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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8/01/05
 

★☆ 자기가 만드는 길 ☆★

2009.11.21 16:16 | 좋은글 | 愚溪

http://kr.blog.yahoo.com/msj9400/4318 주소복사


    자기가 만드는 길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가슴에
    길 하나를 내고 있습니다.
    그 길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이 아니라
    자기가 만드는 길입니다.

    사시사철 꽃길을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동안 투덜투덜 돌짝 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꽃길을 걷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게도 시련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오면 고통과 맞서
    정면으로 통과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오면 고통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반성하며 기다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오면 약한 모습 그대로 보이고도
    부드럽게 일어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오면 고통을 통하여
    마음에 자비와 사랑을 쌓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오면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점을 찾아
    반성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오면 고통 가운데서도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지나간 뒤 고통의 시간을
    감사로 되새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산다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더욱 신나는 일입니다.


    남을 위해 사는 방법 가운데
    내 삶을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 기쁨과 안타까움이
    다른 이에게는 더할 수 없는 깨달음이 되어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합니다.

    동행의 기쁨,
    끝없는 사랑,
    이해와 성숙,
    인내와 기다림은 행복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나는 분명히 느낄 것입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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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의 사회와 문화 ☆★

2009.11.21 15:26 | 수집창고방 | 愚溪

http://kr.blog.yahoo.com/msj9400/4316 주소복사

70년대의 사회와 문화 ----------------


전국으로 번진 새마을운동
1970년대 어디를 가든지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좋아졌네! 좋아졌어]

[새벽종이 울렸네]의 노래가 들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 가뭄대책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처음 구상을 밝힌 새마을 운동이

전국을 휩쓸며 정치.경제.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민부흥운동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에 힘입어 고질적인 가낭의 병폐에서 벗어나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반면,

정치적인 억압의 눈가리개용이라는 비난과 '물질만능주의'의 폐해를 확산시켰다.


사진은 효제국민학교 1천2백여 어린이들이 거리청소에 나서는 모습이다.


연예인 새마을 촉진대회
1977년 3월 10일 서울시민회관 별관에서 380명의 연예인이 모여,
연예계의 퇴폐풍조를 일소하겠다고 다짐한 연예인 새마을 촉진대회의 장면이다. 구봉서.배삼룡.서영춘 등의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연예계 퇴폐풍조 일소를 통해 도시 새마을운동에 앞장선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 연예인들을 동원해 새마을운동의 분위기를 띄웠던 것이다.


도박추방에 불타는 화투
새마을 운동은 일상생활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도박 추방의 형태로 나타났다.
사진은 대학요식업 중앙회와 숙박업협회가 [여관 및 접객업소에서 화투놀이을 하지 말자]는 구호 아래 도박 추방운동을 벌이는 모습이다.
1973년 6월 15일에 각 업소에서 거두어들이 1만 2천벌의 화투가 한강 백사장에서 태워졌다.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 축구대회]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 축구대회]

1972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주최된 국제규모의 대회이다.
박정희군사정권은 스포츠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호도하였으며, 여기에 일인 독재의

허울을 덮어세워 이 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은 대 말레이지아전에서 5:1로 크게 이겼는데, 사진은 한국의 박주덕의 슛을 말레이지아 골키퍼가 막아내는 장면이다.

한국은 첫대회의 결승전에서 버어마와 0:0으로 비겨 공동우승을 하였다.
이 대회는 1979년 박대통령의 시해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호스티스영화 붐
1974년 [별들의 고향]을 시작으로 호스티스 영화가 붐을 이룬다.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지니면서도, 도시 주변부의 소외된 삶이나 억압된

정치사회적 상황을 표현하려는 짙은 사회성을 보여준다.
이런 영화들은 일정한 수준과 내용을 보이긴 했으나, 영화적인 완성도나 흥행면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유신치하 군사독재의 억압적 정치상황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기에는 당시에 억압의 정도가 너무 심했다.
사진은 호스티스 영화의 하나인 [영자의 전성시대]로,

지금은 중년인 송재호의 앳띤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이틴영화의 인기
이런 와중에서 등장한 것이 10대 하이틴 영화와 희극 아니면 청춘 멜로와 희극의 중간 형태로 등장한 얄팍한 감상주의 희극 영화들이다.

[진짜 진짜 잊지마], [진찌 진짜 미안해], [고교 얄개]의 하이틴 영화들은 값싼 제작비와

검열에 걸리지 않는 장점 때문에 선호되었고,

[병태와 영자], [아니 벌써] 등의 희극 영화들은 저급한 웃음으로 관객들을 끌어모으려

했으나 실패한 경우들이다. 사진은 고교 얄개의 한 장면이다.


통기타 문화
70년대 대중음악계의 중요한 특징은 포크송의 유행이라 할 수 있다.
낡은 청바지, 장발, 통기타로 상징되는 청년문화의 발흥으로 널리 퍼져갔다.
1970년대 초반 양희은, 김민기, 이정은 등이 등장하여 음악감상실이 밀집한 대학가와

도심가를 통해 커다란 물결을 이룬다.
대부분 고학력자들로 구성된 포크 가수들은 자작곡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고, 이전까지

몇몇 가수에게만 귀하게 쓰여지던 '학사가수'라는 단어도 빛을 잃어갔다.
60년대 활동하던 가수들이 인기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새롭게 '다운타운형' '방송국형'

'댄스가수'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나훈아,남진의 인기
새로이 등장한 포크 송에 대해 트로트의 부흥에 기여한 대표적인 가수가

나훈아, 남진 등이다.
이들의 노래는 모두 사랑, 이별, 그림움, 미움 등의 감정을 다양하고도 직접적인 어법으로

묘사하여, 오늘날까지도 계속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은 1972년 6월4일 밤 11시경 서울 시민회관 공연 도중 젊은 팬으로 부터 피습을 당한 장면이다. 당시 과열된 인기의 한면을 보여준다.


TV 드라마 광고

TV CF
70년대 초반 대중들은 텔레비젼 연속극 [아씨]와 [여로] 앞에서

눈과 귀를 빼앗긴 채 울고 있었다.
1971년 겨우 62만대에 불과하던 텔레비젼 수상기의 보급대수는 1975년 2백만대,

1980년 660만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대중문화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군사정권은 정책 홍보의 수단으로 텔레비젼 방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961년 KBS 텔레비젼을 개국시키고, 1969년에는 '전자산업육성법'을 공포해 텔레비젼

수상기의 보급을 적극 장려한 결과이다.
우리나라의 텔레비젼 방송은 1956년 6월 세계에서 15번째,

아시아에서 4번째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진은 당시 MBC 일일연속극의 신문광고이다.

일일연속극은 1970년을 기점으로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 붐은 1970년 3월 시작한 TBC의 [아씨]에서 비롯되었다.
1972년 세 방송국은 매일 제작 방송하는 일일연속극 편수가

13편에 이를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한편 T.V.방송이 보급됨에 따라 상업광고가 본격화되었다.
KBS는 1969년 상업광고 방송을 그만 두었다가 1981년에 다시 재개하였으며,

민간상업방송인 MBC는 개국과 함께 계속 광고방송을 하였다.

1973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텔레비젼의 프로그램 중간에 하는 광고는 금지되어졌다.


어린이대공원
서울시 11억원을 들여 서울 성동구 22만평의 대지 위에 마련한 [어린이 대공원]이다.
1974년 5월 5일 제51회 어린이 날에 개장하였는데, 첫날 30만의 인파가 붐볐다.
주말에 서울시민들이 자녀들과 함께 즐기는 대표적인 놀이시설이 되었다.


젊은이들의 환락 고고장

대학가 축제댄스
지나친 사회규제와 정치적 억압상황은 젊은이들의 답답한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거의 본능적으로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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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정부기의 우표에는 항일의식을 담은 인물상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1947년 8월 발행된 이순신 장군(액면가 10원) 우표는 그 대표적 예다. 익숙한 투구를 쓴 이순신 장군이 아닌 다소 낯선 모습이다.

* 해방조선 우표(1946)
 
1946년 5월 1일 발행된 해방조선 우표는 독립된 대한한국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이는 한국 고유 우표의 시발점이 되었다.

* 이대통령각하 83회 탄신경축기념 소인(1955)

1955년 6월에 발행된 을지문덕 엽서의 이대통령각하 제83회 탄신경축기념 소인 부분을 확대했다. 당시 우편엽서 가격은 20환이었으나 구 엽서의 액면가가 10환이었으므로 모자라는 10환은 독도 우표를 첨부해 사용했다.

* 5원짜리 금관 우표(1946)

1946년 9월 발행된 5원짜리 금관 우표. 해방 직후의 혼란기로 인한 종이 부족으로 지질이 나쁜 데다 인쇄 품질 또한 낮았으나 조선우표라는 네 글자에 자유국가의 자부심이 넘쳐난다.

* 한국 최초의 그라비아 인쇄 우표(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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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8월 서독 괴벨 회사에서 그라비아 인쇄 기계를 수입해 설치하고 최초의 그라비아 인쇄 우표를 제작하게 된다. 최초의 도안은 태극기였으며 가격은 7원(액면표시 7.00), 발행일은 1969년 5월 1일이었다.

* 광화문우체국 개국원년 우표(1905)

개국 당시 광화문출장소였던 광화문우체국의 개국원년 소인이다. 개국 다음날인 1905년 9월 12일자 소인이 찍힌 우표에는 대한제국우표라고 씌어 있고 우표 액면가는 2리였다.

* 복권식 추첨부 연하엽서(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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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부 연하엽서는 엽서 하단에 추첨용 일련번호를 넣어 당첨자에게 상금을 주는 것으로 일종의 복권엽서다. 엽서로 소식도 전하고 당첨까지 되면 두 배로 기쁜 선물이었다. 개 모양을 한 기념소인이 이채롭다.

* 조선간이생명보험 납입통장(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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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편국에서 최초로 보험 업무가 시작된 것은 1929년 서대문우편국에서부터였다. 광화문우편국에서는 1935년 10월 1일부터 보험 업무를 시작하였다. 사진은 1943년 7월 16일 불입을 시작한 보험료 납입통장 실물로 일부 접혀진 상태로 촬영했다.

* 광복20주년 기념우표전시회장 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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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우편엽서에 찍힌 광복20주년 기념우표전시회장 소인

* 양 그림이 있는 연하소인

1955년 통상엽서. 요금은 10환이었다. 소인 속 연도 표시 옆에 (88)이라 씌어진 것은 단기 표시(4288)에서 4200년 부분을 생략한 것이다.

* 우편번호제 및 우편작업 기계화 기념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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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번호제 실시 및 우편작업 기계화 기념우표. 1970년부터 다섯 자리 숫자로 구분되는 우편번호제가 실시되고 우편작업 기계화도 동시에 실시되었다.

* 조선호텔 원구단 사진엽서(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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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6월 16일자 소인이 찍힌 한일협정 시기의 우편엽서. 평양우편국 소인이 찍혀 있으며 3전 짜리 우표를 첩부했다. 엽서속 건물 사진은 조선호텔내의 원구단이다.

* 국내용 통상일부인 변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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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사시구려 ☆★

2009.11.18 16:29 | 좋은글 | 愚溪

http://kr.blog.yahoo.com/msj9400/4310 주소복사



      ★ 이렇게 사시구려 ★


      나이가 들면 설치지 말고
      미운소리, 우는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 소리 불평일랑 하지를 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적당히 아는척, 어수룩 하소
      그렇게 사는것이 평안하다오.

      상대방을 꼭 이기려고 하지마소.
      적당히 져 주구려
      한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것
      그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돈,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그렇지만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 돈은 놓치지 말고
      죽을때까지 꼭 잡아야 하오.

      옛 친구를 만나거든 술 한 잔 사주고
      불쌍한 사람 보면 베풀어주고
      손주 보면 용돈 한푼 줄 돈 있어야
      늙으막에 내 몸 돌봐주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오.

      우리끼리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이라오.
      옛날 일들일랑 모두 다 잊고
      잘난체 자랑일랑 하지를 마오

      우리들의 시대는 다 지나가고 있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봐도
      가는 세월은 잡을 수가 없으니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마음씨
      좋은 이로 살으시구려
      멍청하면 안되오.
      아프면 안되오.그러면 괄시를 한다오.

      아무쪼록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으시구려.
      그리고 늘 웃으시구려
      행복은 바로
      내가 만드는 것 이라오


      = 좋은글 中에서 =


       



        배경음악 : Meditation from Thais(타이스명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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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이란 선택의 연속 입니다 ☆★

    2009.11.18 16:16 | 좋은글 | 愚溪

    http://kr.blog.yahoo.com/msj9400/4309 주소복사

     

    ♣삶이란 선택의 연속입니다 / 설화 박현희♣

    한 생애 사는 동안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습니다.



     

    이 길을 선택하면 과연 옳을지

    아니면 저 길을 선택해야 현명할지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의 선택을 함으로써 얻는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가늠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기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선택이

    항상 올바르고 현명한 선택일 수는 없지만

    최선의 선택이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살다 보면

    분명히 옳지 못한 선택임을 알면서도

    선택해야 하고

    가지 말아야 할 길임을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비록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게 되더라도

    그 여정에서 겪는 아픔과 시행착오를 통해

    우리는 많은 지혜와 깨달음을 얻습니다.



     

     

    선택의 연속인 우리의 삶에

    비록 오늘의 선택이 잘못한 선택일지라도

    그 잘못을 밑거름으로 삼아

    가야 할 올바른 길을 깨닫고

    내일의 현명한 선택에 도움을 얻습니다.



     

     

    선택 앞에 자유로운 우리 삶이지만

    항상 올바른 선택일 수 있도록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며

    겸허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롭고 현명한 마음의 눈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첨부이미지
      ♥ ♥



    출처 :바위솔의 추억찾기 원문보기   글쓴이 : 하늘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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