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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변에 가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처음에 안식년을 준비하면서 미국에 가려고 생각했다. 2005년에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버클리대학의 민경호선생님과 안교수를 만나고 왔다. 그런데 작년에 미국에 가자고 큰 아이인 승규녀석에게 이야기했더니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어떤 연구를 하려고 하는 것이냐는 거다. 그래서 영어도 배울겸 고려대와 협정이 맺어진 버클리대학에 승규가 가면 이래저래 좋을 것이고, 그곳에서 승훈이도 영어를 배우면 좋겠다고 하면서 그런 뜻에서 그곳으로 가려고 한다고 하니, 아빠가 미국에 가면 월급은 학교에서 나오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들이 아니라, 공무원인 아빠가 국가의 녹을 먹으면서 자기의 발전을 위해서 가야지 아들을 위해서 간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핀잔을 받았다. 원래는 나자신만을 위해서라면 나는 한국체육사를 전공하니 일본이나 중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맞겠다고 하니 그쪽으로 선회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한방 먹고 나서 할 수없이 다른 곳을 찾았고, 자연스레 일본의 와세다대학으로 접촉을 시도했다. 스포츠인류학을 하는 소카와선생에게 연락을 하고, 그곳에 가기 위한 수순으로 일본국제교류재단의 연구비를 신청하기 위해 연구계획서를 준비하였다. 또 쿄토에 있는 국제문화교류재단에도 연구비를 신청하였다. 일본에 가서 소카와선생도 만나고 와세다대학도 방문하였다. 그런데, 연구비를 하나도 얻지 못하게 되었고, 와세다대학에서 4식구가 생활하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거야 원...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차에 10월말에 아내가 갑자기 연변에 가자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그러자고 찬성했다. 아내 왈, 연변에 가면 우리가 가서 줄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이미 연변대학의 김영웅선생에게 나의 책, 스포츠손자병법을 중국어로 한번 번역해보라고 하였고, 그것의 출판을 위해서 서로 의견교환을 하던 차였었기에 너무도 쉽게 중국으로 가기로 결정을 보았다. 김영웅선생도 내가 오면 좋겠다고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하였고, 이미 3번이나 그곳에 가봐서 그곳 분위기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서울대에도 김수욱, 김청운, 김춘광, 김성수 등 연변대학교 교수진이 학위과정 중에 있어서 여러모로 편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내와 나는 쉽사리 의견통일을 보았는데, 두아이를 설득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근 두달에 걸쳐서 노트북을 사준다, 중국여행을 신나게 하자, 앞으로 중국어가 영어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중국이 미국보다 경제력이나 힘이 더 쎄질 것이라는 둥 당근질을 하였고, 우리 집 사정이 넉넉치 않은데, 중국과 서울에서 두 집살림을 하면 엄마가 왔다갔다하고, 너희들도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채찍질을 하여 겨우겨우 설득을 하였다. 인생은 길다, 1년 휴학하고 중국어를 배우면 정말로 인생이 너무 멋질 것이다, 미국을 가보았잖느냐, 중국도 그 이상,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이고, 북경올림픽이후에는 세계가 중국을 무시못하고, 아시아는 중국을 중심으로한 경제권이 도래할 것이고, 그런 찬란한 나라를 여기저기 다녀보자고 꼬셨다. 1월 2일에 겨우 첫째가 승낙을 하였다. 한번 결정하여 내뱉은 말을 번복하기는 어려운 법! 친구들로부터 중국간다고 밥얻어먹고서는 이젠 되돌릴 수 없다고 하면서, 중국가서 낚시나 하겠다는 둥, 중국요리를 배워야하겠다는 둥 여러말이 많다. 어쨌거나 네식구가 모두 중국에 가기로 했다. 참으로 기쁜 일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번에 중국 연변에 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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