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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차원 (1) 이재록 목사 | 2008-11-23 | 느 9:6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는 영의 세계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육의 삶을 마친 후에 반드시 천국과 지옥 중에 한 곳으로 갑니다. 그런데 영의 세계는 사람이 죽은 뒤에만 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얼마든지 영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영의 세계는 저 드넓은 우주 끝 너머에 아득히 멀리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창문을 열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고 바깥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육의 세계에서도 영의 세계로 향한 문만 열리면 영의 공간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의 공간을 깊게 체험한다면, 지금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1. 육의 공간과 차원이 다른 영의 공간 영의 공간은 육의 공간과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육의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영의 공간에서는 가능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지식과 문명이 발달하니 육의 공간 안에서도 인위적으로 다른 공간을 만들어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온실을 만들어 한 겨울에도 채소가 자라게 하며 꽃을 피우게 합니다. 이처럼 환경이 전혀 다른 공간을 만들어 원하는 열매를 얻는 것입니다. 민수기 17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며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열리게 하신 기록이 나옵니다. 이미 생명이 없는 나무 지팡이에서 만 하루 정도의 시간 동안 이 같은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를 영의 공간으로 입히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성경 곳곳에는 믿음의 선진들이 영의 공간을 활용하여 놀라운 일을 이룬 기록이 나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필요에 따라 영의 공간이 입혀진다면, 육의 공간에서 불가능한 일이 가능케 됩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공간과 차원이라는 설교를 통해, 여러분도 영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을 잘 양식 삼아 영의 공간을 활용함으로써 될 것은 더 잘되고 아니 될 것도 되는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2. 공간과 차원의 개념 1) 물리학적 관점에서 공간과 차원 먼저 '공간'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또는 영역'을 뜻합니다. 물리학적으로는 '물질이 존재하고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를 말합니다. 다음으로 물리나 수학에서 말하는 '차원'은 '주어진 공간 내에서 하나의 점을 지정하는 데 필요한 좌표의 수'를 말합니다. 하나의 점을 지정할 때 직선상에서는 한 개의 좌표로 표현하고, 평면상에서는 두 개의 좌표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직선은 1차원, 평면은 2차원이라 합니다. 같은 방법으로, 공간은 세 개의 좌표를 사용하므로 3차원이라 합니다. 물리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사는 공간은 3차원의 세상입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시간을 하나의 좌표로 고려하여 4차원을 언급하는 특수한 분야도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세상에서 말하는 차원의 개념입니다. 2) 영혼육의 관점에서 차원의 개념 하나님께서는 예전에 영혼육의 관점에서 차원을 분류해 주셨습니다. 먼저 생명이 없는 무생물, 예를 들면 돌, 흙, 물, 쇠 등은 차원을 논할 수 없으므로 편의상 무차원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생명이 있어서 호흡은 하지만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1차원입니다. 예를 들면 나무나 풀 등이 이에 해당하며, 영혼육 중에 '육'만 있는 상태입니다. 2차원은 호흡하고 움직이며 '육과 함께 혼'도 있는 것입니다. 새, 물고기 등을 포함한 짐승이나 곤충이 여기에 속합니다. 3차원은 호흡하고 움직이며 '육과 혼뿐만 아니라 영'을 가진 존재입니다. 바로 우리 사람을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4차원은 '영으로 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비롯하여 천군, 천사와 그룹들은 물론이고 악한 영들도 4차원에 속합니다. 여기까지가 영혼육의 관점에서 본 차원의 개념입니다. 3) 공간을 기준으로 한 차원 이번 설교를 통해 말씀드리는 차원의 개념은 그 기준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위해 차원이 다른 공간을 만드셨기에 '공간'을 기준으로 차원이 나뉘는 것입니다. 먼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의 공간은 1차원의 세계입니다. 그 다음 2차원부터는 영의 세계인데, 영의 세계는 크게 세 가지 차원의 공간으로 나뉩니다. 따라서 공간을 기준으로 한 차원은 총 4가지로 나뉩니다. 육의 공간인 1차원이 있고, 영의 공간인 2차원, 3차원, 4차원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차원이 다른 공간이 여럿 있음을 알 수 있는 표현이 곳곳에 나옵니다. 신명기 10장 14절에 보면,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 9장 6절에는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도, 땅도, 바다도, 해와 달과 별도, 그리고 모든 만물도 모두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하늘에 관해서 그냥 '하늘'이라고 하지 않고,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 또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밖에도 예레미아 10장 12절에 '하늘들'이 나오며, 시편 148편 4절에도 '하늘의 하늘', '하늘 위에 있는 물들'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함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표현 하나하나에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은 하늘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홀로 계셨을 때에는 하늘이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인간 경작을 위해서 차원이 다른 공간이 필요함을 느끼신 하나님께서는 창조 사역을 시작하실 때 하나의 하늘을 네 개로 나누셨습니다. 이는 차원이 다른 공간을 네 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이를 성경에서는 '하늘들'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린도후서 12장 4절에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했습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가서 낙원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낙원은 천국에 속해 있으므로 셋째 하늘이라는 공간에는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셋째 하늘이 있으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도 있을 것입니다. 첫째 하늘은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지구를 포함한 모든 육의 공간입니다. 둘째 하늘은 성경에 '공중'이라 표현됐으며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으로 구분됩니다. 먼저, 둘째 하늘에 있는 빛의 영역은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에덴이라는 공간 안에 첫 사람 아담을 위해 '동산'을 창설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흔히 에덴동산이라 말하는 공간과 에덴은 엄연히 다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덴은 에덴동산을 포함한 드넓은 공간입니다. 마치 첫째 하늘의 드넓은 우주 공간 안에 지구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에덴동산이 이 땅에 있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은 둘째 하늘의 에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장차 우리가 7년 혼인 잔치를 하는 공간도 둘째 하늘의 빛의 영역에 마련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보면, 살아서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 말씀했습니다. 둘째 하늘에는 빛의 영역과 반대인 어둠의 영역도 있는데, 바로 악한 영들이 활동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2절에 악한 영들이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다 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첫째, 둘째, 셋째 하늘의 공간에 각각 무엇이 있는지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차원이 다른 공간을 네 개 만드셨다 했습니다. 나머지 한 하늘은 넷째 하늘, 즉 근본의 하늘로서, 하나님께서 첫째, 둘째, 셋째 하늘을 만드시기 전에 원래 계신 하늘과 같은 차원의 하늘입니다. 이곳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한 공간입니다. 이제 공간을 기준으로 한 차원의 개념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1차원은 1하늘의 공간이며, 우리가 사는 육의 공간입니다. 2차원은 2하늘의 공간으로, 빛의 영역인 에덴과 어둠의 영역이 있습니다. 3차원은 3하늘의 공간으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이 있습니다. 4차원은 근본의 하늘인 4하늘의 공간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이처럼 차원이 다른 공간들을 만드셨습니다. 1하늘은 사람을 경작할 터전입니다. 2하늘은 인간 경작에 필요한 도구인 악한 영들이 머물 공간입니다. 물론 2하늘에 있는 에덴이란 공간도 별도의 용도가 있기 때문에 만드셨습니다. 3하늘은 인간 경작을 통해 알곡으로 나온 자녀들이 영원히 살게 될 공간으로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할 때부터 이미 이 모든 것을 구상하신 것입니다. 2. 차원이 다른 공간을 만들 때 세운 공의 하나님께서 차원이 다른 공간들을 만드실 때 중요한 원칙을 세우셨습니다. 고차원은 저차원을 포함하며,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영혼육의 관점에서 분류된 차원도 마찬가지입니다. 1차원, 2차원, 3차원, 곧 식물과 짐승과 사람은 모두 지구라는 한 공간에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삶의 차원은 완전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씨앗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그 씨앗이 싹을 틔우게 할 수도, 틔우지 않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씨앗은 사람이 자신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싹을 틔우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면, 싹을 틔우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차원은 저차원을 지배할 수 있지만, 저차원은 고차원에 복속될 뿐입니다. 공간 개념의 차원도 마찬가지입니다. 4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1, 2, 3하늘을 모두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또 3하늘에서 2하늘과 1하늘로 내려 올 수 있고, 2하늘에서는 1하늘로 내려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는 안 됩니다. 예외적인 특별한 경우가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후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러한 하늘들은 차례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1하늘 위에 2하늘이 있고, 2하늘 위에 3하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들의 차원은 엄격히 구분되지만, 공간은 서로 겹친 곳도 있습니다. 다만, 육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사실, 영의 공간들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육의 공간과 겹쳐 있습니다. 그래서 영의 공간 문만 열면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의 공간이 통로가 되어, 육으로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순간에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때론 영의 공간이 커튼처럼 막을 이루기도 하고, 앞에서 온실을 비유든 것처럼 때로는 영의 공간이 일정한 육의 공간 영역을 덮어씌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공간의 다양한 활용 방법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더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 차원을 결정짓는 두 가지 조건 어떤 차원의 영의 공간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역사가 다릅니다. 즉, 2하늘의 공간이냐, 3하늘의 공간이냐, 4하늘의 공간이냐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각 하늘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1, 2, 3, 4하늘은 각각 빛이 다르며, 시간의 흐름이 다릅니다. 이것이 차원을 결정짓는 두 가지 요소입니다. 먼저, 빛은 영적인 것으로서 4하늘이 가장 밝고, 그 다음으로 3하늘, 2하늘 순입니다. 따라서 육의 공간 안에서 영의 공간이 형성되려면 먼저 빛으로 둘러야 합니다. 예를 들어 4하늘에서만 가능한 일을 이루려면, 4하늘의 빛으로 둘러서 4차원의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할 때 먼저 "빛이여 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시간의 흐름은 1하늘의 관점에서 볼 때 고차원으로 갈수록 빠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 공간 안에 있을 때에는 더 빠르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창밖을 보지 않으면 비행기가 얼마나 빠르게 나는지 모르지만, 땅 위를 걷는 사람은 하늘의 비행기가 매우 빠르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처럼 육의 공간보다 시간의 흐름이 빠른 영의 공간을 탄 사례가 나옵니다. 열왕기상 18장 46절에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했습니다. 이때 아합은 마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달려가는 엘리야가 더 빠른 것입니다. 이는 엘리야가 갑자기 달리기를 잘하게 됐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마차보다 빠를 수는 없습니다. 엘리야는 원래 자기 속도로 달렸을 뿐이지만, 그 순간 시간의 흐름이 더 빠른 영의 공간이 그에게 입혀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여호와의 능력이 임했다"고 표현합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영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은 주로 공간과 차원의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또 하늘들을 나눌 때 세우신 공의와 차원을 결정짓는 두 가지 조건, 곧 빛과 시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아주 간략하게 설명했는데, 앞으로 보다 상세한 설명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차원이 다른 공간들을 나누신 이유는 바로 인간 경작을 위해서 입니다. 근본의 하늘에 홀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이 넓고 광활한 우주와 내 마음을 알아 나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내 마음의 감동을 그 마음에 전달할 때 그도 그것을 받아 내게 전달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이 될까' 하는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차원이 다른 공간이 만들어지고, 참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6일간의 창조와 인간 경작의 섭리도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번 시간부터 시작한 '공간과 차원' 설교를 하게 하신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영의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기사와 표적 등으로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에도 차원 높은 영의 공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더욱 온전한 빛으로 채운 만큼, 더욱 차원 높은 영의 공간이 여러분의 마음에 임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 땅에서도 영이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으며, 천국에서도 가까이 거하며 영원히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욱 많은 분이 더 깊이 영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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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차원 (2) 이재록 목사 | 2008-11-30 | 출 16:4 지난 시간에는 공간을 기준으로 분류한 차원의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개념을 알고 있어야 이후에 전하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차원의 개념을 간단히 복습하고 그 특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차원의 개념과 특성 먼저 1차원은 첫째 하늘의 공간으로서, 우리가 사는 육의 공간입니다. 2차원은 둘째 하늘의 공간으로서, 빛의 영역인 에덴과 어둠의 영역이 있습니다. 3차원은 셋째 하늘의 공간으로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이 있습니다. 4차원은 근본의 하늘인 넷째 하늘의 공간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한 곳입니다. 이러한 '하늘들'의 차원은 엄밀히 구분되지만, 각각의 공간은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 우리가 사는 첫째 하늘의 공간에 둘째 하늘 공간의 문이 열리기도 합니다. 때론 셋째 하늘, 넷째 하늘의 공간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육의 공간에서 영의 공간이 열릴 때에는 고차원이 저차원을 지배하고 다스립니다. 시간의 흐름이나 자연의 법칙 등이 모두 고차원 공간 법칙대로 운영됩니다. 만일 둘째 하늘의 문이 열려서 그 공간에 있던 것이 첫째 하늘로 나오면, 그것이 첫째 하늘에 있더라도 둘째 하늘의 법칙대로 움직입니다. 둘째 하늘이 첫째 하늘보다 더 고차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는 사례를 들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차원의 특성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첫째 하늘에서 둘째 하늘의 공간이 열려 발생한 일들을 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참되고 영원한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첫째 하늘, 곧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공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차원 높은 영의 공간에서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정된 육의 차원을 벗어나,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을 소망하며 달려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 첫째 하늘에서 둘째 하늘의 공간이 열려 발생한 일들 우리가 사는 첫째 하늘에서 둘째 하늘의 일이 발생한 기록은 성경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기록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둘째 하늘의 공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늘은 빛의 영역인 에덴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뉩니다. 에덴에는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위해 창설한 동산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또 둘째 하늘은 모든 것이 영원히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영에 속한 세계입니다. 이는 셋째 하늘, 넷째 하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둘째 하늘의 에덴동산은 다른 영의 세계와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영은 영이되, 썩지 않는 육을 입은 영이라는 것입니다. 1) 에덴동산 이러한 에덴동산의 공간이 가진 특성은 첫 사람 아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7-9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하늘의 공간인 이 지구에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그가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령인 아담은 흙으로 빚었기 때문에 첫째 하늘의 사람들처럼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몸은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이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아담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즉, 아담이 먹을 수 있는 과일 나무를 비롯한 각종 산천초목을 조성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자연 환경도 생령인 아담의 상태와 같습니다. 아담의 아내 하와도 마찬가지이며, 그들이 그곳에서 낳은 후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영은 영이되, 육의 공간에서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이들은 영안이 열려야만 볼 수 있는 천사와 같은 셋째 하늘의 존재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둘째 하늘의 에덴동산에 있는 물체가 첫째 하늘의 공간으로 나온다면, 첫째 하늘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습니다. 2) 노아의 홍수 이처럼 둘째 하늘의 문이 열려 둘째 하늘에 있던 물체가 첫째 하늘로 내려온 기록은 성경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창세기 7장에 나오는 홍수 심판 때에 내린 비가 바로 둘째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창세기 7장 11-12절에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씀을 지구 안에서 일어난 일로 해석합니다. 바다의 깊은 곳에서 샘이 터지거나, 하늘에서는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러한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지구의 가장 높은 산까지 다 덮을 만큼 많은 양의 물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겠으며, 만일 그렇다 해도 홍수가 그친 후에는 그 많은 양의 물이 어디로 사라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말씀은 육의 세계 안에서 해답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둘째 하늘의 에덴동산에서 찾아야 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했습니다. 이렇듯 본격적인 천지창조가 시작되기 전, 지구는 온통 물에 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지창조 둘째 날에 하나님께서 이 물을 둘로 나누십니다. 창세기 1장 6-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궁창은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궁창 아래의 물은 지구의 바다와 호수가 됐고, 궁창 위의 물은 에덴에 있는 "큰 깊음의 샘들"로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에덴의 큰 깊음의 샘에서 강이 발원하여 에덴동산을 적시고, 창세기 2장 10-14절에 나오는 네 개의 큰 강으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 때, 바로 이 에덴의 '큰 깊음의 샘들'을 터트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하늘의 창을 열어 첫째 하늘의 지구에 그 물이 쏟아지게 하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지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곳입니다. 또한 에덴의 강에 담긴 물의 양도 지구의 모든 물의 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따라서 에덴의 강물이 지구로 흘러나온다면, 능히 지구를 덮고도 남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에덴의 강 근원인 큰 깊음의 샘들을 터트리셨습니다. 그리고 첫째 하늘과 연결된 둘째 하늘의 문을 열어, 에덴에 있던 물이 이 땅에 비처럼 내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창세기 7장 11-12절에서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창이 복수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일정 지역의 하늘만 열린 것이 아님을 나타냅니다. 즉, 지구로 연결되는 둘째 하늘의 공간을 모두 여신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살던 지역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에 둘째 하늘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40일 만에 지구의 가장 높은 산까지 물에 잠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물은 심판이 끝난 후에 다시 둘째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창세기 8장 1-2절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라고 했습니다. 홍수 심판이 끝날 때, 하나님께서는 우선 터트린 샘들을 막으셨습니다. 다음으로, 둘째 하늘의 물이 더 이상 첫째 하늘의 지구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늘의 창도 막으셨습니다. 그런데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사이의 공간을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바람을 불게 함으로써 물이 감하게 하셨다 했습니다. 여기서 바람은 자연적인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리는 네 생물을 통해 일으키신 것을 말합니다. 지구를 덮은 물이 수증기 등의 형태로 다시 둘째 하늘의 에덴으로 올라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성경에는 하늘의 창이 '닫혔다' 하지 않고 '막혔다' 한 것입니다. 이처럼 둘째 하늘의 에덴에 있는 것이 첫째 하늘로 나오거나 둘째 하늘로 들어갈 때에는 하나님께서 네 생물을 동원합니다. 이 점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3) 소돔과 고모라의 불의 심판 둘째 하늘에 있는 에덴동산의 공간 특성은 영은 영이되 육으로도 보이고 만져지는 영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물이면 이 땅의 물처럼 느껴지고, 불이면 이 땅의 불처럼 사르고 태웁니다. 예를 들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비처럼 내렸습니다. 창세기 19장 24절에 "여호와께서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둘째 하늘의 문을 여시고 둘째 하늘의 유황과 불을 내리셨다는 의미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850인의 이방 선지자와 불의 응답 대결을 벌였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왕기상 18장 37-38절에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했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 둘째 하늘에 있던 불을 내리신 것입니다. 둘째 하늘의 불로는 이처럼 첫째 하늘의 것을 직접 태우고 사를 수 있습니다. 4) UFO 창세기 강해를 통해 지금도 에덴동산에는 아담의 후손이 살고 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이 땅으로 쫓겨난 사람은 아담과 하와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이전에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그들은 많은 자손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은 지금까지 에덴동산에서 자손을 낳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 살면서 아담이 하나님께 친히 전수받은 지식을 물려받아 발전시킴으로써 고도의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하늘에 있는 지구에 오고자 하면, 올 수 있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기 전에는 첫째 하늘을 다스리고 정복할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수시로 지구를 다녀가곤 했고, 함께 동행하던 자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지구로 쫓겨난 뒤로는 에덴동산의 사람들이 지구를 오갈 수 있는 자유가 많이 제한되었고, 노아의 홍수 이후로는 더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는 첫째 하늘의 지구에 다녀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에덴동산의 사람들이 지구에 다녀갈 때 이동 수단으로 이용하는 비행물체가 바로 UFO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UFO에 외계인이 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에덴동산의 사람들이 타고 있거나, 아무도 타고 있지 않습니다. 무인 UFO는 우리의 인공위성처럼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사용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에덴동산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의가 있기 때문에 지구에 내려와서 우리와 악수하거나 대화할 수 없습니다. 장차 UFO를 탄 이들이 외계인이 아니라 에덴동산에 사는 아담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증거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것은 둘째 하늘의 공의보다 더 높은 차원의 공의를 소유하여 활용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이를 위해 성도님들도 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5)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던 별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도 둘째 하늘의 별입니다. 마태복음 2장 9절에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했습니다. 하늘의 별이 동방박사들의 보조에 맞춰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에는 멈춰 섰다 했습니다. 만약 이 별이 첫째 하늘의 별이라면, 천체의 질서를 깨트림으로써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첫째 하늘의 별들은 설정된 경로대로 질서 있게 운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박사들을 인도한 별은 첫째 하늘의 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둘째 하늘의 별을 움직임으로써 첫째 하늘에는 어떤 영향도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별이 움직이는 둘째 하늘의 공간을 열어 박사들의 눈에 보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별의 이동을 수차례 보여 주셨습니다. 동시에 나란히 이동하는 세 개의 별, 지그재그로 이동하는 별, 역방향으로 이동하는 별 등 첫째하늘에서는 있기 어려운 별의 이동을 우리에게 수차례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한 별들이 바로 둘째 하늘의 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둘째 하늘의 공간을 열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6) 출애굽한 백성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도 둘째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6장 4절에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겠다' 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사는 40년 동안 만나를 양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 만나의 모양은 진주처럼 생겼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습니다. 이처럼 성경 곳곳에는 둘째 하늘의 공간이 열려 일어난 일들의 기록이 나옵니다. 다음 시간에는 보다 차원 높은 영의 공간의 일이 이 땅에 어떻게 펼쳐졌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명기 8장 3절에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하늘의 공의를 뛰어넘는 일들을 나타내 주시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앞으로는 많은 영의 공간의 일들이 여러분의 눈앞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자주 본다 해서 마음이 무뎌져서는 안 되며, 그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영의 공간의 일들을 체험하면 할수록 더욱 온전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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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차원 (3) 이재록 목사 | 2008-12-07 | 요일 5:18 지난 시간에는 둘째 하늘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둘째 하늘의 문이 열림으로 이 땅에 일어난 일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성도님들의 궁금증을 풀어 드린 후에 셋째 하늘과 3차원의 공간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하늘에 속한 공간과 땅에 속한 공간 지옥과 음부는 분명히 영의 세계지만, "하늘"이 아닌 "땅"에 속한 공간입니다. 영적으로 "땅"은 "어둠에 속한 영역"을 뜻합니다. 이는 빛이신 하나님의 영역인 "하늘들"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육으로도 하늘은 끝없이 넓지만, 땅은 그 넓이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영으로도 하늘들은 그 공간이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은 데 비해, 땅에 속한 영역은 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땅에 속한 음부와 지옥은 그 공간의 넓이가 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한 나라 안에서도 죄인들을 가두어 두는 감옥들의 면적은 나라 전체 면적 중에서 극히 일부입니다. 같은 원리로, 음부와 지옥도 하나님께서 펼치신 하늘들에 비하면 지극히 작고 한정된 공간입니다. 음부에는 구원받은 영혼들이 거쳐 가는 "윗음부"라는 공간도 있습니다. 이 윗음부도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에 비하면 지극히 한정된 공간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는 이 윗음부를 "옥"이라 표현했습니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한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예수님께서 구약시대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머물고 있던 윗음부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윗음부는 매우 한정된 공간이므로 땅에 속한 것이지만, 육적인 "지하", 곧 "땅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옥 설교에서 들으신 대로, 윗음부와 아랫음부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고 두 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윗음부는 건물로 말하면 땅과 맞닿은 공간, 즉 지상 1층과 같은 개념입니다. 지상 1층은 바닥만 땅에 닿아 있지 실제로는 하늘에 속한 것과 같습니다. 반면에 아랫음부는 지하 1층의 개념과 같습니다. 쉽게 표현하여 아랫음부는 지하 1층에 있는 감옥과 같습니다. 불못은 지하 2층, 유황못은 지하 3층, 무저갱은 지하 4층에 있는 감옥과 같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0장 11절을 보면,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했습니다. 이는 백보좌 대심판 때 모든 공간이 열리므로 땅과 하늘의 구분이 없어진다는 의미라 했습니다. 또한 대심판 후 첫째 하늘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공간이므로 하나님께서 이 공간을 닫으신다는 의미도 있다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땅"에 속한 공간인 아랫음부와 지옥도 문이 닫힙니다. 더 이상 누구도 드나들 수 없도록 완전히 문이 차단되는 것입니다. 이 공간들은 셋째 하늘에 비하면 지극히 좁은 공간이요, 영원히 닫혀질 공간입니다. 그러니 굳이 차원을 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윗음부는 에덴동산보다는 못하지만 첫째 하늘보다는 나은 곳이므로 1.5차원 정도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윗음부가 에덴동산처럼 끝없이 넓은 공간은 아닙니다. 대심판 후에는 태중에서 사망하여 구원에 이른 영혼들만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영원히 이용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윗음부나, 아랫음부나, 지옥은 규모나 차원이 하늘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공간들은 해변 백사장의 무수한 모래알들 중에서 모래 한 알 정도에 해당할 만큼 극히 작은 공간입니다. 더욱이 아랫음부와 지옥은 대심판 후에는 영원히 닫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공간들이 어디에 있는지 굳이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고차원이 저차원을 지배하고 다스린다고 말씀드렸듯이 모든 세계는 넷째 하늘의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만 잊지 않으시면 됩니다. 모든 공간은 하나님께서 지배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2. 셋째 하늘의 특성 셋째 하늘은 천국이 있는 곳입니다. 천국은 낙원부터 새 예루살렘까지 다섯 개의 처소로 구분되며, 이 다섯 개의 처소는 그 차원이 각기 다르다 했습니다. 처소마다 빛의 세기가 다른데, 새 예루살렘이 가장 밝으며, 3천층, 2천층, 1천층, 낙원 순으로 밝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영혼들은 천국의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낙원의 영혼들은 낙원에서만 자유롭고, 1천층 이상에 가는 것에는 제약이 따릅니다. 1천층의 영혼들은 낙원까지는 자유롭게 갈 수 있지만, 2천층이나 3천층, 새 예루살렘에 가는 것에는 제약이 따릅니다. 그만큼 셋째 하늘의 공간을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이 제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의는 첫째 하늘에 사는 우리가 3차원의 공간을 활용할 때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만약 온 영의 마음을 이뤄 셋째 하늘에 있는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3차원의 공간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2차원의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또한 천군,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도 어느 정도는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 2단계, 1단계의 경우에는 영의 마음도 있지만 아직 육의 마음도 남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리기가 어렵습니다. 육의 마음이 있는 만큼 오히려 원수 마귀 사단의 사주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영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그 순간만큼은 영의 공간을 입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처럼, 온 영의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진 영의 공간을 함께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반드시 공의가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14장 28~31절에 보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실 수 있었던 것은 영의 공간이 입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자, 예수님께서 만드신 영의 공간을 함께 타며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에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보고 육신의 생각이 틈타면서 의심이 드는 순간, 영의 공간에서 벗어나 물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온 영의 사람은 이미 3차원의 공의를 이루었기에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서 영의 공간을 입혀 주십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영의 공간을 열고 닫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직 온 영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이 영의 공간을 입기 위해서는 합당한 공의를 이뤄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영의 공간을 만드시는 주님과 믿음으로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셋째 하늘의 속성을 지닌 3차원의 공간 이제 개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셋째 하늘"은 영원한 천국이 있는 곳의 하늘입니다. 그리고 그 "셋째 하늘"의 속성을 가진 공간을 "3차원의 공간"이라 합니다. 따라서 "3차원의 공간"은 "셋째 하늘의 속성을 지닌 공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름에 날씨가 덥고 습하면, "열대지방 같다"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열대지방에 있는 덥고 습한 공기를 그곳에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곳의 기후가 열대지방 기후와 특성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하늘에서 셋째 하늘의 일들이 일어났다고 해서, 셋째 하늘의 어느 한 공간이 첫째 하늘로 떨어져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천군, 천사, 선지자들이 오고 갈 때에는 셋째 하늘로 통하는 문이 열리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3차원의 공간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달 표면을 거닐기 위해서는 지구에서처럼 공기로 호흡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된 우주복을 입어야 하는 것처럼, 셋째 하늘의 존재가 첫째 하늘에 내려올 때에는 3차원의 공간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천사가 우리 곁에 있기 위해 내려온다면, 우리가 있는 첫째 하늘에 셋째 하늘의 공간과 같은 속성의 공간을 만들어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넷째 하늘과 4차원의 공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넷째 하늘에서만 가능한 일이 첫째 하늘에서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4차원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늘"과 "차원"의 개념은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4. 3차원의 공간을 체험한 믿음의 선진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 중에도 3차원의 공간을 체험한 경우가 있습니다. 천사나 주의 사자가 나타나 그들을 도와준 일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감옥에 갇혔던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2장 7~10절에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5-26절에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한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은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감옥에 갇혔을 때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과 고난을 받았지만, 조금도 주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미했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 받는 자가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3차원의 공의에 합당한 마음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의 묶인 것을 풀어 주셨습니다. 아무리 단단히 조여 맨 쇠사슬도, 아무리 단단히 잠긴 문도 천사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너무 쉽고 간단하게 풀거나 열었습니다. 이처럼 천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3차원의 공간이 입혀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도 3차원의 공간이 입혀짐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례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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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차원 (4) 이재록 목사 | 2008-12-21 | 사 43:2 지난 시간에는 셋째 하늘의 특성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셋째 하늘과 같은 3차원의 공간이 첫째 하늘에 입혀져서 발생한 일들의 예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도 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사례를 말씀드리면서, 우리 교회에 나타난 사례들도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영의 공간에서 지킴 받은 사례들 이사야 43장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성경에는 정말 물 가운데서, 불 가운데서도 보호를 받은 사례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므로 그러한 성경의 사례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깨달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그러한 일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 마음을 온전히 영으로 일군 온 영의 사람은 온전한 3차원의 존재입니다. 따라서 2차원인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수 없으며, 근접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간혹 원수 마귀 사단이 악한 육의 사람들을 사주하여 죄 없는 영의 사람에게 해를 가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반드시 반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둠이 빛을 물리칠 수 없듯이 저차원이 고차원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로는 다니엘을 들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바사 제국의 총리가 됐을 때, 시기하는 무리의 궤계로 사자굴에 던져진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6장 22절에 보면, 다니엘은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고백합니다. 여기서 "천사가 사자들의 입을 봉했다"는 것은 3차원의 공간을 입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사자 같은 맹수류도 전혀 포악하지 않고 아주 온순한데, 이 땅의 사자들도 3차원의 공간을 입으니 온순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3차원의 공간이 벗겨지니, 사자의 포악성이 다시 그대로 드러납니다. 다니엘 6장 24절에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한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처럼 지킴 받을 수 있는 까닭은 죄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고소할 틈을 얻고자 다니엘이 맡은 국사를 샅샅이 뒤져보아도 틈과 허물이 없었습니다. 또 다니엘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변함없이 기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3차원의 공의에 맞았기 때문에 사자굴에 3차원의 공간이 입혀졌고, 다니엘은 온전히 지킴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성도님들이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전도나 심방을 다니다 보면 아주 무서운 개가 지키는 집도 방문하게 되는데, 무섭게 짖어대는 개에게 제 사진을 보여 주면 더 이상 짖지 않고 꼬리를 내리며 뒤로 물러선다는 것입니다. 영의 공간 안에서는 그런 일도 가능함을 알아 필요에 따라 활용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믿음 없이 시험 삼아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공의에 맞을 때만 영의 공간이 입혀지기 때문입니다. 2) 다니엘의 세 친구 다니엘의 세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단지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풀무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했기 때문에, 세 사람을 풀무불에 던져 넣기 위해 불 가까이 갔던 병사들이 타 죽을 정도였습니다. 세 사람이 풀무불에 던져지면, 그 즉시 불에 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 3장 24-25절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했습니다. 이후에 불 가운데서 나온 세 사람을 보니,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극렬히 타는 불속에서도 온전히 지킴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세 사람에게 영의 공간이 입혀졌기 때문입니다. 영의 공간이 입혀졌음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신들의 아들'과 같은 분이 함께 계셨다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은 유일신인 하나님을 뜻하지만, 이방신들을 섬기는 느부갓네살 왕의 입장에서 '신들'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 세 사람과 함께 불속에 계시던 '신들의 아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구약시대에는 '성신'으로 사역하시던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임하셔서 세 사람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지켜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그곳은 4차원의 공간이 입혀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세 사람이 결박한 채 불에 던져졌는데, 불속에서는 결박이 풀린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이는 세 사람을 결박한 끈은 세 사람과는 달리 그대로 육의 공간에 있음으로써 풀무불에 타버린 것을 나타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성도님들은 우리 교회에서 자주 들으신 어떤 간증이 떠오를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차는 폐차될 정도로 망가졌어도, 차에 탄 성도님들은 전혀 다치지 않은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드리고 현저한 육체의 일을 행치 않는 성도라면, 이처럼 위험한 교통사고를 당해도 하나님께서 온전히 지켜 주십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자체를 막아 주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부분 운전자가 과속하거나, 신호를 위반하거나, 졸음운전을 하는 등 공의를 어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1997년도의 대구만민교회 승합차의 교통사고가 그런 경우입니다. 12인승 승합차에 17명이 탑승했고, 심하게 과속을 했습니다. 제가 인도하는 마산만민교회의 창립기념예배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과속으로 달리던 승합차의 오른쪽 뒤 타이어가 터지면서 차량이 전복되었습니다. 타이어가 터지면서 중심을 잃은 차량이 전복되면서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에 부딪친 후 세 바퀴를 구르는 대형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교통사고의 경우, 대부분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탑승객 17명 중 딱 한 명만 부상을 입었고, 나머지 16명은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임신 3개월인 성도도 있었는데, 이분은 차량 밖으로 몸이 튕겨져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자기를 받쳐주는 느낌이 들었고, 큰 충격 없이 가볍게 떨어졌다고 간증하셨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태아에게도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상당한 한 분도 제가 예배 후 기도해 줬을 때, 바로 치료되어 정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사고 난 차량은 폐차시켰습니다. 얼마 전에도 미국에서 그런 간증이 왔던 것을 아실 것입니다. 지교회 목사님의 사모님과 아들이 탄 차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차는 심하게 망가졌는데, 두 분은 아무 데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나 세 친구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합당한 공의를 이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장하는 가운데 그 순간 영의 공간이 입혀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아직 온 영을 이룬 것이 아닌데도 지킴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영의 공간 안에서 지킴을 받는 방법 1) 아브라함의 공간에서 구원받은 롯의 가족 성경에도 스스로 합당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영의 공간 안에서 지킴 받은 경우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멸망하는 소돔성에서 구원받은 롯의 가족이 그런 경우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성에 멸망이 임박했는데도 롯이 지체하자 천사들이 친히 롯과 가족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이끌어내 구원받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롯이 이처럼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이유는 창세기 19장 2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벗인 아브라함을 위해 그의 조카인 롯과 가족에게 영의 공간을 입히셨음을 뜻합니다. 이때 입혀진 영의 공간은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브라함의 공간'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공간 안에서도 지킴 받는 정도가 차이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친히 천사들을 보내 멸망이 임박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롯은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고, 자기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도 알렸습니다. 그런데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고 믿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또한 롯의 아내는 이미 심판이 임한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온 영의 사람을 통해 영의 공간이 입혀진다 해도 당사자가 최소한의 공의를 지켜야만 그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경우, 그 최소한의 공의는 바로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분량에 따른 공의를 지켜야 합니다. 믿음의 3단계라면 사망에 이르는 현저한 육체의 일은 행치 않아야 하고, 믿음의 1, 2단계라도 성령 훼방이나 성령 모독 같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 편에서 그러한 최소한의 공의를 지킬 때, 어떤 큰 사고를 만나도 '목자의 공간' 안에서 지킴을 받는 것입니다. 참고가 되실 수 있도록, 우리 성도님들이 영의 공간 안에서 지킴 받은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현재 경찰 선교회에서 활동하는 전중익 장로님의 초신자 때 간증입니다. 1998년 12월 23일, 이분은 경찰특공대원으로 조계사 시위 진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분이 타고 있던 고가 사다리차가 전복되면서, 다른 대원과 함께 15미터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함께 추락한 다른 대원들은 중상을 입었지만, 이분은 거의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분이 간증하기를, "땅에 떨어질 때 커다란 손이 자신의 몸을 살포시 떠받쳐 주는 느낌을 받았다" 했습니다. 다음으로, 2005년 4월에 강원도 양양 지방에 산불이 크게 났을 때의 간증입니다. 이때 한 성도의 어머니가 계신 고향 마을이 산불 지역 안에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산불 소식을 들은 우리 성도는 급히 차를 달려 고향 마을로 가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고향 마을 어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시뻘건 불길이 마을을 덮쳐, 고향 집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없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귀중한 물건도 제대로 챙겨 나오지 못하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상황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불길이 잡혔으나, 이미 마을은 잿더미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이 성도의 고향집만은 전혀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집은 산과 가장 인접해서 제일 먼저 산불이 옮겨 붙을 수 있었습니다. 또 뜰에는 기름통과 LPG 가스통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집에는 불이 옮겨 붙지 않은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목재 서까래에 불이 붙은 흔적이 있었으나 더 이상 번지지 않고 꺼진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당시 영안이 열려 이 장면을 보신 분에 의하면, 큰 천사가 양 날개를 펴서 집을 감싸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변은 모두 화재를 당했지만, 이 성도의 고향집에는 불길이 피해간 것입니다. 영의 공간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얼마 전에 마산만민교회 성도도 이와 비슷한 간증을 하셨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사업터와 바로 맞닿은 건물에 화재가 나서 건물이 전소되었지만, 우리 성도의 사업터는 조금도 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영의 공간이 우리 성도의 사업터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불길이 옮겨 붙지 않은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절 후반에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했는데, 이제 이 말씀이 더욱 실감나실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의 공간에서 생명을 보존한 사람들 이사야 43장 2절 전반에 보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먼저, 성경상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모세에 의해 홍해가 갈라지거나 여호수아를 통해 요단강의 흐름이 멈춘 일도 있었지만, 이 시간 살펴볼 부분은 사도행전 27장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공간'에서 생명을 보존한 사람들의 예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중에 타고 가던 배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사공들은 짐과 배의 기구까지 버리면서 배가 파선하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않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어서 구원의 여망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사도 바울에게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4절에 이르기를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배에 함께 탄 사람들에게 전했고, 결국 이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그가 탄 배는 큰 풍랑 속에서도 전복되거나 좌초되지 않았고, 한 사람도 바다에 빠져 죽지 않았습니다. 배가 한 섬 가까이 이르러, 전원이 섬에 상륙하게 된 것입니다. 거센 풍랑 속에서도 모두가 지킴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도 바울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로 인해 그가 탄 배를 영의 공간으로 입히심으로써 함께한 사람들의 생명도 구해 준 것입니다. 저도 이러한 체험을 했습니다. 1986년 7월, 울릉도에서 빛과 소금 선교회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의 일입니다. 당시 태풍주의보가 내려 배들은 발이 묶였고, 바다에는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그날 꼭 서울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다행히 오징어잡이 배 한 척이 있어서, 그 배를 타고 포항행 큰 배를 탈 수 있는 울릉도 도동항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와 보니, 다른 배는 한 척도 볼 수 없었습니다. 거센 파도를 타면서 헤쳐 나가는데, 거대한 파도가 계속 넘어왔습니다. 우리는 마치 파도로 된 터널을 지나는 듯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일행은 손에 손을 잡고 힘차게 찬양을 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맹렬한 기세로 몰아치던 파도가 뱃전을 때리지 않고 양 갈래로 갈라져 방향을 틀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거대한 파도가 무서운 기세로 삼킬 듯이 달려들다가 옆으로 살짝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을 한 시간 내내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영의 공간이 우리 일행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큰 파도도 우리가 탄 배를 덮치지 못한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4차원 공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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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차원 (5) 이재록 목사 | 2009-01-18 | 히 11:1 지난 시간에는 3차원의 공간에서 지킴받고 보호받은 사례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영의 세계에 속한 존재를 볼 수 있는 두 가지 경우에 대해 설명하고 4차원의 공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의 공간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1.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경우 1) 육의 공간에 사는 사람에게 영의 공간을 입힌 경우 이는 간단히 말해 영안이 열리는 경우입니다. 사람의 눈에 3차원의 공간이 입혀지면 영안이 열려 영의 세계에 속한 천군, 천사 등 영적인 존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엘리사가 밝은 계시로 번번이 아람의 전술을 알아내어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준 기록이 나옵니다.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으려고 그가 있는 성에 군사와 말과 병거를 보내 포위합니다. 이것을 알게 된 엘리사의 사환은 매우 걱정하며 두려워하지만, 열왕기하 6장 16절에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7절에 엘리사가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하늘의 군대를 보내어 위급한 상황에서도 지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기도를 통해 그의 사환도 순간 영안이 열려 하늘의 군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 던져졌을 때, 느부갓네살 왕도 영안이 열리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신들의 아들'과 같은 이가 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세 사람과 함께한 분은 성신 하나님이므로, 그곳은 4차원의 공간이 입혀졌습니다. 이처럼 영안이 열리면, 즉 3차원의 공간이 사람의 눈에 입혀지면 4차원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3차원의 존재를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3차원과 4차원은 빛의 밝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영안이 열린 분은 많지만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의 얼굴을 또렷이 본 분은 드뭅니다. 그 빛이 매우 밝아서 영안이 열려도 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장막을 치시는 등 빛을 조절해 주셔야만 어느 정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 영으로 이룬 분들이라면 영안이 열려 주님의 영을 평안히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신 대로, 하나님의 공의에 맞는다면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안을 열어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그에게 다니엘의 세 친구가 믿는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신임을 깨우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니엘 3장 28-29절에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했습니다. 영안이 열린 느부갓네살 왕은 즉시 깨우치고 하나님을 찬송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느부갓네살 왕에게만 영안을 열어 주셨을까요? 이는 왕 한 사람만 깨우치고 변화되어도 신하들은 저절로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안이 열리지 않았다 해도, 신하들이 왕의 말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습니다.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서도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나온 세 사람이 바로 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영안이 열려 영의 세계를 보는 것도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이뤄짐을 잘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2) 영적인 존재에게 육의 공간을 입힌 경우 첫 번째 경우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영적인 존재에게 육의 공간을 입히면, 육안으로도 영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소돔성에 나타났던 두 천사가 그러한 경우입니다. 창세기 19장을 보면, 롯이 두 천사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음식도 같이 먹었습니다. 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육을 입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소돔 백성들도 낯선 두 사람이 롯의 집에 들어간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에게 육의 공간을 입히셨으므로, 육의 사람들은 두 천사를 그냥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롯은 멸망이 임박함을 알자 너무도 당황하여 두 천사가 재촉하는데도 어찌할 바를 모르며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롯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육을 입은 두 천사가 직접 그의 손을 잡아끌어 그 곳에서 나와야만 했던 것입니다. 또 두 천사를 보내심으로, 그 곳이 정녕 멸망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육의 사람들이 얼마나 죄악에 깊이 물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존재인 두 천사에게 육의 공간을 입히므로 육의 사람들에게도 보이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이 제단을 통해서도 이와 같은 일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합당한 공의 가운데 천사에게 육의 공간을 입히므로 성도 여러분이 볼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으로 육을 입은 천사를 보면 정녕 영의 세계가 있음을 온전히 믿고 미련 없이 육을 벗고, 영으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2. 4차원의 공간 신년 기도 제목 중에 하나인 '아버지 하나님의 권능' 설교에서 말씀드린 대로 4차원의 공간은 근본의 하늘과 같은 넷째 하늘의 속성을 가진 공간입니다. 넷째 하늘에서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며, 죽은 것이 살아나고, 마음먹은 대로 모두 이루어집니다. 고체가 액체로, 액체가 기체로, 기체가 고체로 자유자재로 변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사에게 육의 공간을 입히는 것도, 다시 육의 공간을 벗기는 것도 4차원의 공간을 소유할 때라면 가능한 일입니다. 쉽게 말해, 4차원의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단, 그 일이 넷째 하늘의 공의에 맞아야 합니다. 그러면 먼저 4차원의 공간 특성 중에 창조의 역사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1) 창조의 역사 창조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만드신 것, 이것이 바로 창조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차원의 공간인 넷째 하늘을 온전히 소유하셨기 때문에 이런 창조의 역사를 베푸실 수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베푸신 창조의 역사 4차원의 공간을 소유하신 예수님께서도 창조의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공생애 중 처음 나타내신 표적도 창조의 역사에 해당합니다. 이는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혼인 잔칫집에 초대받아 가셨는데,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육의 모친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청을 순순히 받아 주지 않으셨지만, 마리아의 마음에는 여전히 믿음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마시고 취하게 하려는 것보다, 심히 난처한 입장이 된 잔칫집 주인을 돕기 위해 예수님께서 도와주시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지만, 마리아는 그로 인해 마음이 상하거나 낙심치도 않았으며 예수님께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라고 합니다. 마리아의 온전한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먼저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 하셨습니다. 하인들이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다 채우자,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라" 말씀으로 명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그 일을 마음에 품으시니, 여섯 개의 큰 항아리에 담긴 물이 순간에 맛좋은 포도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4차원의 공간에서는 마음에 품기만 하여도 이 같은 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4차원의 공간을 소유하셨어도 아무 때나 이런 창조의 역사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공의에 맞을 때에만 이러한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이때는 예수님께서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고 믿고, 변함없이 믿음으로 구하며 순종했던 마리아의 온전한 믿음이 공의를 충족시키는 바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영적으로 인간 경작 6천 년과 예수님의 구속 사역 등 중요한 의미들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처음 표적으로 이러한 창조의 역사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부분을 단편으로 설교한 자료와 저의 간증책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를 참고하시면 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또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신 일이 각각 있었습니다. 이를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표적이라 하는데, 이것도 4차원 공간에서 이뤄진 창조의 역사입니다. 오병이어의 표적 때는 남자 어른 수만으로도 5천 명 이상이 먹었고, 남은 것을 거두자 열두 바구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칠병이어의 표적 때도 남자 어른 수만 4천 명이 먹었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두 사건 모두 여자와 아이들의 수까지 합하면 그 수는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표적을 베푸실 수 있었던 합당한 공의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5장 32절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했습니다. 수천 명의 무리들이 오직 예수님을 사모함으로 사흘이나 붙좇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사모하고, 병자들이 고침 받는 것을 보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이 온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에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의 사랑이 더해지자, 창조의 역사를 베풀 수 있는 공의가 성립되었습니다. 2) 엘리야를 통해 나타난 창조의 역사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도 이와 유사한 창조의 역사를 베푼 경우들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 행한 일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시돈에서 만난 사르밧 과부는 형편이 좋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육으로는 마지막 한계 상황이었습니다. 오랜 가뭄에 양식이 떨어져 마지막 먹을 양식,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남은 양식으로 먼저 자신이 먹을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축복의 말씀을 줍니다. 열왕기상 17장 14절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르밧 과부는 어떤 이유나 변명도 없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사르밧 과부가 받은 축복은 열왕기상 17장 15-1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한 것입니다. 여기서 가루 한 움큼과 조금 뿐이던 기름이 여러 날 먹어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계속 창조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증거입니다. 3) 4차원의 공간을 활용하여 창조의 역사를 나타내려면 창조의 역사는 4차원의 공간에서 일어나며,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4차원의 공간을 소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어떻게 4차원의 공간을 활용하여 창조의 역사를 베풀 수 있었을까요? 사실 엘리야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모세, 사도 바울 등도 4차원의 공간을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선진들은 4차원의 공간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다만, 4차원의 공간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한정적으로 읽고 4차원의 공간을 전달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한정적'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어떤 일에 대해 그 순간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마음과 뜻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이루는 그 일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읽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온 영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영의 공간을 함께 탈 수 있는 공의에 합당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명하시면,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읽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느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의 공간에서 이루실 일이 마음에 그려지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불의 응답을 끌어내렸던 것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겠다는 느낌을 그 마음에 전달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지막 먹을 양식밖에 없는 사르밧 과부에게 담대히 양식을 청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습니다.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셨고, 엘리야는 순종해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르밧에 가면 엘리야를 공궤할 한 과부를 만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과부를 금방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과부의 현실이 어렵다 해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실지 그 길도 훤히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르밧 과부 역시 축복받을 수 있는 공의에 합당한 믿음과 순종을 내보였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 선지자를 신뢰했고, 그 입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또한 어떠한 생각도 동원치 않고 아무런 주저함 없이 즉시 순종했습니다. 이렇게 엘리야를 믿고 순종함으로, 사르밧 과부도 엘리야가 타고 있는 영의 공간을 함께 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역대하 20장 20절 후반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4차원의 공간은 하나님만이 소유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 된 사람에게도 4차원의 공간을 입혀 주십니다. 4차원의 공간이 입혀진 하나님의 사람과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 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도 역시 4차원의 공간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를 잘 터득하여, 여러분도 4차원의 공간에서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도 계속하여 4차원의 공간에 나타나는 역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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