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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대학과의 교류협정..
베트남
연변대학 60주년..
외국출장...
딸의 결혼식
개설일 : 2006/12/05
 

와세다대학과의 교류협정체결을 위해 강준호교수와 같이 일본 동경에 갔다.

영국에서 스포츠분야에서 최고라고 하는 러보러대학, 중국의 상해체대와 청화대 그리고 서울대가 함께 파트너로서 세계인의 Active life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도코로자와에 있는 와세다대학 캠퍼스를 둘러보고, 일본의 국립스포츠과학연구소인 JISS와 선수촌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시설은 정말로 놀라왔다. 수천억원을 들여서 엘리트스포츠와 생활스포츠를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대단하였고, 상업기관이 아지노모노재단과 국가가 협력하여 이러한 사업을 하는 것도 정말 놀라왔다. 싱크로나이지만을 위해서 수영장의 옆면을 투명유리로 만들어 과학적연구를 할 수 있다던가, 각종목별로 경기장을 여러개 만들어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하는 것은 자본의 힘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따라잡기 힘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와세다대하의 총장과 학장 그리고 스포츠과학연구소 원장 등이 이번 연구를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 같았다. 각국의 연구성과들에 대한 맛보기 개인연구들을 소개하였는데, 강준호교수의 연구발표는 압권으로 다른 나라의 연구자들이 칭찬해 마지않았다. 이어서 교류협정을 위한 세레머니가 있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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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indoor games을 보기 위해 하노이로 갔다. 우리가 기대했던 무술 경기장의 모습이나 경기의 치열함 같은 것은 볼 수 없었다. 또한 조직위원회의 준비가 소홀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토바이의 물결 속에 바쁘게 살아가는 베트남사람들을 보았다. 사회주의 발전도상국가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의 물결과 존경받는 호지명의 모습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유교문화의 모습을 보았다. 과거시험을 보았고, 11세기에 국자감을 만들어서 학생을 공부시키고, 국가에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도 볼 수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모습도 많이 보았다.
돌아오는 하노이국제공항에서 손님처럼 히히덕거리며 TV를 보는 식당조업원을 보면서 언제나 베트남이 발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럼에도 1000년간의 중국지배와 100년간의 프랑스지배, 5년간의 일본지배 그리고 30년간 미국과 싸운 대단한 나라 베트남이 새롭게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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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학 60주년을 맞이하여 연변을 다시 방문하였다.
공개행사와 연회에 참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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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는 정말 해외출장이 너무 많았다.
중국 3번, 베트남, 일본까지...국내출장도 정말 많았다. 매주말마다 출장이 있어서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다. 찍은 사진도 정리도 못할 정도였다.
기억이 가물거리기 전에 이곳에라도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연변에서 여러사람드을 만났다. 함께 활도 쏘고, 활 만드는 곳도 가보고, 주체육국, 연길공원, 연변체육운동학교, 백호특공무술체육관 등을 탐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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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들만 둘이다. 
나는 딸이 없다.
그런데, 어제 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게 웬일이냐고?
나도 놀랠 일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2007년 10월에 중국 항주에 있는 절강대학의 쓰치교수의 초청을 받고 특강을 하였다. 그리고 특강후에 아내와 같이 천하의 명산이라는 황산으로 여행을 갔다. 중국인 여행단과 같이 버스를 타고 황산을 가다가 한국인 3명을 만났다. 그중에 노현구라는 나처럼 머리가 허연 젊은 친구를 유심히 보았다. 황산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그 친구의 행동거지를 유심히 보았는데,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황산구경후에 기차를 타고 소주로 가기로 했던 계획이었는데, 다시 항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그 친구의 조언을 듣고 항주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 다음날 항주로 가서 쓰치교수를 만났다.

둘다 나이가 과년한 사람들이 었지만, 마음씀씀이가 착한 두 사람에게 한번 사귀어보라고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쓰치교수는 중국 우한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체육과에서 박사를 받아서 절강대학의 교수가 된 능력있는 중국 노처녀였고, 노현구는 대만대학을 졸업하고 절강대학에서 부동산관련 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늙은 노총각이있다. 둘은 교수와 학생의 신분이었지만 사랑을 꽃피웠고, 양가의 허락을 받고 결혼을 하게되었다. 먼저 중국에서 결혼식을 하였고, 한국에서 다시 결혼식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쓰치의 부모님의 호적이 신장위그루자치주에 있는데, 결혼식날까지 한국행 비자발급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번 중국의 소요사태로 그곳에 호적을 둔 부모님의 비자가 생각보다 절차가 까다로웠던 갔다. 쓰치의 부모님은 원래 한족으로 교사출신의 엘리트인데, 문화혁명기간에 당국의 지시로 그쪽으로 가서 교편을 잡았다고 한다. 그러한 연고로 이번 사태에 휘말리게 되어 비자발급이 지연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세상일이 이렇게도 꼬일 수도 있는 것인가보다. 그래서 부득불 누군가가 부모노릇을 해야하는데, 우리 부부가 그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 부부만큼 그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도 기분좋게 그 역할을 자임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조금 나이많은 딸과 사위를 한꺼번에 얻었다.

결혼식에서 사돈도 만났다. 사돈의 식구들은 모두 심성이 고운 사람들 같았다. 의사인 쓰치의 오빠도 만났다. 주례는 쓰치의 지도교수인 정청희교수가 맡았다. 그리고 신인식교수가 멋진 사진을 찍어주었다. 여기에 있는 사진은 모두 신인식교수가 찍은 사진이다.

아내는 사돈댁과 같이 화촉을 밝히기도 하였고, 나와 같이 부모석에 앉아서 흐뭇하게 딸의 결혼식을 참관하였다. 결혼식의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신혼부부는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고, 신랑집식구들 모두 좋아했다. 오빠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신부가 너무 많이 웃어서 첫째 아이는 딸이 아닐까 싶다....

결혼식에서 보통의 딸가진 부모는 울음이 나온다고 했는데, 나와 아내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두사람이 행복하게 잘살기를 기대해본다.

쓰치야! 행복하게 잘 살아라!!!!
노현구! 쓰치를 행복하게 해주어라!

손녀가 태어나면 그땐 뭘하지?
이런 생각만 해도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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