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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법(1) 이재록 목사 | 2001-03-04 | 롬8:12-17 오늘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 중 우리의 마음에 내재하시는 성령님의 음성과 인도를 밝히 주관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다윗이 하나님과 교통했듯이 우리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사무엘하 5:18 이하를 보면 다윗 왕 시대에 블레셋 사람이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히 몰려 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다윗은 무작정 나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하며 여쭙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고 다윗은 말씀에 의지하여 올라가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쳤지요. 그런데 얼마 후 또 다시 블레셋 사람이 같은 장소로 몰려 왔는데, 이번에도 다윗은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 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범사에 하나님께 여쭙고 그대로 순종한 다윗이었기에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비록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에 거할지라도 항상 형통한 길로 인도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다윗 왕처럼 모든 일을 하나님께 여쭙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신속한 믿음의 성장은 물론 가정과 일터, 사업터의 형통함을 받게 됩니다. 더구나 주의 종이나 일꾼이라면 더욱 하나님의 뜻을 듣고 순종해 나가야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무수한 영혼들을 구원하고 범사에 풍성한 열매들을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받는 것을 믿음이 아주 큰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인 것처럼 오해하는데, 오늘날은 구약 시대와 달리 성령을 물붓듯이 부어주시는 마지막 때이기에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이 장성한 만큼 더 정확하고 상세한 음성을 깊이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을 친히 대면하여 그 음성을 듣는 것은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온전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러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설령 하나님을 직접 뵙거나 그 음성을 친히 듣지는 못한다 해도 구원받은 자녀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만사형통의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점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면 범사에 자기 생각과 능력대로 살아가니 사업을 해도 어려움을 만나거나 악한 사람의 궤계에 속아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아시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 속에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것은 물론 악한 사람이 속이려 해도 이미 마음에 주관이 오기 때문에 속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 내는 열매와 교통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는 열매와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심방을 해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이 가정에 혹은, 이 영혼에게 합당한 말씀이 어떠한 말씀이겠구나’라고 주관을 받아 행하는 반면,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집은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니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어야겠구나, 이 사람은 열심 있는 일꾼이니 축복의 말씀을 전하면 되겠구나‘ 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에 맞추어 말씀을 생각해 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서로 미워하던 부부가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겉으로 열심 있는 일꾼이라고 해도 정녕 그에게 필요한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나님과 교통해야 각자에게 필요한 말씀을 알게 되며 그 말씀으로 증거할 때라야 권세가 따라 통회 자복의 은혜와 함께 상대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축복이 임하는 등 영적인 심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는 사람도 육적인 말로 위로해 줌으로 잠시 부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육으로 갈무리한 영혼들은 나중에 무슨 시험을 당한다거나 혹은 자신에게 잘해 주던 사람이 다른 분야를 맡게 되면 마치 비바람 속에 썩은 과실이 떨어지는 것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라면 더구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이나 일꾼이라면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의 여러 경우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롬 8:14-15).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1)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 그리고 천사의 음성을 듣는 경우 구약에 보면 아브라함이나 모세, 사무엘 선지자가 친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한 신약의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하는 체험을 했으며, 사도 요한은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표현했지요.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할 때에는 직접 천사를 만나 천사의 음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 그리고 천사의 음성은 마음에서가 아닌 외부로부터 음성이 들려오게 됩니다. 혹자는 악한 영의 역사를 받으면서 하나님이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씀하신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므로 악한 영의 역사와 하나님께 속한 영의 음성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 천사의 음성 등을 듣는 것은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특히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은 아무나 들을 수 없으며 때를 좇아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이나 특별히 어떤 하나님의 뜻을 이룰 필요가 있을 때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혹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하나님의 음성이나 혹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하는데 이런 표현은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음성, 주님의 음성, 성령의 음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경우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통하시기 위해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사용하시는 방법이 바로 마음에서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처럼 어떤 소리로 들려오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히 들을 수만 있다면 성령의 음성처럼 섬세하고도 확실한 음성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음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성령의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주십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군가와 걸려서 미워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또는 원수도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마음에 떠올려 주십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잘못임을 깨우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할 수 있게 인도하시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음성입니다. 둘째로, 성령의 음성은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십니다. 어떤 일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어떤 방법으로 언제 해야할지 하는 것들을 마음을 통해 주관하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도 때로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드러내어 전파하셨고, 때로는 숨어서 전파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주관을 100% 받으셔서 행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긴혹 성령의 주관을 받은 간증들을 종종 들을 수 있는데 한 예로, 어떤 분은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버스가 왔는데 그 버스를 타기 싫은 마음이 강하게 들어서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온 버스를 타고 갔는데 가다 보니 앞에 간 버스가 큰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지요. 성령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므로 앞에 도착한 버스가 어떻게 될 것을 미리 아시고 사랑하는 자녀가 그 차에 타지 않도록 마음을 주관해 주신 것입니다. 3) 영감 가운데 음성을 듣는 경우 영감의 음성은 소리로 들리는 음성과는 다르지만 그 내용이 마치 소리로 듣는 것처럼 또렷하게 마음에 전달되기 때문에 음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사야, 에스겔, 호세아 등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계시받아 기록한 내용들도 바로 성령의 역사 속에 영감으로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제가 체험한 것 중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앞으로 되어질 일들에 대해서는 물론 그 다음 주에 나올 헌금 액수를 미리 알려 주시기도 하셨고 또 어떤 사람이 교회에 와서 등록할 것을 미리 알려 주신 적도 있었지요. 이럴 때마다 단에서 선포하거나 또 주변 일꾼들에게 말하고 나면 반드시 그대로 역사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4.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면 마음을 진리로 채워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것은 성령받은 사람은 물론 초신자라도 마땅히 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면 먼저 우리 마음을 진리의 마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선과 사랑이며 진리 자체이시기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역시 진리의 마음을 통해서만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작업이 동시에 병행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첫째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을 진리로 채워야 하며 둘째로는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고 사단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비진리의 생각, 곧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여라도 어린 자녀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애자라면 부모가 사랑한다고 말해도 알아들을 수 없고 아이가 위험한 상태에 처했을 때 부모가 큰소리로 불러도 돌아볼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무리 사랑한다 말씀하시고 축복의 길을 알려 주셔도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해 영적으로 귀머거리가 되어 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가 되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 하나님과 밝히 교통함으로 만사형통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에 이어서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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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법(2) 이재록 목사 | 2001-04-01 | 롬8:12-17 지난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마음을 진리로 채운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므로 성령의 음성은 귀로 듣는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음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우리 마음 안에 선물로 주십니다(행 2:38). 그러나 성령을 받았더라도 우리가 마음을 진리로 얼마나 이루었는가에 따라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마음을 50%만큼 진리로 이룬 사람은 50%만큼만 역사를 받고, 주님을 닮아 온전한 진리의 사람이 되었다면 성령의 음성을 100%까지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비진리가 많은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에 앞서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니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예로, 누군가 여러분을 오해함으로 심한 욕을 했다고 합시다. 만약 여러분이 마음 안에 ‘용서하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가득 채워 놓았다면 성령께서는 그 진리를 통해서 음성을 들려주시게 됩니다. ‘저 사람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다. 또 부드럽게 대화를 해서 오해를 풀어 주어야 되겠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를 좇아 행하면 상대의 마음에도 감동이 임해 서로 화평을 이루는 관계로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마음에 비진리가 많아서 미움이나 감정, 혈기 등이 훨씬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는커녕 ‘나에게 이처럼 무례한 행동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하거나 ‘그냥 두면 나를 우습게 볼 테니 단단히 혼을 내 주어야 되겠다.’라는 악한 생각이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설령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해도 악한 생각이 성령의 음성을 압도해 버리기 때문에 순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마음 속에 진리와 비진리가 50대 50 정도로 비슷한 세력을 차지하고 있을 때는 두 가지 음성을 거의 동시에 듣게 되는데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성령의 음성과 ‘다투고 대적하라’는 사단의 역사를 동시에 받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두 음성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어떤 때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사단의 역사를 먼저 받기도 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해야 우리가 사단의 음성을 차단하고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면 먼저 마음을 진리로 채우고 비진리를 버려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들이 있는데, 곧 사랑하라 하면 미워하고 시기하던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고, 겸손하라 하면 교만하고 높임받기 좋아하던 마음을 낮아지고 섬기며 헌신하는 마음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혈기와 간음과 욕심 등이 있다면 ‘모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시니 순종하여 버리면 될 것이요, ‘기도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는 모든 말씀들을 듣고 배우는 대로 명심하여 순종하면 우리의 마음에 있던 비진리가 벗어지고 그 대신 진리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리를 아무리 많이 알고 있더라도 그 말씀들을 실제로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고 직분을 감당하며 말씀을 많이 안다 해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는 여전히 진리가 채워지지 않았으니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초신자라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열심히 진리로 행하려고 노력할 때는 성령의 음성도 밝히 듣고 영적인 체험을 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마치 10년 동안 온갖 음악 이론만 공부하고 실제로 피아노를 연주해 본적이 없는 사람보다는 이론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단 1년이라도 피아노를 직접 쳐 본 사람이 실제 연주를 더 잘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3.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면 진리의 마음이 비진리의 마음과 싸워 이겨야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계명을 지켜나감으로 진리로 마음을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갈등이 생겨 곤고해지게 됩니다. 이는 곧 육체의 소욕을 좇으려는 마음과 성령의 소욕을 좇으려는 마음이 서로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지요. 처음으로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무렵에는 마치 젖먹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부모가 알아서 채워주는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게 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노력과 행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내려야 하는 시기가 오게 됩니다. 이처럼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스스로 넘어야 하는 단계들이 있으므로 자기 노력으로 진리를 분별하며 비진리와의 싸움을 벌이기 시작하니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이지요. 이런 싸움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가 바로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서로 비슷한 세력을 차지하고 있을 때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음성대로 진리를 좇을지 사단의 역사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을지 심히 갈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7:24에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신 말씀도 이렇게 마음의 싸움이 치열한 상태를 묘사하는 말씀이지요. 이런 수준에 있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이것이 성령의 음성인지 아니면 내 생각인지 분별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한 예로, 어떤 기관장은 기관의 회원 한 사람을 심방해야 한다는 음성이 자꾸 들리는데도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를 무시했더니 어느 날부터 그 회원이 갑자기 안 보이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음성을 자기 생각으로 오해하여 심방해야 할 시기를 놓친 것이요, 반대로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들어보면 전혀 진리가 아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자기 생각을 성령의 음성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확하게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마음을 진리로 채워나가야 하며 열심히 진리로 채우는 만큼 성령의 음성도 더욱 세밀하게 듣는 것이요, 성령의 음성대로 순종하는 만큼 범사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 형통함을 받게 됩니다. 4. 성령의 음성을 듣는 즉시 순종하면 더욱 밝히 인도받아 어떤 사람은 마음 속에 비진리와 진리가 대등한 상태에서 항상 ‘죄를 버려야 한다.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고 가르치니 곤고함을 이기지 못하여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거나 혹은 완전히 세상과 짝하여 아예 하나님을 떠나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게 느껴진다 해도 비진리를 벗어버리려는 노력을 포기해 버린다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성령의 인도를 받을 길이 없게 됩니다. 설령 교회 안에서 머리가 되어 양 떼를 가르친다 해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면 육으로 인도할 수밖에 없으니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먼저 진리대로 살아서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사람이 되어야 상대를 가르칠 때에도 영적인 권세가 따라 참생명을 얻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의 음성과 인도를 밝히 받기 위해서는 주님과 같이 완전히 성결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요? 비록 비진리가 좀 남아 있다 해도 그 마음에 진리가 더 많이 채워져 있다면 성령의 음성을 들어나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비진리가 남은 만큼 사단이 역사 하겠지만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그 즉시 그대로 순종해 버림으로 사단의 음성이 무시돼 버리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든다면 두 가지 방송이 동시에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 방송은 큰소리로 나오고 다른 방송은 작은 소리로 나온다고 합시다. 이때 우리가 큰소리로 나오는 방송의 내용을 들으려고 집중하면 작은 소리로 나오는 방송은 무시되어 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진리가 많은 사람에게는 진리가 많은 만큼 사단의 음성보다는 성령의 음성이 더 크고 명확하게 들려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사단의 음성에 굳이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으므로 쉽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욱 마음을 진리로 채워나가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고 사단의 역사는 점점 희미해지다가 결국 사라지게 되지요. 그런데 비진리를 벗어버리고 진리를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치면 혹자는 로마서 3:28에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 했는데 왜 죄를 버려야만 하느냐고 반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이 행위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없듯이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 역시 구원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과도 상관이 없으며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26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했고, 히브리서 12:4에는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는 성도들을 책망하는 말씀이 나오듯이 성경 곳곳에는 성도들이 죄를 버리고 계명을 지켜 행해야 참믿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들을 배워서 진리대로 살고싶은 소원은 갖고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비진리가 버려지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함받은 사람은 비진리를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한 것이니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마음 중심에서 원하고 믿음으로 행하면 됩니다. 능히 비진리를 벗어버리고 진리의 사람이 되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며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14:16-17에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고, 성령께서는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거하시지만 오직 진리를 통해서만 역사하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더욱 열심히 마음을 진리로 채워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순종하여 만사형통의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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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법(3) 이재록 목사 | 2001-04-08 | 롬8:12-17 지난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에서 비진리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채워나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구체적인 방법론을 알려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과 자신의 노력이 어떻게 하나가 되어 비진리를 벗어버리고 성결에 이르게 할 수 있 는지에 대하여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 외에 자신의 노력이 중요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 마음에서 비진리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채워나가야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령은 진리의 영이므로 진리를 통해서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요 14:17). 그런데 마음에서 죄와 악, 불의와 불법 등 모든 비진리를 벗어버리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마음 중심이 좋은 사람이라도 자유 의지 가운데 본인의 노력은 물론,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또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죄를 벗어버리고 성결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란 전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과정은 물론, 기도하려는 마음이나 죄를 깨닫고 벗어버리려는 마음, 그리고 새예루살렘을 소망하는 마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주어지며 자신을 발견하고 비진리를 벗어버릴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의 첫 단계에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하시지만,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자신의 노력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려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은혜 가운데 모든 것을 응답해 주신다면 원수 마귀 사단은 “인간 경작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이것이 어찌 공의로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나님께 송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자기를 부인하며 기도와 금식 등으로 죄를 벗어버릴 수 있는 능력을 끌어내려야 하는데 이것을 도와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라는 것입니다(롬 8:26). 성령께서는 스스로 노력해야 할 분량을 다 채우지 못한 경우에도 필요에 따라 힘을 주시고 성령의 감동 감화를 입게 하시며 예측하지 못할 은혜를 체험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이 하나가 되어 성결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입술로 “미움과 혈기를 버리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미워하고 혈기를 내고 있다면 그 기도는 진실하지 못한 것이요, 자신이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됩니다. 정녕 성결을 사모하는 마음이라면 죄를 버리고자 결단하고 불같이 기도하는 동시에 행함과 진실함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고 마음 속에 진리를 채워야 이처럼 비진리를 벗어내는 과정은 마치 우리가 한 성을 포위하여 적군을 섬멸시키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 안의 적군을 도우러 오는 지원군을 차단하고 성을 공격해야 합니다. 여기서 지원군을 차단하는 작업이 바로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는 것인데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속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미워하고 싸우는 장면이 나오는 TV 드라마를 즐겨보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통해 마음 속에 미움, 다툼과 같은 악한 마음이 입력되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워하고 다투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드라마를 보고 듣고 즐기는 것 자체가 안목의 정욕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어 미움이나 다툼 등이 마음에 자리잡게 되고 원래 마음 속에 있던 죄의 속성을 자극하여 악을 더 발하도록 도와주게 되지요. 또한 미움이나 다툼이 있는 사람은 TV를 보아도 자기의 정욕을 자극할 수 있도록 미워하고 다투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게 됩니다. 따라서 미움과 다툼을 버리려고 하면서도 이런 드라마를 계속 본다면 미워하고 다투려는 비진리의 마음에 계속 힘을 불어넣는 것이 되므로 무엇보다도 자신의 노력으로 안목의 정욕을 차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금방이라도 죄를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안목의 정욕을 끊지 않고는 죄를 버리기가 힘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술을 끊지 못한 초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오늘부터 술을 딱 끊으리라’ 작정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먼저 술에 대한 정욕을 자극하는 모든 지원군들을 차단해야 하는데 만약 술병을 가까이 놓고 바라보면서 냄새도 맡아보고 ‘예전에 이 술맛이 얼마나 좋았던가’ 떠올린다면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이런 모습들이 바로 안목의 정욕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술을 마시려는 육신의 정욕에 지원군을 공급해 주는 것이니 성령의 소욕을 좇으려는 진리의 마음이 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한 잔만 마시고 끊자’ 하면서 타협하게 되고 한 잔이 두 잔, 석 잔이 되어 다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또한 ‘앞으로 판단, 정죄, 수군수군하는 비진리의 대화를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면 남들이 비진리를 말할 때 듣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상대의 허물이나 악한 것을 전하는 사람이 와서 진리가 아닌 것을 말할 때 마음이 약해서 같이 듣게 되면 성령의 충만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자기 입에서도 비진리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만약 더러운 물이 담긴 컵에 깨끗한 물을 계속하여 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컵 안에는 깨끗한 물만 남게 되는 것처럼 아직 마음 안에 비진리가 남아있는 사람이라 해도 진리의 말만 듣고 보고 말하면 결국은 깨끗한 마음, 깨끗한 생각, 깨끗한 입술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깨끗한 물을 계속 부으면서 더러운 물도 함께 붓는다면 이는 진리를 채워 나가면서 동시에 안목의 정욕을 통해 비진리를 계속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기도하고 금식하며 부르짖는다 해도 죄와의 싸움이 끝나지 않게 되니 곤고한 신앙생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비진리를 벗어버리고 마음을 진리로 채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으로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3. 불 같은 기도를 통하여 본성 속에 있는 죄성을 버려야 본문 로마서 8:13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말씀하셨으니 죄를 짓고자 하는 육신의 속성이 원하는 대로 살면서 계속 죄를 범하게 되면 아무리 믿는다 해도 구원받지 못하게 됩니다. 영으로써 성령이 원하시는 대로 진리를 좇으며 악한 일을 행하는 예전의 모습을 죽일 때라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고 죄를 버리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성결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을 때리거나 욕하고 혈기를 내는 등의 육체의 일들은 자기의 노력으로도 끊을 수 있겠지만 근본 속성은 여전히 남아있으므로 본성과 결합되어 있는 죄성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불 같은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고 능력을 받을 수 없으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불 같은 중심의 기도를 쉬지 않고 올릴 때라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본성과 결합된 비진리를 벗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만한 기도를 올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중심과 진액을 다하는 기도(왕상 18:42, 눅 22:44)라야 성령의 불로 기(氣) 속에 죄성들까지 태워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불 같은 기도를 통해서만이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입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중심에서 자신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영으로 들어가는 데 장애가 되는 틀과 이론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성령의 음성과 인도를 밝히 받으며 신속히 영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성령의 음성을 들었으면 순종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우리가 정녕 성결되기 위하여 마음에 결단하고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여 비진리의 지원군을 막은 상태에서 불 같은 기도를 계속 쌓아나가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신속하게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 마음에 채워진 진리를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혹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성령의 음성대로 순종하는 것보다 자기 보기에 좋은 길로 행하거나 혹은 성령의 음성대로 순종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비진리의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육신의 생각들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며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진리를 벗어버릴 뿐만 아니라, 육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발견하여 신속히 깨뜨려 버림으로 항상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며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하셨으니 성결되기 원하는 자녀들의 간구와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며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고 끝까지 믿음으로 행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또한 아무리 마음에 악이 많더라도 가장 큰 것들을 놓고 집중적으로 기도하여 버리게 되면 작은 것들을 버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므로 쉽게 진리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더욱 힘써 죄악을 벗어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음 속에 있는 비진리의 요소들을 벗어버리고 육신의 생각들을 철저히 깨뜨림으로 성령의 밝은 음성을 들으며 온전히 순종하는 진리의 사람이 되어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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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법(4) 이재록 목사 | 2001-04-22 | 롬8:12-17 지난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 먼저 마음에 비진리를 벗어버리고 진리로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면서 마음을 진리로 채우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 나가는데 있어서 방해 요소가 되는 육신의 생각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 먼저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버리고 진리로 채워야 하는데 여기서 마음을 진리로 채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바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온 영으로 일구어 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처럼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는 만큼 성령의 음성이 들려오게 됩니다. 처음에는 밝히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이 성령의 음성인지 아닌지 혼란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순종하는 만큼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점차 성령의 음성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더 밝히 듣고 인도받으려면 이미 들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데도 우리의 생각이나 자존심, 교만으로 인해 순종하지 못함으로 결국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때 점점 더 밝은 음성을 들려주시고 더욱 섬세하게 인도하심으로 만사 형통케 하시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계속하여 불순종하는 일이 없어야 제가 하나님의 일로 인하여 권면하는 경우, 지시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말로 하게 되는데 대부분 자신의 입장에서 변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권면하는 이유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하나님께 더 합당하게 변화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변명하기에 급급해서 권면을 받지 못하거나 직접 이유를 대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변화가 없는 경우에는 더 이상 권면하지 않게 됩니다. 혹여 제가 강요하는 것이 되어 상대가 불편해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며 또 ‘아직 받을 그릇이 안 되었나 보다’ 생각하여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몇 번 들려주셔도 우리가 그 음성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불순종하는 사람에게 강요하시지 않는 대신 성령의 음성은 점차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한가지 비유를 든다면,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앞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기도를 했는데 그 후로 어느 순간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면 안 된다’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려는 마음과 자기 유익을 구하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거짓말을 하려고 할 때에는 성령의 음성이 전보다 희미해지는데 이처럼 거짓말을 계속 하다 보면 마침내 성령의 음성이 전혀 들리지 않게 되어 마음에 갈등도 오지 않게 됩니다. 즉 거짓말하지 말라는 성령의 음성을 소멸시켜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살전 5:19).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실 때 계속해서 불순종을 하게 되면 점점 흐려지던 성령의 음성이 마침내는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는데 이는 성령의 소욕을 좇아 순종하려는 마음보다 육신의 정욕을 좇으려는 비진리의 마음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3.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데 방해 요소가 되는 육신의 생각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 중에도 성령의 음성과 인도를 잘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은 열심히 진리대로 행하고 노력하므로 자신에게 특별히 걸리는 말씀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정녕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야 하는데 영적으로 막힌 분야로 인해 어떤 일을 성령의 역사를 좇아 한다고는 하지만 결과를 보면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면 왜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해 왔음에도 어느 한계 이상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것일까요? 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육신의 생각으로 단단히 매여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아 가려면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는 동시에 육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 자신에게 있는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벗어버려야 합니다. 로마서 8:6-7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하셨는데 육신의 생각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가 육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기본적으로 생각, 지식, 이론, 틀 등 여러 가지 개념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먼저 생각이란, 뇌의 기억장치에 입력된 지식을 혼의 작용을 통해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추가 맵다는 지식이 있는 사람은 고추를 볼 때 ‘고추를 먹으면 매울 것이다’라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으며 혹은 고추를 먹는 사람을 볼 때 ‘저 사람은 매워서 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지요. 그런데 생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의 생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육신의 생각인데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영의 생각은 진리의 생각이며 육신의 생각은 바로 비진리의 생각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이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이유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입력시킨 지식 가운데는 진리의 지식과 비진리의 지식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지식을 떠올려서 생각을 하면 진리의 생각이 나올 것이고 비진리의 지식을 떠올려서 생각을 하면 비진리의 생각 곧 육신의 생각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진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 지식 중에 하나님 편에서 너무나 진리가 아닌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무협소설을 즐겨보는 사람들에게는 원수 갚는 것이 의로운 일이라는 가치관이 하나의 지식으로 강하게 입력이 되어 그것이 참인 줄 알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어 보면 원수를 사랑하며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진리의 지식입니다. 진리의 지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보아도 어찌하든 ‘용서하고 사랑해야지’ 하면서 영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니 성령이 충만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평안이 솟아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명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롬 8:6). 하지만 비진리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시면 자신의 지식 속에서 변명이 나오고 순종을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잘못된 지식, 비진리의 지식을 되살려 내는 생각이 바로 비진리의 생각이요 육신의 생각인데 이렇게 비진리를 통해 나오는 생각은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순종하지 못하게 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니 결국은 사망의 길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4. 육신의 생각을 좇아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행했던 성경상의 예 사무엘상 15장에 나오는 사울 왕이 바로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명하셨는데 이것은 바로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을 크게 대적한 일에 대한 보응이며 저주로써 정확히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해져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막상 싸우다 보니 가축 떼를 죽이기가 너무 아까워서 기왕에 죽일 것이라면 좋은 것은 차라리 끌어다가 하나님께도 드리고 그밖에 필요한 대로 쓰면 좋겠다는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말렉 왕도 죽이지 않고 생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자신의 승리가 더욱 빛날 것이라는 육신의 생각으로 아말렉 왕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불순종하는 사울 왕을 버리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사울이 ‘이러면 더 좋겠다’ 하고 불순종했던 생각들이 결국은 자기의 욕심과 교만 가운데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교만해진 사울은 불순종하고도 여전히 자신은 순종했다고 생각했으며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지적을 해 주어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 후로도 사울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속 하나님께 불순종해 나갔고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삼상 31:4-5). 사울이 살던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합당한 사람들에게 직접 음성을 들려주시고 백성들에게 전하게 하셨지만 오늘날은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거역한다면 이는 구약시대에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나름대로 믿음이 있다 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음성에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성령의 음성대로 행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거나 설사 성령의 음성을 듣지만 ‘저렇게 하는 것이 더 좋겠다’ 하는 생각이 동원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생각에 좋은 것을 드리면서 불순종한 사람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온힘을 다해 순종하는 사람을 더 기뻐하십니다(삼상 15: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비진리의 지식이 전혀 입력되지 않았다면 비진리의 생각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악이 전혀 없는 에덴동산과 같은 공간에서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양육 받고 가르침을 받았다면 비진리가 전혀 입력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로마서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하신 말씀처럼 이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진리의 지식이 입력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설령 비진리의 지식을 입력시켰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가운데 발견되는 대로 열심히 벗어버리면 육신의 생각들이 점차 사라지게 되며 스스로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도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예리한 말씀으로 드러내 주시면 발견하여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 같은 기도로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벗어버리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지극한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으며 마음에 품은 것까지도 응답받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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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법(5) 이재록 목사 | 2001-04-29 | 롬8:12-17 지난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을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에 대해 기본적인 설명을 해 드렸고, 오늘은 여러 사례들을 통해 흔히 볼 수 있는 육신의 생각들에 대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믿음으로 행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들 전도를 하다 보면 전도는 하고 싶은데 막상 몸이 따라 주질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전단지를 전하려 해도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 때문에 부끄러워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 '누구에게 전도할까'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인상이 너무 강하니까, 또 저 사람은 너무 세상적인 옷차림을 했으니까, 혹은 저 사람은 너무 깍쟁이같이 생겼으니까'라는 생각 속에서 전도를 망설이는데 이러한 생각들이 모두 육신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생명을 전하는 일이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데 전도하는 것이 부끄러울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눅 9:26). 또 주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므로 겉모양을 보고 '저 사람은 안 된다'라고 판단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신의 생각들을 다 벗어버리면 전도의 방법까지 정확하게 주관받을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말로 전도해야 하며 마음의 문제까지라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정확히 알 수 있으니 전도하기가 수월해집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만 있으면 전도는 물론 삶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앞으로 말씀드릴 사례들을 통해 정녕 자신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런 일이 없는데요.' 하는 분들 중에서도 육신의 생각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그런 상황에 처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미세한 것까지도 깨닫고 발견하여 벗어버려야 성령의 인도를 온전히 받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들 지난 시간에 생각이란 뇌의 기억장치에 입력된 지식을 혼의 작용을 통해 되살려 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진리가 아닌 잘못된 지식들을 떠올릴 경우 그 때의 생각이 바로 육신의 생각이 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했다고 합시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능히 이룰 수 있지만 육의 지식만으로는 동정녀 곧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인이 잉태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며 또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지식을 통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저 말은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불치의 병이 치료되었습니다.'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나름대로의 지식과 이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도 받는다고 어떻게 온전해지겠는가' 하는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계속하여 전도를 받는 가운데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면 자신의 지식이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저의 기도를 통해 바닷가의 짠물이 단물로 변한 것은 물론 그 단물을 통해 쌍꺼풀이 생기는 역사가 본교회 성도들과 일반인들에게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혹은 심령이 가난해져서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마음의 문을 열면 성령의 역사를 받아 자신의 지식과 맞지 않는 것이라 해도 믿어지는 믿음을 위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들 우리가 일단 주님을 믿고 구세주로 영접했다 해도 구원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나감으로 모든 죄악을 벗어버리고 온전히 성결되어 마지막까지 거룩함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살전 5:23). 이렇게 성결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성도들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마태복음 7:1에 "비판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의 중심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데 상대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과 담이 됩니다. 한 예로, 평소에 알고 지내던 남녀가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면 보는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비진리의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저들이 남의 눈을 피해 만나는 나쁜 관계인가 보다.' 하지만 진리의 사람은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만날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선한 사람은 판단 정죄를 하지 않으니 죄를 범치 않게 되지만 악한 사람은 자신의 악에 비추어 판단 정죄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죄의 담을 만들게 됩니다. 다만 지도하는 위치에 있거나 굳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정녕 비진리의 판단을 앞세우지 않는 경우라면 하나님께서도 성령의 음성으로 알려 주시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런 성령의 역사보다는 먼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판단 정죄하고 심할 때는 헛소문까지 퍼뜨리면서 하나님과 죄의 담을 만드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혹은 길을 가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상대가 피해 버린다거나 인사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이때 많은 사람들은 '내게 무슨 감정이 있나' 판단하게 되어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실제로는 상대가 시력이 좋지 않아 상대를 알아보지 못했거나 깊은 생각에 빠져서 못 보고 지나친 경우인데도 자신의 마음에 있는 비진리를 통해 육신의 생각이 앞서니 판단하고 감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단에서 설교를 할 때에도 육신의 생각 속에 판단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어떤 분을 예로 들어 설교하면 자신이 아는 누구에 대한 말씀이라 판단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엉뚱한 판단인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설교 중에 일반적인 예를 말하는데도 어떤 분은 '자신에 대한 책망을 하신다.' 하며 서운해하지요.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육신의 생각 때문에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뿐만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면 직장 일이 너무 바빠 기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들어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감사하지만 항상 감사하지는 못합니다. 가난과 질병, 혹은 가정이 어렵기 때문에 감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육신의 생각입니다. 또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라' 하면 혹자는 감사헌금, 구제헌금, 기관회비도 다 포함시켜서 내는데 이 또한 육신의 생각입니다. 만약 10만 원을 십일조 해야 한다면 '어차피 하나님께 다 드리는 것인데' 하면서 5만 원은 감사헌금으로, 3만원은 구제헌금으로, 그 나머지를 십일조로 내는 것입니다. 자기 보기에 좋은 방법으로 하나님께 드렸다고는 하지만 이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사람입니다. 4. 자신의 이론과 틀에 의해 동원되는 육신의 생각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믿음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생각을 동원하여 불순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로 이론과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자기만의 생각이나 행동방식이 생겨나는데 그 중에 잘못된 틀이 강하게 만들어진 경우에는 신앙 안에서 진리를 배운다 해도 그 틀 가운데서 곧 자기 한계 안에서만 적용될 뿐 참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데 방해가 됩니다. 그런 만큼 성령의 음성도 깊이 듣지 못하므로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고 일꾼으로 충성해 왔다고 해도 만족할 만한 신앙의 발전이 없고 영적인 열매도 부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하는 자기의 이론과 틀을 발견해야 합니다. 한 예로 어떤 사람은 세상을 어둡게만 보고 살아왔기 때문에 신앙 안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의 틀을 통해 육신의 생각이 늘 동원됩니다. 이 사람은 나름대로 기도하고 노력해 나가다가도 자신이 원하는 축복을 타인이 받았을 때나 혹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초조해하거나 낙심하게 됩니다. '나도 열심히 하느라고 했는데 저 사람만 축복을 받고 나는 왜 이 모양인가?' 하면서 기운이 빠져 버리는데 이는 바로 부정적인 틀 가운데 이런 육신의 생각이 나오면서도 자신이 육신의 생각을 하는 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스스로 정죄하고 질책하는 틀이 있어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사랑의 하나님보다는 율법의 하나님으로 느끼기 때문에 징계받지 않으려고 두려움 가운데 행하니 조금만 잘못하더라도 자신을 심하게 책망하고 학대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기운조차 잃어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상대의 믿음에 맞춰 이해하고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리의 틀 가운데 부족한 것을 정죄하며 억지로 끌고 가려 하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선교회의 회장이 '매일 기도회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도회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 자신은 기도하기를 즐겨하며 하나님의 일을 가장 중요시하는 마음이기에 만사를 제쳐놓고라도 기도하러 나오는데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오지 못하는 다수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다니엘 철야 외에도 꼭 필요해서 이 기도회를 성령의 주관으로 만들게 하셨다면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이시므로 다른 회원들도 함께 주관하셔서 모아 주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 속에서 자기 믿음에 맞추어 계획하면 잡음이 생기니 마음이 하나로 모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같은 성령의 역사나 큰 열매를 맺기는 어렵게 됩니다. 오히려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부흥을 위하여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이렇게 모이지 못하는가 하며 안타까워하고 혹은 상대에게 불편함을 갖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먼저 자기 기준대로 밀고 나가는 틀을 깨뜨려야 하며 그래야 육신의 생각이 사라지고 밝은 성령의 음성과 인도 가운데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흔히 사람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변론하고 다투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보면 각 사람의 잘못된 지식과 이론, 틀 등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때로는 영적인 깨우침이 둔하여 열심히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건을 만나게 하거나 나름대로 연단을 받게 하심으로 지극히 겸비하고 가난한 심령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며 간절한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노력하면 그 때부터 깨닫는 깊이와 넓이가 달라지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신속하게 변화되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비한 심령으로 자신을 돌아보아 철저히 육신의 생각을 벗어버리고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인도받아 범사에 형통하며 많은 열매를 거두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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