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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아버지 고향 회령은 삼합(三合)이란 곳을 가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삼합의 어떤 정자에서 보면 회령이 한눈에 보인다는 이야기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오신 성기철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회령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이 들었다. 회령군민회가 열리는 창경원과 비원 등지에서 아버지, 엄마의 손을 잡고 도시락을 까먹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회령이 고향이 타향살이하던 어른들이 모여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어서 벌어지는 아코디언소리에 맞추어 노래자랑도 하며 고향생각에 젖어서 눈물짓던 기억이 난다. 나는 동생 영근이와 같이 점심도시락을 까먹으며 창경원과 비원을 뛰어다녔고, 공원입구의 포장마차에서 낙지와 아이스크림 등을 먹던 생각이 난다.
서울로 돌아가면 형님과 누님들께 회령이야기와 이곳 중국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삼합에 갈 계획을 세웠다. 큰형과 둘째형 그리고 큰누나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얼마나 그곳이 그리울까? 장마당이 서는 회령 409번지에는 지금은 누가 살까? 대구가 고향인 대구보다는 회령이 진짜 내 고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난살이하던 대구는 우리식구들에게는 그렇게 좋은 추억이 있을리 없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대구는 그냥 내가 태어난 곳 일뿐 그곳이 내 고향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그곳에서 목회를 하신다는 전도사님들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오겠다면 대환영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제(11일)가기로 약속을 하였다. 10일 저녁에 체육학원의 만족인 주 부원장으로부터 송별연을 받는 자리에서 이천식 부원장이 삼합까지 먼데 어떻게 가느냐고 해서 버스타고 갈거라고 했더니 자기 부인인 심명옥교수에게 이야기해서 차로 모시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덕분에 편안한 여행이 되었지만, 이 또한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이 숨겨져 있어서 다음날 많이 놀랐다. 8시에 출발할 시간이 되었을 때, 김영웅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심명옥 교수가 8시30분에 집으로 오겠다는 연락을 다시 받았다. 그리고 다시 깜짝놀라서 심명옥 교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먼저 용정으로 가기로 했는데, 연길시를 빠져나가는 심교수의 운전솜씨를 보니 완전 초보딱지를 겨우 띤 수준임을 알았다. 길을 잘못 들어 용정에서 기다리는 전도사님을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게 하였고, 3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한시간정도 걸려 도착하였다.
용정에서 전도사님을 만났다. 삼합으로 가는 길에 윤동주 생가가 있다고 하여 그곳에 잠시 둘러보았다. 아버지의 친구이기도 한 윤동주 생가를 보면서 우리 아버지는 용정의 어디쯤에서 학교를 다녔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꾸민 생가에는 겨울철이라 방문하러 오는 손님이 없어선지 철조망으로 막혀있었다. 그래도 들어가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1994년에 새롭게 꾸민 이곳에 여러 기록들이 있었지만 급조한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뒷마당에는 씨름터도 만들어놓았고, 해외 각지에서 왔다간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삼합으로 가는 길이 근래에 깨끗하게 포장이 되어 아주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예전에는 오랑캐고개가 있어서 다니기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이 길을 통해서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형님과 누님들이 다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삼합은 아주 조그만 마을인데, 이곳은 우리의 읍 정도 되는 곳으로 향진(鄕鎭)이라고 할 때의 진으로 삼합진이라고 한다. 이곳은 회령으로 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하는 길목으로 해관이 있다. 삼합시내에서 조금 돌아서 올라가니 백여미터 높이의 언덕위에 정자가 하나 있었다. 정자로 가는 길은 눈이 조금 쌓여있어서 미끄러웠다. 정자 옆 빈 공터에 한 봉고버스가 있었는데, 어떤 노인을 휠체어에 태워 봉고차에 올리고 있었다. 막 구경을 끝내고 돌아가는 중인 것 같았다. 엄마가 살아계셨으면 우리도 저렇게 봉고차에 엄마를 태우고 이곳에 왔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휠체어 신세를 지셨던 엄마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해관을 거쳐 다리위에 버스와 차가 다니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길을 따라 저멀리 회령이 보였다. 안개가 끼어서 회령시내는 깨끗하게 보이질 않았다. 그쪽 봉우리위에 정자가 보이는데, 김정숙 기념비가 있다고 하는 곳이라고 한다. 두만강물이 몇십미터도 안되는 것 같다. 물이 언 곳도 있고 얼지 않은 곳도 있었다. 저곳이라면 누구나 마음대로 건널 수 있겠다싶다. 엄마가 석탄을 주으러 여러번 강을 건너셨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을 것이다. 잘 보이지 않아 사진을 몇 번 찍고 내려왔다.
눈길이라 내가 운전을 했다. 삼합에서 다시 산골로 들어가는데 10미터도 안되는 작은 개울가 옆으로 한참 들어갔다. 그 개울가 넘어가 북한땅! 이렇게 가까울 수가....이곳은 도문가는 길에서 보았던 두만강하구의 널따란 강이 아니라 몇십미터도 안되는 개울이 한참 이어져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두 나라의 경계가 그어진 병경이었다. 근래 중국 쪽에서 철조망을 쳐놓았다고 한다. 그래도 넘어가려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조금 가니 북한 땅, 유선(遊仙)이란 조금 큰 마을이 보인다.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중국국경수비대차가 지나간다. 예전 같으면 큰일이 났을 것 같다. 이곳에서는 그곳을 아주 명확하게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정말로 헐벗은 저곳이 북한땅이란 말인가? 중국땅은 산에 나무도 많고, 과일나무가 빼곡이 펼쳐졌는데, 저쪽 땅은 풀도 나무도 거의 없는 헐벗은 땅이었다. 그곳을 쳐다보면서 한숨만 푹푹 쉬고 운전을 했다.
D교회에 도착하였다. 교회를 지키는 어떤 집사님이 우리를 마중하였다. 교회는 아담하고 깨끗하였는데, 바닥이 냉골이고 상당히 추웠다. 돈이 없어 불이 지피지 못하고 전열기만 돌리고 있는데, 그나마 하나는 고장났다고 한다. 성도들은 나이많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한 20여명이 출석하는데 전도사님 신수비도 주지 못한다고 한다. 북한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가끔 오는데 이 사람들을 재워주다가 걸리면 큰 일이 난다고 한다. 가끔가다 그 사람들이 오기도 하는데 너무 굶주려 불쌍해서 밥만 주고 보낸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은 대부분 회령사람들이지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회령에는 교회가 하나도 없을 것이고, 회령에서 가장 가까운 이곳이 유일한 교회라고 생각하니 이곳 D교회는 정말 소중한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금이 났다고 해서 붙여진 백금 동네를 지나 또 굽이굽이 돌아서 Y교회로 갔다. 이곳 동네는 대부분 조선족마을이라고 한다. 현재 40여명이 출석한다고 한다. 교회에는 이미 D교회의 전도사님도 와 있었다. 두 분의 전도사는 우여곡절 끝에 주님을 만나서 목회의 길로 간 분들이다. 두 분 다 평신도로 교회에 다니면서 목회를 하다가 작년에 설교권을 받아서 공식적으로 설교를 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에서는 목사, 전도사란 직책의 이름보다도 설교권이 있느냐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한 관건이다.
교회 옆 사택에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전도사님의 어머니와 부군 그리고 또다른 전도사님은 이미 식사를 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눈길을 오느라고 1시가 되어서 식사시간에 도착하였기에 시장이 반찬이라고 생각하고 웰빙 식사를 맛있게 하였다. 아내과 심교수는 밥을 맛있게 먹고 나서 또 누룽지를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너무 배가 고팠던 것인지 아니면 누룽지가 너무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신앙이야기, 삶의 이야기 등등을 많이 나누었다. 신교수도 주님의 뜻하심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작은 성의를 표하고 길을 나섰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용정으로 가야하는데 이곳부터 30키로미터쯤 된다고 한다. 교회에서 나오자마자 엔진오일 계기판에 붉은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제쯤 오일을 갈았느냐고 물어보니 그런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고 한다. 이런 정도의 초보운전자가 우리를 돕겠다고 했으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만일 심교수가 계속 눈길을 운전했었더라면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지 지금도 아찔하다. 비포장도로의 눈길을 지나면서 몇 번 덜컹거렸는데 그때 오일이 새기 시작한 것 같다. 예전에 용인대학에서 서울로 오다가 10여키로 남겨놓고 엔진오일이 모자라 차를 길에 세우고 레카차를 부르고 난리를 치던 적이 있었는데, 혹시 이번에도 그런 것이 아닌지 무척 걱정이 되었다. 11개월 만에 처음 눈길을 운전하며 차가 미끄러지는 것보다 눈길에서 차가 중간에 서면 어쩌나 엄청 걱정이 앞서게 되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용정의 자동차수리센터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자동차수리공도 다음부터는 절대로 이런 상태에서는 자를 운전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오일통이 새서 오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 웃으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지만 정말로 아찔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하면서 엔진오일이 줄줄 새는 상태에서 차를 몰로 30여키로를 달려왔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정말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동차를 몰고 내 고향땅을 밟고 싶다. 마음대로 사진찍고 돌아다니며 이곳에 소풍을 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부모님들이 저 하늘에서 안타깝게 우리를 쳐다보고 계시지만 우리 형제들이 다함께 이곳에 와서 친척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얼마나 흐뭇하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빨리 통일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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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2008.01.1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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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아........... 네가 본 고향이 이렇게 흐믓할수가......!!
그림으로 보니 더욱 더 마음이 찡하구나. 언제쯤 가볼까나....???
둘째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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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속의향기 2008.01.20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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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일 교수님~~ 반갑습니다. 나교수님 고향을 훔쳐봅니다
가까이 있어도 갈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 곳이네요
소망대로 어서 통일이 되어 그곳까지 드라이브 하시길 바래봅니다
석호정도 토요일 정기총회와 삭회를 치렀습니다
새로운 임원진이 구성되었습니다. 디지털 국궁 신문에서
동호정 소식이 있어 석호정 카페로 펌해갔습니다
늘 먼 곳에 계시며 나라사랑과 전통문화발전에 큰 기여를 해주시는
나교수님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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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 2008.08.31 21:20 [122.34.2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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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고향이시자 저의고향이기도 합니다. 고향사진 잘보았습니다. 더많은 사진 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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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 2008.09.05 22:21 [122.34.2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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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가고싶은 나의고향입니다. 눈에 선하고 그모습그대로 그려보이는 고향. 많은 이미지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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