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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 대참사로 무너진 건물 속에 갇혔으나 믿음으로 행하니 살 길이 열렸어요 [홍진숙 지도교사 ] |
| | 삼풍백화점 붕괴 대참사가 발생한 1995년 6월 29일, 저는 지하 3층에 있는 여직원 휴게실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휴게실에 쉬러 온 직원들이 "매장은 온통 찜통이에요. 에어컨을 고치려면 일 주일 정도 걸린대요."라든지 "5층 전문 식당가 건물이 기울었대요."라는 말을 하는데 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미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지만, 그렇게 끔찍한 참사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백화점 붕괴 사고가 눈앞의 현실로 닥치고
마침 그 날 오후에 「빛과 소금선교회」 담당 교구장 사모님이 삼풍백화점에서 종사하는 회원들을 심방하시고, 제가 근무하는 곳에 들르셨습니다. 그 때 함께 근무하던 언니는 사모님과 함께 일찍 퇴근하라고 배려해 주셨으나, 저는 목요일마다 영동성전에서 열리는 기도회에 회원들을 데리고 참석하기 위해 오후 5시 40분경에 사모님을 배웅한 후 근무처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도 제가 퇴근을 하지 않자 언니는 의무실에 가서 좀 쉬었다 오라고 권하였고, 저는 마지못해 의무실로 갔는데 그 곳에는 제가 전도했던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한 번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던 자매였지요. 의무실에 들어온 지 약 2분쯤 지났을까? "우르릉, 우르릉" 마치 자동차가 일시에 주차장을 빠져 나가는 듯한 울림과 쇠붙이로 시멘트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급기야는 정전과 함께 콘크리트 가루가 머리 위에 떨어지면서 숨을 쉴 때마다 먼지가 입으로 확 빨려 들어왔습니다. 순간 '5층 식당가가 기울었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건물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악! 언니, 무서워요. 머리에서 피가 나요!"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질린 간호사 자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머리와 다리에 부상을 당한 채 두려움에 떨면서 더듬더듬 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매를 바닥에 편안하게 앉히고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니
그 후 어떻게 찾았는지 자매는 옆에 있던 책상 속에서 성냥을 찾아 불을 밝혔습니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엉망이었고 나가는 출입문 쪽은 이미 무너져 있었습니다. 자매는 어느 때 얼마나 더 무너질지 모르니 책상 밑으로 들어가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책상이 무슨 힘이 있어요.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지금은 어느 한 곳도 안전하지 못해요. 그러니 우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요."라고 담대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자매도 "그래요. 하나님!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저는 겁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자매를 부둥켜안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무사히 구조될 때까지 맑은 공기를 보내 주세요. 건물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해 주시고, 모든 사람들이 신속하게 구조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 곳에서 근무하는 빛과 소금선교회 모든 형제자매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우리 두 사람도 빨리 구조해 주세요." 바로 그 순간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만 해도 모든 불의의 사고와 질병에서 지켜 주십니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한 이 사고 소식을 접하시고 분명히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것이며, 교회에서 매일 열리는 기도회가 있어 모든 성도님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을 생각하니 말할 수 없는 평안함과 담대한 믿음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고 바로 직전에 사모님과 같이 퇴근을 했더라면 이 사고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퇴근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대형 건물이 무너졌는데도 조금도 다치지 않도록 지켜 주신 것을 보면 분명히 저를 통해 영광받으시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보며 담대히 기도하고 찬양하니
그러자 저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졌고, 찬송 소리는 높아져만 갔습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혀 금식하며 기도했던 요나가 떠오르고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도 찬송하며 기도하니 감옥문이 열렸던 사건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속에 갇혀 있어야 할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간절히 기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더욱 마음을 굳게 하였습니다. 어디선가 "사람 살려!" 하는 절박한 소리가 들리다가 "악!" 하는 비명 소리를 끝으로 잠잠해지는 것을 보면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구조의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정말 암담하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더욱 힘을 다해 찬양하며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한편 제 찬양과 기도 소리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두려워 떠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자매가 "하나님! 하나님을 믿겠으니 모든 걸 용서하여 주시고 살려 주세요." 하고 기도하더니 "언니,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요? 나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지 않을 거예요. 언니가 전도했을 때 충분히 나갈 수 있었는데도 못 나갔어요. 그리고 열심히 저를 찾아오는 언니를 귀찮아했는데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저는 초조해하는 자매를 위로하고 지나온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간증을 하며 사랑의 하나님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몇 번이나 "같이 있어 줘서 고마워요." 하며 내 손을 꼭 잡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새 자매는 믿음을 고백하며 쉬운 찬송가는 따라 부르기도 하고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 갇혀서도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주위가 희미하게 밝아졌습니다. '이제 전기가 들어오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누군가에 의해 들려진 손전등 불빛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누군가가 "거기 누구 없어요?"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찬송과 기도 소리를 듣고 구조대가 달려온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여기예요!"라고 소리치며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출입구가 막혀 있어서 구조대가 와도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더미를 다 치워야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하나님께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공간을 이미 예비해 놓으신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구멍을 통하여 빠져 나오는 동안 단지 스타킹이 걸려 뚫어졌을 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디 하나 긁힌 자국조차 없이 깨끗하였습니다. 자매는 갇혀 있는 동안 상처를 입었었지만 다친 상처를 위해 기도했더니 이미 피가 멈춰 있었고 걷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했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수 시간 동안 컴컴한 곳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는 순간, 감사의 눈물과 함께 오직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연발할 뿐이었습니다.
조금도 다치지 않고 극적으로 구조되어
우리는 곧바로 밖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실렸습니다. 저는 병원에 가는 것보다 먼저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빛과 소금선교회 영동 성전 부근에 있는 선릉역까지 데려다 달라고 간청하였지만, 구조대원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한다며 허락하질 않았습니다. 다친 곳이 하나도 없으니 병원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러 번 간청하니 그 구조대원은 마지못해 구급차를 세우고 택시를 태워 주었습니다. 택시 기사는 처음에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차에 오르는 저를 못마땅해 했으나 이내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살아 나온 사람인 것을 알고는 모처럼 좋은 일을 하게 되었다며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또한 택시에 설치된 카폰으로 부모님께 연락하도록 배려까지 해 주었습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자 하나님께서는 택시 기사를 주관하셔서 생사를 알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부모님과 통화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셨던 것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더욱 놀랍고 감사하였던 것은, 사고가 난 그 주간 주일예배에 참석했던 빛과 소금선교회 소속 회원들을 하나님께서 모두 지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참사는 빛과 소금선교회 회원들에게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는 주일성수의 중요성을 확증시켜 준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참이며, 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모든 사고와 질병에서 지켜 주실 뿐만 아니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사랑으로 기도해 주신 모든 교역자 및 성도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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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절망의 긴 터널에서 생명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 [홍난식 권사 ] |
| |  저는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성극을 준비하며 행복해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교회에 발길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젠가는 교회에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늘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어둡고 긴 절망의 터널 속에서 만난 주님
1974년, 직장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나자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이런저런 사업을 하면서 번번이 실패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나머지 저는 도움을 받고자 친정을 찾아갔습니다. 몇 년 만에 찾아간 친정집은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평소에 차갑고 완악한 성격 탓에 친근감이 없었던 오빠가 주님을 영접하여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빠는 저에게 주님을 영접하라고 권면하며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저는 오빠의 변화된 모습에 은혜를 받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계속되는 사업의 실패로 인하여 삶을 자포자기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남편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이를 등에 업고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도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남편은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만 방황의 끝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술에 취해 살림을 부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등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사업관계로 지방 출장을 간다고 하면서 외박하는 날이 잦았으며 사업자금을 마련해 주면 다 날려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빚쟁이에게 시달려야 했고 생활비가 없어 굶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저의 마음은 날로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세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다니면서 각종 예배는 물론 부흥성회도 빠지지 않았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었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도 믿어지지 않았으며 항상 마음이 곤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혼의 참안식과 만족을 줄 수 있는 교회를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개척교회에 다닐 때에는 정성껏 헌물도 하였으며, 성전건축하는 교회에서는 벽돌을 나르는 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모함과 갈급함 속에 열심히 나아가니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만나 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셋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20여 일 동안 계속되는 하혈에 별의별 약을 다 써 보았지만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믿음을 가지고 오산리 금식 기도원에 들어가 3일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매달림으로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또한 무릎 관절염은 새벽기도를 하면서 치료받았고, 무리한 직장생활로 인해 생긴 허리 디스크는 극동방송을 들으면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던 중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조그마한 행함도 기억하시고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본교회에 인도받아 생명의 말씀으로 거듭나니
1994년 5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신명숙 집사님이 전해 준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말할 수 없는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분이 바로 내가 찾던 목자"라고 무릎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그 당시 만민중앙교회에서는 제2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부흥성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성회에 참석하여 이재록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을 직접 듣고 더욱 큰 믿음과 확신을 얻은 저는 온 가족과 함께 본교회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제게 더욱 은혜가 된 것은 본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던 주님의 품과 같은 포근함이었습니다. 또한 한복을 곱게 입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분들의 은혜로운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며, 성가대와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찬양과 연주는 저의 영혼에 참평안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희열 속에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영안이 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15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죄를 짓고도 회개기도만 하면 구원받는 줄 알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죄가 죄인 줄 몰랐던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막힌 담이 되어 고통스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아
안산에서 서울 구로동까지 교회를 다니다 보니 아이들은 불평이 많았고, 주위에서도 가까운 교회가 많은데 왜 꼭 만민중앙교회를 가야 하느냐며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갈급히 찾아다녔던 생명의 말씀과 목자가 여기 있고 제 영혼이 살 길은 이 길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건의 차량사고를 당하지 않던 남편이 한 주에도 두세 번씩 사고를 당하고, 더욱이 주일이 되면 의례히 사고가 잇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오히려 더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고,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의뢰하며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승리하게 해 주셨고 본교회에서 마음껏 예배하며 기도하며 찬양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생명의 말씀을 듣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삶이 연속되었습니다. 제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게 되었고, 이러한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구역장의 사명을 허락하셨습니다. 부족한 제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릴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여 열심히 감당하였더니 95년도 우수 구역장으로 뽑혀 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삶은 모두 남편 탓이라고 생각하며 원망과 탄식 가운데 살았던 지난 날을 회개하면서 자신의 탓으로 돌리니 마음이 가벼워지며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원망스럽던 남편을 오히려 사랑하며 섬기기를 힘쓰니 남편도 점차 변화되어 갔습니다. 축농증으로 고통받고 있던 남편은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단에서 해 주시는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고 단번에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러한 것이 믿음의 체험이 되어서 지금은 술, 담배를 끊고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은 물론, 매일 안산 지성전에서 열리는 다니엘 철야 기도회를 참석하는 성도들을 위해 그레이스 봉고차를 직접 구입하여 봉사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힘쓰니 아이들은 엄마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며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 6-7)는 말씀을 붙잡고 더욱 힘써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아니하시고 심은 대로 거두도록 역사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부모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이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선생님의 인정을 받고 친구들의 사랑을 받는 아이들, 기도하는 아이들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축복도 주셨습니다. 남편은 건축 프레임 사업을 이럭저럭 운영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대교구장님이신 주현권 목사님께서 본교회 새 성전을 건축하는데 기초부터 철골에 이르기까지 공사를 맡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버지 전을 건축하는 데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성전 공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9개월 동안 이 일에 전념하다 보니 거래처들이 모두 끊기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는데도 저희 부부는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기만 했습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거룩한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저희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방법으로 사업터에 축복을 주셨습니다. 넓은 대지를 싼 가격으로 구입하여 [만민기업]이라는 상호로 새롭게 개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끝이 안 보이던 고통과 절망의 긴 터널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생명의 말씀으로 인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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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을 넘어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어요 [최윤영 집사 ] |
| | 질병으로 고통의 세월은 계속되고
 "여보! 나 좀 살려줘요! 죽을 것만 같아요!" 작년 5월, [대한민국 일본 야마가다현 민단본부] 사무국장인 남편이 한국으로 출장을 떠나기 이틀 앞둔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저는 잠을 자다가 갑자기 귀가 아프고 한쪽 머리가 깨어질 것 같았고 구토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중이염을 앓은 후로 미약하게나마 그 증세가 남아 있었고, 평소에도 편두통이 자주 오는 편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진통제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통증이 가시기는커녕 더욱 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니 곤히 잠든 남편을 마구 흔들며 살려달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최윤영 집사는 1995년 5월, 본교회에 인도받아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난치병인 [진주종 중이염]을 깨끗이 치료받았으며, 결혼 후 5년만에 아기를 잉태하는 축복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일본 야마가다현에 거주하는 성도들과 함께 금년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에 참석, 아들의 질병도 치료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렸다. 남편의 도움으로 긴급히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 보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 결과만이 나왔을 뿐입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퇴원하여 약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남편은 저를 혼자 남겨두고 한국으로 떠날 수가 없어서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8년 동안 일본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다가 이 곳 야마가다현으로 전근 온 지 불과 한 달 보름밖에 안 되어 마땅히 저를 보살펴 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친정집이 있는 부산으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서울행 비행기 표밖에 구입할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먼저 서울로 가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저는 날으는 비행기 안에서도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김포공항에 도착해서는 부산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서울에 사는 언니 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본교회로 인도받아
건강 상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난치병인 '진주종 중이염'이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병은 귀에서 고름이 나고 잘 들리지 않으며 귓속의 뼈까지 갉아 먹는 병으로 귀의 고름이 뇌에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수술을 신속히 받지 않으면 뇌종양으로 발전하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저는 큰 충격과 허탈감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일단 약봉지를 받아들고 언니 집으로 돌아와서는 부산에 계시는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대뜸 "병원에 갈 것이 아니라 서울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님께 가라"고 권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우상을 섬기시다가 주님을 영접하였으나 참 믿음이 주어지지 않아 곤고해 하시던 어머니와, 오래 전에 주님을 영접했으나 첫사랑을 잃고 고통 중에 살던 네째 언니가 작년 5월에 열린 제3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재록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을 통해 놀랍게 변화되었고, 질병의 치료까지 받은 바 있는 네째 언니는 만민중앙교회의 지교회인 부산 만민교회에 등록까지 했다고 간증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혹자는 일본에서 아파서 온 딸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어머니의 말씀이 마음에 믿어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가 직접 보거나 체험한 일은 없었으나 하나님의 능력이면 분명히 치료되리라는 확신이 왔던 것입니다.
난치병인 [진주종 중이염]을 치료받고
작년 5월 20일, 언니를 따라 본교회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재록 목사님께서는 어떤 분이실까 궁금하기도 하였고, 치료받으려면 이재록 목사님께 가보라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예배를 마치고 나오시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목사님, 제 귀가 너무 아파요, 기도해 주세요" 하며 간청하였습니다. 당회장 목사님께서 귀에다 손을 얹고 기도를 해 주시는 순간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내 병이 중해도 기도 받았으니 나았다'는 믿음이 왔습니다. 얼마나 시원하고 편안했던지 그렇게 심했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목사님께서 내 귀에서 손을 떼지 않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회장님께서 손을 떼시자 다시 점점 아파오기 시작하였고 그 다음날에는 오히려 심한 감기와 피부병까지 겹쳐 왔습니다. 그러나 '나았다'는 믿음을 내보이기 위해 모든 약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렸고 그 후 2주 만에 모든 증상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할렐루야!
잉태의 축복과 아들의 질병도 치료받아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1995년 6월, 일본으로 돌아와 생활하는 동안 몸이 이상해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 보니 아기를 잉태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한 지 5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었던 저희 부부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 몸이 워낙 약한데다, 94년도에 심장 수술을 한 적이 있어 그 후 2년간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고, 심장 수술을 받은 지 불과 8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고 그냥 아이를 낳기로 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뱃속의 아이가 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정확히 새벽 5시만 되면 힘껏 발로 차서 저를 깨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너무 심하게 차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고, 일어나서 찬송하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뱃속에서 평안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 3월 하나님께서는 예쁜 사내 아이를 주셔서 이름을 '시온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시영'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시영이가 태어날 때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 검사결과, 선천성 갑상선으로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하면 정상인과 다를 바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신박약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습니다.
 금번 제4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이재록 목사님께서 단에서 해 주시는 '환자를 위한 기도'중에 선천성 갑상선이라는 병명을 듣는 순간, 남편과 함께 통회자복이 나왔습니다. 그런 후 아이가 정상이 되어 지금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답니다.
가정복음화를 이루어 주신 하나님
더욱 감사한 일은 얼마 전 아기가 연이틀을 밤새 보채었고, 남편까지 덩달아 배탈이 나 집안이 어수한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재록 목사님의 음성전화사서함 환자기도가 생각나 국제전화를 걸어 기도를 받았는데 그 즉시 아기가 정상이 되었고, 남편도 깨끗이 치료받아 남편에게 믿음의 확신이 생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교회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던 남편도 교회에 열심히 나가기 시작했고, 이재록 목사님께 직접 감사의 편지를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영적인 갈급함을 채울 수 있도록 생명의 말씀을 공급받는 일입니다. 저희가 사는 곳은 본교회의 해외 지교회인 일본 이이다 만민교회와도 너무 멀어서 온 가족이 야마가다 한인교회라는 곳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 찬송과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책자, 설교 테이프를 받아보고 있지만 신속히 일본 곳곳에 더 많은 지교회가 생겨 성결의 복음을 통해 일본 전역이 복음화되길 원하며, 이재록 목사님께서 일본에 오셔서 집회를 열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며 이재록 목사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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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절망의 긴 터널에서 생명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 [홍난식 권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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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긴 절망의 터널 속에서 만난 주님
1974년, 직장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나자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이런저런 사업을 하면서 번번이 실패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나머지 저는 도움을 받고자 친정을 찾아갔습니다. 몇 년 만에 찾아간 친정집은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평소에 차갑고 완악한 성격 탓에 친근감이 없었던 오빠가 주님을 영접하여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빠는 저에게 주님을 영접하라고 권면하며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저는 오빠의 변화된 모습에 은혜를 받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계속되는 사업의 실패로 인하여 삶을 자포자기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남편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이를 등에 업고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도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남편은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만 방황의 끝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술에 취해 살림을 부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등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사업관계로 지방 출장을 간다고 하면서 외박하는 날이 잦았으며 사업자금을 마련해 주면 다 날려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빚쟁이에게 시달려야 했고 생활비가 없어 굶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저의 마음은 날로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세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다니면서 각종 예배는 물론 부흥성회도 빠지지 않았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었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도 믿어지지 않았으며 항상 마음이 곤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혼의 참안식과 만족을 줄 수 있는 교회를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개척교회에 다닐 때에는 정성껏 헌물도 하였으며, 성전건축하는 교회에서는 벽돌을 나르는 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모함과 갈급함 속에 열심히 나아가니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만나 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셋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20여 일 동안 계속되는 하혈에 별의별 약을 다 써 보았지만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믿음을 가지고 오산리 금식 기도원에 들어가 3일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매달림으로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또한 무릎 관절염은 새벽기도를 하면서 치료받았고, 무리한 직장생활로 인해 생긴 허리 디스크는 극동방송을 들으면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던 중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조그마한 행함도 기억하시고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본교회에 인도받아 생명의 말씀으로 거듭나니
1994년 5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신명숙 집사님이 전해 준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말할 수 없는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분이 바로 내가 찾던 목자"라고 무릎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그 당시 만민중앙교회에서는 제2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부흥성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성회에 참석하여 이재록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을 직접 듣고 더욱 큰 믿음과 확신을 얻은 저는 온 가족과 함께 본교회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제게 더욱 은혜가 된 것은 본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던 주님의 품과 같은 포근함이었습니다. 또한 한복을 곱게 입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분들의 은혜로운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며, 성가대와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찬양과 연주는 저의 영혼에 참평안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희열 속에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영안이 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15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죄를 짓고도 회개기도만 하면 구원받는 줄 알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죄가 죄인 줄 몰랐던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막힌 담이 되어 고통스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아
안산에서 서울 구로동까지 교회를 다니다 보니 아이들은 불평이 많았고, 주위에서도 가까운 교회가 많은데 왜 꼭 만민중앙교회를 가야 하느냐며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갈급히 찾아다녔던 생명의 말씀과 목자가 여기 있고 제 영혼이 살 길은 이 길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건의 차량사고를 당하지 않던 남편이 한 주에도 두세 번씩 사고를 당하고, 더욱이 주일이 되면 의례히 사고가 잇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오히려 더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고,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의뢰하며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승리하게 해 주셨고 본교회에서 마음껏 예배하며 기도하며 찬양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생명의 말씀을 듣고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삶이 연속되었습니다. 제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게 되었고, 이러한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구역장의 사명을 허락하셨습니다. 부족한 제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릴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여 열심히 감당하였더니 95년도 우수 구역장으로 뽑혀 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삶은 모두 남편 탓이라고 생각하며 원망과 탄식 가운데 살았던 지난 날을 회개하면서 자신의 탓으로 돌리니 마음이 가벼워지며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원망스럽던 남편을 오히려 사랑하며 섬기기를 힘쓰니 남편도 점차 변화되어 갔습니다. 축농증으로 고통받고 있던 남편은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단에서 해 주시는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고 단번에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러한 것이 믿음의 체험이 되어서 지금은 술, 담배를 끊고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은 물론, 매일 안산 지성전에서 열리는 다니엘 철야 기도회를 참석하는 성도들을 위해 그레이스 봉고차를 직접 구입하여 봉사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힘쓰니 아이들은 엄마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며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 6-7)는 말씀을 붙잡고 더욱 힘써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아니하시고 심은 대로 거두도록 역사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부모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이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선생님의 인정을 받고 친구들의 사랑을 받는 아이들, 기도하는 아이들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축복도 주셨습니다. 남편은 건축 프레임 사업을 이럭저럭 운영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대교구장님이신 주현권 목사님께서 본교회 새 성전을 건축하는데 기초부터 철골에 이르기까지 공사를 맡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버지 전을 건축하는 데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성전 공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9개월 동안 이 일에 전념하다 보니 거래처들이 모두 끊기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는데도 저희 부부는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기만 했습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거룩한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저희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방법으로 사업터에 축복을 주셨습니다. 넓은 대지를 싼 가격으로 구입하여 [만민기업]이라는 상호로 새롭게 개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끝이 안 보이던 고통과 절망의 긴 터널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생명의 말씀으로 인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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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고자 [최금옥 교구장 ] |
| |  저는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부모님을 여읜 탓에 이사를 자주 하게 되어 한 곳에서 교회생활을 오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척이나 사모하였기에 난해한 성경 구절들을 대할 때면 그 말씀들을 속시원히 풀이 받고 싶었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가르치는 목자를 만나 평생 섬기며 살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기도원과 부흥성회를 찾아다녀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내 영혼의 깊은 곳에는 항상 갈급함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통해 본교회로 인도받아
1992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목사님으로부터 이재록 목사님의 '영혼육' 설교 테이프를 건네받고 테이프 첫 면부터 마지막까지 듣는 동안 내 영혼은 기뻐 뛰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십자가의 도' 설교테이프를 들으면서는 평소 궁금하게 여겼던 '선악과를 두신 이유'와 '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가?' 등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감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설교 테이프 앞면에 적혀 있는 교회 주소를 보고 만민중앙교회를 찾아 나섰습니다. 막상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보니 정말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때 귀한 교회와 목자를 만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뜨거운 감사를 드렸는지 모릅니다. 선포되는 생명의 말씀이 송이꿀같이 달아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낮에는 파출부, 우유배달 등의 일을 하며 야간에는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는 수업이 끝나면 곧장 교회로 가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했습니다. 2시간 정도 잠을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바쁜 생활이었지만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몸이 곤할 때면 이재록 목사님의 '음성전화사서함' 환자기도를 받고 다시 힘을 얻어 일터로 나가곤 했습니다.
뜨겁게 영혼을 사랑하는 전도자가 되니
1996년 1월 초, 교구 식구들과 함께 사택을 찾아가 당회장님께 인사를 드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당회장님! 올해 100명 이상 전도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하고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 때 당회장님께서는 "하나님! 1996년도에 100명 이상 전도를 목표로 삼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 때 저는 전도 목표를 꼭 이루어 목자의 기도를 보장해 드려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전도를 잘할 수 있을까' 항상 궁구하며 지혜를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의 지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본교회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기사와 표적을 담은 사진들을 모아 전도에 활용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모아 스크랩하여 전도에 활용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칠삭동이가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고 살아나 지금은 잘 자라 밝게 웃고 있는 모습, 뇌성마비로 뒤틀리고 굳은 팔이 펴진 모습, 뇌졸중으로 들것에 실려와 기도받고 일어선 모습, 썩어들어 가는 손이 치료받아 새 살이 돋은 모습, 교통사고로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아야 할 여인이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은 후 목발을 버리고 기뻐 뛰며 감격해하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을 보여 주며 전도를 하면 대부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마음문을 열게 되지요. 이뿐 아니라 힘들고 곤고했던 지난날의 제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함께 현재 변화된 모습을 대비해 보여 줄 때 사람들은 많은 은혜를 받고 마음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지인 만민중앙소식을 적극 활용하였는데 제 이름과 연락처를 새긴 고무인이 찍힌 종이를 만민중앙소식에 붙여 가가호호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신문을 받아 본 사람들이 제게 전화를 걸어 궁금한 내용을 물어 오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궁금해하거나 오해가 된 부분들을 대화로써 해결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 명, 두 명 전도가 되어질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희열이 넘쳐났습니다. 저는 주로 공단 지역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이 지역 일부에서는 가출한 남녀 청소년들이 혼숙을 하며 본드를 흡입하는 등 난잡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영혼 구원하는 일이라면 어디인들 못 가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젊은이가 저와 대화하기를 원해서 집으로 찾아가게 되었는데 다섯 명의 친구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니 처음에는 반응이 냉랭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지며 은혜를 받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 녹아져 여섯 명 모두가 교회에 등록하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 지역에서 동거하던 부부들이 본교회에 인도받아 이제는 남부럽지않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며, 술과 도박으로 세월을 보내던 많은 분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점점 변화되어 이제는 뜨겁게 전도에 열중하고 계시기도 하지요. 이렇게 제 마음은 항상 영혼 구원에 있어 하루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시간이 아까워서 텔레비전은 전혀 보지 않고 빨래하는 시간, 밥먹는 시간도 일 분 일 초를 아껴서 하루에 100여 가정, 어떤 때는 약 200 가정의 대문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손이 부르트면 볼펜으로 대문을 두드리면서 열심히 전도에 힘썼습니다. 한편, 교회에서 항상 기도하고 있는 세계선교에 저도 나름대로 이바지하고 싶었습니다. 그 방법을 찾아보니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제 곁에 있었습니다. 구로공단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비롯한 많은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직접 증거하여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한 다음, 그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 곳에서 복음을 증거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한 교회에서 자격을 갖춘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질, 수고 등이 필요한가? 그러나 스스로 이 나라를 찾아온 그들에게 복음을 잘 전파하고 양육하여 다시 보낸다면 너무나 쉽게 세계선교가 이루어지고, 그토록 기도하시고 애쓰고 계시는 목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까?' 하면서 믿음으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가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진실 앞에는 모든 것이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파키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에게 밀가루, 쌀, 김치, 라면, 로션 등을 사들고 찾아가 전도했습니다. 옷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옷을 주고 이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불을 가져다주며 부지런히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한두 번 찾아가서 실패했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끈기있게 찾아가 하나님을 증거하면 그들도 진실과 사랑을 느끼고 결국 교회에 나왔습니다. 이제는 한 식구가 된 외국인들이 저를 '미스 최'라고 친근하게 부른답니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지는 것이 너무나 행복할 따름입니다.
112명을 전도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하나님
1996년 한 해 동안 112명을 전도, 목표를 초과 달성하여 목자의 기도를 보장해 드릴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요. 그래서 1996년 한 해의 수고를 인정받아 교회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성지순례 대상자로 선정되어 하나님께 더욱 영광을 돌립니다. 제 마음은 단지 도구로 사용되는 호미와 같은 마음입니다. 김을 매는 호미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김을 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인의 손에 이끌리어 도구로만 사용되듯이 저 역시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고 주인으로부터 버림받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더욱더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자 합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생명의 말씀으로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만민, 만민교회, 만민중앙교회, 만민중앙성결교회, 이재록, 재록, 권능, 무안단물, jaerock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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