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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와 불세례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12) 
당회장 이재록 목사 - - - - - - - - - - - - - - - - - - - - - - - - - 불세례란 성령의 불이 임해 하나님 능력이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와 찬송을 드리면 죄성과 질병 등 갖가지 문제가 해결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성령세례와 불세례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 자녀라면 성령세례는 기본이요 날마다 불세례를 받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죽도록 충성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1. 성령세례의 중요성 오늘날 교회에 다니며 일정 기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교단 법의 절차에 따라 학습과 세례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례란 물세례를 가리키며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 자녀된 권세를 얻었다는 증거입니다. 즉 모든 죄를 사함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표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행위적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이라는 증거를 나타내기 위해 육적인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내면적인 마음의 할례를 받게 하시고 물세례를 통해 하나님 자녀된 것을 외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물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 상징적으로 베푸는 것이므로 만약 물세례를 받았다 해도 정작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후에 물세례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때로는 물세례를 먼저 받고 성령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먼저 받느냐가 아니라, 하나님 자녀로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고후 1:21-22). 2.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으로 세례 요한을 이 땅에 먼저 보내시고 그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요 그리스도가 되심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외치며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하고 그 앞에 나와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며 우리가 왜 주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했던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해야 하지요. 물론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다른 죄들도 다 회개해야 하지만 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죄임을 깨달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한 후에는 마음 문을 열고 예수를 바로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행 2:38). 또한 성령세례는 구원의 확실한 증거이므로(요 1:12) 무조건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해도 성령을 받아야 구원의 확신이 생기는 것이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습니다. 또한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믿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달아지니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모든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근본 죄성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므로 날마다 죄를 벗고 빛 가운데 살아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해도 여전히 죄를 지으며 세상과 짝하는 삶을 산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를 벗어버리고 성결에 이르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되려면 성령세례를 한 번 받은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성령 충만함을 계속 유지하는 가운데 날마다 불세례를 받아나가야 어두운 세상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3. 불세례와 성령의 역사 불세례란 성령의 불이 임해 하나님 능력이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불세례를 받으면 우리 안에 죄성과 질병이 태움받고, 가정과 사업터 일터에서까지도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으면 이전의 모든 죄는 깨끗이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마음 안에는 죄의 뿌리가 있어 온전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니 원수 마귀 사단의 송사를 받아 질병이 틈타거나 가정과 일터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 번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 해도 계속해서 불세례를 받아 나감으로 죄의 근본 뿌리까지 태워 버리고 성결되어 항상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이럴 때 가정 일터 사업터까지도 성령의 불담으로 두루 보호받아 시험 환난이 물러가고 하나님 축복과 형통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육적으로도 불은 태워 없애는 작용을 하듯 불세례를 받으면 질병이나 마음의 죄성을 태워 영육간에 갖가지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의 불로 역사해 주시라고 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담으로 우리를 둘러 주시면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하지 못하며 도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원수 마귀 사단이 성령의 불에 접하면 그 능력을 상실해 마치 죽은 것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불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세례는 성령이 충만할 때 임하므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로 인해 막힌 담을 헐어야 합니다. 그래서 은사집회를 할 때 먼저 회개기도를 통해 죄의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함은 물론 더 나아가 감동감화 충만함을 입기 위해 기도한 뒤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성령의 불이 임해 모든 질병이 태워지고 죄악들이 벗어지며 마음의 소원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불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정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기도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하늘 보좌를 움직일 수 있는 기도와 찬송의 향을 날마다 쌓으면 성령의 불이 임해 죄성이 버려지고 질병 등 갖가지 문제가 해결됩니다. 더 나아가 성결을 이루고 권능받은 참 자녀가 되어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세례를 받아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기름 준비 잘하는 알곡 성도가 되어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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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음을 품지 말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서 1:6-8) 
당회장 이재록 목사 - - - - - - - - - - - - - - - - - - - - - - - - -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진정 응답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떤 문제나 소원이 있을 때 하나님께 구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변함없어야 하는데 기대와 달리 응답이 없으면 두 마음을 가지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1.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응답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8절에는 이런 사람을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한다고 하면서 의심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받을 줄로 믿으라’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하신 것입니다. 만일 응답이 더디다면 혹여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참 믿음과 지식적인 믿음의 차이 믿음에는 ‘참 믿음’과 ‘지식적인 믿음’ 곧 ‘영적인 믿음’과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참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서 믿으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말합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하나님에 대해 듣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에서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험이 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에 의존합니다. 의심하는 사람, 곧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바로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참 믿음으로 구할 때와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할 때는 그 과정과 결과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첫째로, 참 믿음으로 구할 때는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며 시험 환난이 오면 마음이 쉽게 요동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자녀가 갑자기 온몸에 열이 펄펄 끓어서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라면 대부분 하나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며 음성사서함 기도나 손수건 기도를 받게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열이 더 펄펄 끓는다면 상황은 달라지기도 합니다. 참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여전히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감사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했다면 불안하고 초조하며 의심하는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둘째로,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변개하지 않고 응답받을 때까지 변함없이 구합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응답이 더디거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대부분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도제목을 놓고 작정을 했다가도 중간에 임의로 작정을 깨뜨립니다. 기도제목을 바꾸거나 목표치를 낮추기도 하지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때 구하는 즉시 응답받고 자신의 바람대로 응답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 공의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응답받는 속도나 응답주시는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개치 않아야 한다고 해서 하나님 뜻이 아닌 것까지 고집스럽게 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변개함 없이 구하되 하나님 뜻대로 구해야만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요일 5:14). 따라서 하나님께 응답을 구할 때에는 어떤 것이 하나님 뜻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변함없이 구한다 해도 정욕을 위해 구하면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것도 유의해야 합니다. 셋째로,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구하는 것을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기에,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렘 33:3).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암담한 현실에 처해도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주실 것을 확신했기에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르짖었지요. 이처럼 신실한 믿음은 부르짖는 기도로 표현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 사람은 해결받아야 할 문제가 있어도 힘써 부르짖지 않습니다.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더 부르짖어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빠져서 부르짖지 못하지요. 이는 응답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참 믿음으로 구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원한다면 참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의심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의심이 들고 변개할 마음이 없었는데 중간에 변개하며 때로는 부르짖지 못하기도 합니다.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참 믿음을 이루기까지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해결해야 할 문제나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순간순간 의심이 들고 세상의 유혹이 와도 단호히 물리치고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열심히 진리를 행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행해 나가더라도 원하는 만큼 신속히 응답이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짜가 없으십니다. 육의 부모도 어린 자녀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 품에 안겨 올 때 마음이 흐뭇하듯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자녀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자녀가 진리를 행하는 과정을 통해 영혼이 잘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는데, 바로 이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주시고 마음에서 비진리를 뽑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 마귀 사단의 조종을 받지 않고, 진리의 영인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아가면 마음에 담대함과 응답의 확신이 임해 결국에는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자녀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요일 3:21-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마음껏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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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자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편 141:3) 
당회장 이재록 목사 - - - - - - - - - - - - - - - - - - - - - - - - - 범사에 무익한 말, 분수에 넘치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말,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우리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더디게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당치 않은 말로 인해 믿음으로 쌓은 것이 헐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입 앞에 파수꾼을 세워 입술의 열매를 맺는 방법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응답과 축복을 모두 받으시길 바랍니다. 1. 말에 실수가 없어야 응답과 축복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절제하지 못하면 은혜와 덕이 되지 않으며, 선한 의도로 말했어도 상대는 선으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장 2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15장 18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했고, 마태복음 12장 35절에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했습니다. 따라서 마음에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전히 진리를 채워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면 늘 선하게 말하고 선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만일 마음에 선만 가득하다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아직 마음에 악이 남아 있다면 스스로 입 앞에 파수꾼을 세워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조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는 방법 1) 범사에 무익한 말은 하지 않아야 먼저, 거짓말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상대에게도 해가 됩니다. 상대의 거짓말로 인해 물질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고, 거짓말 하는 자체가 육체의 일이므로 자신에게도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짓말로 둘러대거나 숨기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문서답도 무익한 말입니다. 동문서답이란 ‘물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대답’을 뜻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상대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자기 생각 속에서 듣기 때문에 발생하지요. 따라서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동문서답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 자체가 큰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거짓말, 남의 탓을 하는 말이 있을 수 있으므로 동문서답하는 습관은 고쳐야 합니다. 농담이나 세상의 유행어도 무익한 말입니다. ‘농담’은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입니다. 농담을 즐겨 하는 사람은 가벼워 보이고 신뢰가 가지 않으므로 비밀을 나누거나 중요한 일을 맡기기 어렵고, 또한 영으로 들어가기 어렵습니다(엡 5:4). 사실을 부풀린 과장된 말과 이치에 맞지 않는 허탄한 말 등도 모두 농담에 포함됩니다. 세상 유행어에는 세상 풍조가 담겨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풍조에 물들 수 있지요. 그러므로 악의가 담겨 있지 않는 유행어라도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는 성도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씀합니다(마 12:36~37). 물론, 자복하고 회개한 것은 사라지지만 무심결에 내뱉고 잊어버린 무익한 말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잠언 10장 19절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했으니 무익한 말을 내지 않도록 범사에 주의해야 합니다. 과연 ‘이 말이 유익한가’를 생각하여 은혜를 끼치고 덕을 세우는 선한 말,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믿음을 심어 주는 말, 생명을 살리는 유익한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엡 4:29). 특히 성전에서는 서로에게 은혜를 끼치며, 믿음을 심어 주는 영적 대화 외에는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2) 분수에 넘치는 말은 하지 않아야 ‘분수(分數)’란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를 뜻합니다. 따라서 교만함으로 마음이 높아진 경우에 분수에 넘치는 말이 나오기 쉽습니다. 분수에 넘치는 말은 판단, 정죄,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이나 비방을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권한이 없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만 있습니다(약 4:11-12). 하나님 자녀가 불평불만하고 원망하는 것도 분수에 넘치는 말입니다. 지옥 불에 떨어질 뻔 했으나 구원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어려움이 왔다고 해서 환경을 탓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한다면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이지요. 마음이 겸손해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떠한 일을 맡겨도 오직 감사하며 순종합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사자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에 처녀가 잉태하면 돌에 맞아 죽이는 당시에도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며 받아들입니다. 또한 귀신 들린 딸의 문제를 해결받은 수로보니게 여인도 예수님께서 자신을 개에 비유해도 실망하고 포기하거나, 업신여김 당했다고 분해하지 않고 예수님 앞에 자신을 철저히 낮추며 변함없는 믿음으로 구해 응답을 받습니다(마 15:27). 3)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말, 믿음의 고백을 해야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일이 잘 안되고 어려워지지만 긍정적인 말과 믿음의 고백을 하면 안되던 일도 잘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 눈앞의 현실을 보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음의 고백을 하며 나아갔지요(삼상 17:45-47). 이러한 다윗의 믿음을 기뻐하신 하나님은 다윗의 물맷돌 하나를 통해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이와 반대로, 출애굽 1세대 중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두 정탐꾼 중 열 명은 부정적인 고백으로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차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온 정탐꾼 중 열 명은 부정적인 고백을 합니다(민 13:32-33). 이 보고는 백성들에게 탄식과 불평과 원망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하며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민 14:7-9). 아무리 현실의 문제가 어렵고 힘들어도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믿음의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말이 나오려고 하면 입에 재갈을 물려서라도 입 밖으로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훈련을 해서라도 늘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한다면 여러분의 마음도, 주변 환경도 바뀌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린다”(잠 13:2) 했습니다. 입 앞에 파수꾼을 잘 세워 입의 열매로 복록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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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요한복음 10:34, 35) 
당회장 이재록 목사 예수님께서 큰 권능을 행하시자 이를 본 사람들은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 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판단 정죄하며 어찌하든 죽이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지요. 오늘날에도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고 앞일을 예언한다거나, 사람이 행할 수 없는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면 자칭 신 또는 하나님이라 한다며 이상히 여기거나 이단이라 오해하고 판단 정죄하는 경우를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란 하나님 말씀을 받아 전하거나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비밀한 일들을 말하고,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행함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확실히 증거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1.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시편 82편 6절에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신(神)’과 ‘지존자의 아들’이란 구약시대 재판관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재판권을 위임받았으므로 ‘신’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하나님의 대표자를 ‘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약성경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신처럼 보이거나 신처럼 여기기도 하고,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행 14:11, 28:6, 요 10:34, 35). 하나님께서는 그 택하신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도 했고, 주의 사자를 통해 말씀하시기도 했으며, 이상과 몽조로 알려 주시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앞으로 될 일들을 미리 알고 예언하거나 사람으로는 풀 수 없는 꿈이나 이상에 대해서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처럼 보이거나 신이라 여긴 것입니다. - - - - - - - - - - - - - 요셉, 모세, 다니엘, 사도 바울 등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처럼 보이거나 신으로 여겼습니다 - - - - - - - - - - - - - 2.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의 사례 먼저,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요셉이 있습니다.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을 때입니다. 창세기 41장을 보면 애굽 왕 바로가 하루는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마음이 번민하여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물었지만 아무도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예전에 요셉과 함께 감옥에 있었던 한 관원장이 요셉을 왕에게 추천합니다. 바로 왕이 요셉을 불러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하니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답변하지요. 바로 왕의 꿈 해석은 요셉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실 분야라는 것입니다. 결국 요셉이 바로 왕의 꿈에 대한 명쾌한 해석과 함께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왕은 그 신하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바로 왕이 보기에도 요셉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이요, 명철과 지혜가 특출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이에 바로 왕은 요셉에게 왕 다음 가는 권세를 주고 애굽 전역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두 번째, 바로 왕에게 신으로 보였던 모세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킬 지도자로 택함받은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권능을 나타내는 모세는 바로 왕에게 신처럼 보일 만큼 두려운 존재가 되었고 애굽에 재앙을 내리는데도 바로 왕은 모세를 죽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행한 기사와 표적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고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역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왕 앞에 나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그대로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출애굽을 거절하는 바로 왕 앞에 모세가 재앙을 선포하는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바로 왕에게 모세는 마치 신처럼 보인 것입니다. 세 번째, 이상과 꿈으로 신처럼 보였던 다니엘 선지자입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와 살았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하루는 꿈을 꾸고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고민 끝에 박수와 술객, 점쟁이와 술사를 불러 자기가 꾼 꿈을 말해 주지도 않고 그 꿈과 해석을 내놓으라고 다그칩니다. 술사들은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했습니다. 꿈을 말해 주지도 않고 해석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고, 육체에 거하지 않는 신, 곧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술사들의 말을 듣고 진노해 바벨론의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이에 다니엘은 왕에게 기한을 구하며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에 이상으로 이 은밀한 것을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시지요. 다니엘은 왕 앞에 나가 왕의 꿈과 해석을 말합니다. 그러자 느브갓네살 왕은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예물과 향품을 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단 2, 3장). 네 번째, 많은 사람에게 신으로 보여진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을 하던 중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말합니다. 그러자 즉시 그 사람이 뛰고 걸었지요. 이때 사람들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행 14:11) 고백합니다. 또 한 번은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가다가 큰 풍랑으로 배가 파선해 멜리데라는 섬에 표류했을 때의 일입니다. 날이 추워 불을 피웠는데 바울이 나무를 더 집어 넣으려는 순간 불 가운데 놀란 독사가 튀어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이를 본 섬의 원주민들은 바울이 죽을 줄로만 알았지요. 그런데 아무 이상이 없자 오히려 신이라 말하며(행 28:6) 후히 대접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왕이라도 엎드려 절할 정도로 존귀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이었지요(시 82:6). 또한 하나님 능력이 임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 보였을 때에는 그들을 신(神)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어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루며 하나님 사랑과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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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선물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한복음 6:68) 
당회장 이재록 목사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만이 영생에 이르는 길임을 일찍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늘 예수님과 함께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 순간의 두려움으로 인해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긴 했지만, 그것은 성령받기 전의 일이지요. 회개하고 돌이킨 후에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생명이 다하기까지 주님께서 가신 길을 좇아갔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마음을 두고, 무엇을 좇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값진 선물에 대해 세 가지로 말씀드릴 때 여러분 마음에 믿음과 소망, 기쁨과 행복이 넘쳐나기 바랍니다. 1. 첫 번째 값진 선물, 구원의 은혜 로마서 3장 23,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누군가의 전도를 받아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된 것도 오직 하나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 차례 전도를 거부하고 물리쳤을지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분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때,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셨지요. 지난날의 모든 죄도 주님의 보혈로 단번에 사해 주시고, 영원히 천국에서 살아갈 사람으로서 여러분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님의 보혈과 생명으로써 그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몸에 채찍을 맞으셨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손과 발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옆구리는 창에 찔리셨지요. 아무런 죄도 없이 정결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또한 원래 저주받은 자가 달리는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에 떨어질 뻔한 인생, 아무 가치 없던 인생을 너무도 값지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격까지 갖춘다면, 얼마나 더 귀히 여기시겠습니까? 구원받은 은혜가 감사하다면, 반드시 새 예루살렘을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새 예루살렘까지 침노해 들어올 수 있도록 사랑 가운데 많은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2. 두 번째 값진 선물, 생명의 말씀 생명의 말씀은 하나님 마음과 뜻이 기록된 성경의 모든 말씀을 뜻합니다. 성경은 전 세계 무수히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딤후 3:16). 따라서 문자 그대로 보아서는 안 되며, 세상의 지식과 이론으로 풀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 뜻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주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경 말씀을 온전히 깨우쳐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난해한 구절이 많아 열심히 부흥성회를 찾아다니며 목사님께 질문하기도 하고, 여러 주석 책을 보기도 했지요. 그러나 어디에서도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고, 오히려 주석 책에는 성경의 내용을 신화 취급하거나 그릇되게 해석해 믿음을 뺏는 설명들이 있었지요. 그러던 중 아주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40일 금식을 두 번 했는데, 3년 동안 천사가 성경을 풀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마음이 뜨거워지고 불이 임하는 것 같았고, ‘나도 믿고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쉬는 날이면 산에 올라가 기도했고, 금식도 무수히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고,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신학교 4학년 때부터는 전국 곳곳으로 부흥성회를 다녔고, 교회도 개척했습니다. 7년의 무수한 기도가 쌓이자, 주님께서는 난해 구절을 하나씩 풀어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 ‘믿음의 분량’, ‘성령의 열매’, ‘팔복’, ‘영적인 사랑’, ‘영혼육’ 등 보화 같은 말씀들을 여러분이 설교 테이프로, 인터넷으로, GCN(세계 기독방송 네트워크) 방송으로, 책자로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진정한 가치를 잘 느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생명력 넘치는 말씀이라도, 영으로 양식 삼은 사람에게만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된다는 것은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착하게, 입술의 말이 곱게, 행실이 단정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반드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케 된다’(요삼 2절)는 영적인 공식은 모든 시대, 모든 나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여러분의 현실에 어려움이 있다면,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그대로 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해 보다가 변개하지 말고, “나의 소망이 오직 주께 있나이다”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이 생명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고, 부족함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3. 세 번째 값진 선물, 권능의 역사 시편 62편 11절에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했습니다. 이처럼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또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다는 것은 선포하는 복음이 참으로 생명의 말씀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영으로 함께 역사하사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증해 주셨지요. 하나님께서 나타내 주시는 권능의 역사는 단순한 병 고침의 차원이 아닙니다. 각색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마비되고 퇴화된 신체 각 기관의 세포도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악한 영의 세력도 능히 제어하고 물리칠 수 있지요. 직접 기도받지 못했다 해도, 시공을 초월한 권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은 무안 단물을 통해, 손수건 기도(행 19:11, 12)를 통해 언제든지 믿음으로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기에 여러분 믿음이 성장하고, 천국도 진정 소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혹여 어떤 문제로 힘들어하고 고민하며 좌절하고 실망한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불가능이 없는 권능을 값진 선물로 주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권능의 체험자요 증인이 되셔서, 더욱 하나님께서 원하는 믿음 있는 영적 장수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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