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마귀는 방해했지만 성회 개최를 앞두고 킨샤사 국영 TV를 통해 연일 성회가 홍보되었다. 원수 마귀는 콩고 성회가 장차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을 알기에 두려워하며 훼방하였다. 콩고 기독교계는 두 개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복음주의 계열 교회 협의회에서 우리를 도와 집회를 준비했는데 또 하나의 단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국에서 우리를 비방하고자 보내온 거짓 자료들에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은 협조하지 않았다. 또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 중에는 주술사도 있었는데 이들은 기독교 집회를 싫어하였다. 한국에서 보내 온 거짓 자료를 토대로 황당한 내용이 대통령에게 속속 보고되었다. “한국의 이재록 목사가 이곳에 오는 것은 당을 만들어 자기 세력을 확장하기 위함입니다.”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될 것이니 이 집회를 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 나라는 4월 총선과 6월에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보부를 비롯하여 주변에서 부정적인 보고를 자꾸 하니 대통령도 상당히 곤란한 입장이었다.
선을 좇아 양보했더니 내가 한국에서 출발하기 바로 전에, 마지막 날 집회는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체육부 장관의 요청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일요일에 중요한 축구 경기가 있으니 토요일에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입장으로는 마지막 날 집회 장소를 바꾼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하루 만에 거대한 단을 이동하여 만들고, 조명과 스크린, 음향 등 복잡한 시설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3일 동안 순교자 스타디움에서 집회하기로 계약은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라고 하면 주는 것이 아닌가? 물론 상대가 달라고 한다고 무조건 주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선을 좇아 달라고 할 때 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나는 진행 팀 스탭에게 양보할 것을 권면했다. “달라고 하면 주십시오. 만일 우리가 계약한대로 하자고 고집한다면 큰 행사가 있음을 깜박하고 우리와 계약한 당사자는 얼마나 곤욕을 치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3일간 계속할 수 있게 할 수 있는데 장소를 이렇게 바꾸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요청대로 우리 측에서 양보해서 셋째 날 집회는 다른 장소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셋째 날은 <승리의 거리>에서 넓은 도로와 인접한 주변의 공터를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거리를 사용하도록 허락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이 도로를 통제하고 행사를 한 적이 한 번 있는데 대통령을 위한 국가 공식 행사였다고 한다. 더욱이 집회 셋째 날은 콩고에 중요한 정치 행사가 있어 국회의사당과 인접해 있는 도로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왔다. 극적으로 대통령을 만남으로 2006년 2월 15일, 콩고에 도착하고 나서 나의 방문을 왜 이 나라 고위 층에서 난리법석일 정도로 관심을 갖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집회 3일째 마지막 날은 새로운 헌법이 채택되어 공포되는 날이었다. 헌법과 정부조직이 바뀌고 국기까지 바뀌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또한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 열리는 만큼 이 집회가 향후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민감하였던 것이다. 2월 16일, 집회가 열리는 첫날, 조셉 카빌라 대통령 초청으로 대통령 궁을 방문했다. 이 만남 자체를 방해한 세력들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대통령의 마음을 주관하시니 극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졌다. 카빌라 대통령은 환담을 통해 자신이 보고 받은 내용이 사실과 너무나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콩고의 평화와 질병 치료를 위해 왔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는 나에 대한 오해가 풀리면서 완전히 호의적인 입장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있을 총선이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집회를 준비하면서 어려운 것이 있습니까?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집회 3일 째는 스타디움에서 축구 경기가 있어 야외에서 하려고 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동석했던 성회 준비위원장 칸켄자 목사가 답변하였다. “다른 체육관을 알아보시지요.” “다른 체육관은 지금 수리 중이어서 안 됩니다. 국회 의사당 옆에 있는 도로를 차단해서 일체 차가 다니지 않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대통령이 이 건의를 받아들였다. 우리가 대통령 궁을 떠난 후, 크고 작은 도로를 모두 통제하여 집회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서류에 사인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의 권한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첫날과 둘째 날에는 스타디움에 각각 10만 명이 운집했다. 대통령은 중요한 일정이 있어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대신 국모 역할을 하고 있던 쌍둥이 누이인 자넷 카빌라 박사를 보냈다. 벰바 부통령 내외도 참석했고, 주변 나라에서도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많았다. UN 평화대사로, 아프리카에 널리 알려진 대중가수 웨라손이 참석하여 특송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렸다. 집회 후 그는 가족을 데리고 나를 찾아와 기도 요청을 했다. 부인과의 사이에 두 딸만 두고 있는데 부인이 7년 동안 자녀를 낳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기도를 요청해서 기도해 주었다. 이 성회는 콩고 국영 방송과 민영방송뿐 아니라 10 여개의 위성으로 약 150 개국에 실황이 중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폭발적 권능으로 치유해 주셨다. 불치병인 에이즈를 치료받아 간증하는 사람도 많았다. 단이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치료받은 사람들이 간증하고자 몰려들었다. 밀려든 인파로 끝이 보이지 않아 셋째 날은 승리의 거리에 끝이 안보일 정도로 많은 인파가 운집했는데 50 만 명 인파로 추산되었다. 만일 장소를 바꾸지 않았다면 스타디움에서는 밀려드는 인파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빽빽하여 틈을 보기 어려울 정도였기에 자칫 압사 사고라도 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예지하시고 더 넓은 장소로 인도하셨던 것이다. 소경, 벙어리,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한 사람, 암, 에이즈 등 각종 질병과 연약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치료를 체험했다. 구석구석 빈틈없이 살피셨고 성령의 불같은 역사로 일시에 치유 역사를 베푸신 것이다. 콩고 말꾸로 지역 어촌에 사는 마수리 니송기 보송고라는 할아버지 성도가 있었다. 64살인 그는 고기를 잡아 근근이 생활하는데 백내장으로 눈이 흐릿하여 안경을 썼다. 그에게는 라디오 듣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라디오를 통해 집회 소식을 들었지만 차비를 마련할 수 없었다. 자신의 전부인 두렙돈을 드린 과부처럼 그는 유일한 통신기인 라디오를 9달러에 팔아 집회에 참석했다. 하나님께서 이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고 치료해 주셨다. 집회에서 환자기도 시간에 뜨거운 불이 목 뒤에서부터 머리를 타고 눈으로 전해졌다고 간증했다. 그는 시력이 좋아져 안경을 벗었고 불편함 없이 생활한다. 콩고 성회는 위성을 통해 아프리카는 물론 세계 곳곳에 방송되었다. 김석환 목사가 선교사로 파송되었는데 교회를 개척한지 1년이 안되어 주일에 천여 명이 넘는 성도가 예배드리고 있다. 전직 장관이었던 폴 무사피리 총회장이 성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우리 교회를 방문하였다. 폴 무사피리 목사는 만민 사역 협력자가 되었으며, 콩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리운 마음을 담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문안 인사드립니다. 저희는 이재록 박사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박사님께서 기도해 주신 나라이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음을 고백 드립니다. 지난 2008년 1월, 동부지역의 계속되던 전쟁 속에서 평화협정이 맺어졌습니다. 저는 콩고민주공화국 고마에 협정을 위해 급파되어 1개월 동안 지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총회장 정명호 목사님의 세미나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번 평화협정 후에도 이를 반대하는 세력은 국가의 최고 머리로부터 콩고의 동부와 서부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좋지 않은 소문으로 우리를 어지럽게 하려고 하지만 이재록 박사님의 기도는 저희 콩고 민주공화국과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특별히 서신을 드린 이유는 더욱 힘 있는 기도를 부탁하기 위함입니다. 조셉 카빌라 대통령과 위정자들, 대통령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저의 동역자인 김석환 목사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만민의 꿈과 비전을 나누며 가족이나 친동생 이상으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는 외국인 선교사로서 때로는 경찰의 괴롭힘을 당했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늘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좋은 성전 부지를 구했고, 좋은 성도들과 함께 간증이 넘치고 있습니다. 만민의 가족들에게도 문안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아들 폴 무사피리 총회장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