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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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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빙설제

5일밤 9시 16분 기차로 하얼빈에 갔다. 6일 아침 7시 50분쯤 하얼빈에 도착하였다. 먼저 호텔로 가서 아침을 먹고 방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하얼빈은 무척 추웠다. 옷을 단단히 바꿔입고 빙등제가 열리는 송화강 강변의 태양도(太陽島)로 갔다. 그런데 첫 번째 간 곳은 빙설제를 하는 곳이었다. 개막은 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몇몇 곳에서는 눈으로 각종 조각상이나 건물을 만들고 있었다. 눈이 조금 부족한 듯 눈을 만들고 있는 곳도 있었고, 조각을 하느라고 인부들이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한낮인데도 어찌나 추운지 혼이 났다. 내복을 2개나 껴입었지만 얼굴을 가릴 수가 없어서 특히 뺨이 무척 시렸다. 이곳은 그렇게 엄청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식사를 하고 호텔에 들어와서 잠옷을 꺼내서 속에 껴입었다. 연변추위는 이곳 하얼빈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저녁에는 더 추워진다고 겁을 먹었다. 4시에 호텔에서 나왔다. 그런데 4시는 이곳 택시들의 운전수교대시간이라서 15분정도 길거리에서 차를 잡다가 시간을 보냈다. 4시를 조금 넘겼는데 벌써 주위가 컴컴하게 변하면서 시내 곳곳에 불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시내의 곳곳에 조명시설을 많이 하여 한껏 축제분위기가 났다. 송화강을 건너 빙등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는데, 송화강의 얼음강물을 떼어낸 흔적이 눈에 띄었다. 송화강은 거의 2m 두께로 강물이 언다고 하는데 그것을 떼어다가 트럭에 싣고 와서 공원에 엄청난 얼음건축물을 만들어 놓았다. 어떤 자료를 보니 얼음조각이 3만여 입방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말이 끄는 썰매에 타고 8군데로 나누어진 멋진 조각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웃고 즐겼다.

한국에서는 얼음을 만지면 시원한 느낌을 받는데, 여기에서의 얼음은 그냥 유리 같았고, 전혀 물기가 손에 묻지를 안았다. 얼음결정체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것 같다.

저녁에 정홍영선생의 친구인 흑룡강신문기자인 선화씨와 그 부군 되는 할빈임업대학의 한선생으로부터 식사대접을 받았다. 연변과 조금 다른 샤부샤부를 먹었다. 한선생이 기차표를 구해주지 못했으면 이번 여행도 힘들뻔 했는데...정홍영선생과 친구에게 감사드린다.

다음날 오전에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 하얼빈의 상가거리를 구경하였다. 또다른 정홍영선생의 친구를 만나서 일식을 먹었다. 오랫만에 먹는 일본라면이 구수했다. 오후에는 안중근의사의 기념관이 있는 하얼빈조선민족예술관으로 갔다. 안중근의사는 역시 남다른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등박문을 저격한 것을 단순한 암살이 아니라 대한독립을 위한 하나의 실천임을 밝히는 여러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가 이곳 하얼빈을 개척할 당시에 지은 소피아성당과 주변 중앙대가 거리를 구경하였다. 러시아인들은 이곳에 나름대로의 러시아문화와 유럽문화를 남겨 이곳 거리는 중국속의 또 다른 곳이라는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서 만두를 먹고 하얼빈역으로 갔다. 역에는 수많은 인파가 넘쳐났다. 중국은 어디를 가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근 70여년전에 일제치하에서 아버지가 이곳에서 이런 기차를 운전하셨던 때를 생각해보았다.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났고, 나름대로 자랑스러웠을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는 얼마나 먼 곳까지 기차를 타고 다니셨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보았다. 큰 형이 목단강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예전부터 이곳에서 기차를 운전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던 터라 당시의 생활상이 어떠했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침대차에 누워 펄벅의 대지를 다 읽었다. 대지를 읽으면서 중국을 이해하는 단초를 조금 깨달은 것 같았다. 왕룽과 오란, 그들의 부모와 자식들이 중국의 대지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조금씩 스치며 지나갔다.

하얼빈으로 가는 기차와 오는 기차 모두 침대칸에 코를 고는 외부사람이 있어서 잠을 거의 못잤다. 그래서 오히려 생각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남다른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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