉, 하늘 또는 하나님과 바르게 소통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마치 중세 칼빈과 같이 남을 이단으로 뒤집어 씌워 정죄하고 핍박하고 고문하고 죽

이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한다면 비성경적인 단어가 틀림없다.

 

‘정통’의 의미가 가장 성경적으로 표현된 성경구절이 있다면 아마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

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라는 구절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모든 것’이며 ‘깊은 것’은 다름 아닌 요한계시록에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봉한 책(계 5:1)’이

다. 결국 요한계시록에 담긴 사건을 보고 들은 자가 성령이 함께하는 자며 성경을 통달한 자가 되니, 보고 들은

증인이 인도하는 교단이 정통이며 정통교회가 된다. 초림에도 하늘과 소통한 자는 인자밖에 없었다(요 3:13, 요

3:31~34, 요 5:19)고 한다.

 

그러나 예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주관하는 미혹된 종교세상에 오셔서 이단의 괴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날도 자칭 정통이라고 하는 그들이 정통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중세 칼빈의 인간 사상을 답습하며 우상화라는 하나님의 첫 번째 두 번째 계명을 어겨가면서까지 칼빈 길과

흉상을 세우는 등 우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과, 칼빈은 성경을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책을 덮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신앙을 해야 함에도 스스로 온갖 해설과 주석인 자기중심적 주술을 만들어 보급해 왔으며, 그것도

요한계시록에 와서는 그마저도 꿰맞추지 못하고 붓을 꺾었다고 다른 이도 아닌 바로 그 제자들의 입에서 회자되

고 있다는 점, 그 결과로 한때 정통이라 자처하던 교단에선 야고보서와 요한계시록은 성경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던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망령적 행위의 교단이 되었으며, 일제의 민족말살정책과 문화말살정책에 백성들은

의연히 맞섰으나 그들은 하나님 대신 천황에게 절하는 망국의 앞잡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감춰져 있던 모든 것들이 다 밝혀지는 때임을 깨달아야 한다. 해가 중천에 떠 있기에 숨을 곳은 더 이상 없

다. 성경의 결론이며 열매인 요한계시록을 깨닫지도 못하고, 이천년 전 예수께서 피 흘림의 대가로 우리에게 명

하신 신약이며, 그 예언대로 나타난 실상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종교집단이 결코 정통이 될 수 없음은 이젠 바

보가 아닌 이상 다 아는 세상이 되었다.

 

이단의 성경적 의미 또한 지금까지 성경의 역사를 통해 엿볼 수 있었듯이 하나님이 친히 세운 나라에서 이탈한

자 또는 조직이 이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라 하면 육적 이스라엘시대나 초림이나 오늘날이나 어김없이

열두지파가 출현하고, 그 열두지파는 야곱 즉, 이긴자의 출현으로 시작하듯이 초림의 예수가 ‘내가 세상을 이기

었노라’라고 하듯 이기고 열두제자를 통해 열두지파를 창조했고, 오늘날 계시록에 와 보니 2장과 3장의 약속대

로 이긴자가 출현함으로 영적 새이스라엘(계 7, 14장)이 탄생된다.

 

바로 시대마다 이 열두지파에서 이탈한 자가 성경적 이단임을 귀 있는 자는 깨달아야 한다.

 

당을 지어 나간 자가 함께하는 그들이 또한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서지 못하게 핍박하고 훼방하는 역사로 나타

나니 어찌 보면 그들 또한 성경을 이루어 가는 데 필요한 존재일 것이다. 그 이유는 새로이 창조되는 하나님나라

를 믿는 알곡 신앙인들을 찾기 위해서이다.

 

 

 
말씀에 빗대어서 정통과 이단을 구분할 수 있도록 ,,, 09.05.24 20:22
 
세상에서도 나와는 다른 사고를 지닌 사람은 싫어하죠...그러니 발전은 없고.. 09.05.25 11:27
 
말씀대로 증거되지도 않으면서 정통 정통 하는것이 성경 어디에 봐서 맞다는것인지... 질투시기가 가득하니 이단이라 정죄하고 거짓말퍼뜨리는것에만 더 관심이 있지..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온대간대없는걸보면 안타까움뿐입니다... 09.05.25 16:00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정통이 되어야할텐데 말입니다... 09.05.26 01:03
 
나는 맞고 너는 아니다?! 이것은 누구의 법인고.. 09.07.28 14:17
 
먼저 내 자신이 성경을 통달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겠죠...참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목자를 비판하고 나면 그 죄는 누구에게 회개하여 용서받을건지...생각을 잘 해봐야겠죠 09.07.30 11:44
 
감사합니다... ^---^* 09.08.05 17:28
 
감사합니다.@~~~~~Ω 09.08.23 17:29
 
옳소, 09.09.11 20:31
 
말씀이 기준이 되어 분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09.09.18 17:38

[신천지][진짜 바로알자 신천지]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하나 '영원한 생명'

2009.11.30 23:51 | 칼럼 | next25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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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위 말씀은 초림 때 예수와 유대인들이 영생에 관한 논쟁 시 예수께서 들을 귀 없는 유대인들을 향해 던진 말씀이

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던져 봄으로 비로소 하나님께 속했는지 세상에 속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의 약속이자 뜻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요일 2:25)이다. 그리고 그 영

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요일 5:13)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약속인 영생을 말

하면 이천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귀신 들린 자가 되고 염병이 되고 이단의 괴수가 된다.
 
그렇다고 영생이 진리인데 영생이 없다고 한다면 당시 그들처럼 거짓말쟁이가 되고 만다는 가르침을 깨닫게 된

다. 그리고 이 영생의 정의는 죽어서 영원히 산다는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요 8:51)”는 말씀에 이어지는 논쟁에서 “아브라함과 선지자도 죽었거늘”이라는 대화

에서 엿볼 수 있듯이, 예수께선 산 자의 영생을 말씀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

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라고 하셨다면, 예수의 약속을 깨달아 믿고 지키는 자에

게는 육체가 죽었어도 영이 살겠고, 이천년 전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이 때, 살아서 온전히 그 약속을 깨달

아 믿고 지키는 자는 그 살아 있는 육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말이 아닌가.
 
주여주여 하면서도 주의 말을 믿지 않고 습관적이며 형식적인 신앙인들을 향해 예수께선 ‘이 말을 믿겠느냐’는

말씀으로 이천년 전 이미 오늘날의 믿음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예수께선 사도 바울을 통해 고전 15장에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는 ‘사망의 이김 즉, 생명의 삼킨바 되리

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때가 있었고, 우리에게 오늘날까지 마지막 나팔의 비밀로 감춰져 왔다. 신앙인

들이 알 수 있었다면 굳이 비밀이라 했겠는가.
 
요한계시록시대를 맞아 이천년 전 예수께서 승천 후 사도요한에게 환상으로 알게 하신 약속들이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라는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의 예언이 사도요한 격인 목자를 통해 실상으로 보고 듣게 함으로 그 마지막 나팔은 일곱

번째 나팔이었으며, 그 나팔은 사망을 멸하고 영원한 생명을 알리는 ‘구원의 나팔’이요 ‘영원한 복음’으로 우리

앞에 실상으로 나타났다.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는 예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너희들은 나를 보고 주여주여 하면서 내 말을 듣지

않느냐고 책망하신 안타까운 호소를 기억하자.
결국 수많은 종교(宗敎)가 있지만 종교의 결론은 영생(永生)이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고 만리장성과 수백채의 아방궁을 만들어 영생복락 하겠다던 진시황제는 생로병사(生老

病死)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기 위해 ‘삼신산(三神山)’이 있다는 동방 즉, 우리나라를 그의

사자 서북과 동남동녀를 보내 샅샅이 뒤지게 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그 화려했던 진시황제의 일생도 한갓 일장춘몽(一場春夢)에 불과했다. 그 불로초는 다름 아닌 ‘영생의 말씀

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함께하는 목자 즉, 예수에게 있었던 것

처럼, 오늘날도 이기는 자에게 주리라는 감추었던 만나(계 2:7) 즉, 영생의 양식을 약속의 때가 되어 말씀으로
‘이긴 자’가 출현하므로, 이천년 전 예수께서 이기고 받은 그 양식을 다시 오늘날 이긴 자에게 주게 되니, 비로소

 영원한 생명은 그에게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 이긴 자에게 하나님과 예수님과 영계가 임하게 되고(계 3:12), 또 하늘의 보좌가 베풀어지기(계 3:21) 때문이

다.
이천년 전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이라 했고,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라 했다면, 곧 예수가 천

국이었다. 예수가 천국이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하므로(마 3:16) 천국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과 예수님과 하늘의 영계가 임한 그 사람이 곧 천국이 된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

느니라’라는 이천년 전의 외침이 있었듯이 오늘날도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세상을 판단하는 판검사도 육법전서를 통달해야 판결할 수 있듯이, 하늘의 목자도 천법이 담긴 성경을 통달하지

않고서는 가르칠 수도 해설할 수도 없다. 그러니 성경을 깨닫지 못하는 목자들이 존재하는 한 성경의 이름과 같

이 혼돈하고 흑암한 종교세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세상을 목적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했지만, 아담 범죄로 죄가 들어오고 사람의 수

명은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는 수한이 정해지고, 생명 대신 사망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한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 영생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를 통한 길이었으며, 초림과 재림의 역사로 죄의 세상을 멸하고, 죄

로 떠나가셨던 하나님을 다시 모시므로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 즉, 사망이 가고 생명이 주관하는 영원한 하나

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

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감사합니다. 09.05.11 22:12
 
아멘~ 아멘 아멘 09.05.12 09:35
 
아멘! 09.05.12 16:43
 
내려주시는 양식에 늘 감사합니다^^ 09.05.15 12:57
 
아멘~~ 09.05.16 00:40

[신천지][진짜 바로알자 신천지] 목이 곧은 선민의 최후

2009.11.30 23:48 | 칼럼 | next25on

http://kr.blog.yahoo.com/next25on/4074 주소복사


신앙의 역사는 곧 하나님의 역사다. 이 역사는 얼마나 될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마치 흙과 같은 인생 중에 한

목자(아담)를 택하시고, 생기(生氣)인 생명의 말씀을 주신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창설하시고, 그 곳에 말씀을 받은 목자를 세우고 만물을 그 손에 붙이

셨다. 그러나 사단이 함께하는 목자 곧 뱀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불순종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마

귀의 나라로 변질되고 말았다.

 

창세기에 출현했던 이단 즉, 뱀의 교단은 초림에도 정통이며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던 당시 종교지도자

들로 나타났고(마 23:33), 다시 오시는 때인 요한계시록이 열리는 이때에도 진리가 아닌 주석과 사람의 계명으

로 만국 즉, 종교세상을 미혹케 해 하나님 대신 귀신과 교제하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이 시대 종교지도자들임을

계시록은 정확히 밝히고 있다.

 

바로 이들이 뱀의 교단이며 일천년 동안 결박당할 존재(계 20:2~3)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로 보아 분명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빛(요 8:12)’으로 오신 예수님의 3년 공생애를 빼고는 ‘내가 가면 다시

밤이 온다(요 9:4)’는 말씀과 같이 마귀의 나라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음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종교(宗敎) 즉, 신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는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

아 하나님을 가장(마 23:2, 살후 2:4)한 사단의 가르침인 진리가 아닌 비진리였으며, 창세기와 같이 미혹의 역사

곧 마귀의 나라였음을 깨닫게 한다.

 

이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빼앗긴 하나님나라를 되찾고자 이 시간도 주무시지도 않고 일해 오시니, 이 어찌 회복

의 역사요 ‘광복의 역사(光復: 잃어버린 빛을 다시 찾는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얼마 동안 일해 오셨을까.

 

노아는 아담의 9대손이며,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이다. 그리고 모세는 아브라함의 4대손이다. 이같이 오늘날

까지 계수를 따져보니 하나님의 역사는 육천년이란 계산이 나온다.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깊을 대로 깊어져

있음을 짐작케 한다.

 

여기서 잠시 사도바울의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라는 말씀을 참고해 보자.

 

사도바울 역시 ‘때’를 언급하며 오래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은 신앙의 역사가 깊고 내

신앙 연조가 깊었으니,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 그 뜻을 잘 전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나,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그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성도들이 말씀이 없는 것은 목자가 말씀이 없기 때문이며, 목자가 말씀이 없는 것은 신학교에 말씀이 없기 때문

이며, 신학교가 말씀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진리를 생각나게 한다. 그 결과

말씀의 갈급함을 견디지 못한 신앙인들은 이 바다 저 바다를 왕래하며 마실 물을 찾으나(암 8:11~12), 이미 종

교세상은 먹지 못할 물이 넘치는 마치 바다 같이 세상화 되고 말았음을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이미 예언해 놓았

다.

 

그리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듯, ‘누구’ 즉, 마실 물인 영적 해갈을 가져다 줄 목자가 나타나면, 그 물을 나

눠 줄 목자를 찾아 나서라는 게 하나님의 법이다.

 

그러나 양떼를 맡은 목자들은 꼴을 가진 주인이 함께하는 목자에게 양들을 넘기기는커녕 잡아 가두고 죽이는,

시대마다 나타났던 일이 마지막 때인 오늘날도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을 뿐이다. 그 길을 막는 그들의 무기는 진

리 대신 핍박과 저주 그리고 인신공격뿐이다.

 

스데반은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

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라는 경고의 외침을 이때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성경말씀이 또 있다. ‘포도원 주인이 자기 포도원을 만들고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갔다가 때가 되어 자기 실과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으나 농부들이 오히려 때리

고 죽이고 돌로 치니, 다른 종들을 많이 보내자 그들에게도 그리하니,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아들은 공경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아들을 알아보고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 시대

에 또 다시 응하는 강퍅한 종교적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내가 다시 올 때에 믿음 가진 자를 보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이 왠지 귓전을 맴돈다. 그러나 한편에선 ‘듣든지

아니 듣든지 내 말을 전하라’는 간곡한 명령이 있다. 그러나 목이 곧은 자칭 선민들은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고 미리 일러 주셨다.

 

끝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하고 싶다. 구약 요나서에는 회개한 백성 즉, 니느웨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신약에선 이방 ‘두로와 시돈’이 아닌 예수께서 권능을 많이 베푼 ‘고라신과 벳세다’가 등장한다.

 

그런데 두로와 시돈이 고라신과 벳세다보다 심판 날에 견디기가 더 쉬우리라는 경고가 있음을 보게 된다. 결국

회개치 않아 화를 자초하는 마지막 때 나타날 선민의 자화상임을 마음깊이 간직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오로지 진정한 진리의 말씀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찾고 그대로 행하는자가 가장 현명한 자이겠네요. 09.04.29 11:23
 
마음이 강팍해지지 않도록.. 내자신의 잘못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께 회개하는모습이 올바른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09.04.29 12:17
 
내 영이 살기위해서는, 구원받기 위해서는 참으로 참된 말씀을 따르고 좇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09.05.18 10:54
 
감사합니다... ^---^* 09.08.05 17:27
 
교만하면 안되요 ㅎ 09.08.2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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